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안전

그들에게만 보인 '유령선'... 세월호 참사일 제주VTS 항적 조작설 검증

2020년 07월 03일 17시 43분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감추기 위해 ‘누군가 1천여 척의 선박, 16만 개의 AIS(선박자동식별장치)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영화 <유령선>의 주장은 사실 무근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 취재결과 영화가 조작의 증거로 제시한 16만 개의 AIS 데이터는 제주 세오름 기지국에 설치된 중국산 선박용 수신기(모델명 SR162G)가 수집한 정상적인 데이터였다.

또 영화가 선박 1천여 척의 AIS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증거로 내세운 데이터 값은 제주 이어도 기지국의 송수신기 오류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이같은 오류가 세월호가 침몰하기 3년 전인 지난 2011년부터 발생한데다 2015년 장비를 교체한 뒤 오류가 없어졌다는 점에서 근거가 희박했다.

즉 영화가 제기한 AIS 데이터 조작 의혹은 당시 제주 세오름 기지국이 중국산 선박용 수신기를 운영했다는 사실과 이어도 기지국에서 4년간 발생한 송수신기 오작동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데서 빚어진 잘못된 추론이었다.

영화 <유령선>은 2년 전 세월호 AIS 조작설과 앵커침몰설을 주장했던 영화 <그날, 바다>의 후속작으로, 방송인 김어준 씨가 제작하고 김지영 감독이 연출했다. 지난 4월 영화가 개봉되자 416가족협의회와 세월호 유가족들이 영화의 내용을 근거로 검찰 특별수사단에 세월호 AIS 데이터 조작 의혹을 밝혀달라고 요청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다.

뉴스타파는 세월호 침몰과 관련된 진실 규명에 기여하기 위해 영화가 제기한 의혹을 하나하나 검증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그들이 찾았다는 ‘유령선’

선박에 장착된 AIS 단말기는 항적 정보를 담은 메시지를 주기적으로 송출한다. 이 메시지는 VHF(초단파) 무선통신을 통해 주변 선박들과 공유되는 한편, 인근의 AIS 기지국을 거쳐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 전달된다. VTS에는 선박의 항적 정보가 AIVDM(수신 원문항적) 형식으로 저장된다.

선박의 AIS 단말기는 또 항적 정보를 담은 메시지를 송출할 때마다 자체적으로 GPRMC(GPS 정보 내장)와 AIVDO(송신원문항적) 형식의 데이터를 동시에 생성한다. 하지만 GPRMC와 AIVDO 형식의 데이터들은 선박에 장착된 VDR, 즉 블랙박스에만 자동 저장될 뿐 VHF 무선 통신을 통해 선박 외부로 전송할 수 없다.

그런데 GPRMC와 AIVDO 형식의 데이터 16만 개가 세월호 참사 당일 제주 VTS에 저장된 것은 누군가 AIS 데이터 전체를 조작한 뒤 제주 VTS 서버에 다시 몰래 심은 게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게 영화의 핵심 주장이다.

영화는 또 AIS의 원리상 한 선박이 보낸 메시지는 주변 선박들과도 공유되기 때문에 세월호 AIS 데이터를 조작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당시 제주 인근을 지나던 선박 1천여 척의 AIS 데이터를 함께 조작해야 했으며, 주어진 시간에 비해 조작할 데이터의 양이 너무 많았던 탓에 조작범이 GPRMC와 AIVDO 형식의 데이터를 미처 지우거나 바꾸지 못해 꼬리가 밟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화를 연출한 김지영 감독은 문제의 데이터를 보낸 선박의 식별번호가 265000000(앞 세 자리 265는 스웨덴 국적 번호), 위경도 정보는 중국 선전시라는 점을 근거로 들어 세월호 참사 직후 누군가 제주VTS 서버에 담긴 데이터를 복사해 중국 선전시에 있는 조작범에게 넘겨 세월호의 AIS 정보를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 영화 <유령선> 중에서

AIS 조작이 6년째 진행 중?...제주-부산-인천 VTS 데이터 교차분석

일각에서 주장하는 세월호의 AIS 데이터 조작설은 사실상 지난 2018년 검증이 마무리된 사안이다. 영화 <그날, 바다>에 대한 뉴스타파 검증보도(https://newstapa.org/article/6AmzR)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종합보고서를 통해 조작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유령선>이 AIS 조작설을 재차 들고 나온 근거는 합리적일까.

