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탄핵 늦추는 내란 동조자들, 볼모 잡힌 2025년 경제

2025년 01월 02일 20시 00분

12·3 내란은 가뜩이나 어렵던 신년 경제에 찬물을 끼얹었다. 주요 거시경제 지표가 요동치는 것은 물론, 휘청이던 서민 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다. 응원봉을 든 시민들의 힘으로 일단 탄핵 정국에 들어섰지만, 정부·여당 등 '내란 동조자들'의 방해로 탄핵의 시계는 늦어지고 있다. 갓 출발한 2025년 한국 경제가 내란 동조자들에게 볼모 잡힌 꼴이다. 전문가들은 탄핵 인용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만이 내란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를 수습하는 출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위태로운 경제에 찬물까지 끼얹은 'GDP 킬러'

12·3 내란 직후 곧바로 반응이 나타난 곳은 주식 시장이다. 코스피·코스닥 지수는 연속 4일 하락했고, 시가총액 기준 해당 기간 총 144조 원이 증발했다. 지난해 12월 4일부터 12월 30일까지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스피 주식 3.4조 원어치를, 개인투자자는 약 8,00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 2.3조 원을 들여 주식을 사들였지만, 하락세는 지속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 운용 수익률 하락이 발생해 국민 노후를 위한 곳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심각한 경고등이 켜진 지표는 환율이다. 지난해 9월부터 트럼프 2기 출범 등의 대외 이슈로 꾸준히 상승하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27일 한때 1,480원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다. 올해 환율이 1,500원대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투자자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원자재 가격과 물가를 연쇄적으로 끌어올려 서민 경제를 위협하고 내수 전반의 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12월 기준 외환보유고가 4,100억 달러 수준으로, 대응 여력이 충분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환율 상승 방어를 위해 지속적인 자금이 투입될 경우, 보유액이 투자자들의 심리적 저지선인 4,000억 달러 아래로 내려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포브스 지는 지난달 6일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을 두고 'GDP 킬러'라는 표현을 썼다. 
환율 상승은 한국 정치 상황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우려를 반영한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당장 계엄의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국가 신용등급 하락 등의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외 언론에서는 윤석열을 두고 'GDP 킬러'라는 표현을 쓰며, '내란의 대가를 5,100만 명 국민이 할부로 치러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경제 당국이 아무리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말해도 정치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해외 투자자들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란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들은 서민·자영업자들이다. 자영업자들은 12·3 내란으로 연말 대목을 고스란히 날렸다.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성탄절, 송년회, 연말연시 등 대목에도 손님이 찾지 않는다며 한계 상황을 호소하는 글이 연일 올라오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취재진과 만난 자영업자들도 "코로나 때보다도 더 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내란 사태로 인한 서민·자영업자에 대한 충격은 아직 통계적으로 잡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몇 가지 간접 지표를 통해 위기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지난달 25일 발표된 한국은행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한 달 만에 12.3p가 떨어지며, 2020년 3월 코로나 (-18.3p)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소상공인 1,630명을 조사한 소상공인연합회의 긴급 실태조사에서도 응답자 88.4%가 12.3 내란 사태 이후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연말 경기 전망에 대해서도 90.1%의 응답자들이 부정적이라고 봤다. 
이러한 연말의 상권 침체는 위기의 자영업자들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11.55%에 이른다. 2013년 이후 최고치다.  

"국가·국민 이익 아닌 자기 이익 챙기는 관료·여당" 

기재부, 한국은행, 금융위, 금감원 4개 경제기관의 수장, 이른바 'F4'는 내란 사태 직후 주식, 채권, 단기자금, 외화자금시장이 정상화할 때까지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하겠다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경제 조타수'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현 권한대행)의 메시지는 시종 실제 경제 상황과 미묘하게 엇갈렸다.  
내란수괴 피의자 윤석열에 대한 첫 번째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2024.12.7.)을 하루 앞두고 최상목 장관은 기재부 보도자료와 외신 인터뷰 등을 통해 때 이른 '안정론'을 펼쳤다. 내란 사태의 경제적 영향이 제한적이고 경기 침체 우려도 지나치다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최 장관의 메시지가 무색하게 첫 번째 표결이 여당의 투표 불참으로 무산된 이후, 주식·환율의 상황은 더 악화됐다.
한덕수 총리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2024.12.28.)을 하루 앞두고 최상목 장관은 또다시 '안정론'을 폈다. 국회의 탄핵 결정이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에서 겨우 안정된 경제 시스템과 대외신인도를 흔들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한 총리 탄핵안 가결 이후, 환율 상황은 오히려 안정세를 나타냈다. 
△ 최상목 권한대행은 지난달 27일 국무위원들과 함께 한덕수 당시 권한대행의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을 재고해달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시장은 일관되게 윤석열에 대한 탄핵 결정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해달라고 요구하는데, 여당 지도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경제 위기 책임을 야당에 돌리는 황당한 주장을 폈다. 권 권한대행은 원내대책회의(2024.12.27.)에서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야당의 탄핵소추안이 고환율 상황과 경제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주동헌 한양대 경상대학 경제학부 교수는 "관료들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여당 정치인들 역시 국민과 국가가 아닌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년 반 역주행한 'Y노믹스'...정책 전환 골든타임까지 늦추나

