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의료위기① Acute on Chronic : 수면 위로 드러난 의료 위기
2024년 11월 21일 20시 00분
<기사 차례> ① 예산 써서 도시재생 하더니...끝나자마자 재개발 |
취재팀은 지난 2월 15일과 지난 22일 서울역 인근 용산구 서계동과 청파동에 있는 거점시설 세 곳을 찾았다. 청파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감나무집은 공유서가이자 공유주방으로 쓰이던 곳이다. 취재팀이 처음 방문한 2월에는 잠긴 문 너머로 보이는 책상에 곰팡이가 핀 상태였다. 마을 카페 청파언덕집과 전시·공연장 은행나무집에도 비에 젖은 우편물과 먼지가 쌓여 있었다. 지난 22일에도 비슷했다. 취재가 시작된 이후 “현재 거점시설 운용 계획 중입니다. 가구 및 기타 물건들 적치 금지”라고 적힌 경고문이 나붙은 게 유일한 차이였다. 지난 2016년 서울역 일대가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며 생겨난 세 거점시설은 지난해 3월부터 1년 넘게 방치되고 있다.
서계동과 청파동 거점시설은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으로 조성됐다.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의 거점시설들은 2019년 9월 완공돼 2019년 11월 개관했다. 일대 주민이 출자해 만든 서울도시재생사회적협동조합이 수탁해 운영했다. 지난해 4월 1일, 서울시는 12월까지였던 협동조합과의 위탁 계약을 조기에 종료하고 서울시로 운영주체를 전환했다. 운영주체가 바뀌기 직전인 지난해 3월부터 거점시설은 문을 닫았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서울역 일대 거점시설을 이용하고 싶다는 신청이 들어오자 지금 시설을 운영하지 않는다며 이용을 허가하지 않았다. “시설 이용률과 재정자립도가 낮아 2022년 3월 운영을 중단했다”고 국민신문고를 통해 밝혔다. 수익성이 떨어져 시설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시는 답변에서 “거점공간에 대한 효율적 운영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취재팀이 지난 22일 찾아가 보니 거점시설은 아직도 방치된 상태 그대로였다.
취재팀은 2년 넘게 서계동 거점시설들을 운영했던 서울도시재생협동조합에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서울시의 평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종필 서울도시재생협동조합 이사장은 “애초에 주민커뮤니티 공간이라 수익사업을 할 수 없는 곳인데, 재정자립도가 낮아서 문을 닫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세 거점시설 가운데 마을카페 청파언덕집 한 곳만 수익시설이다. 청파언덕집은 운영 첫 해인 2020년에는 하자보수로 5개월밖에 문을 열지 못했다. 당시 월 평균 매출은 176만 원이었다. 하지만 2021년 3월부터 12월까지는 월 평균 1280만 원의 적지 않은 매출을 올렸다.
이 이사장은 시설이용률도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20년과 2021년 사업결과보고서를 보면, 아예 문을 열지 못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공유주방이 있는 감나무집은 2020년 월 평균 58명, 2021년에는 월 평균 143명이 이용했다. 은행나무집에서 2020년에 진행한 목공 체험과 영화 상영 프로그램에는 44명이, 2021년에 진행한 예술 관련 프로그램에는 158명이 참여했다. 이 이사장은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면 높은 이용률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조합은 거점시설 대관이나 프로그램 참가를 사전 예약제로 운영했다. 거점시설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대개 노인이다. 인근 주민들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방식은 아니었던 셈이다. 감나무집 바로 앞에서 5년째 가게를 운영하는 81세 김 모 씨는 “나는 시설을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면서 “주민들 잘되라고 하는 거겠느냐, 다 자기 잇속 챙기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를 포함해 취재팀이 현장에서 만난 인근 주민 5명 가운데 4명이 “거점시설을 써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1년 넘게 방치되던 세 거점시설은 이제 철거를 앞뒀다. 지난해 12월, 서계동과 청파동 일대가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사업 2차 후보지로 선정됐다. 서울시 도시정비과 공공개발팀 관계자는 이 세 거점시설이 재개발 부지에 포함돼 철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 거점시설은 노후 주택을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한 것인데 감나무집은 11억 원, 청파언덕집은 14억 원, 은행나무집은 9억 원 이상이 들었다. 세 거점시설을 만드는 데 들어간 35억 원이 넘는 비용도 철거와 함께 사라진다.
