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 받는 부마민주항쟁...첫 사망자 인정에 이어 국가기념일 지정

2019년 09월 17일 15시 19분

올해 40주년을 맞은 부마민주항쟁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17년 뉴스타파가 보도한 고 유치준 씨가 최근 부마민주항쟁 관련 첫 사망자로 공식 인정된 데 이어, 관련 국가기념일도 지정됐다. (관련뉴스 : ‘박근혜는 부마항쟁을 두 번 죽였다’, 2017년 8월 24일 )

행정안전부는 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10월 16일을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 부산을 시작으로 마산·창원·진주 지역 등으로 확산된 박정희 유신체제 반대 민주화운동이다. 4·19혁명(1960년)과 5·18광주민주화운동(1980년), 6·10민주항쟁(1987년)과 함께 4대 민주항쟁으로 꼽히지만 가장 늦게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앞서 5일에는 국무총리 소속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가 고 유치준 씨를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망자로 의결했다. 고 유치준(당시 51세) 씨는 부마민주항쟁 당시 노동자로 1979년 10월 19일 오전 5시경 경남 마산시 산호동 소재 새한자동차 앞 노상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진상규명위원회는 고 유치준 씨의 사망과 관련해 △사인이 물리적 타격에 의한 외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고 △당시 시위가 고인의 퇴근시간 이후 사망 장소 인근에서 격렬하게 발생했다는 점 △경찰은 시신을 유족에 인도했다고 담당 검사에게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하지 않은 채 암매장함으로써 사망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점 등을 종합해 살펴볼 때 고민의 사망이 부마민주항쟁의 시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인정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2017년 8월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망자인 고 유치준 씨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뉴스타파는 2017년 8월 당시 1기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원회가 파행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고 유치준 씨의 이야기를 소개한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선 당시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과 관련자 명예회복을 공약했다. 2014년 10월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됐지만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찬양하거나 박근혜 후보 대외협력특보 등을 지낸 이른바 ‘친박’ 인사들이 본위원회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해 제대로 된 조사활동을 하지 못했다. 부마민주항쟁 관련 단체에서 추천된 인사들은 본위원회에서 배제된 채 실무위원회에만 임명됐지만 진상규명에 한계를 느끼고 2016년 10월 “더 이상 들러리 노릇을 할 수 없다”며 사퇴하기도 했다.

고 유치준 씨 가족들은 진상규명위원회가 설립되자 아버지를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망자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지만 당시 위원회는 유치준 씨 사건과 관련해 창원지방검찰청이 작성한 한 장짜리 검시사건부를 찾는 것 외에 조사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서둘러 ‘관련자 아님’으로 결정을 내리려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추천 실무위원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유치준 씨의 가족은 신청을 철회했다가 지난해 6월 다시 위원회에 관련 사망자로 신고 접수했다. 위원회는 1년 3개월의 조사 끝에 고 유치준 씨를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망자로 인정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진상규명위원회 위원들은 지난해 11월 임기가 시작된 3기 위원들이다.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망자로 공식 인정된 사람은 고 유치준 씨가 처음이다.

고 유치준 씨의 아들 유성국 씨는 “아버지가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망자로 인정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기쁨보다 마음이 아려왔다”며 “아버님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유 씨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진상위 조사관이 딱 한 번 찾아와 조사하고 갔는데 이번에는 조사 위원이 마산에 20여 차례 찾아와 당시 증언자를 찾는 등 고생을 많이 했다”며 “그분들의 진술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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