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용사촌 비리 몸살... 보훈처 감독도 엉망
2019년 04월 12일 08시 30분
외교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세금을 빼돌려 관광을 다닌 재외기관장의 비위를 처벌하기는커녕 부실 감사를 통해 면죄부를 준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기관장의 업무상 횡령과 부당해고 등 비위를 신고한 직원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정부 합동감사에서 기관장의 근무태만을 진술한 계약직 직원은 계약 연장불가 통보를 받고 곧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주베트남한국문화원 박혜진 원장은 문화원 직원들을 데리고 지난해 12월 27일 베트남의 유명 관광지인 사파로 1박2일 동안 가족 동반 여행을 떠났다. 이들이 여행을 간 날은 평일이었지만 한 해 사업을 평가하고 내년도 사업에 대해 논의할 워크숍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고 상급 기관의 허락을 얻었다.
그러나 워크숍은 없었다. 오전 8시부터 다음날 오후 9시까지의 워크숍 일정은 모두 관광으로 채워졌다. 박 원장 일행은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3000미터가 넘는 판시판산 정상에 올랐고, 이튿날에는 베트남 소수민족인 몽족이 사는 깟깟마을에서 트래킹을 즐겼다.
당초 계획에는 저녁식사 시간을 이용해 2018년 사업 및 예산 집행에 대한 보완사항과 2019년 사업 계획에 대해 논의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먹고 마시고 구경하는 게 워크숍의 전부였다. 문화원 사업을 총괄하는 현지직원 부 티 홍 와잉 팀장은 아예 워크숍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박 원장의 지시를 받아 워크숍 세부 계획안을 작성한 이진호 실무관은 ‘단순 관광이 아니라 워크숍의 목적에 맞는 논의를 한 적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1년 단기계약 직원인 이 실무관은 최근 정부 합동감사에서 원장의 근태가 불량했다고 진술했고, 감사가 끝난 뒤 박혜진 원장으로부터 정규직 전환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뉴스타파는 워크숍을 빙자한 사파 관광 비용의 출처를 취재했다. 문화원의 2018년 예산에는 워크숍 비용이 편성돼 있지 않았다. 박혜진 원장은 취재진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초 남편상을 치를 때 받은 조의금과 외부 강연료, 심사비 등을 개인적으로 쓰지 않고 모아뒀다가 사파 워크숍 비용에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또 “자신이 직접 돈을 관리하지는 않았고, 와잉 팀장에게 현금으로 맡겼다”며 와잉 팀장이 손글씨로 썼다는 금전출납 메모를 증거로 제시했다.
이 메모에는 박 원장이 2018년 3월부터 12월까지 8차례 모두 2,650 달러와 한국돈 10만 원을 맡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원장이 제시한 증거는 여러모로 이상했다. 우선 돈을 맡긴 정확한 날짜가 적혀 있지 않았다. 또 사파 워크숍에 얼마를 썼고, 남은 잔액이 얼마인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이뿐 아니라 돈을 맡긴 기록만 있을 뿐 장부상으로는 단 한 번도 돈을 꺼내 쓴 흔적이 없다.
박혜진 원장은 “지난해 12월 말 사파 워크숍 외에도 같은해 3월 31일 짱안에서 당일치기 워크숍을 진행했고, 하노이 시내에서도 2차례 직원 단합대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전출납 메모에는 지난해 열린 4번의 행사에 돈을 지출한 내역이 전혀 없었다.
박 원장의 해명은 금방 거짓으로 들통났다. 뉴스타파 취재결과 박 원장은 자신이 모아놓은 사비가 아니라, 국고에서 미화 4,000달러 상당을 횡령해 사파 워크숍 비용을 충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박 원장과 와잉 팀장, 당시 회계담당자였던 김민중 실무관의 카카오톡 대화를 통해 밝혀졌다. 김 실무관은 부당 해고 통보에 반발해 박 원장의 비위를 신고한 직원이다.
김 실무관은 “사파 워크숍 비용을 만들라는 원장의 지시를 받고, 와잉 팀장과 함께 실제 사지 않은 파티션을 구입한 것처럼 꾸민 가공거래를 통해 비자금을 만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박혜진 원장이 부임한 이후 1년 6개월여만에 문화원 행정직원 정원 9명 중 6명이 계약해지 또는 해고 통보를 받았다. 더 많은 희생을 멈추게 하고 싶다”며 가공거래를 통해 국민의 세금을 횡령하는 과정 전반을 기록한 카카오톡 대화를 뉴스타파에 제공했다.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종합하면 박혜진 원장의 지시로 사파 워크숍이 추진됐으며, 국고를 횡령해 비자금을 만든 사실을 박 원장은 잘 알고 있었다. 와잉 팀장은 미화 4,000달러어치의 파티션 구매 견적서를 구해 오는 역할을 맡았고, 당시 회계담당인 김민중 실무관은 가짜 견적서를 발행한 회사에 돈을 송금, 마치 정상적인 구매인 것처럼 지출결의서를 꾸몄다. 박 원장은 이 지출결의서가 허위인 것을 알면서도 서명을 했다.
