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와 검사 - 외전 ② 검찰, 조직보호 위해 공무원 뇌물 덮었나

2022년 10월 18일 18시 00분

2022년 10월 18일 18시 00분

뉴스타파는 지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세 시즌에 걸쳐 <죄수와 검사> 연속 기획을 보도한 바 있다. 2016년 불거진 김형준 전 부장검사 사건의 고교 동창 스폰서로 알려진 '죄수 K'는 첫 번째 시즌과 세 번째 시즌의 주요 제보자 중 한 명이었다. 최근 출소한 그는 뉴스타파를 다시 찾아 감옥에서 다 말하지 못한 진실에 대해 실명으로 인터뷰했다. 뉴스타파는 더 이상 죄수가 아닌 '죄수 K'의 주장을 듣고 검증한 결과를 두 편의 기사로 보도한다. 검찰이 조직 보호를 위해 묻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공무원 뇌물 사건에 대한 얘기다. <편집자 주> 
① "공무원에 뇌물 줬다" 자백, 검찰은 덮었다
② 검찰, 조직보호 위해 공무원 뇌물 덮었나 
앞선 기사에서 뉴스타파는 죄수 K, 즉 김희석 씨가 검찰에 자백했다는 공무원 뇌물 사건의 실체를 보도했다. 무엇보다 우선 뇌물 공여자의 자백이 있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도 상당했다. 계좌를 통해 돈이 오간 흔적이 있고, 접대와 향응의 증거도 있었다. 무엇보다 검찰은 김희석 씨의 자백이 신빙성이 있다며 계좌 추적을 통해 수사보고서까지 만들어 상부에 보고했다. 물론 뇌물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당사자들은 "뇌물이 아니라 투자와 관련된 금전 거래였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어쨌든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하는 사건이라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검찰은 여러 차례에 걸친 김희석 씨의 자백과 수사 요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았다. 김 씨의 최초 자백이 있은 지 거의 2년이 지난 뒤에야 당사자들을 불러 참고인 조사만 했을 뿐 아예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뇌물 사건 수사에 필수적인 뇌물 공여자에 대한 조사도 하지 않았다. 이번 기사에서는 김희석 씨의 자백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은폐됐는지를 다룬다. 

