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순방길 조심하라”...명태균 '꿈'으로 뒤집힌 순방 일정

2025년 01월 14일 22시 30분

2025년 01월 14일 22시 30분

뉴스타파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명태균 씨와 나눈 280건의 SNS 대화를 입수해 보도하고 있다. 이들의 대화에 따르면, 윤 대통령 부부는 명태균 여론조사를 수시로 받아봤을 뿐만 아니라, 명 씨가 추천한 캠프 본부장급 인사를 임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 당선 후 '비선 실세' 명 씨가 김건희 여사를 통해 국정에 개입한 정황이 추가로 확인됐다.
2022년 11월 윤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직전, 명 씨는 김건희 여사에게 텔레그램으로 자신이 꾼 ‘꿈’을 언급했다. 이후 김 여사는 캄보디아 일정 대부분을 취소하고 수도 프놈펜에만 머물렀다. 명 씨의 조언에 따라, 현지 일정이 대폭 뒤집힌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더해 명 씨는 한국이 남방의 국가들과 어떠한 형태의 무역 교류를 해야 하는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등 수시로 국정 조언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명태균의 '꿈' 얘기 후, 대폭 바뀐 캄보디아 현지 일정

2022년 11월 7일 오전 7시 35분, 명 씨는 김 여사에게 “여사님 대통령님께서 해외 순방이 혹시 남쪽으로 가실 일이 있으면 각별히 행동을 조심하셔야 합니다”라며 ‘남쪽’을 언급하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명태균과 김건희는 대선 때만 해도 카카오톡으로만 소통했지만, 윤 대통령 취임 후인 2022년 10월부터는 텔레그램만 이용한 것으로 확인된다.  
4박 6일 간의 동남아 순방 일정을 앞둔 김 여사는 메시지가 온 지 1분 만에 “어떤 이유죠? 캄보디아 발리 가는데요. 무슨 일 있나요?”라며 이유를 물었다.
2022년 11월 7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동남아 순방을 나흘 앞두고 있던 시점에 텔레그램 대화. 명태균 씨는 김건희 여사에게 자신의 '꿈'얘기를 했다.
이에 명 씨는 “여사님 너무 크게 염려하지 마세요”라며 “마산 앞바다 정어리가 집단폐사를 하고, 이태원 압사 사고, 무궁화호 탈선 사고가 연이어 터지니 제가 대통령님과 여사님이 너무 걱정되어 그런 꿈을 꾼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였다. 
2022년 11월 11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아세안 정상회의와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4박 6일간의 동남아 순방 일정을 떠났다. 당시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동남아 순방에 동행해 각 나라 정상들의 부인과 앙코르와트 왕궁을 돌아보는 등의 일정을 소화할 것'이라며 이는 '정상회담 외곽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외교'라고 홍보했다.
언론에 예고된 김 여사의 현지 일정은 11일 캄보디아 프놈펜 의료원 방문, 12일 앙코르와트 방문, 13일에는 시청각장애인 학교 방문이었다. 이 중 12~13일 일정은 ‘각국 정상들의 배우자 프로그램’으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비행기로 40분 거리인 앙코르와트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 여사는 ‘배우자 프로그램’ 참석을 갑자기 취소하고, 수도 프놈펜에서 계속 머무르는 것으로 일정을 대폭 수정했다. 11일 프놈펜의 한 의료원을 방문한 김 여사는 심장병 수술을 받은 아동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건강이 안 좋아 못 온 아동의 집을 다음 날(12일) 방문하는 것으로 앙코르와트 일정을 대체했다. 
2022년 11월 12일, 김 여사는 앙코르와트에서 예정된 '각국 정상 부인 프로그램' 참석을 취소하고 프놈펜에 머물렀다.
김 여사는 12일에도 프놈펜에 머물며, 심장병 아동의 집과 한인이 운영하는 떡볶이 집과 업사이클링 가방을 제작하는 편집샵을 방문했다. 13일에는 이틀 전에 갔던 의료원을 다시 방문하며 “심장질환 소년의 실질 지원을 위해 의료원 측 논의가 우선이었다”고 일정을 바꾼 이유를 뒤늦게 설명했다.
'또 하나의 외교'라던 김 여사의 일정은 모두 비공개 단독 행사였다. 당시 대통령실이 촬영해 언론에 공개한 사진은 '과도한 설정' 논란에 휩싸였다.   
14일 오후 4시께, 명 씨는 순방 중인 김 여사에게 다시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명 씨는 김 여사에게 “이런 놈들 때문에 그런 꿈을 꾼 것 같다”며 한 신부가 윤 대통령 전용기가 추락하길 바란다고 말해서 논란이라는 내용의 기사 링크를 공유했다. 김 여사는 따봉 손짓을 하는 선인장 이모티콘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들의 대화를 종합하면 당시 명 씨는 비행기가 추락하는 꿈을 꿨고, 이를 들은 김 여사는 앙코르와트로 이동하는 항공 일정을 전부 취소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1월 7일 자 김건희-명태균 텔레그램 대화 내용 캡처. 검찰 수사보고서에 포함된 내용이다. 

당선 전에는 '킹메이커', 당선 후에는 '국정 조언자'  

명 씨의 주술적인 해몽을 김 여사가 받아들이면서, 현지 일정이 수정됐다는 의혹은 이미 제기된 바 있다. 명태균 씨는 자신이 김건희 여사에게 꿈 얘기를 해주면서 앙코르와트 방문 취소를 제안했고 김 여사가 이를 수용했다고 이준석 대표에게 얘기했다고 한다. 또 명 씨와 함께 일했던 강혜경 씨도 같은 내용을 명 씨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명 씨는 동남아 순방을 앞둔 김 여사에게 자신의 꿈 얘기와 함께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의 남하 정책을 두려워한다. 대한민국 무기를 수출하고 천연자원으로 대물 변제 계약을 체결하라”고도 조언했다. 또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 조직을 구조조정하고 인사를 재조정하라”고도 제안하는 등 적극적으로 국정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태원 국정조사계획안 본회의 의결 당일, 김건희 여사가 명 씨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며 의견을 물은 사실도 있다. 
대선 때 명태균은 사실상 '킹메이커' 같은 모습이었다. 민간인 명 씨가 윤석열 캠프 주요 인사를 추천하고, 검증했다. 윤석열 캠프의 정책에도 관여한 정황이 있으며, 윤 대통령은 명 씨에게 연합뉴스 인터뷰 답변을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명 씨가 가서 만나거나 연락하라고 말하면, 윤 대통령 부부는 명 씨의 지시를 실행한 뒤, 실행 완료를 보고하기도 했다.   
당선 후에도 이들의 인연은 계속됐는데, 급기야 민간인 명 씨가 '외교적 조언'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SNS 대화는 윤 대통령 부부가 자신들을 도와준 대가로 명 씨에게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을 줬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간접 증거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상세한 수사보고서까지 작성했지만, 윤 대통령 부부를 조사하지 않았다.
권력에 굴복한 선택적인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제작진
취재봉지욱 이명선 박종화
촬영정형민 최형석
편집정애주
그래픽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리서치최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