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법적 검토 없이' 하청노조에 470억 원 손해배상 소송

2022년 10월 04일 16시 44분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이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하 하청노조)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걸며 내놨던 논리가 아무런 법적 검토 없이 나온 주장이란 사실이 확인됐다. 대우조선은 지난 8월 "불법 파업으로 대우조선에 손해를 입힌 하청노조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않으면 대우조선이 오히려 배임죄를 저지르게 된다"고 주장하며 하청노조를 상대로 47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송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대우조선이 소송을 무기로 하청노조 무력화를 시도한다"는 비판이 쏟아졌었다.    

대우조선해양, "손해배상 청구 안 하면 배임죄" 줄곧 주장

하청노조는 지난 6월 초부터 7월 말까지 51일간 대우조선 독을 점거한 채 파업을 진행했다. 임금인상, 노조 활동 인정 등을 요구한 파업이었다. 그리고 파업을 끝내는 협상을 하면서 대우조선 측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말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대우조선은 하청노조의 요구를 묵살했다. "하청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으면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대우조선의 이런 입장은 아래와 같이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사측(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조의 요구를 수용해 소 청구를 취하하면 주주들로부터 배임 혐의로 소송을 당할 수 있다고 본다. 경영진은 회사의 업무를 위임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회사가 불법 행위로 손해를 입었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묻고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머니 S 보도 (2022.7.20)  
대우조선해양은 “철저히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공언했다. 손해가 명백한데도 회복 노력을 하지 않을 때 경영진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부산일보 보도 (2022.8.23)
대우조선은 이 주장을 계속 유지했고, 결국 지난 8월 26일 하청노조 간부들을 상대로 470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노조를 상대로 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액 중 역대 최대 금액이었다. 
지난 7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대우조선의 고소, 손해배상 소송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아무런 법률 검토 없이 '손배소 안 걸면 배임' 프레임 만들어

하지만 '손배소를 안 걸면 배임죄'라는 대우조선의 주장은 아무런 법적 검토도 없던 '자의적 판단'임이 취재 결과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실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하청노조 상대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 관련 배임죄 여부에 대한 내외부 법률 검토 및 자문 자료"를 요구한 진 의원실에 "그런 자료는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산업은행 답변서에는 "대우조선에 문의한 결과, 금번 손배소 제기는 회사가 파업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 행위로 입은 피해를 보전받기 위한 것으로서 민형사상 필요적 조치 사항으로 판단해 소 제기 여부에 대해서는 별도의 법률 검토 거치지 않음"이라고 적혀 있다. 
대우조선이 아무런 법률적 검토와 자문도 없이 '손배소를 걸지 않으면 배임죄'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언론에 뿌린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대우조선의 '자의적 프레임'... "배임죄 성립 현실성 없다"

법적 검토도 없이 만들어 낸 대우조선의 '손배소 프레임'에 대해 법률 전문가들은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한다. 기존 법원 판례와 검찰 수사 기조를 봐도 실제로 대우조선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배임죄로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노동문제 전문가인 최종연 변호사는 "기업의 경영상 판단인 경우, 법원은 배임죄의 고의를 비교적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 파업을 끝내면서 노사간 면책 합의를 한 경우도 경영상 판단으로 보기 때문에 배임죄로 기소·처벌된 사례는 없다"고 했다. 또 "특히나 배임죄는 회사에는 손해를 끼치면서 본인 또는 제3자에게 재산상 이득을 줘야 하는 것인데, 대우조선이 손해배상소송을 안 한다고 누가 재산상 이득을 얻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배임죄의 기초적인 구성요건 자체가 성립하는지 의문이다"고 했다. 
형사법 전문가인 양홍석 변호사는 "손해배상소송을 하지 않더라도, 배임죄로 실제 처벌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기소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노동자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으로 발생한 손해에는 회사도 일정 책임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회사가 사회적 책임, 이미지 제고, 노동자들과 포괄적 협상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소송을 하지 않는 경영 판단을 해도 무방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진성준 의원은 "조선업 불황기를 하청노동자 쥐어짜기로 버틴 대우조선이 사상 최대 수주에도 불구하고, 하청노동자의 생존권적 요구를 외면하는 바람에 파업이 장기화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우조선은 하청노조를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했다. 손배가압류 제도의 합리적 개선과 대우조선과 같은 원청의 사용자성을 규정한 노동조합법 개정을 통해 무분별한 사측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막을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제작진
취재홍주환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