첫번째 은폐, 2016년 7월

2016년 4월 게임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김희석 씨는 동업자였던 한 모 씨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혐의였다. 횡령 혐의를 수사할 때 수사기관은 당연히 횡령한 돈의 사용처를 규명한다. 사용처에 따라 횡령 여부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김희석 씨의 경우도 그랬다.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서부지검 박정의 검사는, 2016년 7월 6일 이루어진 2차 피의자 신문에서 이렇게 물었다. 
박정의 검사 : 계좌의 거래 내역을 보면, 특정 개인 B 씨, 문 모 씨, 조 모 씨 등에게 이체된 내역이 많이 있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박정의 검사 : 계좌의 거래 내역을 보면 특정 개인 B 씨, 문 모 씨, 조 모 씨 등에게 이체된 내역이 많이 있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김희석 : B 씨는 작년에 경기도청 과장으로 근무했던 대학 선배입니다. B 씨에게 지급한 돈은 2015년경 경기도가 14억 원을 지원하며 모바일 게임센터 설립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B 씨가 저의 회사가 프로젝트 사업자로 선정되게 도와주겠다고 하여서 선급금으로 지급한 돈입니다. 
박정의 검사 : 선급금이란 무슨 뜻인가요.
김희석 : 계약 체결에 대한 선급금이란 뜻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4천만 원을 지급했습니다. 
박정의 검사 : 그럼 경기도와 위 계약을 체결하였나요.
김희석 : 아니요,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선급금은 현재까지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김희석 뇌물 사건 2차 피의자신문조서 중 (2016.7.6)
말은 '선급금'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뇌물을 줬다는 자백이다. 공무원이 민간사업자에게 프로젝트에 선정되게 해주겠다며 '선급금'을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검찰이 처음으로 공무원 뇌물 사건을 인지한 순간이었다.  
김희석 씨는 또 다른 뇌물 사건, 즉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의 A씨에게 뇌물을 준 사실도 털어놨다. 역시 2016년 7월 6일 2차 피의자 신문에서다.
박정의 검사 : 계좌 이체를 한 위 8개 계좌 중 한 명이 대구은행 C 씨가 실제 명의자인데, 누구인가요.
김희석 : C 씨는 당시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직원 A 씨의 와이프입니다. 2015년 5월경 저의 회사가 경북테크노파크와 게임센터 구축 MOU 협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위 협약이 확정되면 2016년 경산시 등에서 44억 원을 지원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A 씨가 '인맥이 많으니 44억 원을 지원 받을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진행비를 달라고 해서 돈을 줬습니다.
박정의 검사 : 진행비 명목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직원 A 씨 말로는 에산 지원을 받으려면 관련 부서나 유력 인사에게 힘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경산시 시장, 부시장을 만나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김희석 뇌물 사건 2차 피의자신문조서 중 (2016.7.6)
이번에도 마찬가지, 표현은 '진행비'지만 뇌물을 줬다는 자백이었다. 공공기관의 직원이 소속 공공기관의 사업과 관련해 민간업자에게 "인맥을 써서 예산을 받게 해줄테니 돈을 달라"고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희석 씨의 2차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2016년 7월 6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914호 박정의 검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나온다. 이날 김 씨는 박정의 검사에게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직원 A 씨와 경기도청 공무원 B 씨에게 뇌물을 줬다고 자백했다. 
그렇다면 김희석 씨는 대체 왜 자신의 범죄 혐의를 순순히 자백한 것일까. 
제 입장에서는 어차피 이게 불거질 거면 한 번에 다 같이 터는 게 법률적으로도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공무원들한테 줬던 것들을 한 번에 털어서 한 번에 기소되고, 그래야 제 양형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그런 취지로, 어차피 계좌를 까면 다 나오게 돼 있기 때문에 제가 먼저 선제적으로 A와 B 씨한테 한 금전 지급에 대해 진술을 하게 됐습니다.

김희석 / 죄수 K
횡령 수사에서는 횡령 자금 사용처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어차피 누구에게 돈이 갔는지는 들킬 수밖에 없다. 김희석 씨로서는 기왕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으니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자백하고, 재판을 받는 게 양형상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한꺼번에 털지 못할 경우, 검찰이 뒤늦게 뇌물 공여 혐의를 수사하면 이미 형을 살고 있는 상태에서 추가 기소를 당해 형기가 늘어나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검사 입장에서도 공무원 뇌물 수수 사건은 주목도가 높아 언론에 보도될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인사상의 가점도 높다. 더군다나 이미 뇌물 공여자의 자백이 나왔고, 계좌 추적을 통해 돈이 흘러간 증거도 확보한 상태여서 수사의 성공 가능성도 크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던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박정의 검사는 더 이상 공무원 뇌물 사건에 대해 묻지 않았다. 위와 같은 문답이 있었던 2016년 7월 6일의 2차 신문 이후 이루어진 두 차례의 신문, 즉 7월 29일과 8월 24일 신문조서를 뉴스타파가 확인한 결과, 관련 내용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형준 노출 막기 위해 안간힘 썼던 검찰

