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후 상당수 언론은 '예견된 참사'라며 재난을 막지 못한 정부와 지자체를 비판하고 나섰다. 사고 하루 전이나 지난해 핼러윈 당시 이태원 상황 등을 보면, 예측 가능한 재난이자 인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과연 참사 전에 핼러윈, 이태원과 관련해 무엇을 예견하고 어떤 보도를 했을까.
뉴스타파가 언론 보도 행태를 분석한 결과 ‘10만’ 인파가 모일 것이라는 기사는 많았지만, 다중밀집에 따른 ‘안전사고’를 우려하거나 당국의 대책 미흡을 거론하는 보도는 한 건도 없었다. 반면 핼러윈 특수나 행사 기대감, 관련 상품을 홍보하는 기사가 가장 많았다. 이어 성범죄, 절도, 마약 우려 등 치안 문제를 다룬 보도가 많았으나 대부분 경찰 보도자료를 인용한 것이다. 특이한 점은 핼러윈 축제 현장 ‘마약 조심’ 관련 기사가 소셜미디어에서 바이럴을 타고 퍼지면서 핼러윈 축제 관련 이슈를 지배했다는 사실이다. 경찰의 마약 단속 방침이 언론 기사를 매개로 트위터 등에 확산됐고, 결과적으로 안전 관련 이슈는 주목받지 못했다.
이태원, 핼러윈 기사 133건 전수조사…안전 우려는 한 건도 없어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이태원 참사 전과 당일 언론 보도 태도를 살펴보기 위해 이태원과 핼러윈 등을 키워드로 네이버에 올라온 주요 언론사 기사를 전수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경향신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채널A, JTBC, KBS, MBC, MBN, SBS, TV조선 등 20개 언론사, 기간은 10월 17일부터 10월 29일 자정까지다.
핼러윈, 핼로윈, 할로윈, 이태원 등 4개 키워드가 하나라도 언급된 기사를 수집한 뒤, 맥락상 이번 이태원 핼러윈 상황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기사는 모두 뺐다. 그 결과 최종 분석 대상 기사는 133건이 나왔다. 이를 유형별로 살폈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마약 관련 범죄가 우려된다는 기사가 12건, 성범죄와 절도, 마약 등을 포함해 포괄적으로 치안 문제를 다룬 기사가 14건이다. 두 유형을 합하면 전체 기사의 19%다. 이 두 유형의 기사는 대부분 참사 발생 이틀 전인 10월 27일 용산경찰서가 배포한 보도자료 내용을 인용했다.
반면 핼러윈 행사를 소개하거나 기대감을 띄우는 유형의 기사는 22건(17%), 핼러윈 관련 상품 홍보 등 광고성 기사는 무려 60건(45%)에 달했다. 분석 결과 이태원에 많은 사람이 몰려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기사나 당국의 대비가 미흡하다는 기사, 사람들에게 안전 문제를 경고하는 기사는 참사 발생 직전까지 단 한 건도 없었다. 참사 발생 이후 당일 자정까지 사고 발생 소식을 전한 기사는 25건으로 나타났다.
경찰 보도자료 따라 ’마약 비상’, 치안 관련 기사 작성
관련 기사를 유형별로 좀 더 상세히 살펴봤다. 먼저 마약과 일반 치안 관련 보도는 언론사는 달라도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MBC는 27일 “용산경찰서, '핼러윈데이' 앞두고 경찰 인력 집중 투입 나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경찰은 핼러윈 주말 동안 많은 인원이 제한적인 공간에 모이면서 불법 촬영이나 강제추행, 절도 등 범죄가 늘어날 것을 우려해, 내일부터 총 200여 명 이상의 경찰을 이태원 현장에 배치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국민일보는 참사 하루 전인 28일 “3년 만에 맞는 핼러윈… 이태원 클럽 ‘마약 비상’”이라는 기사에서 제목으로 “범죄 취약장소를 분석해 경찰 인력 200명 이상을 이태원 현장에 배치한다”라고 보도했다. 용산경찰서가 27일 배포한 보도자료 ‘안전하고 질서 있는 이태원 핼러윈 축제를 위한 종합치안 대책 추진’을 받아 쓴 것으로 보인다.
핼러윈을 앞두고 언론이 마약 관련 기사를 많이 쓴 것 역시 경찰 보도자료 영향으로 풀이된다. 용산서는 27일 보도자료에서 ‘'유흥가를 중심으로 암암리에 발생하고 있는 마약범죄에 대한 실시간 단속・감시를 강화', '경찰은 핼러윈데이 기간 중 마약범죄와 성범죄 예방 등을 위한 자정노력을 촉구'를 언급하며 마약을 강조한 바 있다.
