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훈장과 권력 1부 '‘민주’ 훈장이 없는 나라'
2016년 07월 28일 20시 14분
지난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두환 정권이 노태우 당시 민정당 총재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외교라인을 총동원했던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30년의 비밀유지 기간이 만료된 외교부의 1987년도 외교문서를 통해서다.
노 총재는 대선을 3개월 앞둔 1987년 9월 13일부터 1주일 동안 미국과 일본을 연이어 방문했다. 자신의 외교력을 홍보하고 교민사회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였다. 여당 대표 신분이었지만 순방단 규모는 대통령급으로 꾸려졌다. 기자단 규모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훗날 KBS 사장이 된 김인규 기자를 포함해 KBS 3명, MBC 3명 등 20명이 넘는 유력 언론사 기자들이 동행했다.
여기에 외무부가 대대적인 지원에 나섰다. 노 총재의 미국 방문 전 외무부는 주미대사관에 노 총재의 일정을 비롯해 수행원 명단, 방미 준비사항 등을 전달했다. 스위트룸 등 노 총재의 숙소 배정부터 차량 임대, 운전기사에 대한 보안교육까지 꼼꼼히 지시했다. 또 공항 도착 시 일부 교민들의 반발 대비책을 수립하고, 연회장에 한국에 우호적인 미국 기자를 초청할 것을 요구한다.
지시를 받은 주미대사관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노 총재 공항 도착 시 과격 시위 가능성에 대비하고, 100여 명을 마중 나가도록 해 환영 무드(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좋겠음’, ‘친한(親韓) 미국 언론인 10명에게 연사 초청 티켓 배분 추진’ 등 정부 외교라인이 여당 대표의 방미 현장 분위기를 제고시키는 데 외교라인이 대거 동원된 흔적이 문서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과정에서 주미대사는 미국 정부에 노태우 총재에 대한 경호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굴욕도 겪었다. 주미대사는 미 국무부에 “노 총재는 한국 집권여당의 공식 대통령 후보이며 미국 내 불순세력의 공격을 당할 수 있다”며 신변 보호를 요청했다. 하지만 국무부는 ‘노 총재가 정부 공식 대표가 아니고, 이번 방미도 공식방문 성격이 아니다”라며 거절했다. 주미 대사는 두 차례나 더 같은 요청을 했지만 모두 거부 당했다.
노태우 총재는 방미 일정을 마친 뒤 곧바로 일본으로 향했다. 외무부의 개입은 방일 과정에서도 계속됐다. 노 총재 방일 전 외무부가 주일대사관에 보낸 문서 속에 이같은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민정당 측이 (일본 기자클럽) 연설문에 포함돼야 할 사항과 예상 질의응답 파악을 희망한다’라든가, ‘노 총재 방일 시 면담 주선 및 행정지원 등 필요한 사항을 측면 지원하기 바란다’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주일대사는 일본 언론을 분석해 외무부에 보고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인 클럽(JAPAN PRESS CLUB)은 VIP를 괴롭히거나 당혹하게 하는 질문은 삼가는 지극히 동양적인 습성을 가지고 있음’, ‘언론 접촉이 없을 경우 실망과 반발로 인한 역작용 가능성이 큼’, ‘회견이 반드시 실현되도록 민정당 측에 권고 바람’ 등의 내용이다.
주일대사는 또 일본 기자들의 예상 질문까지 파악해 보고하기도 했다. ‘두 김 씨(김영삼, 김대중)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단일화되는 경우와 모두 출마할 때 어느 쪽이 더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김대중이 당선되면 군 개입 등 소문이 있는데 군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는가?’ 등을 예상 질문으로 정리했다.
외무부는 노 총재의 미일 순방이 끝난 뒤에도 민정당의 요구사항을 미국과 일본 주재 대사관에 전달하고 보고를 받았다. ‘민정당이 노 총재 연설과 질의응답 기록을 제공해 달라고 했다’, ‘노 총재 방일 기간 공식 발언을 가능한 대로 정리해 보고해 달라’ 등의 지시였다. 여당 대표의 해외순방 일정 준비부터 마무리 이후까지의 전 과정에 정부 부처인 외무부의 외교라인이 사실상 총동원됐던 것이다.
심지어 청와대와 안기부 등 국가기관에만 전달해야 할 노 총재의 순방 관련 외교부 기밀문서들이 집권 민정당과 실시간으로 공유됐던 흔적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순방 관련 기밀 문서들의 문서 공유 기관에 느닷없이 민정당을 포함시켰던 것이다. 행정부와 집권당 간 최소한의 경계선조차 무시한 채 전두환 정부가 노 총재에 대한 노골적인 지원에 나섰던 방증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경찰의 물고문에 희생된 서울대생 박종철과 직격최루탄에 유명을 달리한 연세대생 이한열 등 수많은 이들의 죽음과 희생 속에 일궈낸 결실이었다.
그러나 당시 전두환 정권은 김영삼과 김대중의 단일화를 막고 노태우에 대한 정권 차원의 대대적 지원을 통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서있었고, 실제로 13대 대선 결과는 그들의 계획대로 마무리됐다.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와 조작을 옥중에서 취재해 바깥에 알렸던 이부영 전 동아일보 해직기자는, 30년 전 작성된 이 외교문서들을 살펴본 뒤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강력한 경고를 남겼다.
다시는 저런 시대가 오지 않도록 이미 촛불시민들이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알겠어요. 노태우나 전두환 시대가 다시 오도록 꿈꾸는 사람들이 없으란 법이 없다니까요. 우리나라를 30~40년 전으로 되돌려 놓고 싶은 사람들, 꿈 깨라고 하고 싶어요. 다시 그런 시대는 오지 않습니다.
영상취재 : 김남범
영상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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