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구멍 뚫린' 의료폐기물 관리 시스템... "환경부 직무유기"

2021년 02월 16일 16시 18분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환자 치료 과정에서 나오는 격리의료폐기물 처리 문제도 사회적 화두다. 치료과정에서 사용된 주사바늘, 붕대 등 의료용품 뿐만 아니라 환자들이 사용했던 일체의 용품도 모두 격리의료폐기물로 처리된다. 
의료폐기물의 처리 과정은 분초 단위로 시스템에 기록된다. 정부가 지난 2008년부터 의무화한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무선 주파수를 이용해 ID를 식별하는 기술) 기반 의료폐기물 관리시스템에 의해서다.
이 제도에 따라 의료기관은 의료폐기물을 배출할 때 RFID 전자태그 스티커를 의료폐기물 전용 배출용기에 붙여야 한다. 이 폐기물을 운반차량으로 옮길 때 의료기관과 폐기물 운반업체는 전자태그를 읽어들여 ‘배출’ 시점을 기록한다. 운반차량은 의료폐기물을 소각 시설이 있는 폐기물 처리업체로 옮긴다. 폐기물 처리업체는 폐기물을 창고에 넣는 ‘입고’ 시점, 소각로에 넣는 ‘소각’ 시점 등에 전자태그를 읽어들여 폐기물 처리과정을 기록한다.
▲ 의료폐기물에 부착된 RFID 전자태그 처리 과정 
이렇게 만들어진 전자태그 데이터는 곧바로 한국환경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올바로 시스템’에 전송된다.
의료폐기물은 박스 하나하나에 담아서 밀봉하도록 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의료폐기물 박스 하나하나 단위까지도 이동 경로를 추적하겠다라고 해서 RFID시스템 도입한 거죠. 그래서 의료폐기물 담았던 박스 하나하나에 RFID 태그를 다 붙여서 추적하겠다라고 하는 것이죠. 훨씬 더 세분화된 추적 시스템을 갖추는 게 의료폐기물 RFID 시스템이라고 보면 되죠. 

홍수열 /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폐기물 하나하나의 경로를 분초 단위로 추적하겠다는 이 시스템은 잘 작동하고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뉴스타파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실을 통해 7월 20일부터 한달 분량의 올바로 시스템 데이터를 확보해 분석했다.

창고에 들어가기도 전에 태웠다? 입고일보다 소각일이 앞서는 데이터 6천 건 넘어

뉴스타파 분석 결과, 의료폐기물 소각 날짜가 엉터리로 입력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이대목동병원에서 2020년 7월27일 배출한 의료폐기물은 당일 의료폐기물 처리업체 아림환경에 입고됐는데 이를 소각한 날짜는 황당하게도 입고일보다 사흘 앞선 24일로 기록돼 있다. 들어오지도 않은 의료폐기물을 소각한 것으로 처리돼 있는 것이다.
가톨릭대 은평성모병원에서 2020년 8월 1일 배출된 의료폐기물 사례도 비슷하다. 이 폐기물은 의료폐기물 처리업체인 창광실업에 8월 2일 입고된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처리업체는 해당 폐기물이 병원에서 배출되기도 전인 7월 30일에 이미 소각했다고 신고했다.
이렇게 소각장에 입고되기도 전에 태웠다고 보고된 폐기물이 6천 건이 넘는다. 폐기물에 부착된 전자태그를 소각장에 설치된 리더기가 자동으로 인식해서 처리 시점을 보고한다는데 대체 왜 이런 문제가 생긴걸까.
문제의 의료폐기물 RFID 데이터를 보면 센싱 여부, 즉 전자태그 자동 인식 여부가 ‘n’으로 기록돼 있다.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통신이 불안정하거나 전자태그가 불량일 경우 등에는 센싱이 되지 않은 것으로 기록된다고 설명했다.
자동으로 센싱이 되지 않은 폐기물 기록은 ‘잔량 처리’라는 과정을 거쳐 소각업체가 수동으로 소각시점을 보고하게 된다. 폐기물이 배출되기도 전에 소각처리됐다는 식의 엉터리 데이터 6천 건 모두 소각업체가 수동으로 소각시점을 보고한 데이터다.

