‘공정’과 ‘정의’. 두 단어를 빼놓고 문재인·윤석열 두 전·현직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논하긴 어렵다.
이젠 퇴색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을 주장했고,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공정과 정의를 다시 세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두 정부가 공정을 외칠수록, ‘공정성 논란’은 사회 곳곳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역설적인 상황이 ‘진짜 공정 사회’가 오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뉴스타파는 우리 사회 공정성 기준점의 한 축인 ‘병역 의무’를 잣대로 기획을 마련했다. 세대를 초월해 불공정 논란이 계속돼 온 대상이 병역이기 때문이다.
병역 이행의 첫 관문은 신체검사(현 병역판정검사)다. 이를 통해 입영 여부를 판정하는데, 병무청이 주무 관청이다. 병무청은 1970년 8월 설치됐다. 병무 행정의 제1원칙은 병역 의무의 공평한 부과다. 지금까지 120차례 병역법이 개정됐지만, 공평이란 원칙이 철회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문재인·윤석열 초대 내각 80명, ‘병역 의무’ 전수 조사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할’ 고위 공직자들의 병역 이행은 공평할까. 당시 시대상을 반영해 확인했다. 검증 대상은 윤석열·문재인 두 정부의 초대 내각(차관급 포함) 80명이다.
윤석열 정부의 경우 41명이다. 윤 대통령 본인을 포함해 초대 정부를 구성하는 국무총리, 18개 부처의 장·차관(급)은 48명인데, 이중 사퇴자 2명(김인철, 정호영)과 여성 장·차관 5명은 뺐다.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의 경우, 총 39명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포함 초대 국무총리, 장·차관(급)은 47명이다.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공석) 이 가운데 여성 장·차관 7명과 윤석열 정부 1기 내각에 다시 발탁된 이도훈 외교부 2차관은 제외했다.
조사는 대한민국 관보와 장관 후보자들의 국회 인사청문안 자료, 병무청이 제공하는 병역이행 공개 데이터 등을 활용했다. 또한 두 정부 공직자의 병역 이행을 비교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 1기 내각 18명(장관급 이상)도 별도로 조사해 참조 삼았다.
병역 이행은 현역, 보충역, 전시근로역, 그리고 면제 등으로 구분해 조사했다. 병역 이행이 시기별, 인구별,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띤다는 점을 고려하고, 2대 독자(외아들)의 군 면제와 석사장교 제도 등 명멸했던 병역제도를 두루 살폈다.
윤석열·문재인 정부 1기 내각, 각 시대별로 병역 이행 방식 분석
먼저 시기별로 분석한 병역 이행 결과다. 1970년대, 당시 박정희 정권은 독재 정권 유지를 위해 병역을 적극 이용했다. 강제 징집을 통해 대학생을 통제한 것이다.
2001년 병무청이 펴낸 <병무행정사>를 보면 1970년 한해 정부가 단속한 병역기피자는 3만 4,000명에 이른다. 1971년과 1972년에도 각각 2만 1,000명, 1만 2,900명을 적발했다. 현재의 징병 제도가 자리잡힌 1973년부터 적발 건수가 감소 추세를 보이지만, 경찰과 검찰이 동원된 병무사범 단속은 박정희 정권 말기까지 이어졌다. 극소수 특권층을 제외하고 병역 기피는 쉽지 않았다.
이와 함께 박정희 정권은 병역판정검사(당시 징병검사)를 확대하고 더 많은 국민에게 병역의 의무를 지웠다. 공평이란 원칙을 의식해 현역 정원은 유지하면서 보충역 처분 인원을 늘리는 방식을 택했다.
연도별 병역판정검사 1급(현역)과 4급(보충역) 판정 비교, 박정희 정권 당시 4급 판정이 늘었다가 1980년대에 줄어드는 추세를 보인다. 다만, 같은 시기 2급(현역 또는 보충역)과 3급(현역 또는 보충역) 판정율 변화로 보충역 총원은 줄지 않았다.
그 결과, 1971년 7,214명에 불과했던 4급(보충역) 판정 인원은 1974년 7만 8,703명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83% 수준이던 복무 합격자(현역+보충역) 비율도 같은 기간, 90%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고학력자의 현역 입대 가능성이 저학력자보다 커졌다. 바뀐 징집 기준이 상대적으로 고학력자에게 불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세 남성이 병역판정검사에서 3급(2을종)을 받았더라도 대학생은 현역 입대하고, 고등학교 졸업자는 보충역으로 편입하던 시절이었다.
① 1970년대 병역 의무 마친 공직자 8명 중 7명이 현역
이런 시대상은 1970년대 병역을 이행한 고위공직자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문재인·윤석열 정부를 통틀어 1970년대 중·후반까지 병역 의무를 이행한 인사는 모두 8명인데, 이 중 7명(87.5%)이 육군 병장 출신으로 확인됐다.
