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방치된 내부 성범죄들, '신당역 사건' 불렀다

2023년 03월 06일 13시 50분

2022년 9월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순찰을 하던 20대 여성 역무원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가해자는 2년 동안 피해자를 스토킹 해온 30대 남성이었다. 가해자의 이름은 전주환, 세상에는 ‘신당역 사건’으로 알려졌다.
사건 직후 먼저 책임론이 제기된 곳은 경찰과 법원이었다. 피해자는 사건 발생 전에 불법 촬영과 협박, 스토킹 혐의로 전주환을 고소했지만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을 주저했고,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결과는 보복 살인이었다.
이들 기관과 마찬가지로, 안일한 대처로 사건을 키운 곳이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 전주환의 직장이었던 서울교통공사다. 살인이 벌어진 곳은 이들의 일터인 지하철 역사였다. 전주환이 피해자의 정보를 빼낸 곳도 공사 업무용 시스템이었다. 전주환의 성범죄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된 11개월 동안 공사는 사건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지만 사실상 피해자 보호와 추가 피해 방지에 손을 놓고 있었다.
공사의 이런 대응은 처음이 아니었다. 뉴스타파는 신당역 사건 이전에 발생한 공사 내부의 성범죄 사건들을 조사했다. 신당역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공사가 직원의 성범죄에 대해 안일한 대처를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성범죄를 저지른 공사의 한 직원의 경우, 2020년 불법 촬영 범죄를 저질렀지만 취재 직전까지 공사에 계속 재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범행의 피해자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일반 시민들이었다.

불법 촬영 드러나도 징계 없다...방치가 낳은 신당역 사건

시점은 신당역 사건 한 달 전으로 돌아간다. 2022년 8월 18일 오전 11시, 서울 서부지방법원에서 전주환에 대한 결심 재판이 열렸다. 검찰은 불법 촬영과 협박, 스토킹 혐의 등 5개 혐의를 적용해 징역 9년을 구형했다.
전주환은 법정을 걸어서 나왔다. 구속영장은 기각된 상태였다. 최종 선고만을 앞둔 상황에서 그의 다음 행동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것이었다. 전 씨는 이후 검찰 조사에서 ‘실형을 받을 것이 예상되자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모두 무너지게 됐다’라는 생각에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곧장 직장인 서울교통공사 내부 전산망 ‘메트로넷’에 접속해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조회했다. 피해자의 근무장소와 근무시간, 주소 등을 알아냈다. 오후 12시 25분부터 12시 52분까지, 2시 3분부터 2시 13분까지 수차례 로그인을 반복했다. 9월 3일에도, 신당역 사건 당일인 9월 14일에도 접속은 계속됐다.
△ 직위해제 이후 전주환의 서울교통공사 내부망 접속 기록. 공사에 따르면, 내부망 메트로넷에서는 부서와 담당업무, 근무형태, 전화번호 등의 직원 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 ERP 시스템에는 주소지까지 나온다(출처: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실).
신당역 사건 이후, 전 씨는 합의를 하기 위해 피해자를 찾아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발적 범행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주환이 내부 정보망을 이용해 피해자의 교대 근무 일정을 알아내고, 동선 파악이 용이한 근무일에 맞춰 수차례 피해자를 기다린 점 등을 따져봤을 때 치밀하게 준비한 계획범죄라고 판단했다. 지난 2월 7일, 1심 재판부는 전주환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문제는 전주환이 어떻게 서울교통공사의 내부 전산망을 속속 들여다볼 수 있었냐는 것이다. 그는 스토킹 범죄 수사와 재판이 진행된 11개월 동안 직위해제 상태였다. 직위해제는 공사 직원 신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업무에서만 배제하는 처분이다. 징계가 아니다. 내부 전산망 접속 권한이 주어질 뿐만 아니라 매달 기본급도 지급된다.
공사가 전주환의 범죄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공사 내부 자료에 따르면, 공사는 전주환의 동향을 네 차례에 걸쳐 보고서로 작성했다. 불법 촬영 수사가 시작된 2021년 10월 두 차례, 혐의가 인정돼 검찰에 송치된 이후인 12월 한 차례, 스토킹 혐의가 추가된 뒤 마지막 재판이 열린 이듬해 8월 한 차례 등이었다.
△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 역무원이었던 피해자는 사건 당일 역사 내 여자 화장실을 혼자 순찰했다.
공사는 보복 살인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야 ‘법원 선고로 결정된 형량 및 인정된 혐의 사실에 따라 징계 등 후속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었다’라고 밝혔다.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동향 파악까지 해놓고, 공사는 왜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사실상 그를 방치했을까. 결국 직원 간 보복 살인에 이르도록 만든 이 안일한 대응은 이번이 처음이었을까.
뉴스타파는 신당역 사건 이전부터 공사 내부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들을 추적했다. 불법 촬영 등 중대한 성범죄가 발생했음에도 가해자를 사실상 방치한 사례는 이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불법 촬영, 그는 서울교통공사 직원이었다

