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브리지, 코로나19 성금으로 불법마스크 지자체 공급

2021년 05월 13일 14시 00분

국내 최대 모금단체 중 하나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가 지난 해 코로나19 감염병이 폭발적으로 확산하던 시기, 가짜 필터를 사용한 불법 마스크를 구매해 대구·경북지역에 공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희망브리지가 불법 마스크를 구매하는 데 사용한 3억 5000만 원 상당의 자금은 서울시가 세금으로 조성해 기부한 돈이었다.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사단법인 전국재해구호협회 희망브리지. 
지난 1월 14일, 서울중앙지법은 불법 마스크를 유통, 판매한 브로커 8명과 판매업체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식약처의 허가를 받지 않아 유통할 수 없는 미완성 마스크, 일명 ‘벌크 마스크’를 제조업체로부터 사들인 뒤, 정상 제품의 포장지를 도용해 판매하는 일명 ‘포장갈이’ 수법을 사용한 혐의였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이들이 포장갈이로 불법 유통한 마스크의 수량은 20만 장. 그 중 16만 6000여 장이 희망브리지를 통해 유통됐다. 희망브리지는 지난 해 초 3억 5000만 원을 들여 이 불법 마스크를 사들인 뒤,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큰 어려움을 겪던 대구·경북 지역에 전달했다.
피고인 조OO이 전국재해구호협회에 판매하는 방법으로 위 마스크가 경북도청, 대구시청 등에 구호물품으로 배송되도록 함으로써 위와 같이 위법하게 제조된 마스크를 판매하였다. 

서울중앙지법 2020고단2361

허술했던 '포장갈이'

취재진은 희망브리지가 구매해 대구·경북 지역에 지원했다는 불법 마스크의 포장지 사진을 확보해 확인했다. 비닐 재질로 만들어진 마스크 포장지 하단에는 이 마스크를 만든 회사의 이름이 인쇄돼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디자인을 도용했다는 정상적인 마스크 제품의 포장 상태는 어떨까. 해당 마스크 이름을 인터넷 검색창에 입력하자, 전혀 다른 회사의 이름이 포장지 하단에 찍힌 제품이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당초 이 회사가 판매했던 마스크는 종이 상자로 포장돼 30개를 한 묶음으로 판매됐었다. 언뜻 봐도 정상 제품과는 한눈에 차이가 나는 가짜 포장지로 ‘포장갈이’를 했다가 당국에 적발된 것이다
디자인을 도용해 만든 불법마스크(좌)와 정상제품(우)의 겉포장.  정상제품의 경우 종이상자에 30개 묶음으로 판매했지만 희망브리지가 구매한 불법 마스크는 비닐재질로 1장씩 낱개 포장돼 있었다. 하단에 인쇄된 업체 이름도 달랐다. 

불법 포장에 가짜 필터를 단 코로나19 마스크

희망브리지가 사들인 마스크의 문제는 단순히 불법 포장에 그치지 않는다. 뉴스타파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에 해당 마스크를 검색하자, 식약처가 지난 해 4월 이 제품을 만든 제조사에 마스크 회수 조치처분을 내린 기록이 나왔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 검색 결과
"무허가 필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해당 제조사가 유통시킨 마스크를 모두 회수하라"는 명령이었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희망브리지가 사들인 불법마스크에도 이 무허가 필터가 사용됐다. 마스크 기능 유지에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필터를 식약처 허가도 받지 않은 채 사용한 것이다. 다음은 식약처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
⚫기자 : 해당 제조사가 사용했다는 다른 필터라는 게 어떤 건지 확인이 됐나요?
⚪식약처 관계자 : 일명 '나노 필터'입니다. (마스크) 허가증 상에 나와 있는 필터와 다른 필터를 사용했기 때문에 일단 처분 대상이 되는 겁니다.  
식약처에 따르면, 회수조치를 받은 마스크가  생산된 시점은 지난 해 2월 말에 집중돼 있다. 그리고 희망브리지가 이 제조사가 만든 마스크를 인수해 대구·경북 지역에 보낸 시기는 3월 2~4일. 구매 계약 및 마스크 운반 시간 등을 고려할 때 시점 역시 일치했다.
그러나 식약처가 내린 마스크 회수 조치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식약처가 추산하는 당시 회수 조치 대상 마스크는 총 50만 장 가량. 그러나 이미 시중에 모두 유통, 소비가 되고 난 이후였다. 희망브리지는 구입했던 불법 마스크 16만 6600장 가운데 7만 장은 대구 시청을 통해,  9만 6600장은 경북도청으로 보냈고, 다시 기초지방자치단체와 관내 보건소, 의료기관 등으로 전달돼 모두 소비됐다. 가짜 필터를 단 불법 마스크가 고스란히 시민들과 의료기관 종사자, 환자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불법 마스크 받은 줄도 모르는 지자체

