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문 열람실 장기 폐쇄...알권리 침해

2021년 06월 15일 17시 52분

코로나19 유행이 계속되면서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 있는 ‘판결정보 특별열람실’이 사실상 폐업 상태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법원도서관에 2020년부터 2021년까지 ‘판결정보 특별열람실 운영기간’을 정보공개청구한 결과, 특별열람실은 2020년에는 단 155일(약 40%)만 운영됐고, 2021년에는 단 하루도 문을 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열람실이 사실상 폐쇄되면서 시민들의 알 권리가 큰 피해를 입게 됐다.
▲ 판결정보 특별열람실 월별 이용자 현황 정보공개청구 답변자료

2020년 155일 개방, 2021년에는 단 하루도 안 열어

대법원은 현재 '판결서 인터넷열람 제도'와 '판결서 방문열람 제도' 등을 통해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다.
인터넷열람은 형사사건의 경우 2013년 이후, 민사는 2015년 이후 확정된, 일부 정보가 가려진 판결문만을 검색할 수 있다. 반면 특별열람실을 방문하면 기간 제한 없이 정보가 가려지지 않은 판결문을 모두 검색할 수 있다.
법원이 공개한 '2020년~2021년 판결정보 특별열람실 운영기간' 자료에 따르면, 판결정보 특별열람실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운영이 중단됐다. 열람실 운영은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유행했던 2020년 2월에 처음 중단됐다. 특별열람실은 확진자 수가 다소 줄어든 지난해 5월에 다시 운영을 시작했다가 6월 1일부터 다시 약 두 달간 운영을 중단했다. 이어 7월 22일부터 제한 운영을 시작했지만, 8월에 서울 이태원을 중심으로 코로나19 2차 유행이 시작되면서 다시 운영을 중단했다. 특별열람실은 2차 유행이 진정된 10월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크게 증가한 지난해 11월에 문을 닫아 2021년 6월 현재까지 운영 중단 상태다.
▲ 법원이 공개한 2020년~2021년 판결정보 특별열람실 운영기간
2020년 특별열람실 총 운영기간은 155일. 평년의 40% 수준이다. 시설 폐쇄가 계속되면서, 이용자 수도 크게 줄었다. 2019년 특별열람실 총 이용자 수는 연인원으로 6,734명이다. 2020년 이용자 수는 약 37% 수준인 2,494명이다. 한 번도 열람실을 열지 않은 2021년 이용자 수는 0명이다.
법원도서관 관계자는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열람실 운영을 중단했다"며 "특별열람실만 막은 게 아니라 대법원 청사 전체적인 관리 측면에서 내려진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 법원이 공개한 2019년~2021년 판결정보 특별열람실 월별 이용자 현황. 2021년에는 모두 0명.

헌법에 공개하도록 규정된 판결문... 실제로는 극도로 제한적으로 공개돼

문제는 판결정보 특별열람실이 아무런 대안 없이 폐쇄됐다는 점이다.
현재 법원은 ‘판결서 인터넷열람 제도’를 운영해 일부 사건의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특별열람실에 비하면 공개되는 판결문의 범위가 좁고, 내용 면에서도 부실하다.
우선 공개 대상 판결문 범위가 제한적이다. 2013년 이후 확정된 형사사건과 2015년 이후 확정된 민사사건의 판결문만 공개된다. 인터넷으로는 이 기간에 해당되지 않는 이전 판결문 자료는 일체 찾아볼 수 없다. 또 소송 당사자가 판결에 승복하지 않아 항소하는 등 확정되지 않은 사건의 판결문은 공개되지 않는다. 
법원은 판결문을 인터넷열람 시스템에 등록하기 전에 이름, 주소 등 개인정보를 삭제하는 '비실명화 조치'를 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판결문에 들어있는 기업의 이름도 가리는 등 삭제되는 정보가 많다. 예를 들어, 판결서 인터넷열람 사이트에서 ‘대한항공’으로 검색해도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항공기를 돌려 세운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판결문은 검색되지 않는다. 인터넷열람 시스템으로 해당 판결문을 보면 대한항공이 ‘주식회사 V’로 비실명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결정보 특별열람실에서는 2013년 이전의 사건 등 법원이 보유하고 있는 판결문을 모두 검색할 수 있다. 단, 가사 사건과 소년 사건은 제외된다. 특별열람실에서는 개인 정보 등이 지워지지 않은 판결문 전문을 검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별열람실에서 가서 ‘대한항공’을 키워드로 입력하면 '땅콩회항' 사건도 검색 목록에 나온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김태일 간사는 "방역 때문에 열람실을 폐쇄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임시 온라인 열람시스템을 운영하면 된다"며 "아무런 대안적 제도도 운영하지 않고 오프라인 열람실을 폐쇄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에 사각지대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사법체계의 민주화 위해서 판결문 공개 필요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이 판결문 공개에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인 데다가, 비밀주의에 빠져있는 것 같다"며 판결문 공개에 대한 법원의 인식 수준이 "일반 국민에게 판결문이 왜 필요하냐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반인이 판결문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터넷열람 제도를 통해 판결문을 검색해도 전체 내용을 볼 수 없다. 판결문 전문을 보려면 건당 1천원을 지불해야 한다. 관심있는 주제의 판결문을 보다보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판결문은 결제한 시각으로부터 24시간 동안 열람할 수 있다. 계속 열람하려면 판결문 파일을 미리 다운로드해야 한다.
돈을 내고 받은 판결문의 품질도 부실하다. 판결문을 다운로드 받으면, 판결 내용이 문자(text)가 아니라 그림(image)으로 저장된 PDF 파일이 다운로드된다. 이미 비실명화 조치를 했고, 원본 자체가 문자 파일로 작성돼 있는 판결문을 굳이 특수 처리를 거쳐 그림 파일로 공개하는 셈이다. 이런 PDF 파일은 ‘사기’, ‘폭행’ 등의 일반 단어를 넣어도 검색이 안 된다.
▲ 대법원 사이트에서 다운로드받은 PDF 파일 형식 판결문에서 ‘절도’를 검색한 결과. 사건명 부분에 ‘절도’라는 문구가 있지만, 검색 결과 ‘찾는 항목이 없다’고 나온다.
한상희 교수는 "판결문 공개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재판이나 법원에 대한 국민, 시민사회의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며 판결문 공개를 통해 사법체계에 민주적 책무를 부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법사회학 등 판결문을 통한 사회학적인 분석이 이뤄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법원이 판결문 공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작진
디자인정동우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