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내부고발자 “방사능 오염수 누출, 조직적 은폐 있었다”

2022년 10월 20일 20시 00분

원자력발전소 안전 논란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 요소였다. 갈등의 표면에는 원자로를 지척에 둔 주민들의 목소리가 있다. 고압 송전선을 따라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전기를 싼 값에 양껏 쓰는 다수 도시인들에게는 먼 얘기지만 그들에게는 일상과 생존이 달린 일이라 갈등의 골은 깊고 목소리는 절박하다. 월성, 고리, 한울, 한빛. 지나치게 곱다 싶은 이름을 가진 원전의 안전 문제가 뉴스 소재가 될 무렵이면 어김없이 이른바 전문가들의 반박이 따라 붙고는 했다. ‘비전문가들이 과장된 공포를 조장한다.’
발전용량 기준 세계 6위의 원전 대국인 대한민국에서 이런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직도 원전에 관한 많은 정보가 소수의 관료와 전문가 집단에 의해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뉴스타파는 국내 유일의 원전 안전 규제 전문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이른바 킨스에서 35년간 근무했던 내부고발자를 수 차례 인터뷰했다. 이 제보자는 자신이 발견한 월성 원전의 심각한 안전 결함을 숨기기 위해 조직이 은폐를 시도했고, 거짓 해명을 했다고 폭로했다. 은폐 시도와 거짓 해명이 있었던 시점은 공교롭게도 월성1호기를 둘러싼 수명연장 관련 재판과 검찰 수사가 큰 사회적 논란이 되던 때였다.

원자력안전기술원 월성규제실 이희택 박사

뉴스타파에 내부 고발을 결심한 인물은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원자력검사단 월성규제실 소속 이희택 위촉규제원이다. 1987년 원자력안전기술원에 입사한 그는 토목공학 박사이다. 원자력발전소 구조물 안전성 평가 분야를 주로 담당했다. 한 때 프로젝트 매니져(Project Manager)로서 관리직을 맡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력을 현장 검사원으로 채웠다. 그는 “관리직으로 갈 수록 공무원을 주로 상대해야 하고 다른 전공분야 연구원들의 검사 결과를 단순 취합하는 역할만 하는 게 싫었다”고 했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대부분의 원전에서 한 차례 이상 구조물 안전성 검사를 해 본 경험이 있다. 현재는 월성규제실에서 월성1, 2, 3, 4호기, 신월성 1, 2 호기에 대한 검사 업무를 담당하고있다.
월성 원전의 안전 결함 문제를 내부 고발한 원자력안전기술원 위촉규제원 이희택 박사. 

2만7천베크렐의 비밀

 이희택 박사가 월성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와 관련된 이상 징후를 처음 발견한 것은 2018년 6월 무렵이었다. 
한수원이 6개월마다 한 번씩 점검 결과를 보내 오는데 (방사능 수치가) 보고서에 기술이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보고서를 읽다 보니까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이 있어서, ‘이게 뭐냐 거짓말 하는 것 같다’고 생각을 했어요.아주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을 해 봐도 ‘오염된 계통수가 새어 나오지 않으면 영구 지하수 처리시설 쪽의 물에 삼중수소가 높은 현상들이 나타날 수가 없다’고 확신을 한 거죠

