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내각의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7년간 대학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정규 강의 개설과 논문 발표 등 교육·연구 실적이 없었는데도 보수 3억 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박 후보자가 석좌교수로 재직한 곳은 한국외국어대학교. 2013년 3월부터 2020년 5월까지 7년 2개월간 근무했다. 이 기간 박 후보자는 정규 강의를 개설하지 않았고, 대학원생 지도는 물론 논문 발표 등 연구 실적도 따로 없었다. 하지만 매년 4천만 원 남짓, 총 3억 원이 넘는 보수를 챙겼다.
박 후보자가 석좌교수로 있으며 매년 수천만 원을 받았을 때, 외대 총장이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였다. 외대의 경우, 대학 총장이 석좌교수 보수를 결정한다.
박진, 2012년 총선 불출마 뒤 한국외대 석좌교수 위촉
박진 후보자는 4선 국회의원이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내리 세 번 국회의원이 됐고, 8년 뒤인 2020년 총선에서 또 당선됐다. 박 후보자는 국회에 들어가지 못한 8년 대부분을 한국외대 석좌교수로 지냈다. 2012년 19대 총선에 불출마한 박 후보자는 이듬해 3월, 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유엔평화학과 석좌교수에 위촉됐다. 이후 2020년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로 돌아가기까지 7년 2개월간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석좌교수란 탁월한 연구 업적을 일군 석학이나 사회 공헌을 한 명사를 초빙해 교육·연구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한국외대는 박 후보자에게 본관 2층의 연구실을 별도로 제공했다. 영어 번역과 자료 수집을 도와줄 전담 조교도 따로 뽑아줬고, 조교에겐 매 학기 장학금 400만 원을 지급했다. 웬만한 정교수보다 나은 지원이었다.
한국외대 규정에 따르면, 석좌교수의 임무는 세 가지다. 연구와 강의, 특강과 세미나, 기타 연구·교육에 대한 자문이다. 박 후보자가 석좌교수로서 남긴 것은 무엇일까.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에 불출마한 뒤, 2013년 3월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유엔평화학과 석좌교수로 위촉됐다.
연구·정규수업 하나도 안 맡아... 석좌교수 기간 동안 '선거 활동'
뉴스타파 확인 결과, 박진 후보자는 석좌교수로 재직한 기간 연구 실적을 낸 적이 없다. 다수의 학술 정보 사이트에서 검색해도 논문이나 연구보고서는 한 건도 없었다. 기고문 30여 건만 확인됐다. 대부분 신문 기고용 칼럼이었고, 내용은 정세 분석이 주였다. 이마저도 석좌교수 초기 2년(2013년~2015년) 몰려 있었고, 이후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박 후보자는 2015년 책 두 권도 출간했다. 하지만 둘 다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낸 연구 성과를 담은 게 아니었다. 자신과 연관된 칼럼·언론 기사를 한데 모은 책 하나, 2016년 20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쓴 <종로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모두 석좌교수 직무와 관련성을 찾기 어려운 출판이었다.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석좌교수 연구실은 한국외대 교수회관이나 대학원 건물이 아닌 본관 2층에 있었다. 총장이나 부총장 등 주요 보직자들이 있는 곳이다.
박 후보자는 7년여간 정규 강의도 맡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실과 함께 한국외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결과, 2013년부터 2020년까지 국제지역대학원 유엔평화학과에서 박진 후보자가 담당 교수로 이름을 올려 진행한 과목·강좌는 한 건도 없었다.
박진 후보자가 활동했다는 LD(Language&Diplomacy)학부 강의시간표에서도 그의 이름으로 개설된 정규 과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외대 홍보팀 관계자는 "석좌교수가 위촉 기간에 강의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해명했다.
박 후보자가 진행한 특강과 세미나도 조사했다. 외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특강·세미나 공고문과 강의시간표 등을 살폈다. 모두 20건이 나왔다. 2013년 4건, 2015년 4건, 2016년 3건, 2017년 4건, 2018년 2건, 2019년 3건으로 1년에 서너 번 정도 특강을 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홈페이지에 올라온 강의시간표와 강의계획서를 확인해본 결과,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담당 교수로 나온 정규 수업은 하나도 없었다.
석좌교수 기간, 두 차례 '총선' 참여... 7년간 3억여 원 급여
박 후보자가 석좌교수로 있던 기간엔 두 번의 총선(2015년 20대, 2020년 21대)이 있었다. 그때마다 박 후보자는 지역구 출마를 선언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예비후보로 출마한 박 후보자는 2015년 11월경부터 지역구인 서울 종로구를 거의 매일 찾았다. 21대 총선이 있던 2020년 3월과 4월에도 그는 지역구인 서울 강남구에 상주하며 선거 운동을 했다.
