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이후 12일이 지났습니다. 그 12일 동안 많은 것들이 밝혀졌죠. 희생자들과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했던 공직자들은 얼마나 안일하고 무능했는지, 그 진상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우리 모두는 안타까움과 실망, 더 나아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경찰 부실 대응 미스테리... 그들은 왜 움직이지 않았나?
행안부와 경찰, 용산구청과 소방당국 등 책임 주체들의 여러 실수와 잘못 가운데 가장 의아한 부분, 아니 어쩌면 의아함을 넘어 미스테리로까지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경찰의 대응입니다. 뉴스타파가 지난 주 보도한 것처럼 경찰은 '주최 없는 행사'에도 '혼잡경비'의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여러 '주최 없는 행사에서 '혼잡경비'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차질없이 수행해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번만큼은 달랐습니다. 사전에 나온 여러 차례의 위험 경고를 무시했고 심지어 '제발 도와달라'는 숱한 신고가 오는 와중에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대체 왜 그랬을까요?
뉴스타파는 이 미스테리를 풀기위해 그 내막을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는 당사자, 즉 현장 경찰관들의 얘기를 두루 들어봤습니다. 그중에는 30년 가까이 서울 시내 경찰서에서 일했던 경찰관도 있었고, 이태원을 관할하고 있는 용산경찰서의 현직 경찰관도 있었습니다.
이들의 얘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사건 당시 경찰과 그 지휘부의 관심은 시민의 안전이 아니라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참사 당일, 대통령실 주변 집회에 48개 기동대 배치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10월 29일, 서울 시내에는 18개의 집회가 열렸는데 이 가운데 9개 집회가 용산경찰서 관할이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집회는 7만여 명이 운집한 '정권퇴진 촛불문화제'였습니다. 광화문에서 집회를 벌인 시위 군중은 저녁 6시반에서 8시반 사이 대통령실과 1km 떨어진 삼각지로 행진했습니다. 여기에 배치된 경찰 기동대는 무려 48개 부대였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각 '사람이 몰려 위험하다'는 신고가 반복적으로 접수된 이태원 참사 현장에는 단 1개의 기동대도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용산경찰서의 서장과 경비과장, 정보과장 등 주요 지휘부 역시 이태원이 아니라 삼각지 현장에 나가있었습니다.
참사 당일 이전에도 경고는 많았습니다. 참사 나흘 전에는 이태원 파출소장이, 사흘 전에는 용산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것이라며 추가 경력 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지휘부는 이런 보고를 받고도 핼러윈 데이 이태원의 혼잡 경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그럴 수 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통령실 경비에만 쏠린 용산경찰서의 관심
뉴스타파가 만난 현직 용산경찰서 경찰관은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한 뒤 용산 경찰서의 업무 중심이 대통령실 경비로 쏠렸다고 말했습니다. 사고가 생겼을 때 현장 대응이 더 혼란스러워진 것도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일반적인 112 무전망과 집회시위와 관련된 무전망을 별도로 운영하는데, 아무래도 용산경찰서 상황실은 일반적인 112 무전망보다 집회시위와 관련된 무전망에 더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참사 당일 이임재 용산서장과 기타 간부들이 모두 대통령실 집회 현장을 관리하다가 뒤늦게 이태원 참사 현장으로 향한 것은 이러한 '업무 중심 이동'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
"대통령실 관할 경찰은 집회시위만 잘 막으면 승진 1순위"
여기에는 더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모든 경찰들의 최우선 관심사인 승진과 인사문제인데요, 과거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던 당시 종로경찰서장이나 정보과장, 경비과장 자리는 '승진 1순위'로 꼽혔습니다. 청와대 근처 집회 시위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일이 중요한만큼, 이 임무를 큰 무리없이 잘 해내면 그 보상으로 승진 인사가 주어졌던 것이죠.
실제로 뉴스타파가 과거 경찰들의 인사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지난 20여년 간 종로경찰서장 23명 가운데 11명 이상이 치안감 이상으로 승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통령실의 이전에 따라 '승진 1순위' 경찰서가 종로경찰서에서 용산경찰서로 바뀌게 되었고, 이에 따라 용산경찰서의 서장 이하 간부들 역시 자연스레 대통령실 앞 집회 시위 관리를 업무의 1순위로 여기게 됐을 거라고 뉴스타파가 만난 경찰관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행안부 경찰국이 장악한 경찰 인사
더 넓게 보면, 경찰 조직 장악을 권력 투쟁의 연장으로 여긴 윤석열 정부의 책임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윤석열 정부가 신설한 행안부 경찰국은 경찰에 대한 인사권을 명시적으로 행안부 장관에게 귀속시켰고, 이에 따라 경찰 수뇌부는 임명권자인 행안부장관과 대통령의 눈치를 더 노골적으로 볼 수 밖에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 역시 이태원 참사에 대한 경찰의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을 설명하는 '구조적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겁니다.
경찰만의 책임인가... 구조적 원인에도 주목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 이례적으로 경찰을 공개 질타했습니다. 이태원 참사의 진상을 수사하고 있는 특별 수사본부는 지금까지 9명을 입건했는데, 그 가운데 5명은 경찰관입니다.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이태원 참사의 가장 직접적이고 큰 책임은 경찰에게 지워지는 모양새입니다.
물론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경찰의 잘못을 세세하게 규명하고 책임을 지우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건에는 가깝고 직접적인 원인 뿐 아니라 다소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더 근본적인 구조적 원인도 있습니다. 뉴스타파가 만난 경찰관들은 '대통령실 이전에 따른 용산경찰서의 업무 순위 변경과 행안부의 경찰 장악에 따른 지휘부의 눈치보기'를 구조적 원인으로 꼽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오로지 대통령실 이전 때문에 일어났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이 중요한 구조적 요인 중 하나를 지적하는 일선 경찰관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불리해 보이더라도 인정할 일은 인정하고, 고쳐야 할 일은 고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이번 참사의 희생자들과 유족들을 진정으로 위로할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가 잃어버린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