국민일보는 28일 자 기사에서 "올해는 3년 만의 핼러윈 축제 재개로 10만 명 가까운 인원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투약이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용산경찰서 관계자 발언을 인용했다. MBN도 참사 하루 전인 28일 “3년 만의 핼러윈 맞는 이태원…10만 명 운집에 경찰은 '마약' 집중”에서 (10월 28일) "경찰은 이런 신종 마약 유통 등 단속을 위해 일대 치안 활동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언론의 이런 보도 행태를 두고, 저널리즘 전문가 정미정 박사는 "코로나 이후에 완전히 자유롭게 대중들이 모일 거라는 걸 충분히 다 예측을 했다"라며 "(이 참사의) 책임이 정부와 경찰에 1차적 책임이 있지만, 언론사들 역시 보도자료에만 의존을 했고, 마치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 없다는 듯이 그렇게 (예견된 참사라고) 보도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태원’ 언급 ‘마약’ 트윗 40%는 언론 발 ‘마약주의보’
언론이 핼러윈 축제 전에 마약 관련 기사를 많이 내놓으면서 이 기사들이 소셜미디어에 급속도로 퍼져 핼러윈 이슈를 지배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뉴스타파는 언론 기사 분석과는 별도로 핼러윈을 앞두고 트위터에 올라온 트윗을 전수조사했다. 기간은 10월 25일 오후 4시 45분에서(데이터 크롤링 기술 문제 때문에 이 시점 이후 트윗 수집이 가능했다) 이태원 참사 발생 직전인 29일 밤 10시 15분까지다. 키워드 ‘이태원’이 들어간 모든 트윗을 수집했다. 모두 17,708건이 나왔다.
특이한 건 이태원이 언급된 17,708건의 트윗 가운데 10월 27일 오후 5시 41분 이전의 트윗에는 마약 관련 이야기가 한 건도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국민일보 공식 트위터 계정이 이날 오후 5시 41분에 “이거 사탕 아냐? 이태원, 핼러윈 앞두고 ‘마약주의보’”라는 트윗을 올리면서 트위터상에 ‘이태원, 마약주의’ 관련 이야기가 빠르게 퍼졌다.
분석 기간을 좁혀서 국민일보가 이 트윗을 올린 직후부터 참사가 발생한 29일 오후 10시 15분까지 ‘이태원’을 언급한 트윗을 집계했다. 모두 13,869건이 나왔다. 여기서 ‘마약'을 언급한 트윗은 5,535건, 무려 40%에 달했다. ‘이태원 마약주의' 트윗은 대부분 언론사의 기사를 인용·전달하거나 캡처해서 올리는 형식이었다. 참사 이틀 전인 27일 저녁부터 트위터에선 이태원과 마약이 붙어 다녔다고 볼 수 있다.
트위터 공식 계정에 ‘이태원 마약주의’ 트윗을 올린 언론사는 국민일보 외에도 SBS(10월 28일 오후 1시 51분), TV조선 등이 있다. 다른 언론사 기사도 인용 형태로 트위터에 많이 퍼졌다. 이처럼 핼러윈데이 직전 이태원을 언급한 트윗의 절반 가까이가 마약을 거론하면서 소셜미디어 이용 빈도가 높은 젊은 층에선 이태원 인파 밀집에 따른 안전사고 경각심보다는 마약을 더 우려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용산경찰서 보도자료 → 언론 보도 → 트위터로 이어진 마약주의보에 안전사고 우려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언론이 경찰 보도자료를 근거로 ‘이태원 마약주의’를 강조하는 기사를 내보낸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당국이 설정한 프레임이나 가이드라인을 넘어서서, 시민 안전이나 생명에 위협이 될 징후가 있다면 언론이 독자적으로 취재해서 경고음을 울리는 것이 저널리즘의 책무다. 하지만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언론은 엉뚱한 방향으로 갔다.
133건 중 절반가량이 핼러윈 상품 광고, 기업 홍보성 기사
뉴스타파가 전수조사한 이태원 및 핼러윈 관련 보도 133건 가운데 가장 많이 나타난 유형은 핼러윈 관련 상품 광고성이나 기업 홍보 기사다. 모두 60건으로 전체의 45%다. 매일경제가 35건(59%)으로 가장 많았고 세계일보(7건), 국민일보(4건), 서울신문(4건), 한국경제(3건) 순으로 나타났다. 홍보 대상을 보면 온라인 게임 홍보 기사가 19건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유통업계 프로모션 홍보 기사가 11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외에 대형 쇼핑몰, 호텔, 놀이공원 등을 홍보하는 기사가 확인됐다.