대구대 지리교육학과 이영아 교수는 지난 6일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거점시설을 활용하지 않는 상황이) 문제라면 큰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지어놓은 건물은 잘 바뀌지 않는다. 공공시설(거점시설)이 이렇게 들어와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주민들이 쓸 수 있는 인프라가 늘어나는 것이다. 재개발이 된다면 그 인프라를 금방 부숴버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거점시설은 주민을 위한 공공 공간이다. 서울형 도시재생지원센터가 2019년 9월에 낸 소식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도시재생 지역마다 커뮤니티 공간을 포함하여 거점시설을 매입하는 이유는 그만큼 공공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이웃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함께 모이고 얘기할 곳이 없음을 알게 된다. 공공 공간이 많아지면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이웃과 함께 누릴 것과 공유할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부산 영도구 해돋이마을에서 ‘회장님’으로 통하는 이옥자(80) 씨는 “거점시설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도 하고, 밥도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서로 물어보고, 안 보이면 찾아나선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는 2015년 ‘새뜰마을사업’으로 건립한 거점시설 해돋이행복나눔터가 있다. 이곳은 비누공방이나 치매교육을 진행하는 휴식 공간으로 운영되는 커뮤니티시설이다. “영도구 안에 노인이 그렇게 많아도 그렇게 모이는 덕분에 독거사하는 분이 없다”는 게 이 씨의 자부심이다. 지난해에는 거점시설 앞 밭에서 다같이 기른 호박을 팔아 60만 원 수익을 냈다.
김은희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지난달 19일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날이 더우면 정말 모여서 잠이라도 자거나, 아이들 공부방으로 쓰거나, 취약한 지역 주민들이 함께 쓸 수 있는, 정말 필요한 공간이 거점시설”이라고 말했다. 정말 필요한 시설이라면,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공공이 공간 복지라는 개념을 가지고 지원해 줘야 한다고도 했다.
2017년 발표된 ‘새뜰마을사업’ 매뉴얼을 보면, “‘목소리’를 낼 만한 사회적 힘이 적어 지자체의 지원 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는 달동네가 공동체를 회복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 곧 커뮤니티센터 등 공동이용시설이라고 돼 있다.
2015년부터 진행된 ‘새뜰마을사업’은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이다. 매뉴얼에는 사업에 신청하도록 권장하는 지역의 조건이 나온다. 1) 4m 미만으로 폭이 좁은 불량도로에 접한 주택 비율이 50% 이상이거나, 2) 30년 이상 된 노후주택 비율이 70% 이상이거나, 3) 상하수도와 도시가스를 설치하지 않은 비율이 30% 이상인 낙후 지역이 새뜰마을사업 대상지다.
취재팀은 ‘새뜰마을사업’ 거점시설 운영 현황을 취재했다. 먼저 2015년부터 2019년 사이 새뜰마을사업에 선정돼 사업기간인 4년이 지난 대상지 98곳을 전화로 전수조사한 뒤 5곳을 선정해 직접 현장 취재했다. 지난달 21일부터 한 달여 동안 시군구청 관계자, 도시재생지원센터 관계자, 주민 등을 통해 거점시설 운영 현황과 용도를 확인했다.
98곳 가운데 사업 기간에 거점시설을 세웠고 기간 연장 없이 사업을 마친 곳은 62군데였다. 같은 사업으로 세운 거점시설이 여러 개이거나 물리적으로 같은 거점시설을 쓰지만 운영 주체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별도의 거점시설로 봤다. 이렇게 집계한 거점시설 수는 80개다. 이 가운데 지금 운영이 되지 않는 거점시설은 약 20%인 15개다.