1953년생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1975년 8월 육군에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인 이낙연은 1952년생으로 1974년 2월부터 1976년 9월까지 현역으로 복무했다. 1952년생인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1951년생인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1949년생인 김상곤 전 교육부총리도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윤석열 정부도 마찬가지다. 1949년생으로 1971년 5월 육군에 입대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병장으로 만기 제대, 1954년생인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1978년 6월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두 정부 고위공직자 중 1970년대 병역을 마친 8명 중 7명이 현역이다. 면제자는 1명도 없었다.
이들 8명 중 7명은 모두 대학 재학 중이거나 졸업 후 현역으로 입대해 군 복무를 마쳤다. 유일한 예외가 당시 ‘고졸’이었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현 경기도지사)다. 김 지사는 1977년 병역판정검사에서 3급 처분을 받고 1978년 3월부터 1979년 5월까지 보충역으로 복무했다. 이른바 ‘방위병’으로 소집된 것인데, 지금의 사회복무요원에 해당한다. 당시 김 지사의 방위병 근무지는 경기도 성남시 태평2동사무소였다.
② 1980년대 병역 의무 마친 공직자 45명 중 8명이 질병으로 ‘면제’
이번엔 1980년대 병역 이행을 살펴보자. 현재와 같은 병역판정검사 기준이 도입된 해는 1984년이다. 검사 결과는 1급부터 7급으로 나뉘는데, 이 중 5급 판정받으면 전시근로역에 편입된다.
전시근로역은 엄밀히 말해 면제(6급)는 아니다. ‘질병 등의 이유로 현역 또는 보충역 복무는 할 수 없으나 전쟁 상황에서 군사 지원업무는 감당할 수 있다고 결정된 사람’이 전시근로역 처분을 받게 된다.
그러나 군대에 가거나 그에 준하는 복무는 하지 않기 때문에 통상 ‘면제’로 간주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았다. 사유는 ‘부동시’다. 1961년생인 심보균 전 행정안전부 차관(문재인 정부)도 윤 대통령과 같은 해(1982년), 같은 사유(부동시)로 전시근로역에 편입됐다.
윤 대통령을 포함해 1980년대 전시근로역 처분받은 윤석열 정부 초대 고위공직자는 모두 4명이다. 연도별로 윤석열 대통령(1982),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1985),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1985),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1988)이다. 조사 대상 41명으로 따지면 약 10%(9.75%)에 해당한다.
문재인 초대 정부에서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은 이는 모두 3명이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1989), 심보균 행정안전부 차관(1982), 임대식 과학기술부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1987)이다. 검증 대상 39명으로 따져 7.69%에 해당한다.
두 정부 고위공직자 중 1980년대 전시근로역(5급) 판정을 받은 인원은 모두 7명이고,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7급(재검)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최근 병무청이 공개한 ‘병역판정검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1984~1989년 전시근로역 판정률은 최소 5.54%에서 최대 6.23%로 나타났다. 1990년대 들어 판정률은 해마다 감소해 1999년엔 2.23%까지 내려갔다. ‘2010~2020년 전시근로역 처분율’은 2.13%다. (총 373만 7,450명 중 7만 9,502명)
이 같은 수치와 비교했을 때, 문재인·윤석열 두 정부 초대 내각의 전시근로역 판정 비율(각각 7.69%, 9.75%)은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다.
전시근로역 판정율은 1980년대 초반을 제외하고 5~6%대를 유지하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2%까지 하락했다.
7급(재검) 판정이 계속돼 면제받은 사례도 있다. 윤석열 정부의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1983년 10월 폐결핵을 사유로 소집 면제 처분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도 사유는 조금 다르지만, 소집 면제된 공직자가 두 명 있다.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둘 다 민주화 운동에 따른 ‘수형’으로 복무하지 못했다.
정리하면, 문재인·윤석열 정부의 공직자 80명 중 1980년대 병역 의무가 부과된 이는 45명이다. 1955년 이후 출생해 20대인 1980년대 병역 의무를 마쳤다. (1979년 5월 입대해 1981년 8월까지 복무한 도종환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980년대 병역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봤다.) 이 중 수형 2명을 제외하고 총 8명이 군 면제(전시근로역 포함)를 받았다.
이보다 앞선 박근혜 초대 내각으로 시선을 돌리면, 초대 법무부 장관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1980년 만성 담마진을 이유로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았고,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1980년 소집 면제 처분을 받았다. 사유는 추경호 부총리와 같은 폐결핵이다.