(왼쪽부터) 매일경제 22.10.20. / 국민일보 22.10.19.
이런 기사를 보면 홍보성 기사인 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서술 방식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핼러윈을 맞아 북적이는 서울 상권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 유통업체 홍보로 끝나는 기사가 그런 경우다. 문화일보가 10월 29일 보도한 '엔데믹 후 첫 핼러윈에 ‘열광’… 이태원에 10만 명 몰린다'(사회 섹션)는 사회면 기사 형식을 갖췄으나 사실상 이마트, GS리테일, 롯데월드몰 등에서 하는 프로모션이나 행사를 홍보하는 내용이다. 기사 전반부에서는 올해 이태원에 “최대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전망”하고 이태원 주점 주인의 말을 인용해 상권 활성화에 기대감을 조성했다. 그러나 중반부터는 이마트 매출 추이를 보여주는 조사 결과를 인용하는 등 기업 홍보를 이어갔다.
특정 기업 프로모션을 홍보하는 기사는 언론사는 달라도 내용이 같거나 유사했다. 경향신문의 '롯데아울렛, 핼러윈 등 앞두고 대규모 할인 이벤트 제공(경제 섹션, 22.10.27.)' 기사와 국민일보의 '롯데아울렛, 연중 최대 규모 할인 행사(시사 섹션, 22.10.28.)' 기사는 롯데아울렛 핼러윈 할인 행사를 홍보했다. 두 기사는 할인 행사 설명뿐 아니라 서술까지 일치한다. 서울신문도 27일, 28일 양일간 두 신문과 유사한 내용을 내보냈다.
매일경제와 내일신문은 시몬스침대 홍보 기사에서 같은 내용을 인용해 썼다. 매일경제의 '시몬스 침대, 핼러윈 맞아 삼성서울병원 환아에 깜짝 굿즈 선물(기업 섹션, 22.10.21.)' 기사와 내일신문의 '시몬스 침대 '힙'한 선행 나선다(경제 섹션, 22.10.21.)' 기사를 보면 “수면 전문 브랜드 시몬스 침대가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 환아들에게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청담' 인기 굿즈 세트를 선물했다”는 문장이 일치하고 다른 정보도 겹친다.
노골적인 기업 홍보나 상품 광고성 기사는 아니지만 전체 기사 133건 가운데 핼러윈 축제 분위기를 띄우고 특수 기대감을 부추기는 기사도 22건(17%)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이태원 참사 발생 전 2주 동안 이태원과 핼러윈을 언급한 기사 133건 중 다중밀집으로 인한 안전사고 우려를 제기한 기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연 선문대 명예교수(한국재난정보미디어포럼 회장)는 “(많은 인파가 모이도록) 방송도 부추긴 면도 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 언론이 행사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보도를 함으로써 더 많은 인파가 모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저널리즘 전문가 정미정 박사는 "언론사가 그렇게 많은 기사들을 쏟아내는데, 광고 아니면 보도자료 이런 거밖에 없다"고 지적하며, "(안전 문제에) 대비가 충분히 되어 있는지 묻는 기사가 거의 없었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다음 날인 10월 30일부터 참사 소식을 전하면서 ‘예견된 참사’라는 표현을 사용한 기사가 수십 건 쏟아졌다. 이런 기사들이다. “이번 사고는 예견된 참사였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실제, 이같은 상황은 사고 발생 전날인 28일에도 연출됐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MBN, 10월 30일), “지난해 핼러윈을 맞은 이태원 거리의 사진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시에도 골목이 인파로 가득 차 있어 ‘예견된 참사였다’는 반응이 나온다”(머니투데이, 10월 30일), “일부 목격자들은 ‘예견된 참사’라고 했다. 사고 발생 6시간 전부터 사고 발생지인 해밀턴 호텔 주변이 포화상태였다는 것이다”(경향신문, 10월 30일). 하지만 참사 당일 이태원에 모인 많은 시민이 안전 불안을 호소할 때도 언론은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참사가 발생한 이후에야 ‘예견된 참사’라는 말로 참사를 규정하는 한국 언론. 세월호 참사 때 한국 언론이 보인 행태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언론이 예고된 참사라는 말을 하려면, 사전에 감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어야 한다"라며 "(언론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재난은 아니"었지만, "언론의 초점이 사건을 예방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 건 분명한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