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의 판단은 냉정했다. 검정 신청 자격 조작에, 우편향 논란까지 빚은 한국학력평가원의 검정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단 두 곳에 불과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조국혁신당 강경숙 의원실이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서 받은 2025학년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채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내년 신학기 한국사 교과서 1·2 채택을 완료한 고교 2121곳 가운데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전국에서 모두 2곳으로 나타났다. 경북 경산의 사립고교인 문명고와 경기 양주에 소재한 대안학교 1곳이다.
문명고는 내년 한국사 과목을 편성한 일반계 고교 중에 유일하게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를 채택했다. 이 학교는 해당 교과서의 대표저자로 집필에 참여한 당사자가 교사로 재직 중이다.
출판실적 조작, 저작자 요건 위반 사실이 드러난 한국학력평가원의 한국사 1·2 교과서.
문명고는 과거에도 역사 교과서 채택 문제로 논란을 빚었다. 2017년 박근혜 정부 시절, 위법적으로 강행했던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하고 연구학교를 신청한 유일한 학교가 문명고였다. 당시 학교 재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은 연구학교 지정을 철회하라며 공동 행동에 나섰지만, 학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학교재단 측은 오히려 연구학교 신청 철회를 요구했던 교사 5명을 징계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문명고는 '우익 성향 역사 교육의 보루'를 자처했다.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을 둘러싼 내홍을 치른 뒤, 홍택정 문명고 이사장은 우익 계열 인사들과 함께 ‘문명고 역사지키기 77일 백서’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국정 역사교과서 철회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두고 ‘민주주의가 실종된 현장’, ‘광란의 현장’이라고 표현했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지키고 검정 교과서를 폐기하는 게 답'이라는 주장을 실기도 했다.
문명고가 이번에 한국학력평가원의 검정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예전의 학내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역 교원 및 학부모 단체들이 해당 교과서 채택 철회를 촉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전교조 경북지부와 참교육학부모회 경북지부 등으로 구성된 경북교육연대는 지난 2일 성명을 내고 “문명고는 친일 독재 미화 교육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며 “한국사 교과서를 다시 선정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또 “올바른 역사 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민사회·노동단체와 연대해 양식 있는 문명고 구성원과 함께 문명고의 친일 독재 미화, 불량 교과서 사용 저지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8월 말부터 한국학력평가원이 이른바 ‘표지 갈이 문제집’을 제작하는 수법으로 교과서 검정 신청에 필수적인 출판 실적을 조작한 사실을 집중 보도해왔다. 교육부 현직 공무원인 교육부장관 청년보좌역 김건호 씨가 해당 교과서 필진 참여하고 이를 숨긴 사실도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교과서 검정의 주체인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 같은 논란에도 해당 출판사의 한국사 교과서 검정 신청은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그 결과, 잇따른 문제 제기에도 한국학력평가원의 교과서는 법정 제재 처분 없이 검정 합격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