뉴스타파는 먼저 영화가 분석했다는 세월호 참사 당일 제주VTS의 데이터 원본을 입수해 직접 분석해 봤다. 영화에서 밝힌 것처럼 GPRMC와 AIVDO 데이터(아빠와 아들)들이 16만 건 정도 확인됐다.

모든 데이터에 담긴 식별정보가 265000000, 위치정보는 중국 선전시로 똑같이 나타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론상 선박의 블랙박스에만 저장되어 있어야 GPRMC와 AIVDO 데이터들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의 데이터들이 세월호 참사 당일에만 존재했던 걸까.

뉴스타파는 세월호 참사 전후 두 달 동안 제주VTS에 수집된 선박 AIS 데이터를 모두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문제의 데이터들은 2014년 3월 24일부터 5월 20일까지 거의 두 달 동안 매일 같이 수집돼 무려 1천만 개 가까운 엄청난 숫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어느 선박의 데이터인지 분석한 결과, 모든 데이터의 선박 식별번호가 265000000이었다. 위치정보는 중국 선전시로 똑같았다.

영화의 주장대로라면 AIS 조작범은 세월호 참사 이전 20여 일, 이후로도 한 달 넘게 중국 선전시에 머물면서 제주VTS 데이터들을 조작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뉴스타파는 올해 5월 1일부터 6월 7일까지 제주와 부산, 인천 VTS에 수집된 선박 AIS 데이터들을 입수해 분석했다.

제주VTS에는 문제가 될 만한 이상한 데이터가 없었다.

하지만 부산 VTS에는 올해 5월 12일과 13일, 그리고 15일에 GPRMC와 AIVDO 데이터들이 각각 만5천 개 정도씩, 모두 3만 개에 가까이 수집돼 있었다.

해당 데이터들을 보낸 것으로 돼 있는 선박의 식별번호는 265000000. 영화 유령선에 나온 것과 똑같은 스웨덴 국적 선박이었다. 그러나 위치 정보는 부산 조도 지역으로 나타났다.


인천 VTS에도 역시 올해 5월 14일, 그리고 5월 25일부터 6월 7일까지 무려 230만 개 넘는 GPRMC와 AIVDO 데이터가 수집돼 있었다.

데이터에 담긴 선박 식별번호는 역시 스웨덴 선박인 265000000이었고, 위치 정보는 인천 소무의도 지역이었다.


역시 영화의 주장대로라면, 참사 6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누군가 부산과 인천 VTS 데이터를 빼내 인근 섬 지역에서 조작한 뒤 다시 VTS 서버에 몰래 심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누가 봐도 비상식적인 주장이다.

그렇다면 선박 외부로 송출할 수 없는 GPRMC와 AIVDO 형식의 데이터들이 왜 제주와 부산 인천 VTS에 수집된 걸까.

‘유령선’의 정체는 중국산 선박용 AIS 수신기

뉴스타파는 올해 5월 중 부산 VTS에서 발견된 GPRMC와 AIVDO 데이터들의 수집 경로를 자세히 파악했다.

문제의 데이터들은 부산 VTS의 기지국 8곳 가운데 모두 조도 기지국을 거쳐 수집된 것들이었다.


인천 VTS에 수집된 문제의 데이터들 역시, 7개 기지국들 가운데 유독 소무의도 기지국을 거쳐 수집된 것들이었다.


국회를 통해 두 기지국의 장비 구성과 실물 사진을 입수했다.

다른 기지국들이 송수신용 장비로 선박 AIS 데이터를 받는 것과 달리, 이 두 곳은 수신기 장비만 2대씩 묶어 운영하고 있었다. 메인 수신기로 AIS 데이터를 받다가 기기에 이상이 생기면 예비 수신기가 작동하는 방식이었다.

▲ 부산 조도 기지국의 메인-예비 수신기(선박용) 구성도

그런데 부산 조도와 인천 소무의도 기지국을 통해 수집된 GPRMC와 AIVDO 데이터들은 모두 예비 수신기를 통해 수집됐다.

