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동창 국회의원 지역구에 3억 대 '셀프 기부'

2021년 06월 24일 15시 00분

대통령 선거 때가 되면, 유력 후보의 캠프마다 인산인해를 이룬다. 문지방이 닳도록 수많은 이들이 드나든다. 그럴듯한 이름의 위원회도 우후죽순 만들어진다. 2017년 봄, 강력한 대선 후보였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캠프 주변이 그러했다. 
문 후보의 선대위 산하 조직에 ‘민주50세대특별위원회’가 생겼다. 대선을 코앞에 둔 2017년 4월 19일 결성됐다. 586세대 즉, 1980년대 대학에 다니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50대 유권자가 주축이 됐다고 한다. 이들은 문재인 후보 지지 선언을 하고 당선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한 '민주50세대특별위원회', 오른쪽 하단 이상직 이스타항공 회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사진은 서울경제 뉴스 캡쳐.

대선 캠프에서 만난 고교 동창, 이후 공기업 낙하산으로 나란히 영전

문재인 후보의 대선 승리 이후, ‘민주50세대특별위원회’에 참여한 인사들은 각자의 공에 따라 논공행상이 펼쳐졌다. 이 중 두 사람을 주목하자. 
건설업체 대표를 지낸 류근태 씨와 이상직 의원이다. 류 씨는 특위 공동위원장에 이름을 올렸고, 이 의원은 당시 이스타 항공 회장 직함을 내걸었다. 둘 다 인연이 깊고 각별하다. 전주고 동문이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나란히 공공기관 낙하산으로 내려간 두 사람은 학연과 지연이 씨줄과 날줄로 짜인 ‘사익 추구의 복마전 속’에서 마주하게 된다.   
2011년 전주고 58회 동기회 봉사활동 현장에서 찍은 사진, 이상직 의원(아래)과 류근태 씨(위)는 전주고 동기동창으로 확인된다. 사진은 전북일보 뉴스 캡쳐 
2018년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공기관 낙하산으로 영전한다. 먼저 낙하산을 펼친 건 이상직 의원이다. 2018년 3월 2일,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에 임명됐다. 중진공은 중소기업 진흥 사업을 위해 설립한 준정부기관이다. 
이 의원은 2년 뒤인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당적을 내걸고 전북 전주 완산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4년 전 20대 총선에서 경선 탈락의 아픔을 딛고 19대에 이어 국회에 재입성했다. 총선 당시, 고교 동문인 류 씨는 이상직 후보의 선거 운동을 도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상직, 작년(2020년)에 4월 달에 총선 할 때 이상직 캠프에 같이, 이상직 캠프에서 선거운동 해줬었지 않습니까.

최창학 전 한국국토정보공사 사장
‘4년 만의 화려한 복귀’도 잠시. 이스타항공 사태가 불거졌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드러나면서 이상직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했다. 중진공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2019년, 자신의 이름으로 2,600만 원 상당의 명절 선물(전통주)과 책자를 선거구민들에게 제공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번 달(6월) 16일, 이 의원은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외에도 이상직 의원은 이스타항공 경영 당시, 회삿돈을 유용한 의혹 등으로 또 다른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이 의원이 남은 국회의원 임기를 마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상직 의원 전주 지역 사무소

학연·지연으로 얽히고설킨 낙하산 보은인사 

이상직 전 의원이 중진공 이사장에 오른 3주 뒤 2018년 3월 26일, 류근태 씨도 공공기관인 한국국토정보공사(LX) 상임감사에 임명됐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우리나라 국토의 토지 측량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기관이다. 
류 씨의 국토정보공사 상임감사 임명은 학연과 지연이 겹쳐진 낙하산 인사의 전형이다. 국토정보공사의 주무 부처가 국토교통부인데, 상임감사 임명 당시 장관은 김현미 전 의원이었다. 류 씨와 김현미 전 장관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81학번 입학 동기인 것으로 확인된다. 국토정보공사 본사는 이상직 의원 지역구인 전북 전주시에 있다. 김현미 장관도 전주 출신으로 전주여고를 졸업했다.
보은 인사에다 학연·지연 등 연줄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류 씨는 상임감사로서 잘 나갔다. 2019년엔 한국감사협회 회장에까지 올랐다. 국토정보공사 내부에선 사장 못지않은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다는 증언도 나왔다. 최창학 전 한국국토정보공사 사장은 “류근태 씨가 나보다 먼저 감사로 와 있었는데 가보니까 완전히 사장 이상으로 모든 것을 다 하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류근태 상임감사의 재직 동안, 한국국토정보공사(LX)는 기부·후원금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썼을까. 뉴스타파는 류근태 감사 재직 시기를 포함해 5년치(2015~2019년) 예산 세부 지출 내역을 공개해달라고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국토정보공사는 반년이 넘도록 공개를 거부했다. 
전북 전주에 있는 한국국토정보공사 본사
자료 확보를 통한 검증은 불가능해 보였다. 취재진은 공사 본사가 있는 전주시를 찾아 탐문을 시작했다. 며칠 동안 현장 취재를 하며 류근태 전 상임감사와 특수한 관계가 있는 지역 단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봉사 단체 ‘굿월드 자선은행’이다.
‘굿월드 자선은행’은 2009년 사단법인으로 설립한 자선·봉사 단체다. 2010년 이상직 의원이 단체 대표로 취임했다. 이후 이상직 의원은 굿월드 자선은행 대표 자격으로 전주시 완산구 등에서 사회 공헌 활동을 벌였다. 류근태 상임감사도 이 단체의 이사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주요 이력을 소개할 때, 이 단체를 빼놓지 않았다. 류 감사가 2018년 상임감사에 임명될 당시, 공공기관 경영 공시 사이트엔 그의 주요 경력으로 이 단체의 이사임을 명시해놨다. 
국토정보공사는 류 감사 재직 당시인 2019년 ‘굿월드 자선은행’에 5,000만 원을 기부했다. 류 상임감사가 이사로 활동했고, 이상직 의원이 대표로 있던 단체에 기부·후원금을 집행한 것이다. 전형적인 '셀프 기부' 행위다. 
전북 전주에 있는 굿월드자선은행 사무실
 하지만, 기부금을 받은 단체는 이상직 의원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또 받은 기부금은 어린이 구호 등 자선 단체 취지에 맞게 제대로 썼다고 주장했다.
(이상직이) 잠깐 대표도 하신 게 있는데 대표는 사실 자선단체 홍보대사에 가까워요. 만약에 저희가 그 후원금을 받아서 막말로 이사장인 내가 지금 착복을 했다든지 뭐 이 단체가 이익을 좀, 본연의 취지나 목적에 안 맞게 사용을 했다든지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굿월드자선은행 이사장
이 단체의 해명과 달리, 류 상임감사는 기부 예산을 사유화했다. 예산 비리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2019년 12월. 류 감사가 공사 예산인 기부금을 오·남용하고 있다는 제보가 감사원에 들어갔다. 석 달의 조사 끝에 2020년 2월, 감사원이 결과 보고서를 냈다. 류 감사의 예산 비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류근태 감사는 특정 단체에 기부를 요구하는 등 기부금 집행에 부당 개입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2020년 2월 공개된 감사원의 류근태 감사에 대한 감사 결과보고서