이희택 박사 /원자력안전기술원
이희택 박사가 지적한 대목은 발전소 구조상 방사능 오염수가 흐를 수 없는 곳에서 방사성 핵종인 삼중수소가 다량 검출됐다는 사실이다.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구성된 보통 수소와 달리 원자핵에 중성자가 두 개 더 붙어 있는 삼중수소는 자연상태에도 존재하지만 월성원전 같은 중수로에서 주로 발생하는 방사성 동위원소이다. 월성 원전에서 각종 방사능 핵종을 비롯에 대량의 삼중수소가 있는 곳이 바로 SFB(Spent Fuel Bay), 즉 고준위방사성 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냉각수에 넣어 보관하는 사용후핵연료저장조이다. 방사능 오염수인 냉각수가 밖으로 새는 걸 막기 위해 콘크리트 재질인 저장조 벽 안 쪽에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에폭시 막이 둘러져 방수막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저장조 벽 라애와 그 주변에는 혹시라도 벽 밖으로 새어나온 오염수를 다시 막시 위해 PVC 재질의 차수막이 설치돼 있다. 차수막 아래에는 발전소 주변에서 들어오는 지하수가 건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처리하기 위한 집수도가 설치돼 있다. 설계상 차수막 밖으로는 방사능 오염수가 절대로 새어 나올 수 없는 구조이다.
월성 원전의 사용후핵연료저장조(SFB)와 차수막 개념도
그러나 2018년 2월 한수원이 원자력안전기술원에 보고한 월성3호기 주변 시설의 삼중 수소 농도 수치에 따르면 방사능 오염수가 유입되선 안되는 지하수 집수정에서 리터당 최대 27,000베크렐의 삼중수소가 검출된 것으로 나온다. 자연상태인 빗물의 삼중수소 농도와 비교했을 때 150대 이상 높은 것으로, 이희택 박사가 방사능 오염수 방어막이 무너졌다고 확신한 대목이다. 이희택 박사는 “원자력 발전소 현장에 가서 검사를 하다 문제점이 나오면 늘 그래왔던 대로 그 내용을 지적사항 초안에 쭉 기술을 하고, 내부 이메일로 다 같이 검토하기 위해 공유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이희택 박사가 작성한 초안을 보면 △지하수 집수정에서 나오지 말아야 할 삼중수소가 나온 만큼 출처를 밝히고 △오염수가 자연환경으로 새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사용후핵연료 구조물의 방수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한수원이 확인한 후 보고해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한수원이 보고한 방사능 수치를 토대로 작성된 지적사항 초안이었지만 이희택 박사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발행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지적사항 초안을 공유하니까 바로 상부로 보고가 되기 시작한 거죠. 이 지적사항 발행 여부를 두고 전문분과위원회를 열어서 결정하자고 했어요. 위원회에 몇 사람을 불러다 놓고 결정하겠다고 부원장이 말했습니다.  결론은 지적사항을 내지 말자는 거였습니다. 결국 지적사항은 내지 못햇습니다.

이희택 박사 /원자력안전기술원
뉴스타파가 국회를 통해 2018년 8월 당시 전문분과위원회 회의 내용을 확인한 결과 위원회는 고농도 삼중수소 검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발전소 시설에서 냉각수가 누설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저장조 냉각수 누설이 의심된다고 한 이희택 박사의 주장을 기각한 것이지만 따로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았다.
2018년 8월 원자력안전기술원이 개최한 전문분과위원회의 회의록. 출처 : 김용민 의원실

6년만에 드러난 진실, 투쟁과 은폐

지적사항 발행이 무산된 2018년 8월, 월성 원전에는 또 다른 대형 이슈가 발생했다. 2012년 한수원이 월성 1호기에 격납건물여과배기설비(CFVS·Containment Filtered Venting System)를 설치했는데 이 과정에서 방사능 오염수 누출 방지를 위한 차수막이 파손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안전 시설물을 추가하다 기존의 안전 시설물을 파손하고도 6년 동안이나 파악하지 못했던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건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원자로의 핵연료가 녹아내리면서 다량의 방사능 가스 등이 발생해 원자로가 있는 격납건물 내부 압력이 급격히 치솟았고 결국에는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폭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격납건물 내부의 공기를 외부로 배출해 압력을 낮춰야 하는데 이때 외부로 유출돼선 안되는 방사능 가스를 걸러 주는 역할을 하는 장비가 CFVS이다. 
한수원은 2012년 CFVS를 월성 1호기에 설치했다. 그런데 이 CFVS를 지반에 고정하기 위해 땅 속에 파일을 설치했는데 이 과정에서 차수막을 뚫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한수원도, 공사를 감독한 원자력안전기술원도 차수막 파손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희택 박사는 월성 1호기 격납건물여과배기설비 시공 과정에서 차수막(붉은 타원 부분)이 파손된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는 2018년 8월, 한수원이 월성 1호기에 이어 2, 3, 4호기에도 같은 방식으로 CFVS 설비를 설치하겠다며 요청한 인허가를 이희택 박사가 검토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구조물 전문가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첫 번째 체크하는 게 있어요. 건물을 새로 짓거나 주변에 새로운 구조물을 붙일 때 기존에 있는 안전 관련 구조물이 영향을 받는지, 안 받는지 그 점을 가장 먼저 챙기게 됩니다. 이런 부분은 실제 공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알 수 있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2, 3, 4호기 CFVS 설치 당시에 한수원에 질의를 하니까 (차수막과) ‘간섭이 된다’ 이렇게 답이 와서, 이건 안된다는 답변을 했습니다.2012년에 먼저 월성 1호기 CFVS 설치 인허가를 검토했던 원자력안전기술원 담당자는 그 부분을 확인하지 않고 심사한 후에 오케이를 한 것 같습니다.

