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이명박 대통령은 고졸 출신 은행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나도 야간 상고 출신이다’라는 말과 함께 고졸 채용 확대를 약속한다. 그러자 국내 30대 그룹은 같은 해 8월 고졸 인력 3만 5천 명 신규 모집 계획을 신속하게 발표한다.
실제로 고졸 취업률은 2009년 16.7%에서 2012년 42.3%까지 급격하게 늘어났고, 이는 학력 차별이란 고질병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동시에 낮은 청년 취업률에 대한 대안으로 대부분의 언론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불과 1년이 지난 후, 한 기업은 경영이 악화되었다는 이유로 고졸출신 사원들에게 희망퇴직을 권고 하는 일이 발생한다. 기업 측에선 고졸 사원에 특정한 희망퇴직은 아니었다고 주장하지만, 입사 불과 1년 만에 희망퇴직을 권고 받은 고졸 취업자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고졸 입사자 59명 중 35명이 퇴사하고 만다. 고졸 사원 채용으로 1명 당 1,500만 원의 세제감면혜택을 받은 것은 물론, 정부 포상, 언론 홍보로 회사 이미지 개선 효과를 얻었던 기업의 행태였기에 많은 언론들은 해당 기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급작스런 고졸 사원 채용 확대가 시작되던 때에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했다. 당시 고졸 사원 확대를 담당하던 정부의 한 연구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당수의 기업이 고졸 사원 채용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며, 당시 정권 동안만 유지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음을 고백한다. 일종의 정권 홍보용으로 기획된 졸속 정책이었다는 말이다.
실제로 정권이 바뀌면서 취업 정책은 고졸 사원 채용에서 여성 일자리 등으로 다각화 됐고, 그로 인해 고졸 사원 취업률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그러자 언론은 이번엔 고졸 사원 채용 확대를 다시 강하게 요구한다. 지난 정권에서 홍보 효과를 톡톡히 봤던 ‘고졸 사원 채용 붐’을 다시 주문하는 것이다.
고졸 사원 채용 확대 그 자체는 분명 바람직한 것이나 이러한 주문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청년 일자리 자체가 확대 되지 않는 상태에서 고졸 사원 채용 확대는 결국 대졸 출신 취업자들과의 ‘의자 뺏기’ 경쟁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년 취업률은 조사를 처음 시작한 198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인 39.7%를 기록하고 있다. 고졸 사원 채용 확대라고 하는 이슈가, 보다 근본적인 ‘청년 취업률’ 이슈를 간과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설사 고졸 사원들이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그 이후 회사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기 어렵다는 현실에 대해선 대부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린 나이에 입사하여 겪는 갖가지 어려움, 대졸 사원과의 차별도 문제지만 그 모든 어려움을 견뎌낸다 하더라도 이후 비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이로 인해 고졸 취업자들의 상당수가 다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게 된다. 한 자료에 따르면 ‘고졸 취업 후 대학 진학을 계획하고 있다’는 의견이 48.8%에 이른다고 한다. 거의 절반의 고졸 취업자가 다시 대학진학을 준비한다는 말이다.
대졸 취업자들과의 의자 뺏기 경쟁에서 간신히 승리한 이후의 목표가 대학 진학이 되는 어이없는 상황. 이는 어렵게 얻은 의자를 스스로 포기하고 다시 사다리를 오르는 고졸자들의 ‘진짜 현실’인 셈이다.
고졸자들에 대한 충분한 취업 기회 제공과 대졸 사원과 차별 없는 정당한 대가 지불은 의심의 여지 없이 정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 쟁점을 전면에 내세우며 더욱 근본적인 문제인 낮은 청년 취업률을 간과하게 만들고, 나아가 고졸 취업률 자체만을 부각하여 취업 이후 고졸자들이 겪게 되는 어려운 현실 문제는 외면하는 건 ‘고졸 사원 채용’을 정권의 홍보용 도구로만 사용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모든 잘못된 구조는 청년들이 아닌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낮은 취업률에 힘겨워 하는 청년 취업자들을 다시 고졸과 대졸로 나누어 편 가르기 하는 건 치졸하기까지 하다. 청년 모두가 좀 더 많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두고 모색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동시에 윤리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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