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들] 리영희 연작 다큐멘터리 1부 〈불씨〉

2020년 12월 04일 17시 12분

12월 5일은 우상과 권력에 맞서 진실을 추구한 언론인이자 지식인이었던 리영희 선생의 10주기입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는 오늘부터 리영희의 삶과 그의 글쓰기를 다시 비춰보는 연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송합니다. 평생 이성의 힘으로 진실을 좇았던 그의 삶이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탈진실'의 언론 생태계를 극복하는 데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첫 시간, 리영희 다큐멘터리 1부 <불씨>편입니다.
그러나 '리영희'라는 이름 그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나와 내 또래 20대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1. 리영희? 그게 뭔데?

  ‘리영희 (李泳禧)’
이름, 세 글자에서 그 사람의 이미지를 그려보라. 무엇이 느껴지는가? ‘내가 아는 영희들’은 모두 여자였다. ‘이영희’도 아니고 성이 ‘리’라니? 강렬하다, '걸 크러시'한 여자인가?  한달 전, 뉴스타파의 리영희 다큐 제작 프로젝트의 취재작가로 처음 합류했을 때, 내 머리속 생각이었다. 
이십대인 나는 리영희를 처음 듣고 보았다. 한국 현대사의 획을 그은 분이라는데, 한국사 2급 자격증까지 있는 내가 모른다니. 오기가 생겼다. 내 친구들에게 전화로 물었다. "너는 알고 있니?"
  “리영희 알아?”
  “리영희? 그게 뭔데?”
“리... 뭐라고” 친구들은 대부분 되물었다. 심지어 누구냐고 묻는 게 아니고 그게 뭐냐고 묻다니. 사람이고, 남자라고 말해줬다. 어떤 사람인지 구체적인 설명까지는 나아갈 수 없었다. 리영희를 모르는 채 '나의 리영희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2. 리영희는 누구인가?

리영희 (1929 - 2010)
리영희가 누구인지? 왜 기억해야 하는지? 이를 아는 2020년대 청년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시간을 돌려 유신독재 시절로 가보자. 압제의 암흑 속에서 빛을 보여 달라고,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넣어 달라고 외쳤던 70년대 청년들은 알 것이다. 
1920-30년대 중국 루쉰이 그랬듯, 리영희는 ‘그대들이 사는 이곳은 숨 막히는 상자’ 안이라는 진실을 알렸다. ‘암흑에 적응하면 눈이 멀게 되니 빛이라는 진실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고 일러준’ 이였다. 70, 80년대 젊은이들에게 리영희는 ‘사상의 은사’가 됐다. 
진실을 향한 종소리는 1974년 6월, 리영희의 첫 평론집 <전환시대의 논리>가 나오면서 울리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선 납작 엎드리고 바짝 숨죽여야 했던 시절, 이 책은 언론의 자유, 시민의 자유,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모든 시민, 학생들에게 불씨가 되었다. 거의 가망이 없는 상황에도 민주주의의 확고한 희망을 품었고 이를 무기 삼아 우상을 뚫고 이성의 과녁으로 돌진했다. 
저널리스트로 있는 이상, 붓을 꺾고 글을 안 쓸 수가 없을 것이다. 나처럼 글을 안 쓰고 깊은 명상에 잠기는 철학자가 있을 수 있어도 글을 안 쓰는 저널리스트는 이미 저널리스트가 아니다. (중략) 생각이야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할는지 모른다. 나는 혼자서 생각을 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혼자서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글도 누구나 다 쓸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싶은 얘기를 다 쓸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혼자서 나만이 보기 위해서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글을 누구나 다 제때에 발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정호 <비평의 논리와 지성의 논리> 1974년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는 박정희, 전두환 독재하에서 불태워진 금서였다. 주류 기득권의 사고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리영희 – 1부 ‘불씨’>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전환시대의 논리>를 이렇게 말했다. 
유시민 작가
“그 책을 보니까 실체가 보이는 느낌…”
임진택 마당극연출가 
"죽비로 때렸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막 종소리 울린 거죠. 땡땡땡, 하고 막. “정신 차려! 정신 차려!”라고 말씀을 하신."
최승호 뉴스타파PD
“말하자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랄까? 세계관이 한방에 깨지는 경험이죠.”
임옥상 미술가
“이제야 비로소 세상을 알게 된 것 같은 느낌…”
쉽게 말해, 읽는 이들의 생각과 사고를 갈아 엎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전환시대의 논리>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걸까?

  3. 베트남 전쟁과 ‘미국의 광기’를 드러내다.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베트남전쟁은 모든 언론에서 정의로운 전쟁으로 포장됐다.  반공주의의 이념으로 베트남전쟁은 공산주의를 물리치기 위한 자유세계의 성스러운 전쟁이었다. 1965년,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파병 역시 정당한 것이었다. 
1960년대 후반, 조선일보 외신부에서 일했던 리영희는 당시 주류 언론의 보도와는 다른 관점을 <전환시대의 논리>에 담았다. 베트남전쟁은 오랜 식민지배를 받았던 베트남 민중의 민족해방전쟁으로 규정했다. 이 전쟁은 미국의 ‘통킹만 사건’이라는 공작을 거쳐 부도덕하게 일어났음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다. 미국 행정부의 거짓 주장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리영희는 이러한 논거의 자료로 미국 국무부의 공식 비밀문서에 근거해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을 제기했다. 당시 독재정권의 꼭두각시 인형처럼, 반공 이념에 근거해 보도를 일삼았던 국내 언론에 탐사보도와 심층보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4. 2020년, 리영희는 왜 기억되어야 하는가?

시대가 반드시 인물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 2020년 리영희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것들은 잊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억보다 망각을 우선시하게 되면 문제가 일어난다. 기억은 미래를 열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우리의 손에 놓인 귀중한 것들은 어디에서 왔고, 앞으로 어디에 쓰여야 하는가?’ 
우리는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는 지식과 정보 사이를 유영하며 살아간다.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생산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넘어 탈진실의 시대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가 무시된 시대가 있었다. 사회 자체가 감옥이었고, 암흑이었다.  그 때는 진실을 볼 수 없도록 눈을 가렸다면, 지금은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눈앞을 어지럽히고 있는지 모른다. '탈진실'의 시대일수록 '진실'추구는 계속돼야 한다. 진실 추구는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고통을 무릅써야 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  

리영희 <우상과 이성>
제작진
취재작가이경은
글 구성정재홍
연출김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