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지대' 법원 ① 공문서 허위작성해 법원장실 호화 가구 구입

2021년 02월 17일 16시 00분

 전국 법원이 국민의 세금으로 법원장실 집무실에 최고급 가구를 구매하고 이 과정에서 수시로 위법 행위를 저질러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법원은 호화 가구의 구매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공문서인 물품관리대장을 허위로 작성한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뉴스타파가 전국 81개 법원과 법원 부속기관의 가구 구매 내역을 전수 조사한 결과다. 이번 취재의 핵심은 법원장들의 윤리적·도덕적 일탈을 지적하는 데 있지 않다. 소중한 세금으로 법원장 집무실을 호화 가구로 꾸미는 허례허식을 비판하려는 것도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취재에 들어갔다.   
 법을 위반하고, 거짓말을 하고, 공문서를 조작해가며 고위 법관인 법원장 집무실에 호화 가구를 구매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는 법원이 이렇게 법을 어기며 세금을 써도 괜찮은 걸까. 법 수호에 앞장서야 할 법원이 수년 동안 저지른 위법과 편법·탈법의 현장을 뉴스타파가 고발한다. 
▲ 지난 두 달 동안 전국 법원의 가구 구매 예산을 분석한 뉴스타파 취재진  
 2018년 10월 30일, 수원고등법원은 세금 5,290만 원을 집행해 법원장 집무실 가구를 샀다. 뉴스타파가 당시 견적서 등 구매 계약서를 확인한 결과, 소파 988만 원, 소파 테이블 147만 원, 책상 648만 원, 회의용 의자 892만 원 등이다. 최고급 제품이 들어갔다. 같은 날인 2018년 10월 30일, 수원지방법원도 동일한 금액인 5,290만 원의 세금을 사용해 법원장실용 가구를 구매했다. 역시 최고급 사양을 골랐다. 
▲ 수원고등법원과 수원지방법원의 법원장실 가구 구매 견적서 
 대한민국 법률은 법원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 공공기관이 세금으로 가구 등 물품을 살 때, 중소기업의 제품을 우선적으로 구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9년 제정한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판로지원법) 제4조가 그렇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중소기업 제품의 판로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다.   
 판로지원법은 또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611개 항목을 별도로 지정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611개 경쟁제품을 1천만 원 이상 구매하려면 반드시 '중소기업'에서 '직접 생산한 제품'임을 확인해 입증하고 구매해야 한다. '판로지원법 시행령 제10조'에 규정된 의무 조항이다. 
 법원장실에 들어가는 가구 제품이 경쟁제품 611개 항목에 해당한다. 수원고법과 수원지법 법원장실, 두 곳의 가구 구매 금액이 각각 5,290만 원으로 1천만 원을 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중소기업이 직접 생산한 제품을 구매해야 한다. 
 뉴스타파가 두 법원의 가구 구매 관련 견적서, 계약서 등을 확보해 분석했다. 또 정확한 보도를 위해 법원장실을 촬영한 영상도 입수해 확인했다. 그 결과, 두 법원의 법원장 집무실에 들어간 가구는 중소기업이 만든 제품이 아니었다. 사무가구 국내 1위 업체이자, 코스피 상장기업인 '퍼시스' 제품으로 드러났다. 명백한 판로지원법 위반이다. 법원도 위법 사실을 인정한다. 위법을 확인했고 인정도 했으니 취재는 여기서 끝인가.
 진짜 문제는 여기부터다. 위법 행위에 따른 사법 절차가 뒤따라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 판로지원법 어디에도 법을 어긴 범법 행위를 처벌할 조항이 마땅히 없다. 이런 있으나마나인 법률이 실제로 많다. 
 법원도 이런 허점을 잘 아는 걸까. 법원은 취재 과정에서 판로지원법 위반 사실을 '쿨하게' 인정했다. 일부 법원은 구매 절차가 '불편해' 법을 어겼을 뿐,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도 내비쳤다. 세금을 쓰면서 법을 어기고 호화 집기를 사들여 법원장실을 꾸민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니. 허탈한 노릇이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법원의 법 위반 행위를 더 찾아냈다. 두 법원은 '처벌할 수 없는 법'인 판로지원법만 어긴 게 아니었다. 더 심각한 위법을 저질렀다. 이번엔 처벌 조항도 명확하다.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두 법원이 보관하고 있는 '물품관리대장'을 샅샅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밝혀낸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 지난해 가을이다. 21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던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실은 전국 각급 법원에 법원장실 가구의 제조업체를 확인할 수 있는 증빙 자료의 제출을 요구했다. 그런데 당시 수원고법과 수원지법은 뜻밖의 답변을 보내왔다. 
 법원장실의 가구 제조업체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며 '자료 없음'이라는 내용이었다. 두 곳 모두 가구 제품에 대한 물품관리대장이 없다는 뜻인데, 납득할 수 없었다. 국가기관인 법원에 물품관리대장이 없을 리가 없다.