김 실무관이 돈을 송금한 다음날 와잉 팀장은 가짜 견적서를 만들어 준 업체로부터 소비세 10% 외에 20%의 ‘현금깡’ 수수료가 차감된 2,800달러 상당의 베트남 동화를 되돌려 받았다. 와잉팀장이 예약한 호텔과 렌터카 비용을 제하고 남은 돈은 문화원 현지 직원인 타오 실무관에게 전달돼 사파 워크숍 비용으로 사용됐다. 비자금을 만든 와잉 팀장과 김 실무관은 둘 다 워크숍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타오 실무관이 총무 역할을 맡은 것이다. 박혜진 원장을 제외하고 워크숍에 참석한 직원들은 워크숍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전혀 몰랐다.
와잉팀장은 혹시 모를 회계 감사에 대비, 파티션 구매 수량과 단가를 사전에 조율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비록 가짜 견적서라고 해도 견적 금액을 원장이 지시한 4,000달러에 정확히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화 4,000달러를 당시 베트남 동화로 환전하면 9,284만 동. 우수리를 뗀 9,280만 동으로 계산해도 정확히 나눠 떨어지지 않는 숫자라는게 문제였다. 그래서 와잉팀장이 생각해 낸 ‘안전한’ 숫자는 9,273만 동.
9,273만 동은 원장이 지시한 4,000달러에 가까우면서도 파티션 281제곱미터를 제곱미터당 30만 동에 구매한 것처럼 그럴듯하게 서류를 꾸밀 수 있는 금액이다. 와잉이 책정한 단가와 구매수량은 파티션 판매업체가 발행한 가짜 견적서에 그대로 반영됐다.
문화원 운영경비 출납서류에는 가짜 견적서와 송금영수증만 편철돼 있었다. 실물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 서류상으로만 구매한 것처럼 꾸몄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5월 정부 합동감사가 시작되기 직전 주베트남한국문화원 체험관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설치된 안전펜스 사진이 추가됐다. 이 사진은 문화원이 파티션을 사서 안전펜스를 설치하는데 사용했다고 주장하는데 활용됐다.
박 원장이 워크숍을 핑계로 국민의 세금을 빼돌려 관광을 다닌 사례는 또 있었다. 박 원장은 직원들과 함께 지난해 3월 31일 베트남 짱안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왔다.
박 원장은 서면 답변을 통해 "짱안 워크숍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순방행사 직후에 직원 화합 차원에서 당일 일정으로 다녀온 것으로 비용이 크지 않아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처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시 짱안 여행을 다녀온 한국인 직원 가운데 비용을 분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행 비용은 모두 와잉 팀장이 지불했기 때문이다.
와잉 팀장이 쓴 여행 비용 1200만 동(한화 60만원 상당)은 박 원장의 지시에 따라 만든 비자금으로 벌충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4월 7일 베트남 하남성에서 열린 한국문화의날 행사를 주관했던 김모 전 실무관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박 원장이 하남성 한국문화의날 행사 사업비를 당초 계약한 금액보다 늘려 지급한 뒤 차액을 되돌려 받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세부항목별로 얼마씩 사업비를 부풀려야 하는 지는 와잉 팀장이 정했고, 이후 와잉 팀장은 짱안여행에 사용한 경비를 빨리 되돌려 받게 해달라며 수차례 재촉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 취재결과 김모 실무관의 주장대로 하남성 행사 예산은 문화원 회계장부에 수정 반영된 사실이 확인됐다. 차량대여 등 운송비는 400만 동에서 600만 동이 늘어난 1,000만 동으로, 한복세탁 등 기타물품 구입비는 300만 동에서 700만 동으로, 포토존 제작비는 400만 동에서 600만 동으로 각각 늘었다. 당초 예산보다 모두 1200만 동이 부풀려진 것이다.
부풀린 사업비 1,200만 동은 하남성 행사에서 실제로 쓴 차량 대여비 400만 동과 포토존 제작비 400만 동을 더해 와잉에게 전달됐다.
뉴스타파는 박혜진 원장의 비위에 대해 취재하던 중 주베트남한국문화원의 잘못된 관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른바 촌지 리스트. 이 리스트에는 기자의 실명과 소속 언론사, 1인당 지급한 촌지의 액수가 적혀 있었고, 그 옆에는 서명까지 돼 있었다.
주베트남한국문화원은 지난해 12월 영화제를 열고 기자 40명을 초대해 1인당 50만(한화 2만5천원)에서 100만 동(한화 5만원)씩 모두 2,300만 동을 지급했다. 또 지난해 10월 열린 ‘동화의나라’ 전시에는 1,600만 동이, 11월 개최된 문화예술교육ODA사업에는 1,050만 동의 돈 봉투가 각각 전달됐다. 이를 모두 합치면 4,950만 동으로 원화로는 250만 원 상당이다.
기자를 초청해 촌지를 준 사업의 공통점은 한국인 직원이 아니라 와잉 팀장이 사업을 담당했다는 것.
