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 최용익 칼럼_박근혜 후보의 오도된 역사의식

2012년 08월 24일 06시 51분

박근혜 후보가 독재자 박정희 과거 행적에 대해 내린 자화자찬성 평가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대통령의 통치 행위는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은 대통령이 됐을 경우 이끌어 갈 국정방향을 가늠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잣대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박근혜 후보의 5.16 쿠데타와 유신독재 등 박정희 통치시기에 대한 일방적인 합리화와 칭찬은 아무리 자신의 아버지라고는 하지만 제 논에 물대기 수준을 넘어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철학의 빈곤과 퇴행적인 역사인식이 그렇습니다. 박 후보는 5.16 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하는가, 하면 구국의 결단 또는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라는 등의 표현으로 독재자 박정희를 극찬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됩니다. 5.16 군사반란은 4.19 학생혁명으로 적법하게 구성된 제2공화국 정부를 밤 사이에 몰래 한강 다리를 넘어온 병력을 동원해서 뒤엎은 명백한 하극상이자 쿠데타입니다. 박정희 개인과 반란 지도부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마치기 위해 입대한 병사들을 방패막이로 앞세웠습니다. 이런 못된 습관을 보고 배운 전두환 등 신군부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암살된 후 혼란한 틈을 타 12.12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5공 독재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자행된 불법, 탈법, 초법적 민주주의 압살과 인권유린은 수많은 학생과 노동자, 농어민들에 대한 감금과 고문, 죽음을 불러왔습니다. 김대중씨 납치 등 정적에 대한 잔인한 복수와 동백림 사건과 인혁당 사건 등 분위기 반전용으로 활용됐던 간첩 조작 사건들로 온 국민은 숨 막히는 병영국가 체제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최근 문제가 된 장준하 선생의 타살 의혹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일본 천왕에 바치는 충성 혈서를 쓰고 만주 군건학교를 거쳐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 독립운동가들을 때려 잡던 일본군 중위 출신의 박정희가 그 대척점에 서 있는 광복군 대위 출신의 장준하 선생을 눈에 가시로 생각했던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해방 후 한국 현대사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매국노와 애국자의 비대칭적 관계를 상직적으로 드러내는 사례였습니다. 일제에게 강탈당한 조국을 되찾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독립 투사들이 해방 이후에도 한국사회의 주류세력이 되기는커녕 일제 때 일본인들에게 빌붙어 호위호식하던 자들에게 다시 박해를 당하는 배반의 역사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김구, 여운형 등 우리나라의 애국자들은 하나 같이 배후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장준하 선생도 1975년 등산 도중 숨진 뒤 37년 만에 두개골에 지금 6센티미터의 원형 함몰 흔적을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사인을 둘러싼 의혹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독재 18년을 상찬하는 과거 회귀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말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 얘기하자는 식의 이중성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박정희가 김지태씨로부터 강탈한 정수장학회에 대해서 보이고 있는 오불관헌 식의 태도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본보기가 있습니다. 옛 소련의 악명 높은 독재자 스탈린이 죽은 뒤에 그의 딸 스베틀라나는 스탈린을 혹독하게 비판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독재자였고 딸로서 침묵한 나도 공범자다. 이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으니 내가 그 잘못을 안고 가겠다.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의 국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면 최소한 스탈린의 딸 정도의 역사의식과 책임감을 갖춰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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