▲ 지난해 9월, 수원고등법원과 수원지방법원이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  
 얼마 뒤, 진실이 밝혀졌다. 법원이 국회에 허위 자료를 제출한 것이 탄로났다. 김승원 의원실이 따져 묻자, 법원은 "가구 제조업체 자료가 실제로 없어서 '자료 없음’이라고 회신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이 해명도 곧 거짓으로 드러난다.    
 알아보니 수원고법, 수원지법 두 곳 모두 물품관리대장을 작성해 잘 관리하고 있었다. 또한 관리대장에는 2018년 사들인 두 법원장실 가구의 제조업체와 모델명도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그렇다면 왜 두 법원은 물품관리대장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은 걸까. 허위 자료를 제출할 경우, 담당 공무원이 문책을 받을수 있는데도 '자료없음'이라는 뻔한 거짓말을 했던 급한 사정이라도 있었던 걸까. 
▲ 뉴스타파가 확보한 전국 법원의 가구 구매 내역 자료 (2015-2020)
 두 법원이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던 물품관리대장을 입수해 살펴보고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수원고법, 수원지법은 각 물품관리대장에 법원장실 가구의 제조업체를 '퍼시스'라고 적지 않았다. 엉뚱한 중소기업 제품의 모델을 기입해놨다.  
 실제 법원장실에 들어간 책상의 제조업체는 '퍼시스', 모델명은 'ZDD021'이다. 그러나 법원은 사실대로 작성하지 않고 중소기업의 제품 'AD-13'으로 적었다. 의자도 마찬가지였다. '퍼시스 CHN3321' 모델을 실제 구매하고 정부에는 중소기업 가구의 모델명을 기재해놨다. 한두 건이 아니라 법원장실에서 구매한 모든 '퍼시스' 가구를 중소기업의 제품인 것처럼 조작했다. 
 조작의 의도는 명백해 보였다. 호화 가구의 구매 사실을 숨기려 한 것이다. 형법 제227조 '허위공문서 작성죄'가 적용되는 위법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 뉴스타파가 확인한 실제 가구 구매 모델(왼쪽)과 장부에 허위 기재한 모델(오른쪽)   
 두 법원은 퍼시스 고급 가구 제품을 구매한(▲판로지원법 위반) 사실을 감추기 위해 공문서인 물품관리대장을 허위로 조작했고(▲허위공문서 작성), 이 같은 공문서 허위작성 사실을 숨기려고 또 다시 국회에 ‘자료 없음’이라고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국회증언감정법 위반) 등 중대한 불법을 세 번이나 저지른 것이다.  
 더구나 수원고법과 수원지법은 '퍼시스' 제품을 '퍼시스'에서 직접 구매하지 않고, 중간에 가구 도소매 업체를 끼워넣는 편법까지 동원했다. 이렇게 할 경우, 구매 계약 과정과 장부의 기록만 보면 '퍼시스' 제품을 샀다는 사실은 감춰진다. 법을 준수해 중소기업의 가구 제품을 산 것처럼 꾸밀 수 있는 것이다. 법원장 집무실에 가서 확인할 수 있지만, 법원장실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외부인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 법원은 퍼시스 제품을 '퍼시스'에서 직접 구매하지 않고 중간에 도소매 업체를 끼워넣는 편법을 동원했다.
▲  이렇게 할 경우 구매 계약 과정과 장부의 기록만 보면 '퍼시스' 제품을 샀다는 사실이 감춰진다.
 전주지방법원의 위법 행위도 수원고법, 수원지법과 '판박이'다. 전주지법은 지난 2019년 12월 9일과 12일 이틀 간, 법원장 집무실용 가구 구매에 세금 7,680만 원을 집행했다. 구매 내역을 보면 책상 1,760만 원, 무늬목 캐비닛 세트 1,962만 원, 소파 1,750만 원 등 호화 가구 일색이다. 퍼시스 제품 중에서 최고급 사양에 속하는 '마르쿠스' 제품이다. 판로지원법상 중소기업이 직접 생산한 제품을 사야 하는 법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전주지법은 이렇게 '퍼시스' 가구를 사놓고 공문서인 물품관리대장을 조작했다. '퍼시스'의 모델명 대신 중소기업의 모델명을 가짜로 써넣었다. 형법상 '허위 공문서 작성죄'가 적용될 수 있다.
▲ 전주지방법원은 법원장실 가구로 퍼시스 제품 중 최고급 사양에 속하는 '마르쿠스' 제품을 구매했다. 
 전주지법은 금방 드러날 거짓 해명까지 내놨다. 취재가 시작되자 전주지법은 "물품관리대장에 납품업체로부터 받은 견적서상의 식별 번호를 그대로 기재했다"고 해명했다. 견적서에 적힌대로 물품관리대장에 적다보니 일어난 실수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곧 거짓으로 들통났다. 뉴스타파가 해당 가구의 견적서를 입수해 확인했다. 견적서에는 'Z'로 시작하는 '퍼시스'의 모델명이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법원 공무원은 대체 뭘 보고 적었다는 걸까. 법정에서 거짓과 진실을 판명하는 게 본령인 법원 조직이 손바닥 뒤집듯 거짓말을 하고 있다.  