그 이유로 짐작되는 건 바로 김희석 씨의 사건에 김형준 부장 검사가 얽혀있었다는 점이다. 
김희석 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한 동업자의 고소장에는 김형준 부장 검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2016년 4월 고소인 측은 김희석 씨가 관리하던 비밀 장부를 근거로, 그가 횡령한 돈 가운데 1,500만 원이 김형준 검사에게 건너갔다고 주장했다. 
수사를 맡았던 마포경찰서는 이런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 김희석 씨와 회사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사건을 지휘하고 있었던 서부지검은 경찰의 영장 신청을  반려했다. "고소인 조사와 피고소인 조사까지 마친 뒤 영장을 신청하라"는 명분이었다. 물적 증거를 압수한 뒤 피고소인을 불러 추궁을 하는 일반적인 수사기법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경찰이 검찰의 지휘대로 피고소인을 조사한 뒤 다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자 검찰은 또다시 영장을 반려하며 아예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라고 지휘했다. 당시 검찰은 이미 김형준 검사의 연루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부지검이 대검에 김형준 부장검사의 비위첩보를 보고한 게 2016년 5월 18일,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라고 지시한 게 5월 19일이다.  
김희석 씨의 횡령 사건 수사를 공무원 뇌물 사건으로 키우다보면 언제든 김형준 부장검사의 이름이 튀어나올 수 있었다. 공무원에게 건넸다고 김희석 씨가 자백한 뇌물이든, 김형준 부장 검사에게 건너간 돈이든 모두 똑같이 김 씨가 횡령한 회사 자금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김형준 부장검사가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이 뇌물 공여자인 김 씨가 자백한 공무원 뇌물 사건까지 덮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대구디지털산업진흥원 직원 A 씨, 경기도청 공무원 B 씨, 김형준 전 검사, 김희석 씨. 2016년 김 씨가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검찰은 어떻게든 김형준 전 검사의 비위 사실이 밖으로 새어나기지 않도록 애를 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씨에 대한 검찰 조사가 단순 횡령이 아닌 공무원 뇌물 사건으로 번진다면, 김형준 전 검사의 존재도 언제든 노출될 수 있었다. 

두 번째 은폐 : 2016년 9월 

2016년 9월 5일 아침, 김형준 검사 스폰서 사건이 한겨레 신문 1면을 장식했다. 검찰이 그렇게 노출을 막아보려고 했던 김형준 검사의 뇌물 수수 사실이 언론에 폭로된 것이다. 이를 한겨레 신문에 제보한 것은 김희석 씨였다. 당초 기대와 달리 김형준 검사의 도움을 받지 못한데다 김형준 검사가 자신을 '팔아넘기려' 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김희석 씨는 검사들에게 김형준 검사에게 뇌물을 줬다고 여러 차례 진술했지만 검찰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검찰은 기왕 폭로가 이루어졌으니 '김형준의 노출을 막아야 한다'는 부담을 털고 김희석이 자백한 공무원 뇌물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을까.
2016년 9월 김희석 씨의 횡령 사건은 서울서부지검 권찬혁 검사에게 재배당된 상태였다. 김형준 검사가 전임 박정의 검사와 그 부장검사였던 김현선 검사를 접촉한 사실이 언론에 폭로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권찬혁 검사도 이 공무원 뇌물 사건을 수사하지는 않았다.
뉴스타파는 권찬혁 검사가 작성한 김희석 씨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모두 확인해봤지만 어디에도 대구 공공기관 직원 A 씨나 경기도 공무원 B 씨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신문조서를 보면 권찬혁 검사는 횡령금의 다른 사용처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물어보면서도 유독 이 두 사람에게 간 돈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권찬혁 검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휘부들하고 좀 상의를 좀 해봐야지만 내가 얘기할 수 있다. 그런데 너무너무 하고 싶다. 이런 얘기까지 했었습니다. 권찬혁 검사가 '하지만 피의자 신문조서에서는 남기지 않겠다.' 왜냐하면 지휘부의 지시나 이런 것들을 정확히 명확하게 받아야지만 조사를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김희석 / 죄수 K
공무원 뇌물 사건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피의자 신문조서에 넣어 버리면 공식 기록이 된다. 피의자 신문조서는 재판 과정에서 언론에 공개될 위험도 있다. 권찬혁 검사는 대신 내부용 수사보고서를 만들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서울서부지검의 수사보고서를 보면, 권찬혁 검사는 대구 공공기관 직원 A씨와 경기도 공무원 B 씨에게 뇌물을 줬다는 김희석 씨의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수사보고서에는 또 계좌 압수수색을 통해 A 씨의 아내와 B 씨에게 수천만 원의 돈이 흘러간 사실도 첨부되어 있다. 이렇게 신빙성이 있다는 취지의 수사보고서를 만들어 윗선에 보고까지 했으면서 권찬혁 검사는 굳이 피의자 신문조서에는 관련 내용을 넣지 않은 것이다. 아직 '지휘부의 지시'를 받지 못해서라는 게 권찬혁 검사의 얘기였다고 한다. 
2016년 9월 22일 작성된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권찬혁 검사실의 수사보고서. 김희석 씨의 뇌물 공여 진술에 '상당한 신빙성이 있다'고 적혀 있다. 
권찬혁 검사가 말한 '지휘부의 지시'가 어떤 방향이었는지, 김희석 씨는 곧 알게 된다. 
2016년 9월 5일 구속 이후 김희석 씨는 서울서부지검과 대검찰청을 오가며 조사를 받고 있었다. 자신의 횡령 사건은 서부지검에서, 김형준 부장검사와 엮인 뇌물 사건은 대검 특별감찰팀에서 수사했다. 김희석 씨는 대검 특별감찰팀의 윤병준 검사에게도 공무원 뇌물 사건을 털어놨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제가 '같이 털자 어차피 뇌물 공여니까 내가 형준이한테만 뇌물을 준 게 아니라 이러이러한 사람들한테만 줬으니 다 털고 싶다'라고 얘기를 했었는데, 윤병준 검사가 얘기하기엔 '지휘부에서 원치 않는다, 일단 김형준과 김희석 간의 친구 간의 일탈로 이렇게 프레임을 짜서 이번 건은 수사를 해야 된다'라고 명확히 들었습니다. 지휘부에서 원치 않는다고. 왜냐하면 그 당시에 뇌물 관련 사건에 등장하는 검사가 10여 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전부 다 대검찰청에서는 감찰을 제대로 안 하고 김형준과 저와의, 삼십 년 친구 간의 일탈로만 마무리 짓고 싶었던 것으로 저는 생각을 합니다.

