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협업

'가짜 학회' 대물림… 원로교수의 후회

2018년 08월 17일 19시 21분

서울대 공과대학 산업공학과 출신 학자들이 동문 인맥을 토대로 와셋(WASET: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 등 해적 학회 활동을 대물림하는 구조를 형성해온 것으로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연구 인맥의 정점에는 산업공학과 산하 기술경영연구실을 이끄는 박용태 교수가 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 기술경영실, ‘가짜 학회’ 대물림 요람

뉴스타파는 박 교수의 기술경영연구실이 공개한 국제학회 실적을 연도별로 분석했다. 박 교수와 산업공학과 출신 연구자들은 2009년부터 최근 10년 간 최소 110차례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했는데, 2011년부터 27건의 실적이 와셋, 월드리서치라이브러리 등 해적 학회 참여다. 이 가운데 11건은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등이 연구비를 지원한 국가과제를 수행하면서 투고한 논문이었다. 이처럼 허술한 연구 관행은 연구를 책임졌던 박용태 교수의 기억과도 일치한다.

7, 8년 정도 전에는 ‘굉장히 새로운, 학회의 형식이 만들어졌네?’ 이런 긍정적인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 점점 변질되고, 유사·상업학회들이 많이 생기고… 사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걸 인지하고 있어요. ‘너무 범람하는 구나’라는 인상은 받고 있었어요.

박용태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이렇게 기술경영연구실 수장인 박용태 교수는 해적 학술단체의 태동과 확산을 수 년 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랬던 박 교수 역시 2016년 4월 파리에서 열린 와셋 콘퍼런스에는 제자들과 함께 직접 참석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박용태 교수의 제자들이 다른 대학 기술경영전공 교수로 임용된 뒤에는 동문 후배들과 함께 가짜 학회에 참석하거나 논문을 내는 구조가 서서히 형성됐다.

교수된 뒤 동문·제자들 데리고 ‘와셋’에 투고

1999년 박사 학위를 받고 산업공학과 연구실을 떠난 한국외국어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김문수 교수는 2011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연간 1억 2천 7백만 원, 3천 4백만 원을 각각 지원받는 국가연구과제 2건의 책임자가 된다.

같은 해 김문수 교수는 서울대 산업공학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와셋 콘퍼런스에 참석한 기록이 확인된다. 이때 김 교수와 서울대 산업공학과 동문 후배 3명이 공저자로 와셋에 투고한 논문 2건에는 자신이 맡은 국가과제 연구비를 사용했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김문수 교수와 서울대 산업공학과 동문 연구자들이 해적 학회 와셋에 발표한 논문은 국가연구과제 비용을 지원받았다. (출처 : 와셋 홈페이지)

당시 김문수 교수와 공저자로 이름 올린 동문 후배 연구자 2명은 현재 서울 소재 사립대와 지방 국립대 교수로 각각 재직 중이다. 지방 국립대 교수가 된 A 씨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당시 논문 투고지를 결정할 권한이 없는 대학원생이었다”며 “투고할 학술지는 연구 책임자였던 김문수 교수와 박용태 교수 등이 결정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밝혔다. 동문 후학으로서 선배 연구자와 지도교수의 결정을 거스를 수 없었다는 뜻이다. 해적 학회가 답습되는 이유 중 하나다.

뉴스타파는 김문수 교수가 연구실 홈페이지에 소개한 국제학술대회 발표 실적을 분석했다. 2010년부터 올 초까지 32건 가운데 10건이 와셋, 아카데믹 포라 등 해외학계에서도 사이비로 분류되는 학회다. 발표 논문의 공저자들은 서울대 산업공학과 동문 연구자이거나 대학 제자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팀은 연구실을 방문해 김 교수의 반론을 요청했다.

