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100일] 하루의 끝, 어머니는 매일 아들을 만난다

2023년 02월 07일 10시 00분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인 박미화 씨의 하루는 떠난 아들의 방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밤에는 날을 새워 일하고, 아침에는 강추위 속 분향소를 지키는 고된 일상이다. 피로 속에서도 엄마는 오로지 떠난 아들 생각이다. 아들의 체온이 머물다간 모든 것을 보듬고, 또 보듬는다. 100일이 지났어도, 엄마는 여전히 그 시간을 하루처럼 산다. 박 씨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다

하루의 끝, 어머니는 이태원역으로 간다

지난 1월 26일, 눈발이 거셌다. 오전 10시 서울 장위동에 있는 한 식당에서 희생자 유가족인 박미화 씨가 나왔다.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식당에서 야간 일을 한다. 꼬박 12시간을 일하고 나서는 길, 얼굴에 피로가 가득하다. 
집은 식당에서 15분 거리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집 대신 근처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도착한 곳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 하루의 끝에서 박미화 씨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피곤한데, 그래도 분향소를 가야 마음은 편해요. 하루라도 거르면 일이 손에 안 잡혀요. 갔다 오면 손에 잡히고. 아들도 걱정되고..." 박 씨는 말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인 박미화 씨. 오전 10시 퇴근 후 지하철을 타고, 분향소로 향하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이태원역으로 향하는 동안, 박 씨는 틈틈이 아들의 사진을 봤다. 아들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 1994년생 조경철 씨다. 박 씨는 언제나 아들을 볼 수 있게끔 아들의 사진을 휴대폰 잠금 바탕화면에 저장해 뒀다. 사진은 참사 당일인 지난해 10월 29일 핼로윈 분장을 한 채로 찍은 것이었다. 경철 씨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모습이다. 당일 조경철 씨는 친구 2명과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돌아온 것은 한 명 뿐이다. 

"아직도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몰라요"

오전 10시 반쯤 이태원역에 도착했다. 박미화 씨는 이태원역 1번 출구로 나가 먼저 참사 현장을 둘러봤다. 양초와 맥주캔 등 추모객들이 가져다 놓은 물건들이 여기저기 넘어져 있었다. 박 씨가 허리를 굽혀 흩어진 추모 물품들을 한데 정리했다. 참사 현장 벽면에 붙어 있는 추모 메모장도 둘러봤다. 안 본 사이, 메모가 늘어 있었다. 박미화 씨는 "사고 나고 처음에는 겁이 나서 안 와봤어요. 1달 지나고 용기 내서 와 봤어요. 처음에 여기 왔을 적에 가슴이 찢어지고... 울면서 갔어요. 지금도 가끔 들러요"라고 말했다. 
수십 번도 더 와봤던 참사 현장이다.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다. 박미화 씨는 아직 아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망했는지 알지 못한다. 인파 앞쪽이었는지 뒤쪽이었는지, 아들이 어디서부터 사람들 틈에 쓸려 왔는지 모른다. 아들이 왜 서울이 아닌 경기도 성남의 병원으로 이송됐는지도 모른다. 경찰 수사와 국정조사는 모두 끝났지만, 누구도 아들의 행적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목격했을 한 남성을 찾고 있다. 그 남성은 아들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전화로 사고 소식을 박 씨에게 알렸다. 그 남성을 찾아서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어땠는지 자세히 묻고 싶다.  
좀 젊은 분이었어요. 여기 사고 나서 (조경철 씨가) 쓰러져 있다고 전화했어요. 그때 (사고 현장을) 목격하신 분이니까요. 또 거기서 CPR을 해가지고 어떻게 병원으로 옮겨졌는지 알고 있을 것 같아요. 행방을 알고 싶어요. 

박미화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경철 씨 어머니
오전 11시, 박미화 씨가 참사 현장에서 걸음을 옮겨 분향소에 도착했다. 익숙하게 아들의 영정을 찾았다. 사진 앞으로 가서 "경철아 엄마 왔다. 추운데 잘 있었어?"라며 인사했다. 분향소 제단이 흘러 들어온 눈으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박미화 씨는 제단 청소를 시작했다.
어머니 앞으로 희생자 조경철 씨와 친구 김용건 씨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 있다.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29일 함께 이태원을 찾았다 희생됐다. 박미화 씨는 "어릴 때부터 소꿉친구였으니까 같이 사진을 놓았어요"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청소하고 있는 박미화 씨. 
박미화 씨의 아들 故 조경철 씨(왼쪽)는 친구 故 김용건 씨와 이태원을 찾았다가 함께 희생됐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에는 조경철 씨와 김용건 씨의 영정 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다.  

