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 출발점인 이른바 ‘TV조선 조건부 재승인 의혹’ 사건 재판에서 당초 검찰 수사로 이어진 감사원 조사가 답을 정해놓고 진행됐다는 법정 증언이 나왔다. 이 사건은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의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 TV조선 점수가 조작됐다는 주장으로 시작됐다. 검찰은 한상혁 당시 방통위원장 주도로 방통위 간부, 심사위원 등이 TV조선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점수를 변경했다고 보고 모두 6명을 기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이 한상혁 위원장을 불구속기소하자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며 임기를 두 달 남긴 그를 면직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구성이 여권 우위가 됐고, 공영방송 경영진과 이사진 교체, YTN 민영화 등 ‘언론 장악’을 본격 시작했다.
2020년 재승인 대상 방송사 심사결과. TV조선은 653.39점(빨간 세로 박스 하단)을 받았다. 650점 이상 700점 미만은 4년 재승인을 받는다. 단, 세부심사항목에서 배점의 50%에 미달할 경우 조건을 부과할 수 있다. TV조선은 방송의 공적책임 등 항목에서 120점 만점에 57.95점(빨간 가로 박스)을 받아 과락해 조건부 재승인을 받았다. 검찰은 심사위원 일부가 세부 심사 항목 점수를 조작했다고 본다. (출처: 2020년도 상반기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PP 재승인 백서)
지난 9월 27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이른바 ‘TV조선 사건’ 13차 공판이 열렸다. 증인으로 나온 당시 TV조선 재승인 심사위원 2명은 2022년 검찰 수사에 앞서 감사원이 이 사건 감사를 할 때 상황을 증언했다. 이들은 감사원 조사관이 조사 전에 이미 답변 내용이 적힌 문서를 가져왔다고 증언했다. 또 조사 과정에서 수정하기는 했으나 진술서 일부 내용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작성됐다고 폭로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에선 이날 증인으로 나온 2명을 포함해 TV조선 재승인 심사위원 13명 모두 조사를 받았다. 2022년 7월 이 사건 감사에 착수한 감사원은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정황’을 발견했다며 같은 해 9월 감사자료를 검찰로 이첩했다. 검찰은 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는 윤석열 정권의 ‘언론장악을 위한 방통위 표적 감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2022년 6월 9일 조선일보가 한상혁 위원장을 겨냥해 ‘문재인 정부 기관장들 버티기’라는 보도를 했고, 16일에는 권성동 등 국민의힘 의원이 한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6월 17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한 위원장 거취를 언급했다. 그러나 6월 20일 한상혁 위원장이 사퇴를 거부하자 이틀 뒤인 6월 22일 감사원이 감사를 시작했다. 당시 감사원은 “정기감사를 앞당겨 착수한 것이지 위원장 사퇴 압박 위한 감사는 전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2022년 6월 17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전현희 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 배제된 이후 한 위원장 등이 ‘물러나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냐’는 기자 질문에 “임기가 있으니 자기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며 한 위원장 거취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5일 뒤 감사원은 방통위에 대한 감사를 시작했다. (출처: YTN)
2023년 5월 24일 국회 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상혁 당시 방통위원장에게 “임기 두 달 남은 사람을 뭐하러 탄압하나. 정부에서는 명백한 근거행위가,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에 면직을 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같은 달 30일 면직됐다. (출처: KBS)
‘TV조선’ 재판은 2023년 6월 26일 시작해 지난 9월 27일까지 13차례 공판이 열렸다. 그러나 검찰은 방통위가 재승인 심사를 하면서 TV조선 점수를 의도적으로 하향 조작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검찰 측이 내놓은 주요 증거는 심사위원들이 수기로 작성한 심사 결과표다. 이 표에 점수를 수정한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상혁 위원장은 2022년 10월 6일 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종적으로 심사위원회에서 의결하기 전까지 심사위원들은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다. 그런 사례들은 기존 재허가·재승인에도 많이 있었다”
“과거에 심사위원이 수정을 하겠다고 요구하면 용지를 바꿨다고 한다. 그런데 저희 들어와서 투명하게 수정하는 절차들을 기록지에 남겨두는 게 필요하겠다고 생각해 용지를 바꿔주지 않고 채점한 용지에 수정 과정을 사선을 긋고 사인하는 것으로 남겨두었다”
검찰은 재승인 심사위원회 의결 전인 2020년 3월 20일 열린 5일 차 회의 시작 전 오전 9시~10시 사이에 점수 수정이 이뤄졌다고 본다. 서울북부지검이 발표한 ‘TV조선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경위’를 보면, 심사 5일 차 오전에 방통위 간부로부터 최종 점수 결과를 들은 한상혁 당시 위원장이 ‘강한 불만’을 표시했고, 이후 방통위 간부가 심사위원장에게 점수 수정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 TV조선 사건 수사결과 보도자료(2023.5.2.)
이 사건 피고인은 모두 6명이다. 한상혁 전 위원장은 방통위 간부로부터 점수 조작 등을 보고받고도 묵인한 혐의 등(위계공무집행방해 등), 방통위 간부 2명은 점수 집계 결과를 누설해 조작을 꾀했다는 혐의 등을 받았다. 심사위원 3명은 최종 집계 후 점수를 변경해 방송통신위원회 직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다. 당초 구속기소된 심사위원장과 방통위 간부 등 3명은 지난해 6월 보석으로 나와 현재는 피고인 6명 모두 불구속기소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감사원, 타이핑 어느 정도 해오셨다”, “사인 안 하겠다고도 말해”
다시 지난 9월 27일 재판으로 돌아가보자. 이날 재판은 검사가 TV조선 등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위원이던 2명의 증인을 상대로 2022년 감사원 감사 과정의 답변서 내용과 검찰 조사 때 참고인 진술조서 내용 등을 신문하고, 변호인이 반대 신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증인 신문은 검찰이 최종 점수를 수정한 시점으로 보는 5일 차 오전 상황에 집중됐다. 증인 2명은 모두 검찰 측에서 신청했다.
이날 오전 10시에 나온 증인 노〇〇 씨는 회계 전문가로 2020년 종편 재승인 심사 당시 방송사업자의 경영⋅재정 분야를 담당했다. 노 씨는 법정에서 2022년 감사원 조사관이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하지도 않은 발언이 담긴 답변서를 내밀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