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외교 1년…'동맹이냐 적이냐' 이분법의 위험성

2023년 05월 11일 20시 00분

"제가 대통령직에 취임한 1년 전 이맘때를 생각하면, 외교안보만큼 큰 변화가 이루어진 분야도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2023.5.9 
윤석열 정부가 취임한 지 지난 10일로 1년이 됐다. 지난 1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을 맞아 특히 "외교안보 분야의 변화가 컸다"고 말했다.
실제 외교안보 분야는 많은 이슈를 낳았다. 지난해 9월 윤 대통령의 유엔총회 관련 해외 순방 외교는 숱한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의 실언이 구설수에 올랐고 한미 정상이 단 '48초' 만났던 일이 많은 이들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대통령의 외교 행사에서 발생하는 각종 논란도 가벼이 볼 문제는 아니지만, 본질적인 것은 외교적 무게추의 이동이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자유'와 '인권'을 강조하며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큰 변화'는 최근의 '한미동맹 격상'과 '한일 셔틀외교 복원'을 의미한다. 
정부여당이 말하는 '큰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봐야할까. 윤석열 정부 취임 1년을 맞아 현 정부 외교 정책에 담긴 함의와 함께 그 이면에 놓인 우려와 향후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가장 관건적인 시기"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앞에 있는 외교안보 상황은 만만치 않다. 미중의 전략 경쟁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탓이다. 경제, 군사, 기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지난 3월 오랜 적대 관계였던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두 국가 사이를 중재한 것은 바로 중국이다. 중동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다. 그런데 중국의 중재로, 그것도 미국과 가까운 관계였던 사우디 아라비아와 중동에서 가장 미국에 적대적인 이란이 관계 정상화에 합의했다. 이는 적어도 중동에서 미국 주도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뉴욕타임즈는 "중국이 중재한 거래가 중동 외교를 뒤집고 미국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보도했다.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사우디-이란 관계정상화 이면에 있는 이란의 속내를 분석했다. 포린 폴리시는 이란이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붕괴하고 있고 중국, 러시아, 이란이 주도하는 반 서구 국제 질서가 형성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동 이야기가 함의하는 바는 세계 곳곳에서 미중 전략 경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며 국제질서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전략 경쟁에 있어서 가장 관건적인 시기에 들어섰다라고 서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5년 내지 10년의 기간은 미중 패권의 향배를 결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라고 규정하면 될 것 같아요.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한국 상황은 어떨까. 한국은 미국과는 전통적인 안보 동맹, 중국과는 경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한편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통상 국가며,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미국과의 안보 동맹이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후견국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한국의 외교 전략을 세우기가 쉽지만은 않은 배경이다. 남북 평화에 주안점을 뒀던 지난 정부는 이런 이유로 이른바 (미중) 균형 외교를 택했다.

"함께 싸운 혈맹", 그리고 비용

한미 두 정상 (출처 : 대통령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선명한 외교 노선’을 택했다. 즉 외교 전략의 중심에 ‘한미 동맹’을 놓고 한미동맹을 최우선으로 외교 전략을 재편한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에 맞서 함께 싸우며 피를 흘린 혈맹이다. 민주당 정권에서 무너져 내린 한미동맹을 재건하겠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2022.1.)
오늘 저는 저와 바이든 대통령님의 생각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일치한다는 것을 느꼈다.

윤석열 대통령 (2022.5. 한미정상회담)
아세안을 비롯한 주요국과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윤석열 대통령 2022.11. 한-아세안 정상회의
이 전략의 가장 큰 결과물은 지난 4월 열린 한미정상회담이었다. 지난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함께 '워싱턴 선언'을 공동 발표했다. 
이 선언에서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확장 억제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북핵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핵협의그룹’(NCG), ‘전략핵잠수함’(SSBN)의 한반도 기항 등이 발표됐다.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모든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 우리는 이 선택이 가져올 비용도 봐야 한다. 

“백기 투항”

박진 외교부 장관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있다.
현 정부에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동맹 강화, 그리고 한일 관계 복원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당시 한일관계 경색의 원인이 된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를 찾아갔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일본 총리와 만나 “강제 징용 문제 해결책에 관해 상당히 밀도 있는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 정부는 강제징용 문제 해법을 발표했다. 정부는 일본 기업 대신 한국이 강제 징용 피해자에게 대법원의 판결금과 그 이자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사과를 받기 위해 대법원의 승소 판결까지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오랜 시간을 치열하게 싸워왔다.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이른바 ‘해법’은 이들의 싸움을 무위로 돌리고 대법원 판결 취지까지 퇴색시켰다.
이후 시민사회의 비판이 들끓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백기 투항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강제징용 문제 해법 발표 이후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 정상화는 공통의 이익”이라며 “강제 징용 문제의 재점화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발언했다. 
윤 대통령은 미 국빈 방문을 앞두고는 “100년 전 역사 때문에 일본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언해 또 논란을 키웠다. 김흥규 소장은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그 역사는 그대로 남을 것이고 그 선례는 그대로 남을 것이다. 우리가 너무 가벼이, 그 역사적 무게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러시아의 게임

