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구속영장 발부와 관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영장이 발부됐다는 건 당연히 범죄 소명이 됐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장동 사건의 핵심인 천화동인 1호의 차명 소유자가 '이재명 측'이라는 범죄 혐의는 한 장관의 말대로 충분히 소명된 것일까?
검찰은 최근 천화동인 1호의 지분 절반(24.5%)을 가진 실소유자에 대한 판단을 바꿨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목이 몰렸던 이른바 ‘대장동 그분’의 실체 규명이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천화동인 1호의 차명 소유자는 유동규 한 명이라고 특정해 재판에 넘겼다. 당시 근거는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제출한 녹취록이었다.
그런데 지난 7월 대장동 수사팀이 대폭 바뀌면서 차명 소유자에 대한 판단도 바뀌었다. 유동규 혼자가 아닌 ‘정진상·김용·유동규’ 3명의 공동 지분이란 것이다. 최근 석방된 유동규와 남욱이 진술을 바꾼 게 근거가 됐다. 하지만, 김만배는 “천화동인 1호는 내 것”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정영학도 3명 공동 지분을 주장하는 유동규, 남욱과는 다른 입장이다.
대장동 개발 특혜 사건에서 천화동인 1호의 숨은 주인이 누군지는 매우 중요하다. 검찰이 민간업자와 이재명 측(정진상·김용)이 결탁한 이유라고 내세운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428억 원 계산은 검찰 아닌 ‘정영학’이 했다
검찰은 정진상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대장동 민간업자들이 정 실장 등에게 약속한 천화동인 1호 지분 절반의 가액이 428억 원이라고 적었다.
그렇다면 이 돈은 어떤 근거로 추산한 걸까?
뉴스타파 취재 결과, 428억 원이란 돈을 특정한 건 검찰이 아닌 정영학 회계사였다. 정영학은 지난해 9월 26일, 10월 5일 두 차례에 걸쳐 2012년부터 자신이 다른 대장동 민간업자들과 나눈 대화를 녹음한 파일 130개와 녹음기, USB 등을 검찰에 제출했다.
▲대장동 수사팀의 수사보고서(2021.10.22)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녹음파일을 제출한 경위가 담겨 있다.
▲대장동 수사팀의 수사보고서(2021.10.22) 정영학 회계사가 검찰에 녹음파일을 제출한 경위가 담겨 있다.
정영학 자필 메모 입수… ‘428억 원’ 어떻게 계산했는지 설명 나와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당시 제출물에는 정영학이 작성한 자필 메모도 포함돼 있었다. 모두 4쪽 분량이다. 이 ‘정영학 메모’는 정 씨가 검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과 도표를 그려가며 설명한 내용이다. 검찰은 이 메모를 수사 기록에 포함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4장 짜리 정영학 자필 메모는 천화동인 1호 차명 지분과 관련해 설명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검찰이 특정한 ‘428억 원’이 도대체 어떻게 계산됐는지 상세히 적혀 있다.
▲정영학 회계사가 2021년 9월 26일 검찰에 제출한 자필 메모
우선 정영학 메모를 보면, 대장동 민간업자들이 챙긴 수익은 올해(2022년)까지 합하면 세금을 제하고도 총 4,800억 원에 이른다. 기존에 알려졌던 4,040억 원보다 800억 원 정도 많다.
정영학 메모의 내용에 나온 '유동규 몫 428억 원'을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1. 법인세 납부 후 배당 인출액
총 수익 4,800억 원에서 김만배의 지분(화천대유+천화동인 1~3호) 49%를 계산하고 여기서 다시 24%의 세금을 제하면 1,788억 원이 남는다.
2. 차감액(1)
1,788억 원에서 다시 650억 원을 뺐다. 공제한 650억 원은 김만배가 천화동인 1호에서 빌린 400억 원을 훗날 자신의 회사에 다시 넣어야 할 경우에 대비해 필요한 액수다. 즉, 김만배는 혼자 빌려 쓴 돈을 유동규에게도 분담시킨 것이다. 이 메모에 근거할 때, 유동규는 김만배 대여금의 절반(325억 원) 떠안았다.
3. 유동규 지분율
김만배와 유동규의 지분은 절반씩 각각 24.5%(총 49%)라고 적혀 있다. ‘1,788억-650억=1,138억 원을 반으로 나눈 약 568억 원이 유동규 몫이 된다.
4. 차감액(2)
568억 원에서 다시 공통 비용 140억 원을 뺀다는 내용이 있다.
공통비용은 세 가지인데, 자세히 설명하면 ① 70억(유동규 공통비 배분액), 이는 그간의 회사 운영비, 화천대유 직원 인센티브, 로비 비용 등을 각자의 지분율에 맞춰 나눈 금액이다. ②60억(남욱 공통비 상계액)은 남욱이 내야 할 공통비를 유동규 몫에서 미리 제한다는 의미다. 당시 남욱은 자신이 개인적으로 쓴 비용이 많다면서 공통비를 내지 않고 버티던 상황이었다. 이 금액도 유동규가 떠안은 셈이다.
마지막으로 ③10억(김만배가 유동규에게 기지급한 5억 + 관련이자)이다. 2021년 1월, 김만배가 유동규에게 빌려준 회삿돈 5억 원에 이자와 세금을 더한 금액을 말한다.
