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헛소문'이라더니...언론재단 이사장 직행한 김효재

2023년 09월 18일 16시 00분

김효재, 기자와 대면한 그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너무나 당당했던 그의 앞에서 힘주어 질문을 던진 필자도 당시에는 사뭇 당황했을 정도다.
퇴임 이틀 전인 지난달 21일, 그는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으로서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회의장을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권태선 MBC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해임안을 통과시키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는 위원장 직무대행이 된 뒤 석 달도 안 되는 사이, KBS와 MBC 방문진, 양대 공영방송 이사장과 현 야권 추천 이사를 속속 날려버렸다. 공석이 된 이사 자리에는 정부·여당의 거수기가 될 게 뻔한 보수·극우 인사들을 줄줄이 앉혔다. 30년째 지켜온 TV 수신료 통합징수제를 문제 삼더니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함께 걷지 못하도록 방송법 시행령 개정을 강행했다. KBS의 힘을 빼놓기 위해 공영방송의 공적 기능 유지에 필수적인 재정적 근간부터 흔들어버린 것이다. (관련 기사: 해임,해임,해임...김효재 방통위 직무대행의 무리수)
언론계에서는 직무대행 체제의 방통위가 ‘폭주’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행동은 그만큼 유례없는 것이었다. 1952년생, 고희를 넘긴, 적지 않은 나이의 공인에게 붙이기엔 너무나 불명예스러운, ‘방송 장악의 부역자’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그의 거침 없는 처신을 지켜보는 이들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그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취재할 수 있는 방통위 출입 기자들도 그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2023년 8월 9일, 김효재 당시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이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타파 취재팀은 그가 퇴임하기 전 반드시 그의 생각을 듣고 기록에 남기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그를 쫓았다. 그는 꼿꼿이 서서 기자의 눈을 피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임기하고 이런 결정 사항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국가적으로 해야 될 일은 임기에 관계없이 언제나 할 수 있는 것이고 해야 됩니다. 그게 공무원인 제게 국민들이 부여한 의무이고 저의 권한입니다. 됐습니까? (이런 결정을) 급작스럽게 한 것은 아니고요. 제가 공무원들에게 늘 강조한 말은 절대로 어떤 일이 있든 절차를 어기지 말라, 규정을 어기지 말라, 이게 저의 원칙입니다.” (김효재 당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 2023.8.21)
원칙론을 앞세운 그의 답변은 멋스러웠지만, 항간에는 소문이 팽배했다. 윤석열 정부의 방송 장악 첨병 역할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퇴임 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에 내정돼 있기 때문이라는 의혹이었다. 기자는 그때만 해도 ‘고작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장 자리 하나 때문에 그토록 불명예스러운 일에 물불 가리지 않는다고 보는 건 억측일지 모른다’고 한편으로 생각했다. 그의 답변을 들어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벌여온 일이 언론재단 이사장 내정설과 전혀 관련이 없는지 물었다. 그를 쫓아간 기자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기자의 어깨를 토닥이며 딱 한마디로 선을 그었다. “그건 헛소문입니다.”
김효재 전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이 임기 만료 이틀 전 8월 21일 전체회의를 마치고 뉴스타파 기자와 만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의 또렷한 답변을 듣고 나니 복잡한 심정이었다. ‘어쩌면 그는 권력에 휘둘린 것이 아니라, 진정 국가공무원으로서의 뚜렷한 신념에 따라 행동했던 것 아닐까’ 하는 단상도 스쳐갔다. 그렇다면 그는 오명일지라도 이름 석 자를 남기고, 시간이 흐른 뒤 역사의 평가를 받으면 책임을 다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초부터 누울 자리를 봐놓고 다리를 뻗은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그저 노욕을 이기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효재는 이제 방통위원 퇴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사실상 차기 언론재단 이사장으로 확정된 상태다. 최근 그가 언론재단 이사장 초빙 공개 모집에 지원하자, 언론재단 이사회가 김효재를 비롯한 두 명의 지원자 가운데 그를 단수 후보자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추천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는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내정설이 “헛소문”이라고 일축했을 뿐, 정당한 이사장 공모 절차에 지원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었다고 화를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자신이 입으로 천명한 신념과 명예를 조금이라도 더 깊이 생각했다면, 자신의 말의 열기가 차갑게 식기도 전에 언론재단에 기웃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사장 자리가 공영방송 장악의 밑작업을 실행한 대가, 낙하산 인사라는 평가는 앞으로 그가 감내해야 할 평가일 뿐이다.
벌써부터 야당에서는 김효재가 언론재단 이사장이 되면 “정부 광고나 신문 지원, 기자 연수 등에서 친정부 언론에 편중된 배분이나 선발이 이뤄질 소지가 다분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우가 아니다. 그가 방통위원 임기 막바지에 벌인 일들을 잊지 않는다면, 그가 기회를 잡았을 때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을 어떻게 휘두르는지, 그가 생각하는 원칙이란 무엇인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김효재는 기자 앞에서 다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모두 헛소문일 뿐이라고 말이다.
제작진
취재홍우람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