이희택 박사 /원자력안전기술원
한수원의 월성1발전소가 2018년 11월 생산한 ‘월성1호기 CFVS관련 SFB 차수막 간섭사항 현안보고’에 따르면 실제로 이희택 박사와 한수원 측의 문답이 오가던 2018년 8월부터 10월 사이에 차수막 파손 사실을 인지했다고 기록돼 있다. 
방사능 오염수 누출 문제에 이어 수년 전 조직이 놓친 심각한 안전 결함까지 발견했지만 이희택 박사에게 돌아온 것은 포상이나 칭찬이 아니라 따가운 시선과 노골적인 은폐시도였다고 했다. 특히 외부에 공개되는 월성 원전 공식 보고서에 삼중수소 수치와 과련한 내용을 기재하는 문제를 두고는 상급자들과 여러 차례 언쟁까지 벌여야 했다고 고백했다. 다음은 2020년 6월 이희택 박사가 A 본부장과 나눈 대화 녹음 내용의 일부이다.
○이희택 박사 : 우리 킨스에 있는 사람들이 뭘 해야 되는 거냐, 나는 그게 궁금해요. 뭘 해야 되는 거예요, 검사원이?
●A본부장 : 파인딩 한 게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을 하고 문제가 있다면 그문제가 없게끔 조치하는 게 검사의 목적이잖아요, 아닌가요?
○이희택 박사 : 문제가 현장에 문제가 있는지 살펴서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을 안전하게 방사선 재해로부터 보호하는 게 미션 아니에요? 공공의 안전을 도모하고. 그렇죠? 또 있죠 환경을 보존하고. 그렇죠? 중요한 미션이에요. 그런데 그런 미션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과정에서 보고서가 만들어졌고. 그런 보고서를 가지고 왜 자꾸 뭐라고 그러냐는 거예요?
두 사람 사이의 신경전이 고조되는 가운데 보고서 문제를 두고 이희택 박사가 반발하자 본부장은 삼중수소 수치문제를 언급한다. 당시 월성 3호기 부지(2발전소)에서 측정된 삼중수소 농도를 보고서에 기재할 때 월성1발전소 수치와 비교해 그 심각성을 알려야 한다는 이희택 박사와, 3호기 수치만 실어야 한다는 본부장의 의견이 맞서고 있다. 
●A본부장 : 제가 말씀 드리잖아요. 그래서 이런 수치가 나왔는데, 그러면 이게 환경이 보전이 안 되고 국민한테 위협이 되는 수치인가요?
○이희택 박사 : 그 정도의 문제가 있다는 걸 문제 제기하는 거죠. 결과를 (구조전문가인) 내가 내야 돼요? 지적사항 낼 때 결과까지도 다 포함해서 내가 지적사항 내야 돼요? (구조물) 검사원은 문제가 되는 현상을 발견하고 거기에 대해서 앞으로 뭐가 더 후속 조치가 필요한지를 얘기를 하면 되는 거예요. 문제점이 뭔지 짚어 주면 되는 거에요. 
●A본부장 : 선배님, 일단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오염수) 누설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필요한 조치를 하고 향후에도 그부분을 잘 확인 해서 관리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게 이 선배님이 좀 사업자들한테 하고 싶은 조치 아닌가요?
○이희택 박사 : 아니요.나는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국민들이 이런 내용을 오픈해서 국민들이 알게끔 해야 되는 게 우리의 미션이라고 생각을 해요.
이희택 박사는 A본부장 외에 단장과 부원장과의 면담에서도 월성원전 안전 결함과 관련된 보고서 수정을 놓고 비슷한 대화가 오갔다고 말했다. 결국 이희택 박사의 뜻대로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월성원전 정기보고서에는 이희택 박사가 발견한 각종 안전결함이 실리게 된다. 이희택 박사는 “엄청나게 싸워서 만든 보고서”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보고서 내용을 고친다면 내 이름을 넣지 않겠다고 했다”며 “내가 담당한 분야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사용후연료저장조 또는 계통수(지하 매설 배관)의 누설에 의한 자연환경으로의 누출을 확인시켜주고 있으며…(2020.3. 월성1호기 제26차 정기검사보고서)
월성2발전소(3호기)부지 지하수 삼중수소 농도는 2010년 12월 당시의 월성1발전소의 백그라운드 농도보다 100~10,000배 정도까지 높아진 수준으로 확인된다. (2020.6. 월성3호기 제17차정기검사보고서)
오염수가 외부환경으로 누출되어 비방사성 지하수 처리계통인 터빈 갤러리를 통해 바다로 유출되는 것을 발견하였다.(2020.11. 월성 4호기 제17차 정기검사보고서)

