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 노조 파괴 ① 삼성과 파리바게뜨의 ‘데칼코마니’

2021년 08월 18일 16시 14분

SPC그룹이 ‘노조 파괴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파리바게트 제빵사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매장마다 배치된 제빵사들을 담당하는 현장 관리자들이 민주노총 노조 탈퇴와 한국노총 가입을 종용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런 ‘노조 파괴 공작’은 10년 전 삼성그룹이 작성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의 내용과 같거나 유사하다. 회사가 주도해 만든 이른바 ‘어용 노조’를 통해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꾸린 ‘진짜 노조’를 와해시키는 전략이다. 10년의 시간 차가 무색할 정도로 두 회사가 노조를 대하는 방식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데칼코마니 1. 일명 ‘어용 노조’의 등장

파리바게트의 임종린 제빵사는 수당 문제로 정의당의 ‘비상구’(비정규직 노동상담 창구)를 찾았다가 뜻하지 않게 본사의 불법 파견 사실을 알게 됐다. 임 제빵사는 불법 파견을 바로잡기 위해 노조를 설립했다.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 파리바게뜨지회였다. 임 제빵사가 지회장을 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의 목표는 본사의 직접 고용이었다. 이미 고용노동부도 직접 고용을 지시한 상태였다. 회사와 어렵게 대화를 시작할 무렵, 한국노총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중공산 노조)라는 곳에서 “제빵사 천여 명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 노조는 직접 고용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협력업체 관계자가 한국노총 노조 가입원서와 직접 고용 포기각서를 받아간다는 제빵사들의 제보가 이어졌다.
한국노총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가 낸 보도자료 일부. "어떤 고용 형태가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노동자들 간에도 이견이 있는 만큼 조합원의 총의를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합의 이후 2018년 1월 파리바게뜨 제빵사들은 정규직이 됐다. 하지만 본사 정규직이 아닌 SPC 자회사 피비파트너즈의 정규직이었다. 자회사 피비파트너즈에는 기업별 노조가 또 하나 만들어졌다. 역시 한국노총 산하였다. 중공산 노조와 피비파트너즈 노조, 이들 한국노총 산하 두 노조가 연합해 조합원 과반을 확보했다. 이른바 ‘교섭대표 노동조합’로 회사와 교섭을 벌일 수 있는 유일한 노조가 됐다. 파리바게뜨지회는 교섭권을 상실했다.
교섭대표 노동조합 선정 과정을 설명하는 임종린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는 “급여는 3년 내 본사직과 동일하게 맞춘다”는 2018년 사회적 합의가 이행됐는지 올해 점검에 들어갔다. 하지만 SPC는 “교섭대표 노조와 얘기하겠다”며 소수 노조를 배제했다. 사회적 합의 당사자 중 하나가 테이블에서 쫓겨난 셈이다. 그 사이 피비파트너즈 노조는 회사 주최의 ‘사회적 합의 이행 완료식’에 참석했다. 피비파트너즈 노조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합의 이행여부는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지난 4월 뒤늦게 내놓은 SPC의 해명 자료의 수치가 사실과 다르고, 어떤 기준에 따라 작성됐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어 파리바게뜨지회는 거리 선전전 등을 시작했다. 노조 파괴 공작을 폭로한 뒤로는 농성장을 차리고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SPC는 본사직과 급여가 다르다는 파리바게뜨지회의 주장에 구체적인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에버랜드노동조합(어용 노조)의 설립 과정을 이야기하는 조장희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 
조장희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은 2011년의 삼성에버랜드 역시 노조의 ‘교섭권 무력화’에 방점을 뒀다고 말했다. 조 부지회장과 몇몇 직원들이 노조를 만드려고 하자, 삼성은 바로 ‘에버랜드 노동조합’이란 어용 노조를 만들고 설립 일주일도 안 돼 이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회사의 취업규칙을 그대로 붙여넣은 수준이었고, 임금 인상 같은 요구도 없었다. 이후 2019년까지 어용 노조는 교섭대표 노조 자리를 유지했다. 그 사이 4차례의 단체교섭이 이뤄졌지만, 조 부지회장은 단 한번도 교섭 테이블에 나가지 못했다. 
2013년 심상정 의원을 통해 공개된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
2013년 국정감사 당시 심상정 의원을 통해 ‘어용 노조를 회사가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긴 S그룹 노사전략, 일명 ‘S그룹 문건’이 나왔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출처를 확인할 수 없다”며 검찰과 고용노동부는 무혐의 결론을 냈다. 
2018년 4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중 노조 탄압과 관련된 문건이 무더기로 발견되고 나서야 재수사가 시작됐다. 현재 2심까지 전·현직 에버랜드 임직원 13명 모두 노조법 위반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데칼코마니 2. 부당 징계와 노조 탈퇴 종용