▲ 뉴스타파가 입수해 확인한 전주지법 법원장실의 가구구매 견적서, Z로 시작하는 퍼시스 모델을 구입했다. 
 취재진은 서울동부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의 가구 구매 계약서를 보고 놀랐다. 두 법원은 중간에 도매업체를 끼어넣는 편법이나 장부를 조작하는 등의 '귀찮은' 작업을 아예 하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직거래 방식을 택했다. 
 서울동부지법은 지난 2016년 11월, 부산고법은 2017년 12월, 각각 세금 5,357만 원, 2,600만 원을 들여 법원장실의 가구를 샀다. 모두 '퍼시스'의 고급 제품이었다. 그런데 보란듯이 '퍼시스' 대리점에서 직구매하는 방식으로 가구를 사들였다.   
 아예 대놓고 법을 우롱한 것이다. 법원 공무원이 한 해 매출액이 수천억 원에 이르는 사무용 가구 1위 업체를 중소기업으로 착각했을리 만무하다. 이들 법원에게 중소기업을 위한 판로지원법은 '보이지 않는 법'이 됐다.  
▲ 서울동부지방법원과 부산고등법원은 퍼시스 대리점과 직접 계약해 가구를 구매했다. 
 2009년 '판로지원법'을 제정했을 때, 일제히 환영했다. 언론은 <중소기업 슈퍼 지원책 나왔다 "판로 걱정 끝"(노컷뉴스, 2009.04.29)>이라며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판로 확보에 막혀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까지 이 법을 어긴 '위장 중소기업' 수십 곳이 고발됐다.
 2015년 대법원은 판로지원법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중소기업제품의 구매를 촉진하고 판로를 지원함과 동시에 이렇게 체결되는 조달계약에서는 중소기업자가 해당 제품을 대기업이나 하청업체 등으로부터 구매하여 납품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직접 생산하도록 함으로써 국내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대법원 판결문 중(2015두35741)
 결국, 법정에선 판로지원법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해놓고, 법원장실 집무실에선 버젓이 위법 행위를 저지르는 '위선'을 확인한 셈이다. 
 전국 법원이 이렇게 반복적으로, 공공연하게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앞서 언급한대로 판로지원법상 처벌규정이 없는 데에도 비롯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가구 구매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감시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헌법기관, 독립기관으로서 법원이 누리는 특수한 지위에서 기인한다.  
 대한민국 모든 공공기관은 법률에 따라 세금으로 구매하는 물품의 계약 정보를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92조의2'에 명시되어 있다. 
 법원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법도 무시했다. 지난해 10월까지 법원은 가구 구매와 관련된 계약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법을 어기고 구매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도 이걸 따지는 곳은 없었다.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장실의 가구 구매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한다고 법원의 독립성 보장이 훼손될 리 없다.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법원은 물품 구매를 할 때, 법을 제대로 지키는지 외부의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는다.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해마다 지역별 중소벤처기업청을 통해 전국 837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판로지원법 위반과 이행 여부를 실태 조사한다. 
 하지만 법원은 행정부 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헌법기관', '독립기관'이라는 법원의 특수함이, 엉뚱하게 감시받지 않는 '특혜기관'으로 이어진 셈이다. 법원장실 가구를 마음대로 구매하라고 법원에 독립성을 부여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법원은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가구 매입을 법 규정대로 하고 있는지 법원 내부의 통제 시스템은 따로 작동되지 않았다. 법원의 각종 감사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법원감사규칙'을 보면, 세금으로 가구 등 물품을 구매와 관련된 예산·회계 영역의 감사 행위는 아예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소중한 세금이 제대로 쓰여지는지 기초적인 확인도 없었던 셈이다.  
 2년 전 감사원까지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2019년 10월 감사원은 ‘대법원 재무감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고 해당 규칙을 개정할 것을 법원에 권고했다. 하지만 법원은 1년 넘게 이를 묵살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연이은 질타와 가구 구매를 둘러싼 위법 사실이 불거진 이후, 지난 1월 29일에서야 법원은 내부 감사의 범위에 회계를 추가했다. 그러나 위법 행위에 대한 실태 조사 결과는 내놓지 않았다. 
▲ 법원의 '법원감사규칙'
 대법원을 포함해 전국 법원과 법원 부속기관이 가구를 구매하는 데 쓴 예산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352억 원이다. 막대한 세금이 법원장실과 법원을 꾸미는 데 사용됐고 이 과정에서 위법 행위가 잇따라 드러났다. 그러나 법원은 잘못을 인정할 뿐, 법적 조치는 따로 없다. 법을 준수해야 할 법원이 준법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 
 뉴스타파는 법원의 가구 구매 예산을 둘러싸고, 공공연하게 또 지속적으로 자행돼 온 또 다른 형태의 위법과 탈법의 현장을 추가 보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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