한덕수 총리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넘겨받은 최상목 장관은 윤석열 정부 2년 반 동안 고집해 온 이른바 '긴축 재정론'을 고수하고 있다. 야당은 물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까지 조기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촉구하지만 최 장관은 결정의 시간을 늦추고 있다. 최 장관은 윤 정부의 긴축 재정 기조와 국회 예산 삭감으로 얇아진 신년 예산안을 들고, 상반기에 재정을 신속 집행해 위기 상황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시한부' 권한대행 체제가 정책 변화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이라도 윤 정부의 실패한 경제 정책을 되돌리고 재정 투입을 통해 위태로운 서민들을 구해야 할 때지만, 내란 동조 세력의 방해 속에 탄핵의 시간이 지지부진 길어지며 경제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년 우리 경제는 첩첩산중이다. 한국은행은 올해와 내년의 경제성장률을 1.8~1.9%로 내다본다. 우리 경제가 지속적인 하락세인 가운데, 1%대 경제 성장이 고착되는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도 심화됐다. 행정안전부는 지난달 24일,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면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인구 구조 변화로 잠재 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은 물론, 사회의 지속가능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오는 20일 출범하는 미국의 2기 트럼프 정부도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에 타격을 입힐 전망이다. 앞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인이 예고한 글로벌 관세정책이 시행될 경우 우리 총수출액이 최대 448억 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세계 각국 수장들은 트럼프 정부 출범에 앞서 자국의 경제 해법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지연되는 탄핵 시계 속에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 남대문 시장 풍경. 서민·자영업자 경제 상황은 윤석열 정부 임기 내내 악화되어 왔다.
무엇보다도 윤석열 정부 내내 악화되어 온 서민 경제 상황이 신년 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이다.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는 올해 하반기 침체된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살아나며 경제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고 내다보지만, 결국 윤석열 정부 내내 반복됐던 '상저하고'식의 낙관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윤석열 정부가 상저하고를 내다봤던 근거는 감세와 규제 완화 조치가 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논리였다. 부유층, 대기업에게 여유가 생기면 자연히 서민층까지 부가 확산된다는 이른바 '낙수효과' 논리가 깔려있다. 하지만 감세 조치는 연 30~60조 원에 이르는 최악의 세수 결손을 낳고, 올해에도 약 200조 원 규모의 국고채 발행이 예고되며, '건전 재정'의 구호가 무색해졌다. 재정의 혜택을 보지 못한 서민들은 각자도생 속에 빚을 늘리는 방식으로 버텼다.
그 결과 지난해 법인 파산과 개인회생 신청 건 수는 각각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가계대출도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또다른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포스트 판데믹 국면에서 전세계가 디레버리징(부채 정리)과 국가 재정 투입에 나서는 가운데, 나홀로 역주행한 윤석열 정부가 낳은 참상이라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내란 사태는 윤석열의 정치적 실패뿐만 아니라 경제 정책의 실패가 확인된 순간 터져 나왔다.

2025년 한국 경제, '좁은 회랑'을 걷다

전문가들은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내란 사태 국면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복원력'이 그 근거다. 국가 권력이 무력을 동원해 친위 쿠데타를 벌이고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시민들이 나서 질서를 되찾았다.    
2016~17년 박근혜 탄핵 정국 이후, 다시 '광장'이 만들어진 것도 기회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정치 세력이 새 시대에 맞는 제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이번에는 한국 사회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키는 리더십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응원봉 집회를 통해 드러난 시민들의 힘을 잘 활용하면 성장의 새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지난달 28일 윤석열 탄핵 결정을 촉구하는 광화문 광장 집회의 모습.
주동헌 한양대 교수는 "항상 권력은 거시적인 관점을 제시하며 서민 당사자들에게 '조금만 참아라'고 말해왔다"며 "결국 그런 권력의 주장이 현재와 같은 양극화와 경제 위기를 만들고 있으니 국가 재정이 진정 국민들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진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한두 개의 산업이 우리 경제 전체를 끌어가기에는 우리 경제의 규모가 너무 크다"면서 "이제 다 같이 함께 가는 성장으로 가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선 내수, 중소 벤처, 기후 대응, 지역 균형발전 등에 고른 성장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런 애쓰모글루 MIT 경제학 교수·사이먼 존슨 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는 공저서에서 정치 제도와 경제적 번영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역설했다. 이들은 진보로 가는 길이 한번 열고 들어가면 끝나는 문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위해 결집하는 시민들이 끊임없이 국가 권력을 견제하며 나아가는 '좁은 회랑'과 같다고 비유했다. 당장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2025년 신년의 우리 경제도 결국, 성장과 변화를 향해 가는 길고 좁은 회랑 어딘가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제작진
촬영최형석, 김기철, 신영철, 김희주
편집정애주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