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카드 5,300만 건, 롯데카드 2,600만 건, NH카드 2,500만 건, 1억 400만 건 이상의 개인 정보가 유출된 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 정보 유출 사태. 하지만 이에 대해 경제 부총리는 오히려 피해자의 책임을 언급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
"금융소비자도 정보 제공을 할 때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다 정보제공에 동의해줬지 않느냐?"
그렇다면 왜 경제 부총리는 조금만 생각해 봐도 뻔히 비판을 받을만한 말을 한 걸까?
[김진혁PD의 미니다큐 5 Minutes]는 이런 생각의 근본적인 배경이 되는 사회 심리학적 오류에 대해 생각해본다.
김진혁 / 뉴스타파
1966년, 사회 심리학자인 멜빈 레너(Melvin Lerner)와 캐럴린 시먼스(Carolyn Simmons)는 개인의 처벌과 보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아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실험을 진행한다.
우선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받는 척 하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들(관찰자들)은 이 모습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이 여자가 왜 이러한 처벌을 받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단지 처벌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외모와 성격을 나쁘다고 말하고, 심지어 일부는 그녀가 전기 충격을 받아 마땅하다고까지 말한다. 즉 사람들은 누군가 처벌을 받는다면(누군가에게 나쁜 일이 발생했다면) 분명 그 사람이 무언가 잘못을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한 것.
다음으로 두 사람에게 퍼즐을 풀도록 하되 상금은 승패와 관계없이 둘 중 아무에게나 임의로 수여한다. 사람들(관찰자들)은 이 모든 상황을 모두 목격한다. 당연히 상금이 임의로 수여됐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도 모두 공개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 두 사람에 대한 평가를 물었을 때 사람들은 임의로 상금을 받은 사람이 더 똑똑하고, 재능 있으며, 퍼즐을 잘 푸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즉 사람들은 누군가 보상을 받았다면(좋은 일이 발생했다면, 성공을 했다면) 분명 그 사람이 잘 했을 거라고 생각을 한 것.
이를 통해 멜빈이 알게 된 사람들의 잘못된 ‘믿음’이 다름 아닌 ‘공평한 세상 오류’(just-world fallacy)다. 즉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 공평하고 공정한 곳'이므로, 이를 역으로 추론하면 ‘만약 누군가에게 나쁜 일이 생겼다면' 그건 아마도 ‘세상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할만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김진혁 / 뉴스타파
이러한 믿음의 가장 큰 문제는 명백한 가해자가 있는 상황에서조차 오히려 피해자에게 그 잘못을 묻는 ‘불공평한’ 판단을 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세상은 공평하니까 피해를 당한 것조차도 결국 피해자 개인의 잘못이란 오류에 빠지게 되는 것. 경제 부총리가 카드사라는 명백한 가해자가 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개인 정보 유출 피해자들에게 ‘동의’를 신중하게 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묻는 것 역시 ‘공평한 세상 오류’에 기인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왕따 피해자에게 성격이 원만하지 못해서 왕따를 당한다거나, 성폭력을 당한 여성에게 조신하지 못해서 당했다거나, 식민지배를 당한 조선인들에게 조선이 무능력해서 식민지가 됐다고 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물론 사람들은 결코 세상이 공평하지만은 않으며, 수많은 부조리가 공존하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착한 사람’에게도 ‘나쁜 일’(처벌, 실패)은 발생할 수 있으며 ‘나쁜 사람’에게도 ‘좋은 일’(보상, 성공)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 역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공평한 세상’이라고 믿는 걸까?
그건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믿는 것보다는 세상이 공평하다고 믿는 것이 심리적으로 훨씬 더 많은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럴 때 세상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곳’이 아니라 규칙에 따라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예측 가능한 곳’(통제 가능한 곳)이 되고, 예측 가능한 곳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해야 자신의 삶 역시 예측 가능해지기(통제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세상이어야만 세상의 규칙을 열심히 따르기만 하면 나도 언젠가 보상을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정말 세상이 공평하다고 냉정하게 판단했다기 보다는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세상이 공평하다고 ‘믿고 싶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은 오히려 현실에 실재하는 세상의 불공평함에 대해 눈감게 만든다. 그래서 세상의 불공평한 부분이 공평하게 변화하도록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대로 유지되거나 더 악화되는데 일조한다. 무엇보다 세상의 규칙만 열심히 따르면 언젠가 보상을 받으리란 ‘기대’는 오히려 현실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단지 ‘마음의 평안’을 얻는 이유로 치러야 할 대가치곤 너무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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