2020년 5월 23일은 토요일이었다. 이날 밤 10시 30분, A는 공항철도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 있었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는 에스컬레이터가 많다. 이 가운데 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A는 휴대전화 카메라 앱을 켰다. 앞에는 한 여성이 치마를 입고 서 있었다. A는 여성의 옷 속을 몰래 촬영했다.
이어 A는 지하철 6호선으로 갈아탔다. 10시 55분, A는 합정역과 연신내역 사이를 달리는 전동차 안에 있었다. 다시 휴대전화를 꺼낸 A는 또 다른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A의 범죄는 점점 대담해졌다. 한 달 뒤 A는 구파발역에 연결된 푸드코트와 연신내역 근처 카페를 오가며 5차례 불법 촬영을 더 저질렀다.
그의 범행은 이미 3월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동선은 주로 디지털미디어시티역, 구파발역, 연신내역 등지에 걸쳐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와 출구 계단, 전동차 안 등 장소와 상황을 가리지 않았다.
A의 범행 동선이 지하철역 안팎으로 나타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A의 1심 판결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피고인은 서울교통공사 직원이다’. A는 서울교통공사 지축승무사업소 소속 승무원이었다. 주요 범행 장소인 지하철역은 그가 출퇴근하는 지축역에서 바로 이어지는 환승역들이었다. 자신이 일하는 일터 주변에서 오히려 자신이 보호해야 할 일반 승객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 2020년 A의 불법 촬영은 구파발역, 연신내역, 디지털미디어시티역 등 승무사업소가 있는 지축역 인근에서 발생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의 첫 번째 범행은 2020년 3월 15일 시작됐다. 연신내역을 지나는 전동차 안이었다. A의 휴대전화에는 이후 약 3개월간 계속된 불법 촬영 영상물이 남아 있었다. 수사당국이 밝힌 불법 촬영 범행은 총 37차례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범행 가운데 피해자 신원이 확인된 건은 단 2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불상의 피해자로 남았다.
2020년 11월, 1심 재판부는 A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지하철 관리 업무에 종사하는 피고인 스스로 지하철의 안전한 이용과 관리에 대한 일반 공중의 신뢰를 현저히 깨뜨렸다”라며 “(신분이 특정된 두 명의) 피해자가 상당한 성적 수치심과 정신적 충격을 입었고, 나머지 피해자들도 이를 알았더라면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서울교통공사 직원이 지하철역에서 일반 시민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범죄의 심각성에 비해 집행유예라는 형량은 턱없이 낮았다. 하지만 A는 재판부에 금고형 이상의 선고를 면해달라고 호소하며 항소심을 이어갔다. 징역형을 받으면 바로 퇴직하게 되어 있는 서울교통공사 내부 규정 때문이었다. 2021년 7월, 의정부지방법원은 1심 그대로 형을 확정했다.

취재 알고서야 불법 촬영 가해자 징계한 서울교통공사

취재진은 최근 A의 범행이 벌어졌던 연신내역을 다시 찾았다. 역사 곳곳에서 ‘불법 촬영, 중대한 범죄행위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배너를 볼 수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와 여자화장실 벽에도 서울교통공사의 이름이 들어간 불법 촬영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 3호선 연신내역 에스컬레이터 앞에 불법 촬영을 경고하는 배너가 놓여 있다. 배너 하단에는 ‘서울교통공사’ 로고도 들어갔다.
△ 3호선 연신내역의 불법 촬영 경고문. 위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옆에 붙어 있다.
공사는 언론, 전동차 내 광고 등을 통해 안심 거울 설치, 캠페인 등 불법 촬영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왔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정작 소속 직원의 불법 촬영 범죄가 발생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취재진은 사건 이후 A의 행적을 수소문했다. 근황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실에 따르면, 취재진이 확인했을 당시에도 A는 서울교통공사에 계속 근무하고 있었다. A의 걱정과 달리, 징역형 이상의 선고를 받았을 경우 당연 퇴직이라는 내부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취재진은 권인숙 의원실을 통해 그에 대한 징계 기록을 요구했지만, 공사 측의 회신은 없었다. 공사는 A의 범죄를 지금까지 몰랐다는 입장이다. 공사 관계자는 오히려 취재진에게 ‘범죄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라고 되묻기도 했다.
신당역 사건 직후 열린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일부 의원들은 공사 내부의 성폭력 사건을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뉴스타파의 취재가 시작될 때까지 불과 2년 전 범죄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공사는 취재 사실을 알린 이후에야 A를 당연 퇴직 처분했다.
공사 측은 “직무와 관련 없는 성범죄 사건은 수사기관이 따로 통보하지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라며 “공사에서도 구성원들의 범죄 사실을 인지하고 빠른 조치가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을 꾸준히 요구해왔다”라고 말했다.
공기업 직원은 공무원과 달리 수사기관이 ‘직무와 관련된 범죄’인지를 판단해 통보 여부를 결정한다.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해당 사실을 소속 기관에 알리지 않으면 문제가 공론화되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2021년 7월 국민권익위원회는 ‘공기업 직원의 성범죄나 음주운전 수사 사실을 소속 기관에 통보해달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권 의원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사 직원의 불법 촬영 범죄가 직무와 관련이 없다는 판단부터가 잘못됐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권 의원은 “공사가 신당역 사건 이후에도 제대로 된 후속 조치를 안 한 채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라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지금이라도 전수조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성범죄 드러나도 형 확정 때까지는 ‘방탄’