<병무행정사>에 따르면 1982년 당시 병역판정검사(징병검사)를 받은 인원은 무려 61만 명에 달한다. 이른바 ‘베이비 붐’ 세대다. 전년도(1981년) 검사 인원인 46만 명보다 15만 명이나 많다. 2000년대에는 30만 명대로 줄었다. 입대 예정자가 넘쳐났던 1980년대에 상대적으로 군 면제자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현역 판정율은 45% 정도다. (총 463만 9,479명 중 209만 7,780명)
(다만, 위 전시근로역 그래프에서 보듯 특별히 이 시기 징병검사에서 면제 판정을 많이 내린 것은 아니다. 입대 예정자가 많아 징집이나 소집이 면제되었을 뿐이다.)
③ 윤석열 정부, 1990년대에도 전시근로역 처분으로 면제 받아
문재인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1990년대에도 전시근로역 처분된 사례가 확인된다. 모두 3명이다.
조주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은 1989년 현역인 1급 판정을 받았다가 1990년 대학원 진학을 이유로 입영을 연기한 뒤 1993년 5월 면제 판정을 받았다. 사유는 만성간염이다. 조 차관은 이듬해인 1994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차관급)은 1990년 ‘생계 곤란’을 이유로 소집 면제 처분을 받았다. 김 본부장은 올해 공직자 재산 공개에서 강원도 소재 아파트를 포함해 5억 300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1968년생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차관급)은 1990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곧장 미국 유학을 떠났다. 제2국민역(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 문제 없이 미국에 체류할 수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안 본부장의 면제 사유를 묻는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의 신범철 국방부 차관은 현역이 아니지만 대체 복무를 한 경우다. 신 차관은 한국국방연구원(KIDA)에서 1995년부터 2000년까지 5년간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했다.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국가 산업의 육성·발전을 위해 이공계 우수 인력을 학문 및 과학기술 연구 분야에 종사하도록 한’ 병역 특례다. 주로 이공계 대학에서 학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사람이 대상이다.
그런데 신 차관은 인문·사회계열인 법대 출신이다. 1990년대엔 극히 예외적으로 인문·사회계를 선발하기도 했다. 신 차관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당시엔 인문 사회계 출신도 전문연구요원이 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④ 윤석열 초대 내각 독자 병역 특례 활용
윤석열 초대 내각 41명 중에서 1980년대 현역으로 복무한 사람은 8명이다.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제대한 이가 5명(조현동, 유제철, 전병극, 이기일, 장영진), 장교 출신이 3명(박진, 권영세, 이도훈)이다.
또 방위병 출신은 4명이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각각 1년 남짓 ‘방위병’으로 복무했고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 어명소 국토교통부 2차관의 경우 각각 6개월 만에 군 복무를 마쳤다.
이 같은 6개월 군 복무는 당시 시행된 ‘독자(獨子) 보충역’ 제도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은 2대 독자(외아들) 등 법령이 정한 조건을 충족한 남자의 복무 기간을 대폭 줄여주는 병역 제도를 시행했다. 독자 보충역 제도는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1993년 폐지됐다.
문재인 초대 정부는 어떨까. 1980년대 현역 출신은 12명이다. 현역병으로 만기 제대한 이가 9명(도종환, 김영록, 홍종학, 조명균, 강준석, 김용진, 이성기, 권덕철, 손병석), 장교 출신은 3명(서주석, 조현, 박능후)이다. 반면 방위병은 1명이었다. 보충역으로 1년 6개월을 복무한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다.
⑤ ‘0.2% 특권’ 석사장교 출신 공직자는 12명
고위공직자들이 활용한 병역 특례는 더 있다. 1982년부터 1992년까지 11년간 시행된 특수전문요원, 일명 ‘석사장교’ 제도다.
‘당일치기 장교’라는 은어로 불린 이 제도는 1981년 6월 제정된 '대학원생 등의 병역특례에 관한 특례조치법'을 근거로 두고 있다.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사람, 또는 동등 이상 학력이 있는 사람에게 병역 혜택을 주는 내용이 골자다.
표면적으로는 고도 산업국가 건설에 필요한 우수인력 확보를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이 제도의 수혜자가 고학력자, 그중에서도 소수 특권층이었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일어났다. 특히 '전두환 아들'을 위한 일회성 제도라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다.
석사장교 제도의 큰 특징은 파격적인 복무 기간 단축이다. 특수전문요원 선발시험을 통과한 ‘장교 후보생’은 4개월간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2개월간 복무한 뒤 장교 임관과 동시에 전역한다. 딱 6개월 만에 병역 의무를 마치게 되는 셈인데, 당시 기준 현역 복무 기간이 2~3년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특혜다.