이에 대해 박혜진 원장은 “기자들에게 행사 기념품을 구입해 준 적은 있지만 현금을 준 적 없다”며 “촌지 리스트에 적힌 금액은 현금이 아니라 기자에게 제공한 선물 값”이라고 주장했다. 와잉 팀장도 “기자 리스트에 적힌 돈은 한국산 가정용품과 같은 기념품을 구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뉴스타파 확인 결과 해당 사업의 회계자료에는 기념품을 구입한 영수증은 전혀 없었다. 당시 회계를 담당했던 김민중 실무관은 “사업비에 기자 초청비 항목이 별도로 있었고, 와잉 팀장이 기자초청비 명목으로 현금을 요구해 받아갔기 때문에 기념품 구입 영수증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문화예술교육 ODA사업 정산서에는 기념품 구입비와 기념품 파우치비외에 ‘기자초청비’가 별도 항목으로 구분돼 있었다. 기자 초청비 액수는 촌지 리스트에 나온 금액과 정확히 일치했다.
뉴스타파는 기자를 초청하는 대가로 돈이 필요하다는 와잉팀장의 말을 문화원 직원이 대사관측에 전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입수했다.
이 카톡대화에는 와잉 팀장이 베트남 언론사 5곳의 기자를 초청하는 대가로 현금 600만 동을 요구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에 주베트남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기자초청비는)대사관 예산처리가 바로 되지 않으니 일단 조치한 뒤 수령증을 받아주면 수교예산으로 처리하겠다”고 답했다.
와잉 팀장이 행사장에서 베트남 기자들에게 촌지를 돌리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도 나왔다. 주베트남한국문화원 박상모 실무관은 “와잉 팀장이 돈 봉투를 만들어 기자에게 하나씩 주는 장면을 봤다”고 말했다. 이들의 증언과 증빙자료를 보면 돈을 미끼로 베트남 언론을 조종하지 않았다는 와잉 팀장의 해명은 거짓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따라 기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현금을 제공할 경우 돈을 받은 기자는 물론 돈을 준 사람도 처벌받는다. 하지만 베트남 현지 언론사 기자와 와잉팀장은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법적 처벌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박혜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실행된 두 차례의 국고 횡령과 베트남 기자들에게 촌지를 주는 문화원의 잘못된 관행은 자칫 완전범죄가 될 뻔했다.
지난 5월 20일부터 23일까지 외교부, 문화체육관광부, 문체부 소속기관인 해외문화홍보원은 주베트남한국문화원에 대해 정부 합동 감사를 벌였다. 갑작스레 해고 통보를 받은 김민중 실무관은 해고가 부당하다며 항의했고, 박 원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박 원장에 대해 업무상 횡령 의혹과 근무태만 등의 비위를 신고해 감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정부 합동 감사는 박혜진 원장의 비위 혐의를 하나도 밝혀내지 못했다.
오히려 합동 감사반은 박 원장 등이 사파 워크숍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티션 견적서를 가공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 파티션을 구매했고, 설치까지 완료했다는 엉터리 결론을 내렸다. 파티션을 구입해 주베트남한국문화원 체험관 리모델링 공사의 안전펜스로 사용했다는 박 원장의 해명을, 감사반이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정부 합동감사에 참여한 외교부 감찰담당관실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파티션에 대한 회계서류를 다 보고 진술도 받아 소명이 됐고, 실제 구입한 파티션을 눈으로 봤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리모델링 공사비에 당연히 포함돼 있어야할 안전펜스가 공사발주때 누락됐다며 문화원이 일반 예산으로 구매한 것이 적절하냐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해외문화홍보원 홍지원 해외문화홍보사업과장은 파티션이 안전펜스로 둔갑한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서면 답변을 통해 “리모델링 공사 계약을 체결하면서 담당자가 면밀하지 못해 안전펜스가 누락됐다”며 당시 실무자의 업무 미숙으로 책임을 전가했다. 답변서에는 또 “김 실무관이 추후 안전펜스 공사 계약을 체결했다”고 적시돼 있다.
그러나 취재 결과 해외문화홍보원의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당시 리모델링 공사의 실무를 담당했던 문화원 직원은 김민중 실무관. 그러나 김민중 실무관은 안전펜스 계약을 추가로 체결한 사실이 없었다.
게다가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것은 베트남 건축법에 따라 시행하는 것이어서 문화원이 따로 예산을 들여 안전펜스를 구입하고 설치할 의무도 없었다. 리모델링 공사를 맡은 한국 업체는 안전펜스와 관련해 공식 문서를 통해 어떠한 이의제기도 하지 않았고, 안전펜스 공사에 필요한 비용을 따로 청구한 적도 없었다.
외교부와 문체부, 문체부 소속 해외문화홍보원 등 3개 기관에서 4명의 감사관이 합동감사를 진행했지만 엉터리 감사에 책임을 지는 공무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에 대해 김민중 실무관은 “주베트남대사관에 최초 진정을 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고, 외교부에 다시 박 원장의 비위 행위를 신고했는데 이상하게도 정부 합동감사의 표적은 나였다”며 “외교부나 문체부 감사관실이 아닌 제 3의 감찰 기관에서 철저히 시비를 가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취재 : 황일송 기자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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