김희석 / 죄수 K

'가족 인질극'에 수사 불원 자필진술서까지 썼다

서울 서부지검은 결국 김희석 씨에게 '수사를 원치 않는다'는 취지의 자필 진술서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권찬혁 검사가 저를 불러서 '이 부분은 지금 대검에서 수사를 안 하는 것으로 결정을 받았기 때문에 이 수사를 지금 하지 않겠다. 그러니 김희석 씨가 협조해서 지금 현재 그 뇌물 사건, 김형준과의 뇌물 사건 재판 중이기 때문에 이 수사는 추후에 하는 것을 원한다고 자필을 한 장 써달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간단하게 한 3줄 자필로 써가지고 권찬혁 검사한테 전달한 사실이 있습니다.

김희석 / 죄수 K
스스로 뇌물 사건을 자백했지만 오히려 검찰의 사건 은폐에 협조해야 했던 김희석 씨, 검찰이 수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자필 진술서까지 쓸 만큼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했을까. 김희석 씨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로부터 가족과 지인을 보호해야했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그 수사보고서를 보시면 가족이 나오죠, 22명 정도였나요. 아내, 처남, 친동생 그 다음에 제 친구, 지인들한테 제가 비자금을 만들어서 송금해 준 내역들이 다 나오지 않습니까. 그걸 바꿔 말하면 검찰은 언제든지 이들을 공범으로 기소할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이 계좌 내역 있는 사람들을 다 같이 기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협조하면 협조하면 김희석 씨 혼자 단독으로 기소 해줄 수 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제가 거기서 무너져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신에 저를 단독 기소해 주십시오.' 

김희석 / 죄수 K
가족을 인질로 삼아 사건을 원하는 대로 끌고 가는 검찰의 수법은 <죄수와 검사> 두 번째 시즌에서 보도한 '한명숙 위증 교사 사건'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지난 4일 뉴스타파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희석 씨. 김 씨는 수차례 검찰에 공무원 뇌물 사건을 자백했지만,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지금 수사를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자필 진술서까지 강제로 써야 했다고 증언했다. 