이처럼 정영학 메모에 따르면, 최종적으로 유동규의 몫은 ‘568억-140억=428억 원’이 된다. 이렇게 검찰은 정영학이 추산한 대로 천화동인 1호 차명 지분 몫을 428억 원으로 특정했다.
▲정영학 회계사가 2021년 9월 26일 검찰에 제출한 자필 메모
정영학 녹취록에도 등장하는 메모 속 428억 원
이 같은 428억 원 차명 지분 추산과 관련한 내용이 정영학 녹취록에도 등장한다.
2021년 2월 22일, 김만배와 정영학이 경기도 성남 판교 운중동에서 만났다. 이날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녹취록에는 세금과 제반 비용을 빼고 유동규에게 얼마를 줘야할지 상의하는 장면이 있다.
▲정영학 녹취록(2021년 2월 22일 녹음) 김만배와 정영학의 대화. 천화동인 1호 차명 지분 428억 원을 계산하는 장면이다.
이날 녹취록에서 김만배는 정영학에게 “내 지분이 원래는 25%인데”라면서 49%의 지분 중 절반이 차명 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에 정영학은 짧게 “네”라고 답한다.
또 이 녹취록 오른쪽에는 정영학이 직접 자필로 쓴 지분 비율이 나온다. 김만배가 소유 중인 49.16% 지분의 실소유자가 각각 유동규(24.58%), 김만배(24.58%)라고 적었다. 글로만 봐서는 이해가 어려운 녹취록의 내용을 검사에게 설명하기 위해 정영학이 자필 메모를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또 다른 민간업자인 남욱은 어제(22일) 열린 대장동 사건 재판에서 “2015년 2월에 김만배로부터 천화동인 1호에 이재명 측 지분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남욱은 또 “지난해 2월에도 김만배로부터 이재명 측 지분 얘기를 재차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은 정영학 녹취록과 자필 메모를 바탕으로 천화동인 1호에 숨겨진 차명 지분의 몫을 ‘428억 원’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같은 자료에 있는 차명 지분 소유자에 대한 판단은 바꿨다. 이렇게 검찰이 수사 방향을 바꾼 것은 남욱과 유동규가 진술을 바꾸면서 가능했다.
▲정영학 녹취록(2020년 5월 7일 녹음). 남욱이 천화동인 1호 지분을 ‘자기 것’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김만배의 발언이 담겨 있다.
녹취록 속 김만배 “남욱이 천화동인 1호 자기 것이라 우겨”
그런데 또 다른 정영학 녹취록을 살펴보면, 2020년부터 천화동인 1호의 숨은 주인이 누군지를 두고 김만배와 남욱이 다투는 정황이 포착된다.
2020년 5월 7일 정영학 녹취록이 대표적이다.
이날 김만배는 “남욱이 천화동인 1호가 제 것이라고 주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김만배와 정영학 두 사람은 “택도 없다”며 남욱의 천화동인 1호 소유권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당시 김만배에 언급한 남욱의 천화동인 1호 소유권 발언이 사실이라면, 그가 최근 재판에서 “이미 2015년 2월에 이재명 측 지분이 있다고 들었다”는 진술과는 조금 어긋난다. 이재명 측 지분을 알고도 남욱이 ‘내 것’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남욱은 어제(22일) 재판에서 “앞서 (차명 지분 몫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 건 대선을 앞두고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남욱이 진술을 바꾼 이유가 무엇인지, 또 그의 진술에 신빙성은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정영학 녹취록 속 김만배 “남욱, 나, 유동규가 주범”
2021년 2월 22일자 정영학 녹취록을 보면, 김만배는 ‘너(남욱), 나(김만배), 유동규’가 주범’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영학은 이 녹취록 여백에 ‘정영학은 단순 용역 보고서 작성자에 불과함’이라고 자필로 적었다. 대장동 사업 구조를 설계한 자신의 역할을 방어하고 축소한 정황이다.
▲ 정영학 녹취록(2021년 2월 22일 녹음) 김만배가 남욱과 나눈 대화 내용을 정영학에게 말하고 있다. 위 여백에는 정영학이 자필로 ‘정영학은 단순 용역 보고서 작성자에 불과함’이라고 적었다.
최근 석방된 유동규와 남욱은 ‘죄를 지은 만큼 벌을 받아야 한다’며 대장동 재판에서 ‘폭탄급’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검찰 수사 초기에 정영학이 자필 메모와 녹취록을 검찰에 제출한 것과 최근 유동규, 남욱이 잇따라 진술을 바꾼 배경은 엇비슷해 보인다. ‘내가 주범은 아니다’라며 서로에게 범죄의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다.
지난 21일과 22일, 남욱이 법정에서 한 증언은 대부분 “김만배로부터 들었다”는 내용이다. 내일(24일) 0시 이후, 김만배가 석방된다. 정영학 녹취록에서 ‘주범’을 자처했던 그의 입에 관심이 쏠린다.
오늘(23일) 공개하는 정영학-김만배 간 녹취록은 지난해 2월 22일 녹음된 것으로 천화동인 1호 차명 지분 24.5%가 액수로는 얼마인지 서로 묻고 답하는 내용이 있다. 또 정영학이 쓴 자필 메모 4장에는 천화동인 1~7호의 지분 구조와 차명 지분 금액 428억 원을 어떻게 산출했는지 계산 방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