방치된 거점시설들은 운영주체나 활용용도를 정하지 못한 곳을 말한다. 15개 가운데 용도를 정하지 못해 방치되는 시설은 4개다.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의 텅스텐마을에는 거점시설로 잣을 선별하는 공동작업장을 세웠다. 2017년 새뜰마을 사업에 선정된 텅스텐마을은 지난해 거점시설이 준공됐지만 여전히 운영주체와 용도를 결정하지 못했다. 영월군청 관계자는 “주민협의체와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용도를 정했지만 운영주체가 결정되지 않은 거점시설은 7개로, 그 가운데 4개 거점시설은 2가지 용도로 쓰기로 했다. 총 11개 용도 가운데 7개가 커뮤니티시설, 2개가 상업시설, 2개가 복지시설이었다. 4개 거점시설은 운영주체와 활용용도를 정했지만 세부 사용계획을 확정하지 못해 운영이 지연되고 있었다.
거점시설은 왜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 것일까. 국토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2020년 발행한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거점시설 운영관리 모델 개발 가이드북”을 보면 2015년 12월 재생지역으로 선정된 서울역 일대의 거점시설은 “설계 이전부터 콘셉트와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워크숍 운영을 하는 매우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거쳤다. 2017년 9월부터 공공건축가, 전문가, 서울시 공공재생과, 현장지원센터 코디네이터가 모여 다수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건축가는 건물별 디자인 콘셉트와 기본구상을 발표하고 코디네이터는 각 건물별 용도와 거점시설 준공 이후 운영방안을 발제해 함께 논의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2019년 9월 서울역 일대 도시재생지원센터 소식지에는 “서울역 일대 거점시설은 매입 단계부터 완공 후 운영관리에 대한 구상을 했다. 그런데 막상 그 과정이 쉽지 않아 각 거점시설의 용도 결정과 운영, 위탁관리비용을 산정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2018년 3월 진행했다. 공공재생과의 전폭적 지원과 협의가 있어 가능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당시 회계사 등으로 꾸려진 용역팀은 서울시가 산정한 지원 예산이 적다며 지속가능성을 염려했다. 하지만 거점시설 운영관리 매뉴얼을 보면 그 컨설팅 내용이 “사업 내용에 다수 반영되지는 않았다.” 서울역 일대 일부 거점시설은 결국 당시 용역팀의 염려대로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2020년 국토연구원 보고서 “도시취약지역 공동체 기반 거점시설 운영방안”을 보면 “선정 과정에서부터 지자체가 운영관리계획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도록 하고, 이 계획이 미비한 경우 조성규모를 줄이거나 조성을 제한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용도나 주체 등 계획이 근거를 갖춰 현실성 있게 잘 세워졌는지를 검토하여 사업을 선정해야 막상 거점시설을 지어놓고는 방치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계획을 초기에 세웠는지보다 시행 전에 계획을 치밀하게 검토했는지가 중요하다. 새뜰마을사업에선 대상지로 선정되기 위한 응모 때부터 용도를 구상한다. 지자체가 거점공간을 어떻게 조성할 계획인지, 운영과 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주민, 전문가와 논의한 사업신청서를 국토부에 제출해야 응모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계획은 많은 경우 사업에 선정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수정된다. 사업을 진행하며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수정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선정 단계 계획이 미비하다 보니 실행되지 못하고, 거점시설 운영에 줄일 수 있었던 공백이 생긴다.
전주 승암마을은 새뜰마을사업으로 세운 거점시설을 2020년 준공 이후 2년 넘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전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성원석 팀장은 “건물을 짓기 전에는 주민협의체에서 경로당으로 쓰려고 했던 건물인데, 경로당을 쓰시는 분들이 옮기지 않겠다고 해 용도를 새로 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다. 선정 당시 제출한 용도가 거동이 불편한 경로당 이용자들의 의사 등을 고려하지 못하고 정해진 것이다.