세 번째 은폐 : 2017년 10월

횡령 혐의로 6년 형, 김형준 검사에 대한 뇌물 공여 혐의로 벌금 천만 원 형을 선고받은 김희석 씨는 감옥에 갇혀 있던 2017년 10월 대검찰청으로 출정을 나가게 됐다. 앞서 김형준 검사 사건을 조사했던 대검 특별감찰팀의 윤병준 검사실이었다. 이때 김희석은 다시 한 번 공무원 뇌물 사건에 대한 수사를 부탁했다. 
이에 대해 윤병준 검사는 "내가 2014년 수원지방검찰청 특수부에 있었으니 특수부 검사들한테 얘기를 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주요 수사 대상 중 하나인 경기도청 공무원 B 씨는 수원지검 관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윤병준 검사는 김희석 씨가 보는 앞에서 수원지검 특수부 후배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기본적인 수사가 다 돼 있고 계좌 압수수색까지 다 했으니 어느 선까지 수사를 할 것 인지만 정하면 된다. 자료를 보내줄 테니 한번 진행해봐라"라는 게 통화 내용이었다는 게 김희석 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수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 개월 뒤 다시 출정을 나갔을 때 윤병준 검사는 김희석 씨에게 "수원지검 측에서 부담이 돼서 안 된단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뭐가 부담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김희석 씨는 몰라도 된다"라고 답변했다는 게 김희석 씨의 주장이다. 
어디까지나 일방적 주장일 뿐이지만, 이같은 정황은 2020년 2월 김희석 씨가 윤병준 검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뒷받침된다. 편지에는 "나는 제대로 수사할 거라 믿었어요. 윤 검사도 약속했고, 그랬기에 특경죄도 법정에서 자백하고 끝냈지요. 윤 검사님, 지금 윤 검사님의 양심은 어디를 항햐고 있나요"라고 적혀있다. 

검사들의 묵묵부답

뉴스타파는 김희석 씨가 제보한 공무원 뇌물 사건을 덮은 세 명의 검사에게 모두 연락해 입장을 물었다. 
서울서부지검에서 처음 김희석 씨의 횡령 사건을 수사했던 박정의 검사는 현재 울산지검 소속으로 미국에 파견을 가 있다. 박 검사는 "수사 도중 김희석 사건이 다른 검사(권찬혁)에게 재배당돼 이후 사건 진행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현재 전주지방검찰청 형사3부장인 권찬혁 검사 역시 "당시 원칙대로 수사하여 처리했고 이후 파견으로 청을 옮겼기 때문에 진행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현재 대검찰청 수사지원과장으로 근무 중인 윤병준 검사는 대검 대변인실을 통해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만을 밝혀왔다. 재차 입장을 묻기 위해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고, 문자에도 답하지 않았다. 
뉴스타파는 김희석 씨의 뇌물 자백을 덮었다는 세 명의 검사에게 연락했지만, 제대로 된 입장은 하나도 들을 수 없었다.

네 번째 은폐 : 2018년 4월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죄수와 검사> 세 번째 시즌에서 보도한 것처럼 김희석 씨는 2018년 4월 당시 서울지검 특수부 소속이었던 김영일 검사실을 드나들던 브로커 죄수 이 모 씨를 통해 다시 한 번 공무원 뇌물 사건을 제보했다. 
2017년도 12월 경에 제가 서울구치소에 있는데 10년 전에 인천지방검찰청에서 만났던 브로커 죄수 이00이 저한테 접근을 해서 자기가 김영일 검사실 자주 왔다 갔다 하는데 '사건이 좀 필요하다, 사건을 좀 제보해 달라. 그러면 내가 사건 제보 값으로 1억 원을 줄게.' 이렇게 저한테 제안을 했었습니다. 

