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세먼지 주범은 석탄화력발전소"
2016년 05월 19일 18시 37분
1970년대와 80년대, 울산과 온산공단은 ‘공해병’의 온상으로 악명 높았다. 수많은 주민들이 코뼈가 녹아내리는 비중격천공증 등의 중금속 중독 증세와 이른바 ‘이따이이따이병'과 유사한 온산병 등에 신음했다. 당시 이 지역에 중금속 공해를 유발한 업체는 상당수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 기업이었다. 이들은 자사 공장의 심한 공해 배출로 자국 내 운영이 힘들어지자 환경 규제가 느슨하고, 외자 유치가 필요했던 한국에 대거 들어온 것이다.
이처럼 선진국 공해산업 수출의 대표적인 피해 국가였던 한국. 하지만 이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한국 기업이 개발도상국에 공해산업을 수출해 돈을 버는 상황이 온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일본, 인도네시아 기업과 함께 인도네시아 찌레본 지역에 석탄발전소를 설립해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지난 2012년 가동을 시작한 찌레본 발전소는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선진 발전 기술을 바탕으로 한, 성공적인 한류 사업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한국중부발전과 삼탄이 일본, 인도네시아 현지 기업과 합작 투자했고 두산중공업이 설계와 시공을, 중부발전이 운영과 정비를 담당해 사실상 순수 한국 기술력이 투입된 사업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뉴스타파와 일본의 독립언론 ‘와세다크로니클(Waseda Chronicle)’, 인도네시아의 유력 언론 ‘템포(Tempo)’ 등 3개국 언론의 국제 협업 취재 결과, 찌레본 발전소는 국내 석탄 발전소에서는 모두 설치해야 하는 공해저감 시설 등 환경설비를 설치하지 않아 현지 주민들의 건강과 생계를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개 언론사의 취재 결과 이 발전소는 고가의 환경설비를 설치하지 않아 건설비용을 1천억 원 넘게 절감하는 한편 매년 수십억 원의 운영 비용도 절감해온 것으로 추산된다.
40여년 전 공해수입국이었던 한국이 과거의 아픔을 망각한 채 공해수출국으로 돌아선 것이다. 정부는 1970년대 중반부터 경제 발전 명목으로 자국에서 공해업체로 찍힌 외국계 공장들을 울산광역시 일대 대규모 공단으로 불러들였고, 주변 주민들은 이 공장에서 무분별하게 배출된 각종 중금속 공해로 인해 공해병과 환경 오염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찌레본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차로 3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어촌 소도시이다. 찌레본 석탄발전소 1호기가 들어서기 전 이곳 주민들은 대대로 염전을 일구고 연안에서 고기를 잡는 등 어업에 종사하거나, 농작물을 키워 생활해왔다.
발전소 인근 칸시쿨론 마을 주민 사줌 빈 마다래이 씨는 찌레본 1호기가 들어선 지역에서 대를 이어 염전을 일궜던 염부였다. 그는 발전소 건설 전에는 연중 건기인 약 5개월 정도만 일해도 땅을 사고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여유있게 생활했지만, 정부에서 해당 부지를 매입하면서 주변 다른 지역으로 염전을 옮겼다. 새 염전에선 수확량이 크게 줄어 마다래이 씨 가족은 더 이상 염전 일만 해서는 먹고 살 수 없게 돼 아예 일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일용직에 종사하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발전소는 생계 뿐만 아니라 건강도 위협하고 있었다. 찌레본 아스타나자푸라 구역 보건소 의사 우키 수스완다리 씨는 매일 200명 가량의 환자를 진료하는데, 어린이 환자들 중 절반은 호흡기 질환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뉴스타파와 와세다크로니클, 템포 취재진은 석탄화력발전소 오염물질이 주민들의 건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린피스 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했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 하버드대학교와 공동으로 동남아시아 지역 석탄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로 인한 주민 조기사망률과 건강 영향을 연구한 바 있다. 연구소는 이 연구 방법을 차용해 찌레본 1호기 굴뚝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데이터를 넣어서 분석을 시도했다.
그 결과 발전소 인근 수십 킬로미터 안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은 오염물질로 인해 매년 평균 800명이 조기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주민 약 4천 명이 국제보건기구(WHO) 허용기준을 넘어서는 24시간 평균 이산화황(SO2) 농도에 노출돼 있고, 약 50만 명이 WHO 허용기준의 절반에 이르는 SO2, 질소산화물(NOx)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다고 한다.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라우리 뮐리비르따 그린피스 연구원은 폐질환 뿐만 아니라 허혈성 심장질환, 뇌졸중 등 다양한 질병이 발생할 수 있고, 유아들에게는 하기도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염물질 농도는 어느 정도일까. 3개국 취재진이 한국과 일본, 인도네시아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허용기준을 비교해본 결과, 인도네시아의 허용 기준이 황산화물 (SOx)의 경우 일본에 비해 5배 이상, 질소산화물 (NOx)의 경우 한국에 비해 5배가 넘게 느슨한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진은 찌레본 1호기에서 실제 배출되는 오염물질 농도를 비슷한 용량으로, 비슷한 시기에 가동을 시작한 한국 하동 7호기과 일본 신이소고 2호기 발전소와 비교했다. SOx의 경우는 찌레본 발전소가 한국에 비해 7배, 일본에 비해 15배까지 높았다. NOx도 한국에 비해 3배, 일본에 비하면 14배 나쁜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 결과, 찌레본 발전소의 실제 배출농도가 이렇게 높게 나온 것은 국내나 일본에서 건설된 석탄화력발전소에는 모두 설치된 오염물질 저감 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 대기관리과 임필구 사무관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LNG가스나 도시가스를 쓰면, 먼지나 황산화물 같은 것들이 원료 특성상 거의 나오지가 않지만 석탄 같은 경우는 다르다"며 “그냥 방지시설이 없이 석탄을 때면 먼지나 황산화물, 질소산화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반드시 방지시설을 꼭 설치해야만 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2009년 완공돼 가동을 시작한 비슷한 발전 규모의 초임계압 석탄 발전소 보령 7,8호기에는 SO2와 NOx 배출을 저감하는 탈황, 탈질설비, 그리고 먼지 발생을 줄이는 집진설비가 설치됐다. 그러나 그보다 3년 뒤 완공돼 가동을 시작한 찌레본 1호기엔 집진설비만 설치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에너지이니셔티브 연구소의 이멀 젠서 연구원은 이들 설비는 매우 비싸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반드시 필요한 설비라고 조언했다. 그는 탈황설비를 설치하면 건설비용이 7~15%, 탈질설비의 경우에는 5~20% 증가할 수 있다고 추산했으며, 발전소 운영비용도 두 설비를 모두 갖출 경우 15~35%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합작 법인인 CEP에 27.5% 지분을 출자했고 운영, 정비까지 담당하는 중부발전은 매년 배당금과 운영 서비스 수익까지 매년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대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해병 연구로 유명한 구마모토가쿠엔대 미나마타연구소의 마사노리 하나다 소장은 40여 년 전 한국의 온산공업단지에는 일본의 자본이 투입된 공해 배출 공장이 많았다며, 한국은 공해병을 수출했던 일본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하나다 소장은 “자본을 수출하고 기술도 수출하는데, 수출하지 않는 것이 환경기준”이라며 “한국도 현재 엄격한 환경기준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기준도 함께 수출한다면 현지에는 공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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