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개혁]국회예산은 의원들의 ‘쌈짓돈?’ 정보공개가 답이다.
2018년 01월 15일 15시 35분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국회는 왜 이렇게 정보를 숨기려고 할까?
국회가 숨기고 있는 정보 중에서 특히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은 국회의원들의 정책개발 관련 예산이다. 국회의원들이 입법 및 정책개발 활동에 쓰라고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와 ‘정책자료집 발간 및 발송비’까지도 정보를 비공개하는 이유는 뭘까?
예산 액수도 적지 않다. 1년에 쓰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가 86억 원, 정책자료집 발간 및 발송비‘가 46억 원 정도이다. 이 돈을 쓰는 과정에서 받은 영수증, 견적서, 계약서와 같은 지출 증빙자료를 공개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정책 개발에 제대로 사용한 것이 맞다면 이런 지출 증빙자료를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더욱 납득이 안 되는 것은 필자가 2011년에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 증빙서류를 직접 열람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국회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사상 처음으로 국회사무처에 들어가서 지출 증빙서류를 열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국회는 그 이후에 동일한 정보에 대해 비공개 결정을 해 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2011년에 필자가 열람한 것이 국회 내에서 어떤 파장을 일으킨 것일까?
당시에 필자가 활동하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서는 입수한 자료를 한겨레신문 탐사보도팀에 제공했고 한겨레신문은 추가 취재를 했다. 당시에 한겨레신문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기자가 국회의원 사무실인 것처럼 가장해서 여의도의 한 기획사와 한 통화내용이다.
“여기 ○○○ 의원실입니다. 이번에 인쇄업체를 바꿔보려 하는데, 인쇄물 찍는 과정에서 저희 자금 마련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가요?” “그때그때 요구하시는 대로 가능합니다. 부가세만 처리해주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정책자료집 만들 때 1500만원 견적에 1000만원 마련도 가능한가요?”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정책자료집 같은 경우 필요한 범위에서 200~300부만 찍는 의원도 있지만 사무처 제출용 1부만 찍기도 합니다. 얼마든지 가능하죠.” -2011. 6. 20. 한겨레신문 보도 중 |
이것은 국회의원들이 정책자료집 인쇄비 명목으로 예산을 불법으로 빼먹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물증을 잡기는 어려웠고 추가보도는 없었다. 이 때 아마도 국회 내부에서는 필자에게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 증빙자료를 공개한 것에 대해 국회의원들의 반발이 컸을 것이다. 필자가 서류를 열람하고 있던 중, 한 국회 사무처 직원은 ‘의원실에서 항의하고 난리가 났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후부터 국회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에 관한 지출 증빙서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일단 비공개하고 보자는 식으로 입장이 바뀐 것이다.
그러나 2017년 <뉴스타파>와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보공개센터’, ‘좋은예산센터’가 공동 기획으로 다시 한번 조사에 나섰다. <뉴스타파>가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는 국회의원들의 정책자료집을 분석한 결과, 지출 증빙서류를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많은 문제점들이 적발되었다. 국회의원들이 발간한 정책자료집 중에서 상당수가 통째로 남의 연구 결과물을 베낀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 중에 상당수는 일부 표절한 수준이 아니라, 표지만 ‘00국회의원’으로 바꾸고 남의 저작물을 그대로 게재한 ‘표지갈이’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뉴스타파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대 국회의원 중에서 25명이, 19대 국회의원 중에서 17명이 표절 정책자료집을 발간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자유한국당 안상수, 경대수, 이현재, 윤영석, 함진규 의원 등은 표절 정책자료집의 발간 비용으로 국회 예산을 자료집 1건 당 380만 원에서 890만 원까지 청구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 관련기사 : 의원님들의 표절… 그리고 혈세(2017.10.19)
이런 표절행위는 전체적으로 저작권법 위반이다. 그러나 저작권법 위반은 대체로 친고죄이므로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다는게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원저작자가 국회의원을 고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을 통째로 베끼면서 표지만 바꾼 ‘표지갈이’에 해당하는 것은 친고죄가 아니므로 고소여부에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다. 저작권법 제137조 제1항 제1호는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이명을 표시하여 저작물을 공표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고, 이 부분은 친고죄가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법원은 ‘표지갈이’를 하여 타인의 저작물을 자신의 저서처럼 출판한 대학교수들에 대해 저작권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또한 한겨레신문 기사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책자료집을 부풀려서 인쇄하고 따로 돈을 챙겼다든지 하는 경우에는 ‘국가를 상대로 한 사기’죄가 성립할 수도 있다. 허위 서류를 제출하여 예산을 부당하게 타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물증은 확보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떳떳하다면 지출 증빙서류를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저작권법 위반에는 확실하게 해당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드러난 명단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아예 정책자료집을 국회도서관 홈페이지에 올리지 않은 국회의원들이 많기 때문에 전면적인 수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라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끝까지 진상을 밝히려고 한다. 마침 국회 ‘입법 및 정책개발비’의 지출 증빙서류를 공개하라는 소송에 대해서는 오는 2월 1일 1심 판결이 선고될 예정이다.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번에 법원이 공개판결을 내린다면, 국회는 항소를 포기하고 정보를 공개하기 바란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나중에 드러나는 진실이 가져올 후폭풍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고 :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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