꿈 많은 청년 故 조경철... 어머니는 아들의 유품 옆에서 잠이 든다

조경철 씨는 했던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청년이었다. 커피를 좋아해 곧 카페를 차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직접 커피 머신도 구입했다. 박미화 씨는 집에서 경철 씨가 내려주던 커피의 향을 자주 떠올린다. 
원두 마니아예요. 자기가 커피 머신을 인터넷으로 구입해가지고, 집에서 다 조립을 해서 커피 내려서 먹고. 또 카페 하는 걸 되게 원했어요. 커피에 푹 빠졌어요. 낮에는 카페, 밤에는 와인바... 그렇게 같이 하려고 계획을 다 잡고 있었어요.

박미화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경철 씨 어머니
아들은 엄마를 '미화'라고 자주 불렀다. 엄마도 이름이 있는데, 정작 사람들은 '누구 엄마'라며 이름을 잘 안 부른다는 이유였다. 박미화 씨는 "엄마 이름 없어질까 봐, 불러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경철이가 '엄마도 엄마 이름이 있잖아. 내가 계속 불러줄게' 그래서 계속 부르게 된 거예요"라고 말했다. 심성이 고은 아이였다.
오후 3시, 박미화 씨가 긴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잠을 줄여가며 오후 5시까지 분향소를 지키는 때도 많다. 귀가한 박 씨는 아들의 유품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경철 씨를 담은 그림이 눈에 띄었다. 박미화 씨는 "촬영 현장에서 일했을 때 모습이에요. 웹 드라마도 찍고 사람 따라다니는 그런 것(다큐멘터리)도 찍고. 그때는 촬영하러 가서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게 오고... 편집하느라 집에 못 들어온 적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유품 중에는 마이크도 있다. 경철 씨는 노래 부르는 게 취미였다. 집에 노래방 기계를 설치해 노래를 불렀고, 자주 여동생을 데리고 노래방에 갔다고 한다. 박 씨는 경철 씨가 입었던 군복, 학생 때 썼던 안경, 좋아했던 인형, 기타도 모두 보여줬다. 아들의 유품을 하나하나 매만지는 박미화 씨의 눈빛이 떨렸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故조경철 씨의 유품이 모여 있는 방. 어머니 박미화 씨는 항상 아들의 유품 옆에서 잠에 든다. 
박미화 씨는 참사 그날부터 아들의 유품 곁에서 잠을 잔다. 아들의 흔적 가까이에서 잠들면, 혹여 아들이 꿈에라도 나올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박미화 씨는 아들의 방에서 아들과 함께 잠들던 나날들을 기억한다. 거실에서 자려고 누우면, 경철 씨는 자주 어머니의 옆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어머니가 잠을 설치면 팔베개를 해주고 자장가를 불러줬다. 엄마는 귀찮다며 떨어지라고 해도 아들은 '절대 안 떨어질 거야'라며 엄마의 가는 팔을 더 끌어 쥐었다. 그런 경철 씨를 '껌딱지 아들'이라고 불렀다. 야속하게도, 아들은 참사의 그날 이후 한 번도 어머니의 꿈에 들러주지 않았다. 

참사 100일... '끝났다'는 말이 아픈 이유 

참사 발생 100일이 된 지금, 박미화 씨가 원하는 것은 여전히 진상 규명이다. 경찰 수사와 국정조사는 모두 끝이 났지만,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인파에 대비하지 않고, 신고를 무시하고, 늑장 대응을 해 참사를 키운 정부의 책임은 조금씩 드러났다. 하지만 아무도 '왜'에 대해선 답을 해주지 않았다. 왜 대비하지 않았는지, 왜 무시했는지, 왜 늦게 대응했는지. 어머니는 '왜 그랬는지' 알고 싶다. 
왜 그랬나, 왜 골든 타임 놓쳤나. 왜 왜 왜. 아직도 답변해 주는 사람이 없어요. 왜 (희생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는지, 왜 방치했는지, 왜 살리지 않았는지. 왜 (사람들을 이태원) 골목으로 다시 떠밀었는지. 그 아이들이 골목에서 위압감을 느꼈기 때문에 살려 나온 거 아니에요. 살고 싶어서 나왔는데 왜 다시 죽음으로 왜 떠밀어 넣냐고요. 끝까지 왜 그랬는지 왜, 그걸 밝혀야 돼요.