서울교통공사 직원에 의해 발생한 성범죄는 A의 사건만 있는 게 아니다. 뉴스타파는 2021년 발생한 서울교통공사 소속 직원 B와 C의 성범죄 관련 기록을 추가로 입수해 분석했다.
B는 신정 승무사업소 소속으로 2호선 전동차에서 근무했다. 그는 운전실 CCTV 화면 속 여성 승객들을 불법 촬영했다. 승강장에서 지하철에 탑승하는 시민, 전동차 안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시민들이 대상이었다. 승객 안전을 살피기 위한 전동차 내부 CCTV도 범죄 수단이 됐다. 2호선 신도림역, 대림역, 영등포구청역 등 지하철 역사 내에서 저지른 불법 촬영 행위도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B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2021년 5월부터 10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총 74차례에 걸쳐 지하철 역사와 전동차 운전실에서 여성 승객을 불법 촬영했다. 특히 그는 불법 촬영 영상물을 비공개 SNS에 올리기도 했다. A의 사건과 마찬가지로, 불법 촬영 범행 특성상 피해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은 어려웠다. 판결문 속 피해자들은 어떤 색의 어떤 옷을 입은, ‘성명불상의 여성’으로만 나타난다. 2022년 9월 B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공사는 그를 당연퇴직 처분했다.
C의 범죄는 ‘성적 목적 다중이용장소 침입’ 혐의다. 직원 C는 2021년 3월 근무하던 차량사업소의 여성 직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발각됐다. 같은해 9월 인천지방검찰청은 C에 대해 성폭력사범 재범방지 교육 이수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A의 사건과 달리, 공사는 사건 이후 B와 C를 경찰에 직접 고발하고 대응했다. 특히 C의 사건에 대해서는 별도의 내부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나온 공사의 조사결과 보고서에는 공사 내부의 성범죄가 관행적으로 어떻게 수습되어 왔는지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C의 사건이 발생하자 해당 사업소장은 가해자 면담 등을 통해 문제를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처리했다. 사업소장은 조사 과정에서 “(면담 등) 노력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스스로 판단했으며 성폭력 사건인지도 당시는 잘 몰랐다”, “성폭력 사건을 은폐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라고 진술했다. ‘일터에서 성폭력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인사처에 보고해야 한다’는 내부 지침이 있었음에도, 사건을 알게 된 사업소장은 지침대로 처리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소장은 별다른 징계 없이 C를 다시 소내 배치했다. 그러다 같은해 6월 다른 사업소로 발령이 나자 해당 사업소 소속 여성 직원들이 항의했고, 공사는 그제야 C를 경찰에 고발하고 자체 조사를 시작했다.
직접 조사와 고발 조치에 나서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B와 C 모두 형사사법절차가 확정될 때까지 징계가 유예됐다. ‘신당역 사건’ 전주환을 1년 가까이 징계 없이 방치했던 것도 이러한 전례에 따른 셈이다.
이를 두고 공사가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져 가는 상황에서도 ‘선고 이후 징계’라는 과거의  지침을 유지하며 사실상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내부 직원의 성범죄에 대해 단호한 대응을 하는 다른 공기업 사례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실제 2020년 4월 마두역에서 소속 역무원의 불법 촬영이 적발되자, 한 달 만에 해고 조치한 코레일네트웍스의 사례도 있다.
공사도 얼마든지 지침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취재진이 입수한 공사의 신당역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공사는 자체 법률 검토를 통해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도 징계가 가능하다’라고 이미 판단한 것으로 나타난다. 또 이 보고서에는 ‘불법 촬영 등 고의성 디지털 성범죄는 비위 경중과 관계없이 반드시 중징계 의결을 요구해야 한다'라는 것이 행정안전부 지침이라는 점도 함께 지적되고 있다. 
공사는 신당역 사건 발생 6일만에 성범죄 가해 직원에 대한 인사관리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공사는 성범죄 징계를 내리는 시점을 ‘최종 선고 이후’에서 ‘1심 선고 이후’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 서울교통공사의 신당역 사건 조사 결과 보고서 일부. 보고서는 수사나 재판 중인 사건도 징계가 가능하다고 검토했다(출처: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실).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다. 해당 직원에 대한 징계 지침을 손질하는 것만으로는 반복되는 공사 내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에 대한 추가 피해와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 조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구미영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열린 ‘신당역 사건으로 본 일터 내 젠더폭력 사업주 책임 강화를 위한 토론회’에서 “추가적인 피해자는 없는지, 추가로 설치해놓은 카메라가 있는지 조사해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할 필요성 등을 확인하는 작업을 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또 구 선임연구위원은 “직위해제 기간인 가해자에게 조직 내 구성원이 피해자인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고, 조직 내 구성원일 경우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라고 했다. 스토킹 범죄 대응과 관련해서는 “신당역 사건처럼 인트라넷을 통해 피해자의 근무 일정과 장소를 확인하는 일은 가장 기초적인 안전 계획이 미비하여 발생한 문제”라고 봤다.

