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위기② 여기도 사람이 산다 : 지역에 의료는 있는가
2024년 11월 25일 13시 54분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과 <뉴스타파함께재단>은 지난해 ‘2022 뉴스타파-세명대 보도기획안 공모전’을 열었다. 기존의 ‘세명 시사보도 기획안 공모전’과 ‘뉴스타파 대학생 탐사보도 공모전’을 통합한 두 번째 공모전이었다. 국내 유일의 실무형 저널리즘대학원인 세명대저널리즘대학원과 역시 국내 유일의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뉴스타파가 힘을 합쳐 예비 언론인들이 취재, 제작의 실무와 함께 저널리즘의 공익적 가치와 취재윤리 등을 함께 배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공모전에서는 엄정한 심사를 거쳐 <도시재생법 10년 집중 점검> 기획안이 선정됐다. 이번에는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진이 데스크를, 뉴스타파 제작진이 감수를 맡았다. 지난 6개월 동안 도시재생법 10년을 집중 점검한 “도시재생 10년, 길을 잃었나”를 세 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기사 차례> ① 예산 써서 도시재생 하더니...끝나자마자 재개발 |
취재팀이 도시재생사업을 완료한 지역인 광주광역시 양동 어진마을을 처음 찾은 것은 지난해 11월 16일이었다. 꽃과 나무, 동물을 그린 벽화에 빨간 글씨로 철거 표시가 되어 있었다. 담장 너머로는 종이상자, 깨진 세숫대야, 냄비 등 물건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주민 대부분이 마을을 떠나고 세 집만 남아있었다. 어진마을은 5년에 걸친 도시재생사업을 마무리하자마자 전면 철거를 통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어진마을은 2016년, ‘새뜰마을사업’이라고 불리는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36억 5,6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그런데 새뜰마을사업이 마무리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 6월, 지역주택조합이 설립됐다. 그해 12월부터 전면 철거를 위한 원주민 이주를 시작했다. 5년 동안 예산을 투입해서 도시재생사업을 하는 동안 한쪽에서는 재개발이 추진된 셈이다. 결국 도시재생에 투입된 시간과 돈은 매몰 비용이 됐다.
다음 달 4일은 도시재생법 제정 10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해 12월까지 전국 560곳에서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됐다. 그중에서 2014년부터 2017년 사이 선정된 19곳은 작년에 국비 지원이 종료됐다. 올해는 120곳에서 국비 지원이 끝난다. 이제 도시재생 이후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 됐다.
취재팀은 지난해 10월 30일부터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곳을 중심으로 낙후된 주민 생활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집중 취재했다. 도시재생뉴딜사업, 서울형도시재생사업, 새뜰마을사업 등 세 가지 도시재생사업을 모두 취재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로부터 지난 2월 기준 534곳의 뉴딜 사업지 위치정보를 받았고, 서울시 도시재생활성화지역 52곳도 함께 살펴봤다. 재개발과 재건축 등의 정비사업 위치정보는 전국 17개 광역지자체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정비와 개발 사업지 2천 곳의 위치정보를 도시재생사업 구상도와 일일이 비교해 사업지가 겹치는 곳을 찾아냈다.
도시재생을 완료한 곳을 전면 철거하고 재개발하는 곳은 광주 어진마을만이 아니었다. 서울과 경기, 광주에서 모두 5개 사업지가 도시재생을 마무리한 뒤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들 사업지를 모두 현장 취재했다. 특히 서울과 광주에 있는 현장 4곳은 주민과 마을활동가, 코디네이터, 재개발추진위원장 등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두루 만났다.
도시재생사업이 끝나자마자 재개발이 추진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보존 중심의 도시재생사업이 주민들의 낙후된 생활환경을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정비와 개발을 원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국비를 들여 지은 거점시설들은 사업이 끝나자 그냥 방치됐다. 전면 철거를 통한 재개발 과정에서 세입자 주거 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도시재생사업이 주민들의 생활 여건 개선도, 주거 안정도 이뤄내지 못한 것이다.