두 기지국의 예비 수신기 모델은 우리나라 GMT사의 R300이었지만 장비 내부에서 실제로 작동되고 있는 모듈은 중국산 SR162G 수신기였다.

국가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은 국산이어야 한다는 ‘직접생산자증명’ 규제 때문에 가성비가 좋은 중국산 수신기를 국산 모델로 개조한 것이었다.

중국산 SR162G 모델은 선박용 AIS 수신기였고, GPRMC와 AIVDO 데이터를 VHF 무선 통신 방식이 아니라 전용선을 통해 기지국으로 송출하는 기능이 탑재돼 있었다.

▲ SR162G 선박용 수신기와 제품 사양

제조사는 중국 선전시에 소재한 스마트 라디오 홀딩스. 뉴스타파는 이 회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해 봤다. 코로나19 여파로 뉴스타파 취재진이 중국을 방문하는 것이 불가능해, 현지 교민의 도움을 구했다.

확인 결과, 홈페이지 상 주소지인 선전시 가오켈리 빌딩에 실제로 입주해 있는 업체였다.


뉴스타파는 전화와 이메일로 제조사 대표를 접촉해 SR162G 수신기 한 대를 구매했다.

국제 배송을 통해 1주일 만에 도착한 제품을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부산에 있는 AIS 전문업체로 들고 가 분석을 의뢰했다.

우선 수신기의 초기 설정 정보부터 확인했다. 선박 식별번호가 265000000으로 설정돼 있었고, 마지막 남겨진 GPS 위치 정보는 중국 선전시 한복판, 제조사인 스마트 라디오 홀딩스 인근으로 나타났다.

▲ 뉴스타파가 구매한 SR162G 수신기의 초기 설정정보

그렇다면 이 수신기로 실제 선박들의 AIS 메시지를 받으면 어떤 데이터들이 수집될까.

업체 건물 외벽의 AIS 수신 안테나를 이 수신기와 연결하고, 수신기와 컴퓨터를 연결해 데이터를 수집하도록 했다. 수신기가 기지국 역할을, 피씨가 VTS 역할을 하도록 구성한 것이다.

▲ SR162G 모의 실험세트 구성도

기기를 부산항 인근 선박들이 쏘아올린 AIS 메시지가 이 수신기를 통해 컴퓨터로 수집돼 화면에 표시됐다.

수집된 데이터들을 뽑아내 분석해 봤더니, 실제 선박들이 보낸 AIS 메시지들이 정상적인 AIVDM 형식으로 들어와 있는 동시에, 선박 블랙박스에만 저장돼야 하는 GPRMC와 AIVDO 형식 데이터들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 SR162G 모의 실험세트를 통해 수집된 GPRMC와 AIVDO 데이터들

이유는 원칙적으로 송수신용 장비를 써야 하는 기지국에 선박용 수신기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올해 5월과 6월 부산과 인천 VTS에 수집된 GPRMC와 AIVDO 데이터들이 모두 중국산 선박용 수신기가 설치된 기지국을 통해서만 수집된 이유와 동일했다.

그렇다면 영화 <유령선>이 AIS 조작의 핵심 증거로 내세운 제주VTS의 GPRMC와 AIVDO 데이터들 역시 같은 이유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검증했다.

문제의 GPRMC와 AIVDO 데이터 쌍들은 제주VTS 기지국 4곳 가운데 오직 세오름 기지국을 거쳐 수집된 것으로 나타났다.

 세오름 기지국 장비 운용 현황이 담긴 해수부 내부 자료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예상대로 2014년 3월 24일부터 5월 20일까지 세오름 기지국에서 SR162G 수신기를 테스트 운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 당일을 포함한 2개월간 중국산 선박용 수신기가 자체 생성한 데이터들이 제주VTS로 전송됐던 것이다.

장비 제조사의 초기 설정정보인 선박 식별번호 265000000도 동일했다.

다만 제주 세오름 기지국에선 SR162G 수신기를 ‘테스트 운용’했던 탓에 GPS를 연결하지 않아 위치 정보가 제조사 소재지인 중국 선전시로 생성됐고, 현재 부산 조도와 인천 소무의도 기지국은 GPS를 연결해 운용하고 있어 해당 기지국 위치 정보가 VTS로 전달된 차이만 있었다.