김희석 / 죄수 K
김희석 씨는 브로커 죄수 이 모 씨가 붙여준 접견 변호사에게 2016년 서울서부지검이 작성한 수사보고서의 일부를 넘기고 6천만 원을 받았다. 뉴스타파는 <죄수와 검사> 세 번째 시즌에서 실제로 돈이 오간 입출금 기록을 공개한 바 있다. 
이후 김 씨는 사건을 제보받은 김영일 검사가 매우 흡족해 한다는 말도 전해들었다. 중간에서 '거간꾼' 노릇을 한 브로커 죄수 이 씨는 그 대가로 김영일 검사로부터 출정과 전화 통화 등의 편의를 제공받았다. 이른바 '삼각 거래'다. (김희석 씨는 자신이 거래에 응해 돈을 받은 것은 죄수와 검사 사이에 벌어진 사건 거래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하며 경찰에 자수와 함께 고소를 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김영일 검사 역시 공무원 뇌물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김영일 검사는 뉴스타파 질의에 대해 브로커 죄수 이 씨를 통해 사건 제보를 받은 건 맞지만 수사 가치가 없었기 때문에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받은 수사보고서 한 장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계좌 추적 내역, 돈을 받은 당사자들의 이름이 들어 있는 가장 중요한 페이지를 넘겼다는 김희석 씨의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2018년 김희석 씨로부터 뇌물 사건을 제보받았다는 김영일 검사도 수사를 하진 않았다. 김영일 검사는 "제보를 받은 건 맞지만 수사 가치가 없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검찰의 선택적 수사... 이번에는 경찰에 자수

정리해보면 김희석 씨는 모두 네 번에 걸쳐 스스로 "공무원에게 뇌물을 줬다"고 자백했지만 검찰은 이를 수사하지 않았다. 김희석 씨가 금품과 향응을 제공했다고 지목한 대구 공공기관 직원 A 씨와 경기도 공무원 B 씨는 2018년 한 차례 참고인 조사만 받았을 뿐 입건된 적조차 없다. 뇌물 공여자인 김희석 씨에 대한 피의자 신문 조사나 대질 신문도 전혀 없었다. 
서울 서부지검은 뉴스타파 질의에 대해 "뇌물 공여자인 김희석 씨를 2017년 4월 수사과, 6월 권찬혁 검사실에 소환해 조사했지만 김희석 씨 본인이 진술을 거부했으며, 이후 관련자 진술과 계좌거래 내역 등 관련 물적 증거를 추가로 확인하는 등 종합적으로 검토해 혐의없음 처분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희석 씨는 "2017년 4월 소환 당시에 검찰은 전혀 수사 의지가 없어 출정 조사도 10분 만에 끝냈으며, 6월 소환 당시에도 수사를 원치 않는다는 자필 진술서만을 요구했다"며 검찰의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뉴스타파와 통화한 한 현직 검사는 "공무원 뇌물 사건을 그렇게 마무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장기 미제 사건을 빨리 털어버리기 위해 형식적인 조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죄수와 검사 - 외전> 1편에서 보도한 것처럼 검사 출신인 김정범 변호사도 "김희석 씨의 뇌물 공여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봤다면, 당연히 피의자 조사나 대질 신문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참고인 조사만 하고 끝냈다는 것은 일반적인 뇌물 사건이라면 허용되지 않는 수사 방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서 다른 검사가 조사하지 않은 뇌물 사건을 또 다시 제보받았음에도 합리적 이유 없이 수사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고 범죄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스스로 자수한 '삼각 거래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은 김희석 씨는 또 다시 검찰에 공무원 뇌물 사건을 진술했고 이를 빨리 수사해달라는 변호인 의견서까지 제출했지만 검찰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김희석 씨는 뉴스타파 보도 직후, 검찰이 네 차례 은폐했던 공무원 뇌물 사건을 이번에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다시 자수할 예정이다. 
제작진
취재심인보 홍주환
촬영정형민 오준식
편집윤석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