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두 명씩 묶어 놨기에 포승줄을 칼을 가져와 끊어 빼내 왔습니다. 그 옆에 눕혀 놨는데 다리가 뻣뻣했습니다. 피가 통하지 않아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다리를 주물러 주고 있으니까 옆에서 또 소리가 나서 가보니까 또 사람이 하나 살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니까 도끼로 몸이 찍혔는데 입술이 시퍼랬습니다. 그 사람을 또 빼냈습니다. 잠시 후 서너 명이 모였습니다. 가마니로 들것을 만들어서 옆집 빈 집을 빌려서 들어다 놨습니다. 바로 이 집입니다.조봉제
이 집이 제 집입니다. 9월 28일 날 아침에 경찰서 앞에서 무슨 소리가 났었어요. 거기를 들어가 보려다가 괴뢰군이 겁이 나서 못 들어가고 피난을 갔었습니다... 피난을 가서 이삿짐을 두고 돌아왔습니다. 저의 집에 들어왔을 때가 10시 남짓 됐을 때였어요. 사람이 여럿 모여 있었는데 제 동생도 거기 있었습니다. 물어보니까 둘을 방에 다 뉘고 제 이부자리들을 가져다 깔고 덮고 둘을 뉘어 놓고...박동근
나는 1939년에 충청남도에서 충청남도 경찰관을 한 사람입니다. 계속해서 충청남도에서 근무하던 중 1947년부터 충청남도 부여, 충청남도 당진 경찰서장을 겸했습니다.천영덕
9월 25일 수용자들은 전부 형세를 알지 못했으나 그들이 패망을 앞두고서 수용된 애국자를 전부 총살하기 위해서 사건을 냈습니다. 본인은 9월 25일 약 70명과 같이 대전 형무소에서 서방 약 500미터 떨어진 천주 교단 뒤에서 오후 9시경부터 오후 11시경까지 총살을 집행했는데 그 속에 있었습니다.천영덕
저는 제일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 따발총을 맞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죽은 자 같이 머리를 땅에 대고서 앉았더니 일일이 앞에서부터 죽었나 안죽었나 하나씩 하나씩 검사를 했습니다. 나한테 와서는 제일 먼저 총대 머리로 머리를 때리고 총 끝으로 허리를 찔러보면서 죽지 않았나 확인을 했습니다... 그들이 무참하게 일곱 번을 제 배를 찔렀습니다. 그래서 나는 전신에 혼돈이 와서 뒤로 자빠졌습니다. 그랬더니 그놈들이 '이놈은 죽었다' 그러면서 아래 파여있던 구덩이로 나를 굴렸습니다.천영덕
자료수집 | 전갑생 전문위원 |
디자인 | 이도현 |
발행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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