고교 동문인 국회의원 관리 지역구에 3억대 기부금 몰아줘 

감사원에 따르면, 류 감사는 당초 공사가 다른 사회복지 단체에 기부하기로 한 3억 8,000만 원의 예산을 자신과 관련이 있거나, 기자, 국회의원 보좌관 등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단체 30여 곳에 주도록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류 감사는 전주고 동창인 이상직 의원을 위해 그의 지역구인 전주 완산구에 기부금을 몰아줬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감사가 준 기부금 명단에 전주시 완산구에 소재한 곳이 많은 것을 알고 그 사유를 물어보자, 부장은 “감사님과 고등학교 동창이고 친한 전 국회의원이 관리하는 지역구라서 명단에 들어간 것입니다”라고 하였고… 

감사원 감사결과보고서 중 (2020년 2월 4일)
상임감사라는 권한을 남용해 공공 예산으로 사익을 추구한 것이 명백해졌다. 게다가 고교 동창인 이상직 의원이 출마해 당선된 전주시 완산구 지역에 예산을 몰아줬다. 직권을 남용한 예산 비리는 물론 형법상 배임,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 등이 제기된다.
2020년 2월 공개된 감사원의 류근태 감사에 대한 감사결과보고서. 이상직 의원이 관리하는 지역구에 기부금을 주도록 했다는 진술이 담겨 있다. 
그러나 류 감사는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상임감사에서 해임됐다. 조사했던 감사원은 이후 류 전 감사를 형사 고발하지 않았다. 감독 책임이 있는 국토부도 예산 환수 등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명백한 사익 추구 드러났지만, 형사고발, 예산 환수 등 후속 조치 없어

한국국토정보공사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류 전 상임감사가 물러나고 민주당 의원 보좌관 출신의 또 다른 낙하산 인사가 내려왔다. 낙하산을 또 다른 낙하산으로 바뀌는 사이, 기부금 예산 오·남용을 차단할 제도적 장치는 여전히 마련하지 않고 있다. 국토정보공사는 뉴스타파 취재진에 “굉장히 예민하고 어려운 문제라며 명확하게 모든 걸 다 말씀드릴 수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류근태 전 한국국토정보공사 상임감사
뉴스타파는 류근태 전 상임감사에게 연락했다. 잘 못 쓰여진 기부금과 관련해 어떤 생각인지 묻기 위해서였다. 그는 당당했다. “최종 결재권자는 내가 아니라 사장이었다”, “이상직 의원의 선거를 도운 사실이 없다”라는 변명을 늘어놨다.
류근태 : 최종 결재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해 보세요. 결재라는 건 책임을 진다는 걸 아시죠? 최종 결재자가 (최창학) 전 사장이에요. 기자 : 그럼 감사 보고서에 나온 내용이 잘못된 건가요?  예. 기자: 이상직 의원이랑은 그러면 선거운동을 도와주거나 그런 사이가 아닌가요?  그만하세요. 사실이 아닙니다.

류근태 전 한국국토정보공사 상임감사 
기부·후원 예산 지출 내역을 공개할 수 없다며 6개월을 버티던 국토정보공사는 최근 태도를 바꿨다. 이번 달(6월) 중순, 관련 예산 자료를 뉴스타파에 보내왔다. 공개하지 않을 경우, 정보공개 행정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직후였다. 현재 검증 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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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취재최형석, 김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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