지난해 9월, 주민들은 시설을 도서관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승암마을 통장 박광연 씨(58)는 ‘바람쐬는여행자도서관’이라는 이름의 도서관 운영계획을 담은 7장짜리 건의문을 전주시에 제출했다. 하지만 고려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주변에 이미 도서관이 많았다. 시의 허가를 받지 못하자 지난해 11월에는 마을회관으로 쓰자고 박 통장과 마을 협동조합 관계자가 논의해 전주시에 제안했다. 그런데 논의 자리에 없었던 주민협의체가 시의회 등에 일방적 결정이라며 항의했다.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거쳐 현실성 있는 용도를 결정한 뒤 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대가로, 승암마을에 건립된 거점시설은 2년 넘게 방치되고 있다. 도시재생지원센터와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마을공동체활성화지원센터를 총괄하는 전주도시혁신센터 소영식 센터장은 “어떤 식으로든 주민들이 합의해 용도를 정할 수 있도록 전주시와 함께 매뉴얼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땅히 위탁할 운영주체가 없으면 시, 군, 구가 직접 거점시설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태백시 삼방동에 있는 새뜰마을사업 거점시설을 시가 직접 운영하는 이유도 “위탁할 주민 그룹을 찾지 못해서”라고 태백시청 관계자는 말했다. 홍성군 홍성읍 새뜰마을사업 거점시설인 창업지원센터도 주민이 주도하는 사회적기업에 위탁해 운영하려고 했지만 “군에 젊은 연령층이 없어” 위탁하지 못했다. 홍성읍 창업지원센터는 준공 후 4개월 넘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전체 거점시설 가운데 주민이 운영하는 곳이 가장 많은 35곳이다. 하지만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재 시, 군, 구가 직접 운영하고 있는 거점시설은 전체의 40% 가까운 30곳이다. 도시재생사업이 끝나 사업비가 없는 상황에서, 거점시설의 관리를 위탁할 대상을 찾지 못한 지자체는 떠맡은 거점시설의 용도를 다시 정하고 운영관리비를 확보해야 한다.
지자체들은 이들 거점시설 운영관리비를 다양한 방식으로 조달해 거점시설을 운영한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자체 예산으로 운영·관리비를 해결한다. 복지과와 노인과 예산을 써서 마을회관이나 경로당으로 운영하는 거점시설은 지자체 운영 거점시설 30개 가운데 22개였다. 거점시설 4곳은 도서관과가 도서관 예산으로 관리를 맡는 작은도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다른 사업단이 거점시설을 사용하기도 한다. 인천시 동구의 거점시설인 원괭이커뮤니티센터 1층은 구청이 세운 인천동구지역자활센터 사업단 ‘청소장군’이, 2층은 구청 건축과가 마을주택관리소로 사용한다. 모두 원래 거점시설을 설치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2005년부터 사업을 이어온 자활센터 청소장군 관계자는 “청소사업 인허가를 받을 때 사무실이 필수”라며 “민간 건물을 쓰다가 여기로 와서 이용료 없이 관리비만 낸 지 2년이 넘었다”고 말했다. 홍성읍 창업지원센터 관리를 담당하는 홍성군청 관계자도 경제과 창업사업 예산으로 창업지원센터를 운영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새뜰마을사업의 후속 사업을 진행하며 시설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시는 후속 사업인 주민돌봄사업에 거점시설을 활용하고 있다. 주민돌봄사업에 선정되면 그 예산으로 공간 관리비와 인건비를 지원할 수 있다. 부산 북구 구포2동과 동구 범천동은 부산시 차원에서 진행하는 ‘부산형 통합돌봄사업’에 선정돼 복지관과 함께 거점시설을 취약계층 주거시설인 공동홈으로 운영한다. 대구대 지리교육학과 이영아 교수는 “이렇게 몇 개 부서가 같이 나눠서 쓰는 건 그나마 잘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이 운영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데 지자체까지 마땅한 용도를 찾아내지 못하면 거점시설은 애물단지가 된다. 전주시 팔복동 팔복새뜰마을에 있던 거점시설인 ‘팔복새뜰 어울마당’은 원래 운영하던 협동조합이 휴업을 한 뒤 한동안 임시주민센터로 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나마 임시주민센터 역할도 끝나고 문을 닫은 상태다. 전남 장성에 있는 삼가지구 새뜰마을의 거점시설도 주민들이 운영을 포기한 2020년부터 운영을 중단했다. 2018년부터 시설을 운영하던 노인회, 부인회 주민들은 코로나19로 운영을 접었다.
