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활동비의 집행 내역은 물론 지출 증빙서류까지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기에, 특수활동비 집행 기준에 불과한 자체지침을 법무부가 공개 못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검찰이 특수활동비를 제대로 썼는지 검증하기 위해선 지침의 확인이 필요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시간을 끌었다. 공개 여부의 통보 기한 마지막 날인 5월 8일, 법무부는 “판결문 검토와 내부 의사결정을 위한 기간이 소요된다”며 통지를 2주 연기했다.
5월 17일, 법무부는 지침의 공개를 또다시 거부했다. 지난 2월 비공개 통보 때와 같이 공개하면 “범죄의 예방과 수사 등 직무 수행이 현저히 곤란해진다”고 했다.
▲ 특수활동비의 집행 내역은 물론 지출 증빙서류까지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법무부는 특활비 집행 기준에 불과한 자체지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세청, 경찰청 등 범죄·기밀 다루는 다른 기관은 지침 ‘부분공개’
뉴스타파는 정보, 수사 등 기밀 업무를 수행하는 경찰청, 해양경찰청, 국세청, 관세청에도 특수활동비 자체지침을 공개해달라고 정보공개청구했다. 해양경찰청을 제외한 경찰청, 국세청, 관세청 세 기관이 공개했다.
국세청이 공개한 ‘특수활동비 집행지침’이다. 관계 공무원이 특수활동비를 쓰기 위해서는 경비 지출의 목적은 물론, 왜 이 금액의 예산이 필요한지 지출 내역을 기입한 ‘지급의뢰서’를 부서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 국세청의 특수활동비 자체지침 중 ‘지급의뢰서’ 양식
이후 부서장은 특수활동비를 내어주면서 관계 공무원에게 언제, 얼마를, 어떤 명목으로 받았는지 ‘영수증’을 적도록 하고 이를 보관한다.
▲ 국세청의 특수활동비 자체지침 중 ‘영수증’ 양식
관계 공무원은 이제 현장에 나가 정보 등을 수집하며 특수활동비를 집행한다. 이 과정에서도 언제, 누구에게, 얼마를, 왜 줬는지, ‘집행내용확인서’를 남겨야 한다.
▲ 국세청의 특수활동비 자체지침 중 ‘집행내용확인서’ 양식
정보원의 신원이 노출되면 안 되는 경우에도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하게 해달라는 요청서’를 별도 작성해 부서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 국세청의 특수활동비 자체지침 중 ‘집행내역확인서 작성 생략 요청서’ 양식
국세청의 지침 어디를 봐도 ‘공개될 경우 직무 수행이 현저히 곤란’해지는 내용은 없다.
관세청의 ‘수사특수활동비 운용지침’, 경찰청의 ‘특수활동비 집행지침’도 마찬가지다. 특수활동비의 구체적인 ‘지급기준’과, ‘지급신청’에 필요한 ‘서류’, ‘특수활동비 심사위원회’의 설치와 운영 방식, ‘집행내역관리’ 방법 등이 상세히 나와 있다. 지침의 공개로 인해 범죄의 예방, 수사 등 직무 수행에 줄 수 있는 내용은 없다.
법무부, 정보공개법 ‘부분공개’ 무시하고 전체 비공개
법무부의 주장처럼, 지침의 공개로 인해 수사 등 직무 수행에 곤란을 초래할 내용이 일부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해당 정보를 가리고 ‘부분공개’하면 된다.
‘정보공개법 14조(부분 공개)’는 ‘비공개 정보와 공개 가능한 부분이 혼합되어 있는 경우, 비공개 정보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고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세청, 관세청, 경찰청 등 ‘수사 기밀’을 다루는 3개 기관은 이 법조항에 따라 지침을 ‘부분공개’했다. 반면, 법무부는 ‘수사 기밀’을 이유로 지침 전체를 ‘비공개’했다. 법무부가 검찰 예산의 검증을 방해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법무부의 비공개 결정은) 예산 오남용 검증을 사실상 방해하는 행위로 받아들여도 되냐”는 뉴스타파의 질문에, 법무부 관계자는 “판결문 내용과 지침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판단해서 정보 비공개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뉴스타파·시민단체, ‘윤석열 특수활동비’ 검증 준비 중
이번 법무부의 특수활동비 자체지침 비공개로 오는 23일 공개될 검찰 특수활동비 예산의 오남용 검증 작업에 차질이 생겼다. 검찰 내부의 특수활동비 ‘집행 기준’을 규정한 자체지침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검증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국세청과 경찰청 등이 공개한 특수활동비 지침을 참고할 것이다. 검찰 특수활동비 자체지침의 내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뉴스타파와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3개 시민단체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자신의 이해 관계와 정치적인 목적과 맞닿아 있는 특정 수사를 밀어주고, 자신을 따르는 일군의 특수부 검사들을 관리하는 데, 세금인 특수활동비를 오남용하지는 않았는지 검증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