다시 광주 양동 어진마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어진마을은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되고 소득 수준이 낮은 가구가 많았다. 새뜰마을사업으로 마을에 CCTV가 설치되고 담장이 정비되는 등 안전과 위생이 좋아졌다. 하지만 주민들의 주거환경이 직접적으로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양동 새뜰마을사업을 총괄한 이봉수 광주도시공사 도시주택연구소장은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는 중에도 주민들 사이에서 아파트 개발 요구가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도시재생사업을 하는 동안에도 일부 주민들이 43층 아파트를 짓겠다고 했다. 법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한다고 해서 대규모 개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재생사업이 (매몰비용이 된 것은) 안타깝지만, 솔직히 양동은 너무 낙후된 지역이다. 도시재생사업으로 도시가스를 설치했지만, 하수가 골목길로 넘치는 등 상하수도 문제도 심각했다. 차라리 일정 부분 개발해서 깨끗하게 정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봉수 소장은 동강대학교 건축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양동 새뜰마을사업 총괄코디네이터로 위촉되어 도시재생사업 전반을 총괄했다. 그는 2016년 새뜰마을사업 당시 어진마을이 다른 마을보다 도시재생을 하기 좋은 여건이었다고 말했다. 우선 양동시장이라는 배후 상업 지역이 있어 입지가 좋았다. 거점시설 조성, 빈집 정비 등 사업 추진을 위한 토지 매입도 비교적 쉬웠다. 그런데 도시재생이 진행되던 중 지역주택조합이 빈집을 사들였다. 그는 재개발이 추진되어도 착공까지 10년 넘게 걸리거나 중간에 무산되는 경우가 많고, 그동안 투자가 중단되어 도시가 슬럼화되기 때문에 도시재생사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건물주와 세입자의 사정도 완전히 달랐다. 철학원을 운영하던 노승용(57) 씨는 철학원을 하던 건물에서 86세인 어머니와 15년 동안 세입자로 지냈다. 2년마다 사글세 300만 원을 주고 계약을 연장해왔다. 집단 이주가 시작되며 철학원이 문을 닫고 수입도 끊겼다. 양동은 물론 주변에서 민간 개발사업 3개가 동시에 추진되면서 주변 집값이 올랐다. 갈 곳을 찾지 못해 1년 동안 수도와 가스가 끊긴 상태로 살았다. 지난해 6월 지역주택조합은 소송을 냈고, 법원은 퇴거하지 않으면 강제집행을 하겠다는 통지서를 보냈다.
“이럴 거면 벽화 그리고 도시가스 설치는 왜 했는지 모르겠어요. 도시재생사업이라는 게 누구를 위한 사업인지 모르겠어요. 끝나면 다 부숴버리는데.” 근처에서 1년간 보증금 없이 사글세 200만 원짜리 임시 거처를 구한 승용 씨의 말이다. 이봉수 소장은 “재개발에서 원주민 재정착률이 실제로 10~15%도 안 된다. 원래 살던 사람들은 실은 보상금도 없고 철거하면 끝이다. 임대주택 등으로 주거를 해결하면서 도시재생사업에서 개별적인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 남구 월산동 달뫼마을도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뒤 재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5년부터 7년간 이곳에 사업비 71억 9,500만 원을 들여 ’새뜰마을사업’을 추진했다. 2019년부터 1년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문화적 도시재생사업’도 진행했다. 마을에 소방도로를 만들고 CCTV를 설치했다. 고령인 주민들의 생애사를 수집해 책도 출판했다. 청년 마을활동가들과 마을 축제를 열기도 했다.