무엇보다 석사장교 제도는 학벌에 근거한 특권층에게 유리하도록 설계됐다.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해외 유학생 또는 서울 지역 최상위권 대학생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전두환 씨가 대통령으로 있던 1985년 전 씨의 장남 재국 씨가 석사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게 대표적이다. 실제 이 제도의 수혜를 입은 사람은 9,400여 명이었고, 이중 해외 유학생은 824명뿐이었다. 나머진 이른바 ‘SKY’로 불리는 유명 대학 출신들이었다.
윤석열 내각과 문재인 내각 모두 석사장교 출신을 중용했다. 윤석열 내각에선 4명, 문재인 내각에선 그 2배인 8명이 석사장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초대 내각에서 석사 장교로 병역을 이행하는 이는 총 4명이다. 연도별로 김기웅 통일부 차관(1986),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1987), 조용만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1987),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1991)이다. 이중 이창양 장관과 조용만 차관, 최상대 차관은 행정고시 합격 이후 석사장교로 선발됐다. 이창양 장관과 조용만 차관은 석사장교 훈련 동기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선발됐을 당시, 연도별 합격자는 1986년 1,346명, 1987년 1,359명, 1991년 506명이다. 이 수치를 바탕으로 매년 징병검사를 받은 인원, 그러니까 병역 의무가 부여된 남성 가운데 석사장교로 선발될 확률은 각각 0.34%, 0.33%, 0.09%다. 1% 미만의 선택받은 소수만이 석사장교 특혜를 받은 것이다.
반면, 문재인 초대 내각 중 석사장교 출신은 윤석열 초대 내각보다 2배 더 많다. 모두 8명이다. 초대 내각 인사 중 비율이 20%가 넘는다.
연도별로 나열하면 임성남 전 외교부 1차관(1984), 이인호 전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1986), 안병옥 전 환경부 차관(1986), 김현종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1986), 김현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차관(1987), 이진규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1988), 맹성규 전 국토교통부 2차관(1988), 김용수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1989)이다.
따라서, 문재인·윤석열 1기 내각에 입각한 80명 중 1982년~1991년 사이 석사장교 제도를 이용해 병역을 마친 공직자는 총 12명이다. 비율로는 15%다. 같은 기간 일반 징집 대상자가 석사장교에 선발될 확률은 0.2%였다.
12명 중 8명은 행정고시 합격자, 1명은 외무고시 합격자였다. 출신 대학별로는 서울대 졸업자가 8명, 연세대 2명, 고려대 1명, 미국 대학 1명 등이다.
⑥ 석사장교 특혜 누린 공직자 중 단 한 명도 답변서 안 보내
이 같은 석사장교 제도의 특혜를 누린 공직자 12명은 석사장교 제도를 어떻게 생각할까. 뉴스타파 취재진은 석사장교 출신의 공직자 12명 중 연락이 가능한 10명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그리고 ① 석사장교 제도가 특권층을 위한 특혜였다는 평가에 동의하는지, ② 해당 제도를 이용함으로써 학문적 성취나 사회적 지위를 얻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하는지, ③ 지금도 제도가 시행된다면, 가족 혹은 지인에게 권장할 의향이 있는지, ④ 마지막으로 윤석열 정부가 석사장교 제도를 부활시킨다면 찬성할 것인지 반대할 것인지 등을 물었다.
원한다면 이름을 가리고 익명으로 보도하겠다고까지 설명했지만, 지금까지 답변을 보낸 전·현직 고위공직자는 단 1명도 없다.
이번 분석 대상은 아니지만, 알려진 대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석사장교 출신이다. 덜 알려졌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안보를 책임지는 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도 석사장교 출신이다.
병역 의무의 형평성과 별개로 석사장교 출신의 엘리트가 정부 고위직에 계속 임명되고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제도가 애초부터 특권층이나 엘리트의 현역 복무 의무를 면제시킬 의도로 도입됐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 제도의 수혜를 입은 집단은 현재 연령대가 55~65세로 우리 사회 주류 세대와 겹친다. 당분간 석사 장교 출신의 고위 공직자는 계속 나올 것이다.
윤석열·문재인 초대 내각 병역 이행 현황, 면제자는 윤석열 내각이 문재인 내각보다 3명 더 많고, 석사장교 출신은 문재인 내각이 4명 더 많다.
신뢰할만한 수준의 표본 수치는 아닐지라도 이번 분석을 통해 이른바 진보 정부가 병역 문제에서 더 ‘깨끗하다’거나 보수 정부가 안보 문제에 더 ‘민감하다’는 속설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또 1980년대 독재의 시대가 낳은 석사장교 제도라는 부조리 앞에서 문재인·윤석열 정부간 구분은 따로 없었다. 병역 문제에선 결코 공정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던 ‘그들’이 역설적으로 ‘공정’을 주창하는 형국이다.
우리 헌법 제39조 1항은 국방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2항엔 “누구든지 병역 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못 배운’ 국민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이익한 처우를 받아왔는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