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는 눈을 딱 감고 화끈하게 풀어야 기별이라도 간다
지난 3일 재계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개최한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경제민주화를 주창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던 박근혜 대통령은 그러나 당선 이후 ‘규제완화’를 ‘규제개혁’이라고 칭하면서 규제개혁이 절대선인 것처럼 얘기해왔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들을 자세히 들어다 보면 기업이 계속 많은 이익을 향유할 수 있도록 편의를 주는 반면 국민의 생명이나 안전과는 배치되는 것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뉴스타파가 지난 한 달 동안 제보를 통해 취재한 화학사고와 관련 법령은 정부의 이런 ‘친기업적, 반국민적’ 규제완화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다.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그리고 화학물질 관리법을 제,개정하고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경련 등 재계 이익단체들이 노골적으로 국회와 정부를 압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규제완화에 마치 정부의 사활이 걸린 것처럼 행동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라고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말한다.
불산 사고나 가습기 안전사고 같은 사고가 나도 기업이 저런 입장 유지하는 건 기업이 든든한 뒷 배경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 뒷 배경이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었던 것이죠.
실제 정부가 마련한 화평법(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등에 관한 법률)과 화관법(화학물질 관리법)의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의 주요 조항에는 전경련 등 기업 이익단체들의 의견이 집중 반영되면서 모법의 취지가 크게 훼손됐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평가다.
특히 전경련의 요구대로 최고 과징금 부과는 화학사고 발생 사업장이 법 위반으로 여러차례 영업정지를 받은 전례가 있는 경우로 한정된 데다, 전경련의 의견대로 화학물질을 기업의 영업비밀이라고 하면 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되도록 시행령이 마련됐다. 또 이런 영업비밀 조항을 기업이 남용하는 것에 대한 제한 장치도 두지 않아, 기업이 자의적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이를 정부가 제어할 근거조차 없는 상황이 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물질이 얼마 동안, 어떻게 우리 신체에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일반 시민들은 불안할 수 밖에 없다. 뉴스타파는 현재 화학물질 자료를 비공개하고 있는 14,244개 기업의 사업장 목록을 입수해 이를 지난달 26일 ((관련 기사 링크,유해물질 지도 있는 리포트,박경헌 것)) 뉴스타파가 공개한 전국 유해물질 데이터 지도와 비교 분석해 봤다.
이 목록에는 자세한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아 대기업 사업장으로 파악되는 곳을 일일이 확인해 594곳의 상세 주소를 찾아냈다. 이 중 372곳은 뉴스타파가 앞서 공개한 유해물질 데이터 지도상에 표시된 기업과 주소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이들 기업이 환경부 등에 등록해 공개하고 있는 화학물질 이외에 영업비밀 등을 이유로 비공개하고 있는 별개의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머지 222개 사업장은 어떤 화학물질을 취급하거나, 보관하는지 현재로선 전혀 알 길이 없다.
지난해 정부에 신고된 화학물질 관련 사고 신고는 모두 87건으로 2012년 9건에 비해 열배 가량 증가했다. 뉴스타파가 지난 한 달 동안 제보를 통해 취재한 화학물질 관련 사고만도 3건이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를 외치며 당선됐던 대통령은 당선 이후엔 규제완화만이 우리 모두의 살 길인 것처럼 외치고 있고, 전경련을 비롯한 기업 이익단체들은 아직도 멀었다며 더 많은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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