이희택 박사가 월성원전 정기검사보고서에 기록한 주요 안전 결함 내용
보고서 내용은 2021년 2월 한겨레 보도를 통해 원자력안전기술원 밖으로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자신들의 공식 보고서를 인용한 언론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 것이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은 보도 당일 “사용후핵연료저장로로부터의 직접적인 누설이 아니며 오염수의 외부 유출을 확인했다는 게 아니라 과거 유출됐거나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의 설명자료를 배포했다. 보도 내용은 물론 이희택 박사가 보고서에 명확히 작성한 내용 역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이 공식적으로 발간한 정기검사보고서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입장을 내놓게 된 배경을 묻자 이희택 박사는 오히려 반문했다.
만약 내가 허위로 보고서를 썼으면 내가 어떻게 됐겠어요. 내가 지금 원자력안전기술원에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나는 지금 원자력안전기술원에 다니고 있잖아요. 그게 뭘 의미할까요?

이희택 박사 /원자력안전기술원

지연된 정의, 사라진 책임자

이희택 박사는 원자력안전기술원이 덮으려 했던 문제는 비단 방사능 오염수 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이희택 박사는 삼중수소 누출 문제를 확인하기 이전인 2017년 3월 월성 3, 4호기 최종안전분석보고서 등을 근거로 원자로건물 내부 다수 지점이 내진 설계 기준을 어긴 사실을 확인하고 지적사항 발행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고 밝혔다. 이희택 박사는 “마찬가지로 지적사항을 만들어서 보냈지만 당시 성게용 원장이 안된다고 했다”며 “성 원장이 간부들이 다 있는 곳에서 나를 불러 앉혀 놓고는 내가 검사를 잘못했다는 식으로 지적한 후 결국 무산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희택 박사는 월성 원전의 안전 결함 문제를 공식화 하려고 할때마다 번번히 무산되거나 조직 내부에서 압력을 받아야 했던 이유를 두고 “당시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같은 문제가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오픈되면 골치가 아팠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희택 박사가 말한 월성 1호기 수명연장 문제는 시민단체가 제기한 월성1호기 수명연장 무효 소송을 의미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2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1호기에 대한 수명연장을 허가하자 반대 소송이 제기됐고, 2017년 2월 법원은 “안전 관련 기술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며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수명연장 허가를 내 준 원안위와 수명연장에 필요한 기술적 근거를 제공한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최대 위기 상황에 내몰리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희택 박사가 월성 원전에 여러가지 안전 결함을 발견하고 내부에 문제제기를 한 시점도 이 무렵이다. 앞서 이희택 박사가 지적사항 발행을 저지했다고 밝힌 성게용 원장은 2015년 당시 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자력검사단장을 맡아 월성1호기 수명연장에 결정적 역할을 한 바 있다. 성 원장뿐만 아니라 다수의 원자력안전기술원 동료들이 월성1호기 수명연장에 관여한 점도 이희택 박사의 문제제기를 가로막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희택 박사는 “선배들에게 ‘지금까지 수차례 검사를 했지만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인정이 된 건데 네가 뭘 안다고, 뭐가 잘 못됐다고 그러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소송 1심에서 원안위가 패소한 직후 이희택 박사는 월성 원전 안전 결함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적 사항 발행이 무산됐고 보고서 내용을 두고도 상부로부터 압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희택 박사의 목소리가 조직 내부에서 차단 당하는 동안 월성 1호기 소송은 사실상 없던 일이 됐다. 월성 1호기를 영구정지하겠다는 한수원의 계획을 2019년 2월 원안위가 승인해 줬기 때문이다. 다만 한수원의 가동 중단 명분은 노후 원전의 안전 문제보다는 경제적 이익이 떨어진다는 데 있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원안위나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존재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결국 이미 가동이 멈춘 원전을 놓고 수명연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질 실익이 없어지자 법원은 최종 판결을 내리지 않고 소송을 중단하게 된다. 수명연장을 결정한 원안위와 이를 지원한 원자력안전기술원은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희택 박사로부터 제기된 월성원전 안전 결함 문제가 공론화된다 해도 소송이 진행 중일 때보다 부담이 덜할 수 밖에 없었다. 
월성 1호기 영구정지 논란이 달아 오르는 동안 원자력안전기술원 내부 논쟁을 거쳐 이희택 박사의 보고서가 하나 둘 씩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방사능 오염수 문제는 주목받지 못했다. 오히려 ‘경제성 조작’ 논란으로 감사원 감사에 이어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월성 원전은 곧이어 벌어진 대선에서 최대의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기에 이른다.