지자체도 거점시설 운영관리비를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데, 거점시설 운영을 수탁받은 주민 조직은 어떻게 운영과 관리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일까?
전체 거점시설 용도를 보면 카페 등 상업시설(40개), 마을회관 등 커뮤니티시설(33개), 건강시설이나 공동홈 등 복지시설(18개)로 주로 활용된다. 상업시설의 75%인 30개를 주민이, 커뮤니티시설과 복지시설의 58%인 30개를 시·군·구가 운영한다. 주민 조직이 주로 상업시설을 운영하는 이유가 있다. 상업시설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운영관리비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민들이 상업시설 운영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다. 처음 해 보는 일이 태반인데, 마땅히 도움을 받을 데도 없다. 주민들이 거점시설을 위탁받아 운영을 시작할 때쯤이면 벌써 일부 ‘새뜰마을사업’은 종료된다. 사업이 종료되면 행정기관과 주민 가운데서 조율을 담당하던 도시재생지원센터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돕던 사람도 금전적 지원도 사라지고 나면 거점시설 운영은 완전히 주민의 몫이 된다.
경남 진주 새뜰마을사업 거점시설인 대봉새뜰센터 1층에서 카페 대봉숲을 운영하는 정표환 이사장(60)은 “초창기 운영을 도와주던 활동가들이 철수하고 서울로 올라간 게 한 3년 됐다”고 말했다. 지원 사업을 열람하려 해도, 시에 보고할 서류를 만들려고 해도 컴퓨터를 잘 써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따로 서류를 볼 사람을 두고 싶지만 최저임금에 4대 보험, 퇴직금을 감당할 사정이 안 된다고 했다.
같은 사업 거점시설인 새뜰마을 커뮤니티센터에서 식당 옥봉루를 운영하는 김순분 이사(65)도 “젊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 어렵다. 이전에는 시에서 2년간 월급을 주는 청년 일자리 사업에 선정돼 젊은 직원을 고용했지만, “2년짜리 자리라 그런지 백방으로 알아봐도 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지금은 할 수가 없다”고 했다. 1년에 전기요금과 가스비로 108만 원이 나가고, 회계처리 비용으로 132만 원이 나갔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 월급도 겨우 주는데 지원 사업 없이 서류 처리할 사람을 뽑아 월급을 줄 수가 없었다. 정 이사장과 김 이사 모두 도움을 원했다.
김은희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주민들은 그래도 행정이 이걸 지었는데 설마 무시할까, 좀 지원해 주지 않을까, 전문가나 행정은 5년 동안 열심히 주민 공동체를 활성화해서 주민 역량이 강화되면 스스로 운영할 능력을 갖지 않을까, 같은 환상이 쌍방에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업이 끝나 도움 없이 운영을 시작해야 하는 주민 조직은 앞으로도 늘어날 예정이다. 광주시 ‘양3동 별마루 발산 새뜰마을사업’은 2015년 시작돼 연장을 거쳐 지난해에 끝났다. 그러나 사업 과정에서 거점시설로 지어진 양학선 기념관 개관이 밀렸다. 광주시 서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양학선 기념관은 지난해 2월에 완공됐지만 전시할 물건을 확보하고 인테리어를 하는 과정에서 늦어졌다. 주민협의체가 운영할 예정이지만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사업종료와 건물 완공이 맞물리면서 양3동 주민협의체는 처음부터 코디네이터 등 지원센터의 도움 없이 거점시설을 운영하게 됐다.
