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오늘 12일 카메라 앞에서 서서 다시 한번 퇴진을 거부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수사와 탄핵안 표결 움직임을 두고 '광란의 칼춤'이라고 말하며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비상 계엄 발령이 "헌법의 틀 안에서 이뤄진 고도의 정치적 판단",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멈추기 위한 경고"였다며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12월 3일 밤, 그리고 그 전후에 나타난 12.3 내란 주동자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윤 대통령의 말은 그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수사에 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3 내란의 '프리퀄'
내란의 두 핵심 인물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입니다. 두 사람은 충암고 재학 시절 함께 학도호국단 활동을 하며 40년 넘는 인연을 맺었습니다.
두 사람의 의심스러운 행보는 이미 윤석열 대통령 임기 초부터 시작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11월 대통령 경호처장이 용산의 군경을 직접 지휘할 수 있도록 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습니다. 박정희 유신 체제 때 있던 규정을 부활시키는 것이어서 여론의 반발이 컸습니다. 이때 경호처장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었습니다.
올해 3월에는 12.3 내란에 가담한 주요 군 장성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한남동 공관에서 한자리에 모입니다. 충암고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을 비롯해 이진우 수방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이 참석했습니다. 야당에서는 이미 이때쯤 사전 모의가 이뤄졌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후 또 다른 '충암파'인 박종선 소장이 군내 핵심 정보부대인 777사령관에 임명되고, 9월에는 김용현 경호차장이 국방부 장관이 됩니다. 충암파 핵심 멤버인 여인형 방첩사령관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군내 주요 정보부대가 충암파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취임 이후, 대북 관계는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지난 10월 북한은 우리 군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 침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이 지속적으로 오물 풍선을 날리자 김용현 전 장관이 김명수 합참 의장을 찾아가 "경고 사격 후 원점 타격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12.3 내란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대북 관계 경색은 12월 3일 밤 국군 최정예 부대원들을 움직이는 명분이 됐습니다.
계엄군은 어떻게 움직였나
이 징후들은 현실이 됐습니다. 12월 3일 밤, 윤석열-김용현 두 사람의 주도 아래 국방부, 육군 직할부대와 경찰이 움직였습니다. 12일 현재 국회와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하기 위해 동원된 군 병력은 총 8개 부대 1,193명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동원된 부대의 면면을 보면, 707특수임무단과 수방사 제1경비단 제35대대, 정보사령부 특수임무대(HID) 등 우리나라 최정예 부대입니다.
시간 순서대로 보면,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는 계엄 선포 3분 만에 계엄군이 나타났습니다. 이 장면은 뉴스타파의 보도를 통해 처음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들은 정보사령부 소속 영관급 요원 10명으로 계엄 선포 이전에 이미 인근에 배치된 상태였습니다.
국회에 가장 먼저 도착한 부대는 수방사 소속 군사경찰과 제1경비단 소속 211명이었습니다. 대부분은 국회 외부인원의 진입을 통제하라는 임무를 받고 국회 밖에서 대기했습니다. 많은 시민이 목격한 군용 헬기 안 계엄군은 707특수임무단(197명)과 제1공수여단(277명)이었습니다. 이 중 707부대 15명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청 내부까지 진입했습니다. 그 밖에도 방첩사령부와 정보사령부 요원들이 서울 각지에서 활동하며 요인 체포 등의 비밀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충암파' 여인형 사령관이 이끄는 방첩사령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복심'과 같은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2.3 사태 이후 방첩사 소속 간부들은 여 사령관이 정치인, 방송인, 시민사회인사 등 14명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폭로했습니다. 또 여 사령관은 과천 중선관위에 요원을 파견하며 선관위 내부 전산자료를 복사해 가지고 나오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윤석열의 6시간... '직접 지휘' 방불
12월 3일 밤, '직접 지휘'를 방불케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행적도 속속 확인되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선포 3시간 반 전, 삼청동 안가에서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조지호 경찰청장을 회동한 것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조 청장에게 지시 문건을 하달했고, 이후에도 수시로 통화하며 경찰의 움직임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계엄 선포 전후로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통화를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통화에서 '싹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홍 전 차장이 이 사실을 폭로하면서 윤 대통령이 12.3 내란의 배경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처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국회에 계엄군이 투입된 시점에는 주로 군 지휘관들과 통화했습니다. 처음에는 진행 상황을 확인하다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이 임박해서는 '문을 부수고 국회의원 끌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비상계엄이 단순한 '경고'였다는 윤 대통령의 해명이 무색한 대목입니다.
국회의 표결이 이뤄지고 난 이후에도 윤 대통령이 '제2의 계엄'을 고민했다는 정황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합참 내 보안시설인 이른바 '결심지원실'에 들어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안수 당시 계엄사령관과 함께 회의를 했습니다. 도중에 국회 법령집을 요구하거나, 육군 장성들을 소집시키는 등 윤 대통령은 계엄 해제 발표 전까지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민주주의 수호로 이끈 순간들
12월 3일 밤 국회에 투입된 일선 정예 군인들이 자괴감을 호소한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습니다. 지난 8일 김현태 707특임단장은 이례적으로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며 '부하들은 김용현에게 이용당한 피해자'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김 특임단장은 계엄 당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문을 부수고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진입이 어렵다'고 보고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명령을 받아 수행했지만, 적극적으로는 따르지 않는 '소극적 저항'을 했다고 볼 여지가 있습니다.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선관위 전산자료 탈취를 지시했을 때, 내부 법무관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는 일도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7명 법무관들은 관계 법령을 들어가며 해당 임무가 위법하니 중단해야 한다고 사령관을 만류했습니다. 정성우 방첩사령부 1처장은 이 사실을 국회에 출석해 폭로했습니다.
국회에 계엄군을 투입하기 위해 이동하던 육군 특수작전항공단 헬기가 수방사의 보류 조치로 한동안 국회에 진입하지 못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총괄 지휘해야 할 계엄사령부가 급하게 꾸려지는 통에 부대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12.3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국회에 출석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계엄이 제대로 준비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헌신적으로 계엄군 진입을 막았던 국회 보좌진, 방호과 직원들의 노력이 컸습니다. 부상을 입어가며 무장 군인들을 막아 계엄 상황을 무효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한밤에 국회 앞으로 모인 시민들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많은 계엄군들이 무고한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작전의 정당성을 의심했습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실들
수사는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현 정부와 특수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검찰이 관련 수사에 나서면서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질 수 있겠냐는 의문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상설 특검을 도입해 공정한 수사를 하자는 의견이 있지만, 직무 대행이 될 사람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또 달라질 수 있습니다.
뉴스타파가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을 종합해 12월 3일 밤 전후의 일들을 종합해 봤지만, 전말과 진실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아직 노력과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윤 대통령이 내세우는 '경고성 비상 계엄' 논리를 허물 증거와 증언이 더 필요하고, 누가 어느 정도의 수위로 이 계획에 가담했냐는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 대상은 군경 관계자뿐만 아니라 국무 위원과 여당 관계자 등까지 확대됩니다.
윤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의 권한을 유지하며 각종 수사를 방해하는 것도 걸림돌입니다. 오는 14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탄핵소추안의 투표 결과에 따라 향후 정국은 크게 요동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