경보기 나눠주고 ‘안전 대책’... 직원들은 회사가 더 무섭다

‘신당역 사건’ 다음 날인 9월 15일, 공사가 산하 각 사업소에 보낸 공문이 논란이 됐다. 공문의 내용은 각 사업소 별로 사건에 관한 ‘재발방지 대책 아이디어’를 작성해 제출하라는 내용이었다. 사건에 대한 뜨거운 사회적 관심에 동떨어진 듯한 안일한 대응에 ‘허탈하다’라는 내부 반응이 나왔다. 
이어 9월 20일, 김상범 서울교통공사 사장은 국회에 출석해 안전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역 근무자 안전 강화 대책의 하나로 ‘여직원에 대한 당직 폐지’를 언급하면서 논란을 샀다. 이어 역사 사무실에서 지능형 CCTV를 활용해 순찰한다는 ‘가상 순찰’ 개념과 2인 1조 순찰 시스템이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내부 분위기다. 인력은 충원하지 않고 그저 2인 1조 순찰만 지시하는 것은 공사 경영진의 책임을 피하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 1월에는 직원들에게 호신용 장비를 지급했다. 전 직원에게 전자식 호루라기를, 여성 직원에게는 별도의 호신용 경보기를 나눠줬다. 공사의 한 직원은 취재진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지급받은 장비를 거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라며 “(장비가) 책상 위에, 가방 안에, 서랍 안에 있다”라고 말했다.
내부의 성범죄에 대한 서울교통공사의 안일한 대처와 부실한 사후 대책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복수의 공사 직원들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신당역 사건 전후의 공사 내부 분위기를 취재했다. 
직원 ㄱ은 신당역 사건에 대해 “회사 내부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고, 의견 개진을 극단적으로 통제했다”라며 “직원들이 인식한 내용은 언론 보도를 통한 게 전부였다”라고 비판했다. 다른 직원 ㄴ도 “회사가 재발방지 대책을 고민하는 대신 쉬쉬하기에 급급했다”라며 “내부적으로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점검하고 고민하고 바꿔야 함에도, 직원들은 아직도 사건이 어떤 과정으로 어떻게 마무리됐는지조차 알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취재진과 인터뷰한 공사 직원들은 결국 근무 인원 확충이 근본적인 안전 대책이라고 봤다. 직원 ㄴ은 “그동안 대책이라고는 할 수 없는 지침과 물품 지급이 있었다”라며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방안은 조직문화를 바꾸고, 인력을 늘리는 방향이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 2호선 신당역 개찰구 옆 아이센터에 ‘우리는 안전하게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신당역 사건 이후 5개월, 공사의 일터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고 물었다. 직원들은 ‘현장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라고 입을 모아 답했다. 한철의 뜨거운 관심이 지나간 이후, 오히려 서울교통공사 내부 직원들의 상처와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신당역 사건은 개인적 비극으로 치부되고 조직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엄청난 비극에 비해 회사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직원들의 공포감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긴 하지만, 회사가 내 목숨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불안감은 늘 마음 아래에 있다.”

“회사는 피해자 장례식과 산재 승인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고 판단한다. 현장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회사는 반성도, 사과도, 재발 방지를 위한 고민과 성찰도 없다. 조직적으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회사 구성원들도 신당역 전후가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을 뿐 직원들이 입은 상처와 두려움은 내면에 쌓여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교통공사 직원들의 서면 인터뷰 중 
제작진
디자인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