이처럼 연구와 정규 강의도 없이, 석좌교수를 하며 선거 활동까지 했지만, 박 후보자는 7년 동안 꼬박꼬박 석좌교수 보수를 모두 챙겼다. 박 후보자가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요청안과 뉴스타파 요청으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박진 후보자는 2013년부터 한국외대에서 급여로 매년 4천만 원가량을 받았다.
2013년 3천 7백여만 원, 2014년 4천 1백여만 원, 2015년 4천 3백여만 원, 2016년 4천 1백여만 원, 2017년 4천 8십여만 원, 2018년 4천 1백여만 원, 2019년 4천 8십만 원, 2020년 1천 6백여만 원(5월 29일까지만 근무)으로 모두 3억 1백만 원에 달했다.
박진 후보자는 2020년 4월 16일 총선에서 당선된 뒤에도 곧바로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박 후보자는 21대 국회 개원 하루 전인 5월 29일까지 계속 석좌교수직을 유지했고 그해 4월과 5월, 두 달 치 월급도 다 챙겼다.
"8년간 정치를 떠나서 재충전하고 다시 돌아왔다"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던 8년의 대부분을 한국외대 석좌교수로 보낸 박진 후보자. 그에게 대학 석좌교수는 무엇을 의미할까.
2020년 4월 16일 국회의원 당선 직후, 박 후보자는 SNS에 이런 표현을 남겼다. "8년간 정치를 떠나서 넓은 세상에서 재충전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명예로운 학자의 이름이어야 할 석좌교수가 그에겐 정계 복귀를 위한 '재충전’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왼쪽)가 한국외대 석좌교수로 재직하던 시기, 대학 총장은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오른쪽)였다. 사진은 두 후보자가 2015년 10월 한국외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모습.
한국외대 규정에 따르면, 석좌교수 임기는 2년이다. 임기를 연장하려면 재위촉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박 후보자는 2013년 처음 석좌교수가 됐고, 2020년까지 근무했다. 2015년과 2017년, 2019년, 3번의 재위촉 절차가 있었다. 석좌교수의 재위촉은 대학 재단 이사회가 결정하고, 석좌교수의 보수 등 처우는 총장이 정하게 돼 있다.
그런데 박진 후보자의 석좌교수 재위촉 시기, 한국외대 총장은 이번 윤석열 초대 내각에 같이 발탁된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였다. 김 후보자는 2014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외대 총장이었다. 재단 이사직도 겸했다.
결국. 박진 후보자의 수천만 원 연봉을 결정하고, 석좌교수 재위촉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바로 김인철 후보자라는 뜻이다. 박 후보자는 김인철 후보자가 회장을 맡은 사단법인 '비비비코리아'의 이사로 9년째 활동 중이다. 석좌교수 제도가 연줄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정치인을 위한 자리로 악용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협의회 이사장은 "(대학이) 석좌교수에게 몇천만 원 주면, (대학은) 수십 배 이상의 효과를 본다. 학교 이름 알리는 것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무슨 문제가 있을 때, ‘보험’을 드는 것이다. 대관 로비를 하기 위해서 석좌교수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는 한국외대와 김인철 후보자 측에 박진 후보자를 석좌교수로 위촉하고 매년 약 4천만 원의 보수를 지급한 이유가 무엇인지, 석좌교수에 계속 재위촉한 근거는 무엇인지 물었다. 김인철 후보자 측은 "개별 취재에 대해선 응대하지 않기로 했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취재진은 이후 김 후보자에게 전화하고 문자도 보냈지만, 추가 답변은 오지 않았다. 한국외대는 해명을 거부했다.
뉴스타파는 박진 후보자 측에 연락해 외대 석좌교수로 7년간 재직하면서 연구·정규 강의 없이 3억 원을 받은 게 상식에 비추어 적절하다고 보는지 물었다.
박진 후보자 측은 "석좌교수 재직 중 정규 과목의 (특강 형태로) 강의에 참여했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비전 특강, 대학 부설연구소의 학술 세미나 등 다양한 연구·강의·활동을 했고, 대학 운영진의 국제교류에 대한 조언과 자문에도 성실히 임했다"며 "대한민국 외교의 미래 인재를 배출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직후 대학 측에서 바로 퇴직 절차를 진행했고, 행정 처리에 시간이 다소 소요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석좌교수들이 모두 유력 정·관계 인사로만 구성되는 것은 아니므로 석좌교수 제도를 '로비 창구' 등으로 일률적으로 재단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