희망브리지가 구입해 공급한 불법 마스크의 문제는 더 있다. 대구시청과 경북도청이 불법, 불량 마스크를 공급받은 사실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뉴스타파가 정보공개를 청구해 확인한 결과, 대구시청과 경북도청은 마스크 실물 사진은 물론 제조사나 제품명 등 희망브리지로부터 지급받은 마스크 관련 정보를 남겨두지 않고 있었다. 지자체 담당자들은 급증하는 코로나 19 확진자로 인해 “경황이 없었다”고 답했다.
⚫기자 :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고 난 후 희망브리지(전국재해구호협회)에서 받았던 마스크가 어떤 마스크인지는 알 수 없다는 말씀인가요?
⚪대구시청 관계자 : 네 저희는 지금 그 자료는 아예 없습니다. 아마도 급하니까 (마스크를) 바로 받아서 구청에서 차를 가지고 와 당일 다시 실어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원체 (마스크) 물량이 많기 때문에 이걸 받아서 구청에서 싣고 가는 것도 정신이 없었거든요. 

세금으로 산 불법 마스크

확인결과 희망브리지가 이 불법 마스크를 구입하는 데 사용한 자금은 서울시가 낸 기부금이었다. 결국 불법 마스크 구매에 서울시민이 낸 세금이 낭비된 것. 서울시는 "법정단체이자 국내 주요 모금기관인 희망브리지를 믿고 기부금을 기탁한 만큼, 불법 마스크 구입 유통의 책임은 희망브리지에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관계자 : 원래 저희가 돈을 주면 재해구호협회에서 업체를 선정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업체에 대한 사업자 등록증 검토를 비롯해 모든 계약 절차를 전국재해구호협회에서 다 하는 것이죠. (마스크) 품질이나 이런 부분은 원래 재해구호협회에서 담당하는 부분인 거죠. 
반면 희망브리지 측은 서울시가 소개해 준 업체를 선택했을 뿐이고, 자신들 역시 불법 브로커와 판매업자에게 속았던 피해자라고 해명했다. 불법 마스크 판매업체와 서울시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 희망브리지 관계자 : 서울시에서 그 쪽 업체를 소개했습니다. '그 업체가 이런 상황인데 빨리 써 봐라'고 한 겁니다. 
⚫ 기자 : 구매할 때 마스크 제품에 대한 검수는 안 하신 건가요?
⚪ 희망브리지 관계자 : (해당 업체가) 저희한테 납품할 때는 벌크로 온 게 아니라 하나하나 개별 포장이 완벽하게 돼서 왔습니다. 저희 입장에서는 (판매업체로부터) 피해를 당한 겁니다. 

불법 마스크 유통업자들, 마스크 가격 6배 이상 뻥튀겨 폭리

법원 판결에 따르면, 불법마스크를 유통한 브로커들이 제조사로부터 처음 납품 받았던 마스크 가격은 장 당 330원. 하지만 희망브리지가 서울시 자금으로 사들인 가격은 6배나 뻥튀긴 장 당 2050원이었다. 희망브리지가 구입한 불법 마스크 수량이 16만 6600장이었던 것을 계산하면, 5500만원에 사서 3억 4100만 원에 팔아 2억 8600만 원의 차익을 남긴 것이다. 
문제의 마스크를 희망브리지에 팔아 폭리를 챙긴 일당들은 1심에서 많게는 징역 6월, 적게는 징역 4월을 선고 받았지만 모두 집행유예에 그쳤다. 게다가 불법 마스크를 희망브리지에 판매한 업체는 여전히 성업중이다. 최소한의 검증도 없이 마스크를 공급한 서울시와 희망브리지, 그리고 지자체는 여전히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작진
촬영오준식 신영철
편집김은
CG정동우
웹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