재개발이 시작된 건 도시재생사업 막바지였던 2021년 12월이다. 민간 개발 시행사인 ㈜비케이산업개발이 달뫼마을 주변 땅 매입을 시작했다. 지난해 9월부터 지금까지도 시행사 직원이 주민들에게 재개발 동의서를 받고 있다. 광주 남구청 도시재생과 관계자는 “국비를 들여 사업을 했지만 민간 개발을 막을 수 없다. 새뜰마을사업에 맹점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은 지난해 10월 달뫼마을에서 50년째 살고 있는 정선주(84) 씨를 만났다. 그는 그동안 받은 재개발 토지보상 안내문을 보여줬다.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중이던 2019년부터 배달되기 시작한 안내문이라고 선주 씨가 말했다. 그는 “집은 자가여도 평수가 작아 보상금으로 전세도 못 얻는다”고 말했다. 달뫼마을 주민 가운데 독거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취약계층 비율은 34.9%로 3명 중 1명이다.
전국에서 재개발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서울의 상황은 어떨까. 도시재생사업지의 신통기획 추진 현황을 조사했다. 신통기획은 서울시가 민간이 주도하는 개발의 신속한 추진을 돕는다는, ‘신속통합기획사업’을 줄인 말이다.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지도 신통기획 공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가한 2021년, 도시재생사업지 가운데 20곳이 신청해 5곳이 후보지로 선정됐다. 가리봉동과 상도동, 난곡동, 창신동, 서계동이다.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지의 재개발사업을 허용한 배경에는 ‘도시재생폐지연대’의 역할이 컸다. 도시재생폐지연대는 2021년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지 20곳이 서울시에 신통기획 참여 의사를 밝히며 결성한 단체다. 2020년 공공재개발 공모 당시 서울시는 예산중복을 이유로 도시재생사업지를 배제했다. 이후 창신동, 가리봉동 등 도시재생사업지 20곳이 도시재생폐지연대를 결성해 서울시에 재개발사업 공모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2021년 6월 서울시는 ‘도시재생 재구조화’ 방안을 발표했다. 도시재생사업지도 신통기획 공모를 통한 재개발을 허용했다. 도시재생폐지연대의 요구가 수용된 것이다. 후보지로 선정된 가리봉동 등 5곳에는 현재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거나 만드는 중이다. 추진위원회 구성과 승인은 재개발사업 준비 단계에서 추진 단계로 넘어가는 첫 단추다. 서울시는 지난 8일 신통기획을 기존의 연 1회 공모 방식에서 연중 신청으로 변경했다. 더 신속한 재개발이 가능해졌고, 다른 도시재생사업지가 추가로 재개발을 추진할 여지도 커졌다.
한국도시연구소가 2018년 발간한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면 서울시 구로구 가리봉동은 2003년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이후 10년 동안 사업이 표류했다. 그동안 개발과 투자가 중단된 채 쇠퇴하다가 2014년 뉴타운이 해제되고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됐다. 하지만 2015년부터 8년간 진행된 도시재생사업도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다.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는 도중에 이미 일부 주민들은 ‘재개발추진위원회’를 조직했고, 신통기획 후보지 공모에서 선정되면서 재개발 대상이 됐다.
“우리 가리봉은 수레도 못 들어가는 골목이 많아요. 근데 거기다가 무슨 재생을 해요. 우리 집 같은 경우도 1973년에 지은 집이에요. 여기는 정화조도 없는 집들이 많아요. 겉만 멀쩡하게 한다고 도시재생이 되는 게 아니더라고.”
지난 2월 16일 가리봉동 재개발추진위원회 주민 회의에 참석한 김모 씨는 도시재생 주민교육 등 도시재생사업에 참여했다. 그는 도시재생사업이 소방도로나 정화조 같은 기반시설 개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결과는 달랐다고 말했다. 오현석 가리봉동 재개발추진위원장은 골목이 좁아 6m 소방도로를 내려면 집을 사서 도로를 넓혀야 하는데 현행법상 주택 수리를 할 수 없는 도시재생사업에서는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가리봉동이 신통기획 후보지에 선정될 당시 주민 동의율은 60%였다. 오현석 추진위원장은 무엇보다 주민들의 뜻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시재생이든 재개발이든 주민들의 의사로 결정하는 게 맞아요. 위에서 너희는 도시재생, 너희는 재개발, 함부로 정하면 안 돼요. 그래서 저희도 주민 동의율로 하는 거예요.”