삼성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 1·2심 판결문에는 삼성이 노조 설립을 ‘사고’로, 노조를 설립하려는 사람들을 ‘문제인력’으로 규정했다고 적혀 있다. 문제인력에 대해 근태 불량 등의 행위를 모아 “유사시 징계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내용도 나와 있다. 이런 전략에 따라 ‘문제인력 조장희’는 노조 설립과 동시에 해고됐다. 그리고 6년간 조 부지회장은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삼성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 2심 판결문 일부.
2016년 조 부지회장은 부당해고 취소 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이듬해 복직했다. 그동안 조합원은 한 명도 늘지 않았다. ‘노조에 가입하면 징계, 해고’라는 인식이 에버랜드 직원들 머릿속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올해 노조 가입자가 조금 늘어 90명 안팎이 됐지만, 여전히 노조 가입 여부를 비공개 하길 원하는 조합원들이 존재한다.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탄압받을 수 있다는 공포와, 상사와 관계가 나빠질 것 같다는 걱정에 민주노총 조합원의 신분을 숨기려는 제빵사들이 있다. 노조 가입 여부를 숨기면 노조창립일 유급 휴가를 포기해야한다. 
임종린 지회장은 SPC의 조직적인 민주노총 탈퇴 작업이 올해 3월부터 본격화했다고 주장했다. 매장마다 배치된 제빵사 30여 명을 관리하는 BMC(현장 관리자)가 근무 중에 찾아가고, 지속적으로 연락해 노조 탈퇴를 종용한다는 거다. 진급과 매장 이동 등을 미끼로 노조를 탈퇴해야 한다고 회유하고, 협박하고, 애원하는 식이다. 
현장 관리자: 너한테는 얘기해줄게. 회사가 원하는 노조가 이 노조야, 한노(한국노총) 노조야.
민주노총 조합원: 그래 보여요.
현장 관리자: 그래서 00이 (한국노총에) 오라는 거야. 그래야 00(원하는 지역) 가기 편하다. 나 이제 다 얘기해줬다, 00아. 다른 데 가서 얘기하면 안 돼, 나 잘린다? 너 내가, 우리 애기들 둘인데 내 밥줄 끊어 놓지 않겠지?

현장 관리자(BMC)와 민주노총 조합원의 대화
노조 탈퇴 공작이 SPC 자회사 피비파트너즈 경영진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폭로도 나왔다. 본부장이 업무 채팅방에서 노조 탈퇴 공작을 지시한다는 근거가 제시됐다. 민주노총 탈퇴와 한국노총(피비파트너즈 노조) 가입실적에 따라 포상금까지 지급된다는 증언도 나왔다. 10년 전 삼성의 미래전략실이 계열사별로 노조 대응실태를 평가해 점수를 부여했던 것과 똑같은 행태다. 
징계해고됐던 조장희 부지회장처럼 파리바게뜨지회에도 ‘정직 3개월’이란 중징계를 받은 노조 간부가 있다. 징계 사유는 라디오 방송 출연과 경영진 항의 방문으로, 회사의 명예가 훼손되고 업무에 방해를 받았다는 것. 지회는 이에 대해 부당징계 구제신청을 냈고, 지방노동위원회는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SPC의 노조 와해 시도에 대해서도 고용노동부와 경찰에 고소, 고발한 상태다.
사측 관계자가 현장 관리자들과의 업무 단체방을 없애라고 지시한 정황이 담긴 카카오톡 캡쳐 화면.
지회의 고발 뒤 사측 관계자가 현장 관리자(BMC)들과의 업무 단체 채팅방을 없애라고 지시하는 등 ‘증거 인멸’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데칼코마니 3. 저항 그후, 노동자들

한 개인하고 잠깐 말다툼을 해도 며칠 동안 생각나고 힘들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다니는 회사, 그리고 어제까지 몇 십 년을 같이 일한 동료들이 노조를 설립하고 해고가 되고 하면서, 이제 눈도 안 맞추려고 하고. 보면 도망가고. 저희들은 그랬어요.

조장희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
2011년부터 최근까지 회사의 노조 파괴 공작에 시달렸던 삼성 에버랜드의 직원 조장희 씨. 그는 힘들었던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을 담담히 얘기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소송을 다 해본 것 같다”면서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일상으로 살 수가 있을까” 되물었다. “말 그대로 고사화 전략, 말려 죽이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조 씨는 복직 뒤 적응장애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휴직 중이고, 여전히 정신질환 치료를 받고 있다.
조장희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과 임종린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의 상황을 걱정하며 “계속 투쟁하라는 말도 죄송스럽다”는 조 씨의 말에, 파리바게뜨 제빵사 임종린 씨는 눈물을 보였다. 
최근에 14년 기른 강아지가 죽었거든요. 눈 감는 거 보고 바로 또 노동자 대회 나가서, 조합원들 만나러 나가고 했었거든요. 뭔가 제 일상 생활이 다 없고, 제 1순위가 지금 노동조합인 게 저는 지금 4년째 됐거든요. 그래서 이제 그런 것들이 가끔 ‘현타’가 오는 거예요. 내가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지금 이러고 있지?

임종린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장
뉴스타파는 이어지는 <SPC 노조 파괴 ② ‘S그룹 문건’ 10년...달라진 게 없다> 기사에서 사측의 노조 파괴 공작이 변하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이유를 분석해 보도할 예정이다. 
제작진
영상 취재이상찬 신영철
편집정지성
CG정동우
디자인 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