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술접대 수사기록 ① "접대받은 검사 더 있다"

2021년 01월 27일 12시 35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옥중 입장문으로 촉발된 ‘검사 술 접대’ 의혹. 검찰은 김 전 회장으로부터 접대를 받은 것으로 지목된 현직 검사 3명 중 1명만 부정청탁 금지법(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뉴스타파는 최근 ‘봐주기 수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이 사건 수사기록 1500쪽 분량을 입수했다. 이 사건 핵심 관계자인 전현직 검사는 물론 술 접대가 벌어진 것으로 지목된 서울 강남 소재 유흥주점 관련 조사내용 등이 망라된 기록이다. 
뉴스타파는 수사기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현직 검사들과 특수통 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유착과 사건 무마 시도 정황, 그리고 현직 검사들이 수사망을 빠져나간 과정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검사 술접대' 수사 기록.  

“간 적 없다” “기억 안 난다”...피의자가 된 검사들

지난해 10월 16일 김봉현 전 회장의 폭로로 시작된 ‘검사 술 접대’ 사건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접대 비용을 낸 김봉현 회장, 술 자리를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검사 출신 이주형 변호사, 이 변호사 소개로 술 접대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3명의 현직 검사(나 모, 유 모, 임 모) 등이다.  
검찰은 먼저 문제의 술자리가 실제로 있었는지를 입증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김봉현 회장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2019년 7월 18일 밤 서울 강남의 F 유흥주점에서 현직 검사들에게 술 접대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주형 변호사와 3명의 검사는 모두 “술자리 자체가 없었다”고 부인했다. 당일 동선 등을 확인한 검찰 수사팀은 이들 중 일부가 7월 18일 밤 술접대 장소로 지목된 서울 강남의 유흥주점 인근에서 택시를 이용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검사들은 여전히 “접대 자리에 간 적이 없다”거나 “그 곳에서 택시를 왜 탔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식으로 버텼다. 아래는 나 모 검사의 검찰 진술 조서 중 일부.
(김봉현 진술에 의하면 이주형 변호사와 검사 3명이 000유흥주점 1호실에서 술자리를 갖고 있을 때 인사를 했다는 데 어떤가요?)
그런 사실 없습니다.

나 모 검사 진술 조서(2020.11.15)

접대 변호사와 검사들, 김봉현 폭로 직후 말 맞춘 정황

뉴스타파는 술자리를 주선한 것으로 의심되는 검사 출신 이주형 변호사가 술 접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현직 검사들과 모의한 정황을 확인했다. 
김봉현 회장이 ‘검사 술 접대’ 의혹을 폭로한 직후 이주형 변호사가 해당 검사들과 전화 통화를 한 사실을 수사기록에서 발견한 것이다. 전화가 이뤄질 당시는 김봉현 회장이 자신이 술 접대를 한 현직 검사들의 이름을 정확히 특정하기 전이었다. 취재진은 당시 상황을 시간대 별로 정리해 의혹을 확인해 봤다.
김봉현 회장이 자필로 작성한 입장문이 서울신문 온라인 기사를 통해 처음 공개된 시간은 지난해 10월 16일 오후 12시 5분. 그런데 이때 공개된 김 회장의 입장문에는 이주형 변호사만 ‘A변호사’로 지칭됐을 뿐, 술 접대를 받은 검사들은 “라임 수사팀 합류”, “윤석열 검찰총장 라인으로 삼성 특검 등에서 수사”라고만 언급돼 있었다. 실명이나 현재 소속을 알 수 있는 정보는 들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주형 변호사는 서울신문이 기사를 낸 지 불과 1시간 정도가 지난 뒤 두 차례에 걸쳐 나 모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검사는 이후 수사과정에서 술접대를 받은 사실이 인정돼 부정청탁방지법(일명 김영란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람이다. 
김봉현 회장이 나 모 검사의 실명을 처음 밝힌 건 서울신문 보도 다음 날, 서울 남부구치소에서 진행된 법무부 감찰본부와의 면담에서였다. 다음은 법무부 감찰본부 면담 내용에서 나온 김봉현 회장의 진술 내용.
2019년 7월 경 이주형 변호사가 '대우조선해양 수사팀에 같이 근무했던 후배 검사들과 술자리를 하게 됐으니, 000주점에 특실을 예약해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명확히 기억하는 검사는 나00검사입니다.