가리봉동은 1980년대에는 구로공단에 외국인 노동자가 유입되고 1990년 이후로는 한·중수교의 영향으로 중국동포가 유입되며 다양한 계층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구로구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가리봉동의 외국인 주민 비율은 14.9%이고, 그중 88%가 중국인이나 중국동포다. 옛 구로공단 노동자들과 중국동포들은 ‘벌집’이라 불리는 주거 형태의 쪽방 건물에 살았다. 2018년 도시공간연구소가 발간한 책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면 가리봉동 주거용도 건축물 중 44.7%는 ‘벌집’이다. 그러나 가리봉동 재개발추진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주민은 주로 집주인, 모두 한국인이었다.
2017년 “중국동포 밀집지역 가리봉동의 도시재생”을 연구한 박려정 전 가리봉도시재생코디네이터는 “가리봉에서 월세를 내고 사는 사람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고 이미 공론화된 상황에서 재개발을 반대하기는 어렵다. 집을 가진 중국인들도 재개발 논의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주택을 소유해도 (재개발 논의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세입자가 아니라 집을 가진 사람 중에서도 재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 월세를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45년째 가리봉동에 살면서 월세를 받아 생활하는 장모 씨는 “가리봉동은 노인들이 다 집세 받고 사는 사람들인데 재개발해서 아파트를 갖더라도 다른 수입이 없다”며 재개발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도시재생사업을 완료한 뒤 신통기획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종로구 창신동 사정은 더 복잡하다. 2014년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된 창신동은 봉제공장과 주거지가 혼재하는 지역이다. 그렇다 보니 사업을 하는 봉제인들과 일반 주민들 사이에 근본적인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다.
“주민 입장에서 봉제 공장이 늘어나면 소음 발생, 집값 하락 등 주거환경이 나빠지고, 월세를 내고 공장을 운영하는 봉제상인 입장에서는 창신동이 활성화되면 월세 부담이 걱정이죠.” 손경주 창신숭인도시재생협동조합 상임이사의 설명이다. 손 이사는 봉제인 부모님 아래서 자라 창신동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창신동에 살고 있는 토박이다. 손 이사는 재개발을 포함한 도시재생에서 주민 간의 이해관계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도시재생사업의 방향이 ‘공공 주도, 보존 위주’에서 ‘민간 주도, 개발 위주’로 바뀌고 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원형 보존에 치우쳐 낙후된 주민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반영된 것이다. 지난해 7월 국토부는 도시재생사업에서 전면 철거 재개발을 허용하고 성과 중심으로 사업체계를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새 정부 도시재생 추진방안”을 보면 도시재생사업에 전면 철거 재개발을 허용하고 민간의 참여를 확대했다. 도시재생사업기획단 산하 부서 4곳 중 3곳의 명칭도 ‘재생’에서 ‘정비’로 바꿨다. 기존 사업 488곳을 관리하는 업무에 1기 신도시 재정비, 경제 재생 같은 업무도 추가됐다. 사업 추진방안에는 쇠퇴지역을 복합개발하는 혁신지구 사업, 민간이 사업을 공공에 우선 제안하는 민관협력형 리츠 사업, 주택 정비 기준을 완화하는 특례나 재정 지원 등이 담겼다.
하지만 도시재생사업이 애초에 물리적 정비에 치우친 정비와 재개발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는 맥락은 여전히 중요하다. 서울시가 추진한 뉴타운 사업은 도시재생법이 만들어진 직접적인 배경이었다. 서울시는 광역적인 도시 개발을 하기 위해 2005년 ‘뉴타운 사업’으로 불린 ‘재정비촉진지구사업’을 추진했다. 대규모로 진행된 뉴타운 사업은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기존 주택 철거를 전제로 한 것이어서 저소득층의 생활 공간이 급속히 축소되는 문제를 낳았다.
