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기도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 지명은 그 정점에 있습니다. 뉴스타파와 미디어오늘, 시사IN, 오마이뉴스, 한겨레신문 등 5개 언론사는 각 사 울타리를 넘어 진행하는 ‘진실 프로젝트' 첫 기획으로, 현 정부의 언론장악 실태를 추적하는 ‘언론장악 카르텔' 시리즈를 함께 취재 보도합니다.
어제(23일) 류희림이 6기 방송통신심의위원장으로 기습 선출됐다. 직원들이 퇴근한 뒤 회의장 문을 걸어 잠그고 열린 임시회의에서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추천, 위촉에서부터 위원장 선출까지 반나절 밖에 걸리지 않았다. 6기 방심위 임기는 앞으로 3년 뒤인 2027년 7월 22일까지다.
지난 22일, 류 위원장의 임기가 종료되고 다음날(23일) 윤 대통령은 류희림을 방심위에 다시 위촉했다. (출처: 방심위 노조)
류희림을 다시 방심위로 보낸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류희림과 김정수 전 KBS PD, 강경필 변호사(전 검사) 등 3명을 대통령 추천 몫으로 방심위원으로 위촉했다. 이로써 방심위는 류희림·김정수·강경필과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은 김우석·허연회(국민의힘 과방위 추천) 위원 총 5인으로 구성된다. 야권 추천 몫이었던 김유진·윤성옥 위원은 지난 22일 임기가 끝났다.
대통령이 류희림을 다시 방심위원으로 위촉한 정확한 시각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틀 전(22일) 5기 방심위원장으로서의 임기가 끝난 류희림을 하루만에 다시 위촉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 많다. 김준희 방심위 노조 지부장은 어제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류희림이 방심위원으로 (다시) 위촉이 된 사실조차 기사가 거의 안 나왔다. 오늘 저녁 (6시 30분경) 늦게 알았다”고 답했다.
군사작전 방불케한 류희림 위원장 만들기 작전
방심위 위원장은 전체회의를 개최해 위원들이 논의하여 ‘호선’으로 결정한다. 위원들 스스로가 자신들 가운데 한 명을 위원장으로 선출한다는 의미다. 위원장을 호선하는 임시회의는 어제(23일) 오후 6시 50분에 방심위 전체회의장에서 열렸다. 임시회의 개최 공지는 회의가 시작된 지 2분 뒤에야 방심위 인트라넷에 게시됐다.
회의장에 모인 류희림·김정수·강경필·김우석·허연회(이하 5인) 방심위원은 류희림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임시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회의장으로 통하는 모든 문이 잠겨 있었고, 심지어 지문 출입기까지 작동하지 않도록 막아 놨다. 김준희 지부장은 “예정된 회의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위촉 공문 결재가 나자마자 긴급하게 류희림 선출을 위한 전체 회의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서둘렀을까
2023년 8월, 윤 대통령은 정연주 방심위원장과 이광복 부위원장을 해촉하고 류희림을 방심위에 위촉했다. 그 결과 방심위는 야권 추천 4인(김유진·옥시찬·윤성옥·정민영)과 여권 추천 4인(김우석·류희림·허연회·황성욱)으로 4:4 구도가 됐다. 여야 위원 수가 같은 상황에서 류희림 위원을 위원장으로 호선하려는 회의는 수차례 무산됐다. 류희림은 위촉 22일만인 9월 8일에야 겨우 위원장이 될 수 있었다.
위원장 기습 호선을 항의하는 방심위 노조를 피해 차량에서 나오지 못하는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모습 (출처: 미디어오늘)
이에 비추어보면 이번에 류희림을 위원장으로 서둘러 선출한 이유는 ‘타이밍’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야권 추천 위원들은 지난 22일로 임기가 종료됐는데 아직 새 위원들이 추천되지 않아 공석인 상태고 윤 대통령이 류희림 외에 2명을 더 위촉해 회의 개최 정족수를 채울 수 있는 시점이다. 김우석·허연회 등 5기 방심위원의 임기는 다음달 5일까지로 며칠 남지 않았는데, 이들 역시 회의장에 앉혀 머릿수를 채울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5기 방심위원 2명과 6기 방심위원 3명이 함께 6기 위원장을 선출한 셈이다.
김준희 지부장은 5기 위원들이 6기 위원장을 선출한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 지부장은 “8월 5일이 지나면 (여권 위원) 3명밖에 없다. 3명이서 호선을 하는 게 정당성이 부족하다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그렇다고 6기 위원장을 5기 위원들 (여권 위원 2명)이 참여해서 5명이 호선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가?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번 류희림 호선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 강경필·공언련 발기인 김정수
새로 위촉된 김정수 위원은 이승만 찬양 논란을 빚었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방송 피디 출신이다. 2011년 9월 KBS에서 방영된 ‘대한민국을 움직인 사람들-초대 대통령 이승만’ 3부작을 제작했다. 김 위원은 공정언론국민연대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강경필 위원은 검사 출신 변호사로 2020년에는 21대 총선에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 나섰다 낙선했다. 강 위원은 2016년 터진 김형준 전 부장 검사 사건에서 이른바 고교동창 스폰서였던 김희석 씨의 변호인으로 선임됐지만 의뢰인인 김희석 씨가 아니라 김형준 검사의 구명을 위해 활동했다는 의심을 받아 김희석 씨로부터 민사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숨어서 위원장 되고, 도망치는 류희림
어제 류희림 위원장 호선 직후, 방심위 지상 주차장에서는 한동안 대치 상황이 펼쳐졌다. 류희림 위원장이 직접 운전하던 차량이 방심위 건물을 빠져나가려 하자 방심위 노조 집행부와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방위 위원장)이 막아섰기 때문이다. 차량 조수석에는 김정수 위원이, 뒷자리에는 강경필 위원이 타고 있었다.
류희림은 처음에는 자신이 위원장이 된 것인지 묻는 질문에 “보도자료에 다 나올 것이다”라고 답하다 계속 다그치자 “위원장 호선을 위한 전체회의를 열어서 위원장 호선을 통과시켰다”고 답했다. 최민희 의원이 “누가 됐냐”고 묻자 그제야 “제가 됐다”고 답했다. “문은 왜 잠갔냐”는 질문에는 “정상적인 상황에서 회의를 해야되는데 외부에서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방심위 노조 집행부와 최민희 의원, 취재진이 계속 질문을 던지자 류희림 위원장은 운전하던 차를 그대로 둔 채 방심위 건물 밖으로 걸어나왔다.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100여 미터를 걷다가 갑자기 뛰어가더니 달려오던 택시를 잡아타고 달아났다.
급하게 택시는 타는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모습 (출처: 미디어오늘)
합의제 독립민간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사실상 정치심의 난장판으로, 언론검열기구로 만들어 버린 류희림 체제 방심위, 윤석열 대통령이 류희림을 다시 방심위원장으로 앉힌 건, 언론장악을 그대로 밀어붙이겠다는 신호와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