영화 <유령선>에 인터뷰이로 등장했던 AIS 전문가인 한국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심우성 박사에게 이같은 취재 내용을 밝히고 의견을 물었다.

그는 “선박용 수신기가 기지국에 설치되는 건 원칙상 안 될 일이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수신기 자체 생성 데이터가 VTS로 전달되는 일은 가능하다”고 답했다.

결국 김지영 감독이 경악했다는 16만 개의 GPRMC와 AIVDO 형식의 데이터는 AIS 조작범이 남긴 흔적이 아니라, 제주 세오름 기지국에 장착됐던 중국산 AIS 수신기가 자체 생성한 정상 데이터였다. 또 김 감독이 주장한 유령선의 정체는 중국산 AIS 수신기의 초기 설정값이었다.

선박 1천 척 AIS 조작?...팩트는 ‘이어도 기지국 송수신기 오류’

영화 <유령선>이 AIS 조작의 흔적이라고 제시한 증거는 GPRMC와 AIVDO 데이터 외에 한 종류가 더 있다. 선박에서 수신된 AIVDO 데이터들 가운데, 통신상태가 ‘000’으로 나타나 있는 것들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제주 VTS 수집된 1천여 척의 항적 정보에는 통신상태가 ‘000’으로 돼 있는 데이터가 3만 개 가까이 들어있다.

영화는 이 데이터들이 누군가 선박 AIS 메시지의 시간 정보에 손을 댄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데이터들 역시 세월호 침몰 당일 뿐만이 아니라 2014년 3월부터 5월까지 석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수집됐다. 전체 개수는 무려 230만 개가 넘었다.

해당 데이터들은 모두 이어도 기지국을 통해서만 들어왔다. 이어도 기지국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뉴스타파가 입수한 해수부 내부 검토 자료에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이어도 기지국 수신기에서 작동 오류 현상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었다.


오류를 일으킨 장비는 스웨덴 CNS사의 VDL6000 송수신기를 개조한 국산 제품이었다. 그런데 이 장비는 선박의 AIS 메시지가 기지국에서 정상 데이터로 해석된 뒤 오류 데이터가 추가로 생성되는 현상이 4년 동안 이어졌다.

실제로 영화가 문제 삼은 당시의 모든 AIVDO 데이터들은 정상적인 AIVDM 데이터 생성된 뒤 수 초가 지나 추가로 생성된 것들이다.

이 오류 데이터들은 통신상태만 ‘000’으로 바뀌었을 뿐, 선박 위치와 속도, 코스, 헤딩값 등 핵심 항적정보들은 정상 데이터와 모두 동일했다.


영화에서 AIS 조작의 또 다른 증거로 제시된 두우패밀리호의 AIVDO 데이터들도 의문이 해소된다.

영화는 참사 당일 세월호와 마주쳤던 두우패밀리호의 블랙박스는 저장 용량의 한계로 12시간 분량만 저장됐고, 오전 7시 30분 이전 데이터는 자동 삭제됐는데도 제주VTS 파일 속에는 오전 5시와 6시대의 두우패밀리 AIVDO 데이터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며, 이 역시 조작의 흔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 데이터들(8개) 역시 당시 오류 현상이 있었던 이어도 기지국을 거쳐 수집된 것들이었다.

정상 데이터(AIVDM)와 비교할 때 핵심 항적정보들은 똑같고 통신상태만 바뀐 오류 데이터(AIVDO)가 추가 발생한 것일 뿐, 조작과는 무관했던 것이다.


이론만 쫓다가 현실을 놓쳐버린 영화 <유령선>

뉴스타파는 이상의 취재 내용을 질의서에 담아 김지영 감독에게 전달하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뉴스타파가 확보한 모든 자료들을 넘겨주면 분석해본 뒤 연락하겠다고 전해왔다.

이에 뉴스타파는 인터뷰 현장에서 자료를 함께 열람한 뒤 대화를 나누는 방식을 수정 제안했다.

하지만 김 김독은 최종적으로 인터뷰 대신 6장 짜리 답변서만 보내왔다. 세오름 기지국 선박용 수신기 테스트 운용과 이어도 기지국 송수신기 오류의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 외에는 뉴스타파 지적한 핵심 질문에 대한 해명은 빠져있었다. 

제작진
취재김성수 최윤원 이명주
촬영김기철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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