‘멸치 1g, 바나나 6개’가 가린 본질

2021년 초 이희택 박사가 제기하기 시작했던 월성 원전의 안전 결함 문제가 시민단체와 일부 언론을 통해 공론화 되기 시작하자 친원전 전문가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그 중 가장 주목받은 메시지 중 하나가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가 자신의 SNS에 ‘월성 원전 주변에 사는 주민의 삼중수소 피폭량은 1년에 바나나 6개나 멸치 1g을 먹는 수준’이라고 쓴 내용이다. 바나나와 멸치에 함유된 칼륨에서도 삼중수소와 같은 종류의 방사선인 베타선이 방출되는데 이를  민간환경감시기구의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월성 원전 주변 주민들의 체내 삼중수소 양과 단순 비교한 것이다. 월성 원전 주변 삼중수소는 미량이기 때문에 인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표현이었지만, 삼중수소는 바나나, 멸치에 든 칼륨과는 엄연히 다른 방사성 동위원소이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삼중수소에 대해 “섭취하면 체내에서 장기간 방사선을 발생시켜 돌연변이나 암을 유발할 수 있어 각국은 섭취허용한도를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하고있다. 
그러나 이희택 박사는 ‘멸치·바나나’ 같은 논쟁이 문제의 본질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앞서 A 본부장과 벌인 언쟁에서도 이희택 박사는 같은 문제를 지적했었다. A본부장의 “그래서 이런 수치가 나왔는데, 그러면 이게 환경이 보전이 안 되고 국민한테 위협이 되는 수치인가요?”라는 발언에는 방사능 오염수의 수치가 낮으면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희택 박사는 “일각에서는 이런 문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원자력안전기술원이나 원안위에는 가장 중요한 임무”라며 “이런 사실을 부정하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기관들”이라고 강조했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설계한 원자력 발전소에서, 검출되지 않아야 할 지점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검출됐다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이며, 전면적인 조사와 대응책 마련에 나서는 게 원자력안전기술원과 원안위 본연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말년에 우스운 꼴 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희택 박사는 지난해부터 원안위 조사단 홈페이지 게시판에 원안위와 원자력안전기술원을 ‘부패한 규제세력’이라며 실명으로 강도 높은 비판 글을 올리고 있다. 원자력 업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한수원을 상대로 원전의 안전 결함을 제기하는 데에 멈추지 않고 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내부고발’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부담스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고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냐면, 제가 36년 차로 여기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건 내가 굉장히 열심히 일해서 쌓아온 내 명예거든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내 명예인데 여기 저기에서 부정을 한단 말이에요. 니가 한 게 잘못됐다, 아니다, 거짓말이다…이런 식으로 지금 일이 진행되니까. 이러다가는 말년에 참 우스운 꼴이 될 것 같아서,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이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이희택 박사 /원자력안전기술원
이희택 박사는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월성 원전의 안전 결함과 관련된 각종 은폐 의혹을 밝힐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야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제작진
촬영김기철 신영철 오준식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