박미화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경철 씨 어머니
74일간의 긴 수사를 마친 경찰도 유가족들에겐 아무런 연락을 해오지 않았다. 유가족을 대상으로 브리핑이나 설명회도 없었다. 유가족들은 언론에 공개된 수사 결과 말고는 알 수 있는 것이 없다. 밝히지 못한 내막이 더 있는 것이 아닐까, 유가족은 밤낮 생각한다. 박미화 씨는 "우리 유가족들은 다 듣고 싶죠. (경찰이) 굳이 알려줘서 자기네들이 무슨 일이 드러날까 봐, 뭐 꼬투리가 잡힐까 봐 그래서 밝히지 않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책임자들의 사퇴도 없었다. 엄청난 일에 책임을 가진 자들이 자리를 지키려 버티는 것을 보며 유가족은 말문을 잃었다. 지난달 나온 국정조사 결과 보고서에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공직자들의 책임이 명시됐지만, 직을 내려놓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상민 장관은 지난 1월 21일 토요일 이태원 분향소를 '기습 방문'했다. 설 연휴인데다, 온다는 연락도 없었다. 당시 분향소에는 유가족도 거의 없었다. 박미화 씨는 "오면 연락을 하고 오던가 왜 도둑처럼 몰래 와서 하고 갔는지. 자기 자리가 위태로웠겠죠. 비판도 들을 각오가 없으니까 도둑처럼 몰래 오겠죠"라고 말했다.
지난 1월 21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기습 방문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모습. 아무런 사전 연락이 없이 와 유가족들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 했다. 
여당과 대통령도 유가족들을 무시하고 있다.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정조사 내내 '이상민 감싸기'로 일관했고, 국민의힘은 국정조사 보고서에 이상민 장관의 책임을 명시해선 안 된다며 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박미화 씨는 "(국민의힘) 조수진·조은희·전주혜 의원은 유가족과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게 아니라 이상민 살리기를 위해서 투입된 것 같아요. 시간만 까먹고 한 게 없어요. 유가족을 바보 취급하고... "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대통령의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다. 지난해 12월 16일 유가족들이 직접 전달한 요구 서한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은 행안부에 답변을 떠넘기며 침묵했다. 박미화 씨는 대통령을 만나면 묻고 싶다. 이태원 참사 49재 날, 왜 추모제에 오지 않았는지, 왜 굳이 그날 다른 행사에 가 웃으며 사진을 찍었는지 등등 할 말이 많다. 
(안 만나주는 이유는) 떳떳함이 없어서겠죠. 본인한테 잘못이 있거나 떳떳하지 못하니까 만나 주지 않는 거 아니에요. 49재 때 페스티벌인가 뭔가 거기 가서 파티하고 술잔 사고, 떡 돌리고 그게 말이나 돼요. 49재에 오지 못할망정 떡 돌리고 술잔 사고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우리 (희생자) 아이들의 목숨을 같잖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박미화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경철 씨 어머니
지난해 12월 26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49재 당일 저녁, 윤석열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와 함께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윈·윈터 페스티벌 개막식 현장을 찾았다. 같은 시간 이태원역에서는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제가 열리고 있었다. 
결국 지난 100일 동안 정부가 유가족들에게 보여준 것은 위로와 해결이 아니었다. 유가족은 오히려 상처와 실망을 남겼다고 말한다. 이미 참사가 끝났다고, 해결됐다고 말하는 세상이 박 씨는 아프다. 박미화 씨는 "일하다가 들어 보면 일이 다 해결됐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해결이 된 게 하나도 없어요. 이미 해결됐는데 유가족들이 우긴다 그러는데... 아닙니다. 이때까지 해결된 적이 없어서 유가족들이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중인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박미화 씨의 모습.

어머니는 내일도 아들을 보러 갈 것이다

밤 9시 40분쯤 박미화 씨가 출근을 하려 집을 나섰다. 오늘은 3시간 정도 밖에 자지 못했다. 박미화 씨의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지만, 발걸음은 힘찼다. 아들의 사진이 있는 휴대폰이 옷 주머니에 들어 있다. 아들과 함께 출근을 하는 것 같다고, 박미화 씨가 말했다. 
경철이 마지막 사진은 제가 휴대폰 화면에 저장해 놓고 있잖아요. 항상 같이 간다는 기분이 들어요. 경철이하고 같이 있다고. 출퇴근 같이 한다는 생각. 

박미화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경철 씨 어머니
내일 오전 10시, 박미화 씨는 또 퇴근 후 아들을 보러 갈 것이다. 언제까지 분향소에 갈 계획인지 물었다. 박미화 씨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해결될 때까지요. 경철이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하니까요. (아들의) 명예를 찾기 위해서 그 한을 풀기 위해서 그래서 분향소로 가고 있어요." 
밤 10시경 출근을 하고 있는 박미화 씨의 모습. 박미화 씨는 내일 오전 퇴근 후, 또 아들을 보러 분향소에 갈 것이다.
일터인 식당 안으로 들어가려는 박미화 씨를 보내며 기자가 물었다. "이 기사를 통해 무엇이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박미화 씨가 답했다.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다는 점. 진상 규명 철저히 그리고 책임자 처벌, 또 추모관 설치. 추모관이 설치됐으면 좋겠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끔.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밤 10시 박미화 씨가 출근을 했다. 아들이 없는, 또 하루가 시작됐다. 
※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가 다른 유가족, 그리고 생존자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메일 : itaewon1029official@gmail.com
인스타그램 : @10.29_itaewon_official
제작진
취재홍주환
촬영김기철 이상찬
편집김은 윤석민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