김봉현의 법무부 진술조서(2020.10.17)
이 변호사의 수상한 통화는 또 있었다. 폭로가 있던 날 오후 6시 36분, 이주형 변호사는 임 모 검사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임 검사 역시 술 접대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하지만 첫 폭로가 나올 때만해도 김봉현 회장은 임 검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 회장은 법무부 조사과정에서 임 검사에 대해 “한 분은 그 자리에서 나이가 젊은 검사님이었는데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김 회장이 임 검사를 지목한 건 며칠 후 진행된 검찰조사 과정에서 임 검사의 얼굴을 사진으로 확인한 뒤였다. 
정리하면, 이주형 변호사는 김 전 회장의 폭로가 있은 당일, 김 전 회장의 지목이 있기도 전에 술접대 사건 피의자인 검사 3명 중 2명과 통화를 한 셈이다. 나머지 1명인 유 모 검사는 당시 해외 연수 중이었다. 
이주형 변호사가 접대를 받은 검사들과 사전에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모의한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상황. 검찰 수사팀은 이주형 변호사에게 두 현직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던 이유를 묻고 추궁했지만, 이 변호사는 “가까운 사이라서 논란이 된 기사 내용을 공유했을 뿐”이라고 피해 나갔다.
(당사자로 지목된 나 모 검사가 직접 아니라고 말을 했는데도 제 3자인 임 모 검사에게 전화를 했다는 것인가요?)
제 3자라기보다는 임 모는 대우조선해양팀의 막내처럼 되어 있고, 친하게 지내니까 '이런 내용 기사가 났는데 너 알고 있냐'고 물어 본 것입니다.

이주형 변호사 진술조서 (2020.11.15)
아쉽게도 수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주형 변호사와 접대 사건 피의자 검사 3명 모두 압수수색 직전에 휴대폰을 분실했거나 버렸다는 믿기 힘든 주장을 펼쳤지만, 검찰 수사팀은 문제 삼지 않았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

김봉현 “술 값 내 준 검사 또 있다”

검찰 수사팀은 결국 2019년 7월 18일 ‘술 접대’가 실제로 있었다고 판단했지만 이주형 변호사와 나 검사만 부정청탁 금지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기는 데 그쳤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검찰의 수사기록을 검토한 결과, 술 접대 의혹 검사 3명 외에도 김봉현 회장이 수사 무마를 목적으로 술 접대를 한 검사가 한 명 더 있다고 주장했던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수원지검 소속의 박 모 검사다.  
지난 해 10월 23일 김봉현 회장은 3쪽 분량의 자술서를 써 수사의 한 축을 맡고 있던 법무부에 제출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던 문서다. ‘추가 검사 술접대’ 주장은 이 자술서에 등장한다.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가 선임한 김00변호사에게 본인의 누나를 통해 천만원을 전달하였습니다. 
제 사건 담당 검사가 박00 검사였는데, 김00 변호사가 저에게 박00 검사와 술 한 잔 하겠다고 해서 건네 주었고..."
추후 김00 변호사에게 두 사람이 술 한 잔 했다는 얘길 전해 들었고...