  • 김문수 교수 : 얘기하고 싶지 않은데, 별로.
  • 기자 : 그럼 기록이 남아 있는 대로 저희가 분석하고 파악하면 될까요?
  • 김문수 교수 : 기록이 남아 있는데 뭐 어떡해? 인터넷에도 있을 거고, 논문도 있을 거고. 그렇게 해야지.

뉴스타파 취재진이 찾아간 이후, 김문수 교수 연구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국제학술대회 발표 실적은 삭제됐다.

또 다른 서울대 산업공학과 출신인 아주대 산업공학과 이성주 교수는 자신의 석·박사과정 제자들을 와셋으로 이끌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산업공학과에서 박용태 교수의 지도를 받아 2007년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와셋 홈페이지 출판 목록에 따르면 이 교수는 2015년부터 제자들과 함께 논문 초록을 11건을 투고하고, 지난해까지 일본 도쿄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베니스 등 4차례 와셋 콘퍼런스에 다녀온 기록이 확인된다. 하지만 이 교수는 자신은 한번도 와셋 콘퍼런스에 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와셋 홈페이지에는 다음 달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리는 콘퍼런스에 이 교수와 그의 제자들 명의로 발표용 논문 초록이 올라와 있다. .

이 교수는 제자들이 원하면 동기 부여 차원에서 참가를 허락했을 뿐 자신은 “와셋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만 해명했다. 그러나 연구실 홈페이지에는 와셋 발표 6건이 국제학회 실적으로 소개돼 있다.

사실 학회 참가 비용이 크게 높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그냥 가라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와셋 정체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비슷한 학회들이 워낙 많아서.

이성주 아주대 산업공학과 교수
▲이성주 교수와 제자들이 공개한 와셋 콘퍼런스 발표 실적. (출처 : 아주대 기술경영 및 애널리틱스 연구실 홈페이지)

경상대 산업시스템공학부 전정환 교수는 2013년, 지도교수였던 박용태 교수와 서울대 산업공학과 동문 후배 2명 등과 함께 처음으로 와셋에 논문을 낸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지난해까지 와셋에 9건을 더 투고했는데, 모두 A4 용지 3분의 1 분량에 불과한 논문 초록이다. 전 교수는 2014년 자신이 연구책임자로 와셋에 투고하면서 동문 박사과정 후배 2명을 공저자로 등록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 동문 인맥을 기반으로 기술경영분야에서 스승과 제자, 그리고 다시 선배와 후배로 가짜 학술단체 경험이 대물림되는 구조가 반복된 셈이다.

정부, 가짜 학회 논문 실적 감사 중… 제재 방안 추진

학계가 자정의 기회를 놓친 사이 정부가 직접 가짜 학회 관련 감사에 착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1차 현황 조사를 거쳐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논문 성과 가운데 353건이 와셋 투고논문인 것으로 파악했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과기부 소관 연구비를 사용해 와셋 콘퍼런스에 간 내역도 65건이 적발됐다. 다만 국가 연구과제에서 와셋 실적만 제한적으로 조사한 결과인만큼 학계 전반을 대상으로, 해적 학회의 범위를 넓히면 적발 건수는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SCI 비SCI
와셋
07년 18741 36839 24
08년 22528 33418 5
09년 24174 46233 24
10년 23916 49841 20
11년 26282 49256 31
12년 26613 52863 71
13년 27052 38848 51
14년 35330 29554 79
15년 35849 21272 15
16년 37385 20856 8
17년 38496 27743 25
총합 316366 406723 353

▲2007~2017년 국가 R&D 사업 논문 현황 (단위 : 건)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김경진 의원실)

실제 과기부와 교육부는 대표적인 해적 학회인 와셋과 오믹스(OMICS)의 최근 5년간 논문 실적과 학술대회 출장기록을 전수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부실 학회를 이용해 실적을 부풀리는 관행은 연구부정행위로 제재하고, 연구윤리 체크리스트를 배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취재 : 홍우람, 김용진, 신우열, 김지윤, 임보영
촬영 : 김남범, 김기철, 오준식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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