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영상 : 그녀에게 보내는 시

2014년 03월 07일 21시 00분

송경동 시인에게는 잊지 못하는 시가 있다.

7년 전, 자신이 썼던 추모시 <이건희보다 더 위대했던 한 소녀에게>다.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강릉에서 그 푸른 바다처럼 꿈이 많은 소녀였다.

이 시는 2008년,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 1주기에 써내려간 추모시다. 그런 그가 지난 6일, 고 황유미씨의 7주기 추모제를 찾았다. 다시 한 번, 그녀를 위한 시 한편을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아직은 겨울이 채 끝나지 않았지만
새봄이 오고 있다고

유미에게
숙영씨에게
지연씨에게
민웅씨에게

그리고 이름없는 모든 당신들께
이야기해주고 싶다

다만
역사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

진실은
정의는 밝혀진다고

새봄이 저기 오고 있다고
새봄이 와야 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우리도 살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다> 2014.3.6. 시인 송경동-

시 전문

우리도 살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다-반도체 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합동추모제에 바쳐

송경동

무어라고 얘기해야 하나
말없는 당신들에게
삼성이라는 새로운 아우슈비치에서
하이닉스, 매그나칩이라는 체르노빌에서
온 몸과 정신이 생체실험의 도구가 되어
겨울나무들처럼 메말라 죽어간 당신들에게
죽어서도 침묵을 강요당하는
이름 없는 당신들에게
당신들의 너무나도 합법적이고
일상적이고 평범한 죽음들에 대해

또다른 학살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또다른 타살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당신들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존재자체가 악성종양에 다름아닌
존재자체가 모든 병의 근원에 다름아닌
저 삼성이 저 자본에 대한 야욕이
당신들을 죽였다고
우리 모두를 죽이고 있다고 없애야 하는 것은
단지 수백종의 유기경제가 아니라
삼성이라는 자본이라는 저 악독한 독극물이라고 말하지 않고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우리도 살고 싶다고 얘기하고 싶다
경쟁이라는 중금속을 매일 주입당하고
소비라는 환각제를 매일 흡입당하며
실업이라는 수은을 빨아마시고
비정규직이라는 이황화탄소를 들이마시고
구조조정 정리해고라는 유기용제를 마시고
치솟는 집값, 전세값 등록금이라는 독극물을 마시다
탈출구 없는 이곳에서
환기구 없는 이곳에서
날파리처럼 부대끼다가
알아서 죽어가야 하는
이 비참한 인간 가족들의 시대에

우리도 조금은 안전하게
평범하게 숨을 쉬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직은 겨울이 채 끝나지 않았지만
새봄이 오고 있다고
유미에게
숙영씨에게
지연씨에게
민웅씨에게
그리고 이름없는 모든 당신들께
이야기해주고 싶다
다만
역사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뿐
진실은 정의는 밝혀진다고
새봄이 저기 오고 있다고
새봄이 와야 한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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