김봉현 자술서 (2020.10.23)
김 회장이 전달한 돈으로 박 모 검사와 술을 마신 것으로 지목된 김 모 변호사는, 앞서 검사들의 술접대가 이뤄졌던 서울 강남의 유흥주점 직원들이 단골고객으로 기억하던 인물이었다. 검찰 수사기록에는 유흥주점 직원들이 이 변호사를 평소 ‘OO오빠’라고 불렀다고 기재돼 있다. 
김 전 회장은 박 검사가 ‘수원여객 횡령 사건’을 수사하던 시점에 술 접대를 받은 것으로 기억했다. ‘수원여객 횡령 사건’은 김봉현 회장이 라임펀드 자금이 투입된 수원여객에서 240억 원이 넘는 돈을 빼돌린 혐의로 체포돼 구속된 사건을 말한다. 아래는 김봉현 회장의 자술서 내용 중 일부.
조사를 받던 어느 날 박00검사가 오후인데도 얼굴이 벌개서 조사를 하기에, 제 생각으로 어제 저녁에 (내 사건을 맡고 있는) 김00 변호사와 술을 흠뻑 마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김봉현 자술서(2020.10.23)
김봉현 회장은 박 검사가 검사 출신인 이주형 변호사에게 이른바 전관 특혜를 제공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했다. 2020년 5월 초, 박 검사가 김 전 회장의 변호를 그만둔 이주형 변호사에게 김봉현 회장과의 접견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김봉현 회장은 조사 과정에서 “이주형 변호사가 박 검사를 아랫 사람처럼 대했고, 접견 이후 박 검사가 김 전 회장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고도 주장했다.
박00 검사는 처음에는 저에게 '미친 소리 그만해라, 헛소리 하고 있네'라는 등 심한 반말과 욕설을 계속해서, 제가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주형 변호사가 박00 검사에게 와서 면담하고 '00아 나 간다'라고 하면서 나간 후 박00 검사의 태도가 돌변하여 험악한 분위기가 바뀌고 부드러워 졌습니다. 

김봉현 자술서(2020.10.23)
김봉현 회장의 주장대로라면, 박 검사는 접견 자격이 없는 이주형 변호사에게 편의를 제공한 셈이 된다. 수사기관 공무원의 사건소개 행위와 선임서 제출 없는 변호활동을 금지하는 변호사법 위반 행위도 될 수 있다. 
그리고 김봉현 회장은 이렇게 현직 검사가 만들어 준 불법 접견과정에서 이주형 변호사로부터 “여당 정치인들과 청와대 강기정 수석을 잡아주면 윤석열 총장에게 보고 후 조사가 끝나고 보석으로 재판 받게 해 주겠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36조 (재판ㆍ수사기관 공무원의 사건 소개 금지) 재판기관이나 수사기관의 소속 공무원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기가 근무하는 기관에서 취급 중인 법률사건이나 법률사무의 수임에 관하여 당사자 또는 그 밖의 관계인을 특정한 변호사나 그 사무직원에게 소개ㆍ알선 또는 유인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사건 당사자나 사무 당사자가 「민법」 제767조에 따른 친족인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29조의2 (변호인선임서 등의 미제출 변호 금지)변호사는 법원이나 수사기관에 변호인선임서나 위임장 등을 제출하지 아니하고는 다음 각 호의 사건에 대하여 변호하거나 대리할 수 없다.

변호사법 36조, 29조

“술자리 없었다” “불법 접견 아니다”...박 검사와 수원지검 해명

뉴스타파는 새롭게 확인된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박 검사와 수원지검 측에 입장을 물었다. 박 검사는 전화통화에서 “김 모 변호사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수원지검은 “선임계를 내지 않은 것은 맞지만, 이주형 변호사와 김 전 회장의 접견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주형 변호사가 피의자 가족들의 연락을 받고 선임을 하려는 단계였기 때문에 저희가, 선임하겠다라고 하는 상황에서 피의자 접견을 제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접견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원지검 공보담당자 (2021.1.26)
그러나 수원지검의 설명은 이주형 변호사가 지난해 11월 검찰조사에서 밝힌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주형 변호사는 검찰 수사과정에서 문제의 접견(5월 6일)이 있기 직전인 지난해 4월 24일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김봉현 회장에게 변호사 사임 의사를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내가 너(김봉현)로 인해서 후배들에게 조사를 받게 되었고, 더 이상 후배 검사들에게 면이 상해서 네 변론을 못해준다'고 말한 뒤, 실제로 사임계를 냈습니다. 

이주형 변호사 진술조서 (2020.11.15)
따라서 검찰이 문제의 접견을 허가할 당시인 5월 6일에는 이주형 변호사가 김봉현 회장 관련 사건을 수임할 의사가 전혀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이 불법적으로 변호사 접견을 허가했는지에 대해 추가 수사 필요성이 높아지는 이유다. 
제작진
취재조원일 한상진
촬영오준식
편집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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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