의료폐기물 추적 관리 시스템… 30%는 추적 불가

뉴스타파 분석 결과, 국내 의료폐기물 처리업체들이 소각한 폐기물 가운데 이른바 '센싱'이 안 된 비율은 29.6%로 나타났다. 전자태그 기록 30% 가량은 정확한 소각 시점, 즉 최종 처리 시점을 추적할 수 없는 셈이다. 이런 현상은 특정 업체에 국한되지 않고 국내 의료폐기물 처리업체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전자태그 시스템에 허점이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전자태그 정보를 허위로 기록하는 것도 가능하다.
▲ 업체별 전자태그 미인식률
뉴스타파 취재진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제보자로부터 의료폐기물 처리업체인 아림환경 내부에 쌓여있는 폐기물박스를 촬영한 사진 등을 입수해 올바로 시스템의 전자태그 처리 결과와 대조해 봤다. 
제보자가 촬영한 창고 적재 폐기물 박스에는 2020년 8월 2일 대구병원에서 사용개시됐다고 적혀있었다. ‘올바로시스템’ 데이터에 따르면 이 폐기물은 8월 10일 대구병원에서 배출돼 8월 11일 아림환경에 입고된 것으로 나온다. 같은 날 입고된 의료폐기물은 대부분 다음날인 12일 소각처리 됐고 일부는 12일, 14일에 소각된 것으로 올바로 시스템에 보고됐다.
그런데 제보자가 촬영한 사진의 메타정보 데이터를 확인한 결과, 촬영 날짜는 8월 16일로 나타났다. RFID 시스템에는 늦어도 8월 14일까지 소각한 것으로 보고된 폐기물이 8월 16일까지는 창고에 그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의료폐기물 소각 시점이 허위로 보고된 경우다.
▲ 의료폐기물 소각날짜를 실제와 다르게 보고한 사례
아림환경 관계자는 “어떻게 태그 하나하나를 일일이 대조를 하냐”며 정확한 소각 시점을 보고할 수 없다고 말했다. 폐기물 처리 전문가인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인식되지 않는 전자태그 비율 30%는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 시스템 자체가 무용지물이 된 거잖아요. 그 비싼 돈 들여서 RFID 시스템 구축하고, 병원에서도 지금 RFID 때문에 태그 다 구입해야 하고 비용이 증가하는 건데... 이렇게 배출자들한테 비용은 비용대로 증가하게 해 놓고 제대로 작동 안 하는 거면... 30%가 오류가 난다는 건 문제가 있는 시스템이잖아요.

홍수열 /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감염 가능성 있는 의료폐기물… 추적 관리 필요

▲ 층층이 쌓인 폐기물 맨 아래 쪽 상자가 터져서 내용물이 흘러나와 있다.
아림환경 제보자가 보내온 사진을 보면 층층이 쌓여 있는 의료폐기물 박스 중 상당수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찌그러지거나 터진 것을 알 수 있다. 하단에 쌓인 상자에선 액체가 마치 침출수처럼 흘러나왔다. 제보자는 “물이 새고 혈액이 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설명했다.
아림환경 관계자는 의료기관에서 폐기물 포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림환경에서 이사로 근무하다 퇴사한 또 다른 관계자는 평소 관리가 부실했다고 말했다.
쥐가 많이 생겨. 쥐가. 이 안에 쥐가 쓰레기가 막 파고... 사실은 근본적으로 창고 조사하면 걸릴 게 많죠. 냉동창고 가동 한 개도 안 돼요. 지금도 아마 내가 봤을 때 안 될 거야. 이것도 다 불법. 환경청에서도 모른다니까, 이런 거를.

아림환경 전 이사
의료폐기물은 모든 폐기물 중에서 가장 엄격하게 관리, 규제 되는 폐기물이다. 감염 위험 때문이다. 감염전문가들은 의료폐기물 처리가 허술하게 이뤄질 경우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의료폐기물 중에는) 아무래도 감염성 폐기물이 많고, 꼭 감염성 물질이 아니더라도 처리자가 오염되거나 운반과정에서 오염이 일어날 경우 2차 피해가 가능한 물질들이 많기 때문에 특별한 처리 규정이나 기준이 필요한 폐기물들이죠.

엄중식 / 가천대 감염내과 교수

2019년 의료폐기물 대란 당시에도 RFID 허위 보고

서울기술연구원이 발행한 현장리포트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의료폐기물 처리업체들의 처리량은 허가 용량 대비 98%를 차지해 턱밑까지 차오른 수준이었다. 2019년에는 처리하지 못한 의료폐기물이 사회 문제가 됐고, 처리단가도 크게 올랐다.
당시 아림환경은 처리 가능한 소각량보다 많은 의료폐기물을 가져온 뒤, 올바로 시스템에는 정상 처리한 것처럼 허위 신고를 했다. 처리하지 않은 의료폐기물은 소각장 인근 창고나 노상에 불법으로 쌓아뒀다가 적발됐다. 
이 사건은 RFID 시스템 허위 입력 문제와 연결돼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지난 달 환경부 장관에 취임한 한정애 의원은 2019년 10월 1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RFID 조작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문제는 의료폐기물 처리업체가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불법 행위를 해도 제대로 처벌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림환경은 2020년에도 신고 규격과 다른 냉동창고를 운영하는 등 불법으로 소각장을 운영하다 환경청에 적발됐지만, 즉각 처분이 이뤄지지 않았다. 전국에 있는 의료폐기물 처리업체가 14곳에 불과해, 일부업체가 영업정지를 받으면 의료폐기물을 제때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의료폐기물 업계 관계자는 “아림환경을 코로나가 살렸다”며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당국이 아림환경을 영업정지 시키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환경청 관계자도 영업정지 시행 시점에 대해서 법률적 판단과 현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올바로시스템을 포함한 폐기물 관리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지난 5년 간 180억 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했다. 특히 2020년에는 한 해 30억 원 수준이던 예산을 올해는 50억 원으로 올렸다.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의료폐기물 추적 관리 시스템은 여전히 큰 구멍이 뚫려있는 상황이다.
이건 좀 제가 볼 때는 사안이 굉장히 심각합니다. 환경부가 지금 자랑하는 병원 의료폐기물 관리 시스템 자체가 무력화된 상황이에요. 이게 몇 년째 이렇게 되었다라고 하게 되면 환경부하고 환경공단 직무유기예요.

홍수열 /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뉴스타파 취재 결과에 대해 올바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은 RFID 인식률 개선을 위해 현장 환경 개선과 기술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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