실제로 해당 지역에 사는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3년 6월 4일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즉 ‘도시재생법’이 제정됐다. 물리적 환경개선에 더해 거주자를 고려하는 사회적, 경제적 재생 개념을 전면에 내세웠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도시재생 선도사업 13곳을 선정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이를 대폭 확대해 도시재생뉴딜사업 488곳을 선정하고 예산 30조 원을 투입했다.
“도시재생사업도 본질적으로 개발행위에 해당되지만 재개발과의 차이는 지역의 기존 모습의 계승입니다. 도시재생사업의 혜택이 소득과 경제적 성과로 담보되는 지역뿐 아니라 개발과 정비가 정말 필요한 낙후도시에 돌아갈 수 있도록 공공복리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경실련도시개혁센터 도시재생분과는 현 정부가 도시재생 추진방향을 바꾼 것을 두고 1990년대 마을만들기 운동 이후 20년간 발전해온 도시에서의 민주적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도시 개발에서 시민사회의 참여와 지역성 회복 같은 사회적 관계의 가치 회복보다는 건설사와 시행사, 금융사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성과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기존에 진행했던 사업들에 대한 정리와 평가, 개선방안이 먼저 모색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선한’ 도시재생이라는 목적을 강조하면서 실질적으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의 삶을 개선하지 못한 기존 정책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2015년 창신동 도시재생사업을 연구한 김지윤 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공동연구원은 공저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에서 “오래된 환경이나 생활환경이 아직 나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지역의 낙후함과 봉제산업 자체가 관광의 대상이 된다면 도시재생은 과연 이 낙후함을 개선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박제화하려는 것인가 의문을 갖게 된다”라고 말했다. 광주 양동 어진마을의 경우처럼 너무 낙후되어 현실적으로 주거여건 개선이 어려운 지역에서 무리하게 보존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한국도시연구소가 2018년에 발간한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을 공동집필한 이영아 대구대 지리교육학과 교수는 “도시재생사업에서 물리적 개선사업의 핵심은 ‘지역에 필요한 공간을 보완’하고 현재 지역의 ‘전체적인 공간 틀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원칙이 일관되게 지켜지지 않으면 도시재생사업 전체의 방향이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물리적인 개선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입자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도시재생사업에서 필요한 정도의 임대주택 공급계획을 수립하면 도시재생사업 선정 단계에서 가점을 주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또, 현행 도시재생사업으로는 불가능한 개인 소유 주택 수리를 일부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역 내 빈집이나 노후 주택 등을 수리하여 전세 임대나 매입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등 세입자 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주택 정책을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존의 도시재생사업의 틀 자체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을 한 곳에 재개발을 진행하면서 발생한 막대한 매몰비용과 주민들의 주거 불안정 문제는 반드시 점검이 필요하다. 이미 재개발이 진행되는 5곳의 도시재생사업에 투입된 예산만 1700억 원이 넘는다. 이미 서울시 신통기획에 선정된 도시재생사업지를 포함하면 매몰비용 규모는 훨씬 커진다. 도시재생사업과 재개발 지역이 완전히 겹치지 않아 투입 예산 모두를 매몰비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엄청난 예산 낭비와 주민 불편이 발생한 것은 현실이다. 더구나 500곳이 넘는 전국의 재생사업지 가운데 재개발을 추진하는 곳이 앞으로 더 나올 수도 있다. 도시재생법 10년을 맞아 지금까지 진행된 사업을 꼼꼼하게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도시재생사업에서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는 해당 지역의 특징을 살린 거점시설을 건립한 것이다. 거점시설은 도시재생사업의 주요 성과물로 꼽힌다. 그런데 기껏 예산을 투입해 거점시설을 만들었지만 운영을 위한 국비 지원이 종료되자마자 폐관되거나 방치되는 곳들이 적지 않다. 아예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거점시설 자체가 통째 사라질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뒤 거점시설이 폐관되거나 방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2편에서는 도시재생 종료 후 도시재생 거점시설 방치 문제를 집중 취재했다.
취재 | 조벼리, 김대선, 박동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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