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2018년 07월 30일 23시 24분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는 능력이다.
헤닝 만켈<사람으로 산다는 것> 중

여기, 자신에게 던진 물음에 평생의 삶으로 답을 구했던 한 사람이 있다.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다. 그의 생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을 바쳐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음을 알았다.

그런 그가, 스스로 생을 내려놓았다. 견딜 수 없노라 했던 ‘부끄러움’의 무게. 그의 죽음은 우리 안의 부끄러움을 들여다보는 물음이 되어 마음 문을 두드렸다.

7월 23일 오전 날아든 황망한 비보.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이 된 노회찬 의원의 빈소가 마련됐다. 24년만이라는 기록적인 폭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의 빈소를 찾는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동료 정치인도, 생전에 친분이 있던 지인도 모두 똑같이 차례를 기다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예를 다했다. 민중의 벗이자, 소외된 이들의 친구, 하여 궁극적으로 우리의 좋은 이웃이었던 사람.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인간 노회찬’과 이별하는 방식이었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 씨와 반올림 식구들도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그는 떠나는 날 마지막 순간까지 노동자들을 챙겼다.

노회찬 의원님이 고마워서 왔어요.
제가 법정에서 의원님 봤을 때 손도 잡아줬어요.

한혜경 / 삼성반도체 피해자

저희 반올림과 삼성과 싸움에서
백혈병 문제 해결해달라고 하는 싸움을 하면서
어느 누구도 저희가 얘기를 하면 답변해주시는 분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노회찬 의원님은 당신이 국회의원 제적까지 당하면서까지
억울한 노동자들을 위해서 무언가 해보시겠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가셨다는 게 정말 믿어지지 않네요.

김시녀 / 한혜경 어머니

일면식도 없는 정치인을 향한 애도와 추모 열기는 예상 밖이었다. 5일장으로 치러지는 동안 조문은 자정을 넘긴 시각에도 계속됐다. 차마 그를 보낼 수 없는 이들은 자발적으로 조문에 나섰고 그를 배웅하는 자리는 자연스레 ‘시민장’이 됐다.

우리같이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도
정치를 간단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해준 것에 대해
감동을 많이 받았거든요.

시민

노회찬 의원님과 개인적인 기억은 없지만,
노회찬이라는 사람은 바라볼 수 있는 분이에요.
그분이 지향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향점이 사라진 것 같은 그런 느낌…

노원구민

대체, 정치인 노회찬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의 마지막 물음일 지도 모를 그의  ‘선택’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남기고 있는 걸까?

선거에서 이겨서 의원이 되셨을 때 뒤풀이 장소에서 찍힌
빗자루를 들고 기타를 치는 사진을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저 사람은 진짜 좋은 사람이구나.
좋은 사람이고 정말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배종민 / 자영업

노무현 대통령 때도 항상 깨어있으라고 하셨었잖아요.
그게 노회찬 의원님도 돌아가시면서 저에게는 더 자극제가 된 것 같아요
더더욱 깨어있으려고 노력하는 삶.

최유 / 자영업

7월 26일 저녁, 故 노회찬 의원의 추도식이 열리는 연세대학교 대강당 안팎은 추모 인파로 가득했다. 퇴근 후 차마 발걸음을 집으로 향할 수 없었다는 직장인, 취업 준비하느라 뒤늦게 소식을 접했다는 학생, 아이들 손잡고 온 가족 등 식을 줄 모르는 폭염만큼 추모의 물결은 뜨거웠다. 부끄러움을 상실한 시대. 무뎌졌던 우리는 뒤늦은 미안함을 마음으로 화답했다.

진짜 미안하고 너무나 미안해요. 정말 우리가 죄인이에요.
우리가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는 얘기도 못하고
지지의 박수도 못 보내고. 마음만.
나 하나쯤이야 뒤에서 숨어서 박수치면 되겠지 했는데,
왜 앞에서 박수를 못 쳤을까요? 글쎄?
사랑한다고 그러고. 박수치고. 그걸 못 한 게 후회스러워요.

추도식 참석 시민

저는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고
생업에 바빠서 뉴스로만 듣고 인터넷 기사로만 보고.
그랬었는데 어느 순간인가, 누구는 저렇게 다른 사람을 위해
저렇게 열심히 뛰는데 나는 그냥 돈을 번다...
그냥 오고 싶었어요.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할까요.

중년 남성

정치적 태도나 입장을 떠나서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분이었고.
자기 자신에게 엄격했던 한 사람이
마음이 접히고 접히고 접혀서 구석으로 갔을 것 같은
그 마음이 보이는 거예요.
너무 뒤늦게 알았어요. ‘괜찮다’고. 그 말을 많이 들었다면 어땠을까.

황미나 / 대학원생

7월 27일 오전, 장례식장을 떠난 운구차는 국회로 향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영결식은 ‘국회장’으로 엄수됐다.  그는 이제 지친 발걸음을 거두고 긴 잠에 들었다.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듯, 우리에게 그런 정치인이 있었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기억이 됐다.

사랑했습니다. 존경했습니다.
마음에 품으셨던 의지랑 뜻 이런 것.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잊지 않고
부정의에 용감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있는 시민이 되겠습니다.

이현윤

고인의 뜻 받들어서 약자가 대우받는 나라,
지금보다는 더 약자가 숨을 쉴 수 있도록 나라,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아주 작은 미약한 힘이나마
같이 걸음하자, 다짐을 했습니다.

김미나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으로 영원히 기억될 그의 마지막 당부. 그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추었지만, 그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 그가 남긴 마지막 물음에 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보태어진다면 언젠가는 그가 바랐던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을 것이다. 그가 평생의 삶으로 던져온 물음은 여기서 멈추었지만, 그가 다하지 못한 물음은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았다.

글 구성 최미혜
편집 박정대
취재 연출 박훈규 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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