거점시설 운영을 민간조직에 맡기는 이유 중 하나는 수익창출이다. 세종시 침산마을 새뜰마을사업 거점시설이 2년 넘게 운영 주체를 찾지 못하던 2020년, 세종시 관계자는 국토연구원이 진행한 전화면접조사에서 “수익창출에 유리하도록 사업지구 외 주민조직이나 민간조직을 운영 주체로 선정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등 민간조직은 수익창출을 목표로 거점시설을 맡지만, 거점시설은 공공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설이다. 수익을 창출하되 어떻게 공공성을 실현할지, 기준이 필요하다.
2018년, 부산 사상구에서 거점시설 새밭마을 에코하우스(현재 ㅌㅌㅌ센터)를 운영하기로 한 팔방미인 협동조합 김진순 이사장(43)은 설계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시설을 운영해야 할 협동조합이 쓸 사무실이 없었다. 김 이사장과 조합원들이 그 점을 지적하자 설계를 맡은 모 대학 교수는 “조합 사무실이 왜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조합원들은 2년 가까이 사무실 없이 앞이 트인 안내데스크 뒤에서 일했다. 김 이사장은 지난해에야 “리모델링을 해 학장천 역사관을 정리하고 사무실도 만들었다”고 했다. 구청과 함께 준비해 신한희망재단이 국토부와 함께 하는 사회발전기금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덕분이었다.
김 이사장은 운영 주체가 쓸 사무실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구청 생각은 달랐다. 2015년까지 해당 사업을 담당한 도시재생과 곽인구 과장은 “거점 공간은 일부의 전유물이 아닌 주민 전체의 공간이다. 운영주체가 결정됐다고 해서 그 팀이 계속 그 거점시설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보니 사무실을 두기는 어려웠다”고 말했다. 2016년부터 2년간 사상구청 담당자였던 전호열 팀장도 “한 사람의 시설이 아니라 전체의 건물”이라고 강조했다. 전 팀장은 “실제 평수가 크지 않은 건물이다. 운영주체라지만 거기에 조합만을 위한 사무실을 두면 어떻게 보이겠느냐”고 말했다.
김 이사장도 공공성을 염두에 두고 시설을 운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김 이사장은 “일하시는 분들 수당 주고 남는 돈은 100% 지역에 환원한다. 복지관에 현금 기부하고 현물 기부도 한다. 공식적으로 진행한 프로그램 결과로 기부를 하기도 한다. 기부 영수증이 나오는 곳으로만 기부하고 있다. 주민들을 위해 인당 1만 원짜리 공예 프로그램을 무료로 열기도 한다. ㅌㅌㅌ센터 위층에 구가 운영하는 경로당이 있어 경로당으로 음료도 보낸다. 세금과 인건비를 빼면 돈을 전혀 쓰지 않는다. 심지어 이사장은 무보수로 하고 있다. 한 달에 2~30만 원 적자가 나면 사비로 메꾼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어차피 무료로 운영하는 시설 아니냐”고 생각한다. “내 세금 내고 구청에서 하는 곳인데 왜 돈을 받느냐고 민원이 들어왔다. 새벽마다 개인번호로 문자를 보내 항의하기도 했다”고 김 이사장은 말했다. 김 이사장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갈 곳이 없는 아이 어머니들, 놀 곳 없는 중, 고등학생들, 어르신들이 와서 쉬기를 바라고 거점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주민협의체로 사업 계획 단계부터 참여한 김 이사장은 “컵 값, 휴지 값이라도 내야 하지 않겠냐”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상업시설로 거점시설을 운영하는 주민들은 공공을 위해 거점시설을 운영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최소한의 수익을 내야 운영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남 진주 거점시설을 운영하는 대봉숲 정표한 이사장도 “내 고향이니까 봉사하는 것이지, 돈도 안 되고 새벽에 장 봐야 하고, 이렇게 시간 쪼개서 누가 하겠느냐”고 했다. 정 이사장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최저임금도 받지 않고 일하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거점시설을 어떻게 운영하는 것이 공공성을 확보하는 길인지, 공공성과 수익성을 함께 가져가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운영 주체와 행정, 이용하는 주민 모두 기준이 불분명한 셈이다. 김은희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도시재생사업이 주민들에 의해서만 주도되는 게 아니다. 주민도 하나의 주체, 행정도 하나의 주체로 1/n을 하는 협력적 계획이 도시재생이다. 주민 의견이 언제나 옳지는 않다. 다양한 의견들이 우리가 어떻게 갈까 계속 논의해 나가면서 부분 집합을 만들어서 실행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합의를 강조했다.