여당은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 해법을 두고 윤 대통령의 ‘결단’이라고 표현했다. 표면상 한일 관계 자체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고 기시다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일 셔틀외교가 12년 만에 복원’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미 국빈 방문을 앞두고 중국과 긴장 관계를 조성했다. 윤 대통령은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를 두고 “(대만에서 발생하는) 긴장은 힘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 때문에 발생했다”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이 변화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불용치훼'(타인의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즉각 대응했다. 윤 대통령은 같은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도 암시했다. “대량학살 등이 발생할 때는 인도지원, 재정지원에만 머무를 수 없다”고 했다. 러시아는 즉각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전쟁 개입”이라며 발끈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문제나 대만 문제는 굉장히 예민한 문제다. 그리고 이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건 강대국들의 게임이다. 그런데 한국이 모든 걸 쉽게 판단해 얘기하는 건 앞으로의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금 산업 제조 능력이라든지, 글로벌 공급망이나 이런 게 사실상 세계 1위예요. (냉전 체제의) 소련과는 중국은 완전히 다르다는 거죠.  중국이, 세계 제일의 공급망 제조업을 가진 국가가 러시아와 이란으로부터, 사우디로부터 계속 안정적인 자원을 확대하고 그리고 브릭스라든지 유라시아 국가로부터 이런 국가들의 시장을 확대시켜 나간다고 했을 때 한국이 과거처럼 그냥 한미일 가치 외교라든지 이런 식의 어떤 냉전적 접근을 해서 미국 편에 서서 이 게임을 벌인다고 했을 때 과연 이 게임에서 얼마큼 승산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북한의 게임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에서 뺄 수 없는 게 바로 북한과의 관계다. 한국은 북한과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 상태다. 북한의 군사 도발은 한국의 직접적 안보 위협이다. 
하지만 남북 관계의 긴장은 완화될 기미가 없다. 지난해 12월, 북한 무인기 5대가 우리 영공에 침투했을 윤석열 정부는 똑같이 군사분계선 이북으로 무인 정찰기를 올려보냈다. 당시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이 북한 무인기 사태를 보고 받자마자 “우리 드론도 즉각 北으로 올려보내라”는 지시를 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2022.12.29.)는 것이 대통령의 메시지였다. 
(남북관계는) 지금 개인적으로 놓고 보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요. 지금까지 있었던 남북 관계에 뭔가 긴장 완화라든가 혹시나 생길 수 있는 어떤 군사적인 충돌이라든가 이런 것을 완화할 수 있고 차단할 수 있는 어떤 대화라든가 또 통신망 이런 것들이 이미 다 없어져 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소위 말해 안전핀이 뽑혀버린 거예요.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윤석열 정부는 지난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핵 위협에 대한 확장 억제 강화를 이끌어냈다. 핵협력그룹과 미국의 전략핵잠수함의 한반도 전개 등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이나 동맹·파트너들에게 핵 공격을 하는 건 용납 될 수 없으며 그렇게 한다면 그게 어떤 정권이 됐든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김동엽 교수는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핵협의 그룹이나 전략핵잠수함 등의 확장 억제로 인해 북한이 위축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것은 북한이 자신들의 군사적 행동과 무력 개발을 정당화하는 좋은 명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중러 결합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구도는 한반도 평화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전문가들은 공고해지는 '한미일' 구도로 생기는 반작용, 즉 '북중러' 결합을 우려하고 있다. 
(워싱턴 선언에서 합의한) 핵 협력 그룹과 전략핵잠수함, 이 두 개 다 사실 어떻게 보면 내용이 없어요. 속빈 강정이라고 통상 이야기를 하는데요. 차라리 속빈 강정이면 다행이에요. 썩은 강정을 줬을까봐 그게 문제인데요. 이거는 한반도의 문제라고 우리가 아무리 이야기를 하더라도 지역의 위기를 고조시킬 수밖에 없어요. 긴장을요. 결국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할 수밖에 없고 중국과 러시아가 서로 군사적인 협력을 강하게 만들거나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직간접적으로 군사적 지원을 하는 명분을 만들 수밖에 없는 거예요. 확장 억제가 아니고 저는 ‘확장 위기’, ‘확장 긴장’이라고 봐요.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진영론에 입각하면 그들은(북중러) 한 통속으로, 마치 동맹처럼 여겨지는데 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중국과 북한과 러시아의 세계관은 다 다르고요, 그들의 전략도 다 달라요. 각각 자기 이익을 위해서 지금 각개 약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묶어주는 효과가 있는 거죠. 오히려 우리는 최대한 북한을 억제하고 고립시키고 우리가 의도한 우리의 국가 이익을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되는데 오히려 상대 진영을 더 강화시켜주는 그런 부작용이 초래되는 거죠.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북중러를 우리가 정말 적대적 동맹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했을 때 우리가 겪어야 될 안보적 리스크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리스크라고 보이거든요. 우리가 그냥 한미일만 뭉친다고 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요?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 시장에서 뭘 얼마큼 수출해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거며… 앞으로 중국의 반발 뿐 아니라 북중러 3개국의 반발도 심해질 겁니다. 그렇다고 윤석열 정부가 이제 와서 포지션을 바꾸기도 어려울 테니, 앞으로 대외 정책이 갈수록 리스크가 큰 게 아닌가 그렇게 보입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
윤석열 정부 임기는 아직 4년이 남았다. 현 정부의 외교 유산은 무엇으로 남을까. 결국 한반도 평화와 경제 실리 여부가 그 평가를 좌우할 것이다. 
우리가 예상하는 비용보다 더 큰 실리를 가져올 수 있느냐가 현재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소위 ‘시대적 결단’이라는 것을 평가해줄 수 있겠죠. 왜 우리가 대일 관계를 이렇게 급격하게 개선시키려고 했는지, 왜 미국에 가서 그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그런 합의를 했는지. 우리의 실질적인 이익과 그 근거를 확보하는 것, 그것이 정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
제작진
촬영김기철 신영철 오준식
편집박서영
디자인이도현
CG정동우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