도시재생뉴딜사업의 사업기간은 5년, 새뜰마을 사업기간은 4년이다. 이 기간이 끝나면 거점시설 운영에 대한 지원은 사라진다. 대구대 지리교육학과 이영아 교수는 “거점시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주민의 역량이 5년 만에 강화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주민들로서도 한정된 기간이 부담스럽다. “주민이 (거점시설을 운영하지 않고) 빠지는 이유는 5년이 지나면 예산이 끊겨 더 이상 안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미래가 안 보이니까 빠지는 것이다.”
사업기간이 끝나고 나면 평가가 시작된다. 새뜰마을사업 매뉴얼을 보면 지역발전위원회와 국토교통부, 지자체, 주택공사가 사업을 평가한다. 평가 항목은 사업기획, 사업 집행, 사업 성과로 이뤄진다. 사업기획과 집행과정에서는 사업을 어떻게 추진했는지, 주민에게 사업을 충분히 홍보하고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는지 등을 평가한다. 사업 성과에서는 사업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지역 내외의 파급효과는 어떻고 신규 공간의 운영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평가한다.
이 평가 결과가 예산을 결정한다. 추진실적 평가 결과에 따라 지자체가 받는 총 국비 지원액이 조정된다. 지자체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 국비를 우선 지원받고, 준비도가 낮으면 계획을 보완하는 동안 사업비 교부가 지연된다. 우수 사업지로 뽑히면 담당 공무원과 전문가, 주민에게 표창도 수여한다. 하지만 우수 사업지 선정이 지속가능한 거점시설 운영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옥봉루와 대봉숲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경남 진주시 옥봉지구와 비봉지구도 2019년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도시새뜰마을사업평가에서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진주시는 당시 우수기초자치단체로 표창을 받았다.
이 교수는 평가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시설을 짓고 그걸 기한 내에 모든 성과를 내고 끝내라고 하는 게 문제다. 시설을 짓는 속도로 주민의 역량이 강화되지 않을 것이고, 지역 주민들이 동네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역량을, 특히 경제적 역량까지 갖추게 하려면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 교수는 특히 “도시재생 사업을 왜 할까를 고민해 보면, 거점시설을 만드는 것도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20년, 30년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역량 강화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지역 안에서 지속 가능하게 살 수 있는 삶의 공간을 만드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편에서는 도시재생을 완료한 지역에 서로 다른 정비사업이 거듭되는 상황과 원인을, 2편에서는 방치되고 있는 거점시설과 그 원인을 짚었다. 법이 제정된 지 이제 10년, 초보 단계에 있는 한국의 도시재생이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지 않을까?
3편에서는 한국 최초로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사후관리 조례를 만든 제주도 의회, 유연한 제도로 다양한 도시재생 국면을 만들어내고 있는 일본 도쿄의 다이칸야마 ‘멋진 마을 만들기 협의회’ 등을 참고해 10년을 맞은 도시재생 사업과 도시재생법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취재 | 조벼리, 김대선, 박동주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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