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와 검사] ① "나는 죄수이자 남부지검 수사관이었다"

2019년 08월 12일 08시 00분

<편집자주>
지난해 말 자신이 구치소에 재소 중인 죄수의 신분으로 장기간 검찰 수사에 참여했다고 주장하는 ‘제보자X’가 뉴스타파에 찾아왔다. 제보자X는 금융범죄수사의 컨트롤타워인 서울 남부지검에서 검찰의 치부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덮여진 현직 검사들의 성매매 사건, 주식시장의 큰손들과 그를 비호하는 세력들, 그리고 전관 변호사와 검사들의 검은 유착… 뉴스타파는 수 개월에 걸친 확인 취재 끝에 <죄수와 검사>시리즈로 그 내용을 연속 공개한다.

①"나는 죄수이자 남부지검 수사관이었다"
②'죄수- 수사관- 검사'의 부당거래
③은폐된 검사들의 성매매...'고교동창 스폰서 사건'의 진실

‘제보자X’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는 남부구치소에 수감된 죄수였는데, 남부지검의 수사도 했어요, 제가.
(본인과 연관된 사건에서 참고인 진술을 했다거나... 일부 제보를 했다거나 그랬던 것 아닌가요?)
아니 그게 아니고, 처음에는 제가 연관된 사건 수사를 도왔지만 나중에는 저와 아무 상관없는 사건의 수사도 했다니까요.
(그럼 뭐 기술적인 분석이나 이런 전문적인 영역에서 좀 조언을 해주신 거겠죠?)
어떤 기업을 수사해야 하는지, 아이템 발굴과 선정까지 제가 다 한 적도 있다니까요.

도무지 믿지 못하는 나에게 그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피티(PT)를 보여줬다. 검사들에게도 했던 피티라고 했다. 주가 조작과 배임⋅횡령 등 기업 범죄 수사에 대한 피티였다. 생전 처음 듣는 용어들이 튀어나왔다. 한두 시간의 피티를 듣고 나자 기업범죄 수사에 대한 그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의심은 가시지 않았다. 이 바닥에 사기꾼이 어디 한둘인가. 그에게 물증을 요구했다.

▲지난해 말 뉴스타파에 제보를 해 온 제보자X. 뉴스타파는 그의 제보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다.

출정 기록, 일기장, 아이패드… 외면할 수 없는 물증들

제보자X가 제시한 첫 번째 물증은 자신의 출정 기록이다. 출정이란 원래 구치소에 수감된 재소자가 재판을 받거나 자신의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추가 조사를 받으러 구치소 밖으로 나가는 절차를 말한다. 구치소에 갇혀 있다는 것 자체가 범죄에 대한 징벌이기 때문에 출정은 당연히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해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그의 출정 기록을 보니 제보자X는  2015년 11월 19일부터 2017년 8월 23일까지 21개월 동안 무려 206회의 출정을 나갔다. 월 10회 꼴이다. 주말을 제외하고 한 달에 평일이 20일 가량이라고 한다면 평일 기준 이틀에 한 번 꼴로 출정을 나간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자신의 재판에 출석하기 위한 출정은 36회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170번의 출정 가운데 대부분은 남부지검의 검사실로 나가는 것이었다. 출정 목적은 그냥 ‘조사’라고만 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제보자X 자신의 사건과 관련된 출정이라고 치더라고 170번은 많다. 지나치게 많다.  

▲제보자X가 제시한 자신의 출정 기록. 206회 출정 가운데 170회는 남부지검 검사실에 ‘조사’를 위해 출정을 간 기록이었다.

제보자X가 제시한 두 번째 물증은 자신이 직접 작성한 일기장이었다. 성경을 필사하고 싶어하는 죄수들을 위해 나누어 준 두꺼운 노트였다. 그는 자필로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그리고 일기장을 조금씩 뜯어내 외부로 반출했다.

그 일기에는 남부지검 검사실에 출정을 가서 실제로 어떤 수사를 했는지 등이 빼곡히 적혀있다. 일기장에 적혀있는 출정 일자는 그가 제시한 출정 기록과 정확히 일치했다. 일기에 적혀있는 사건들의 날짜나 선후 관계에도 오류가 없었다.

도저히 조작할 수 없는 또다른 물증은 그의 아이패드다. 그는 수감 생활을 하면서 아이패드를 자유롭게 사용했다. 죄수가 어떻게 아이패드를 사용할 수 있었을까.

그는 출정을 나가서 검사에게 “수사를 위해서는 아이패드가 필요하다”고 부탁을 했다. 검사가 허락했고, 외부에 있는 가족이 아이패드를 검사실로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얘기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이패드에는, 그가 수감되었을 기간 동안 보낸 이메일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메일 가운데는 검찰 수사관에게 보낸 보고서들도 다수 있었다.

심지어 그의 아이패드에는 죄수 신분이었던 그가 페이스북을 한 흔적도 남아있었다. 그는 수감되었던 기간 동안 페이스북에서 <견상태>라는 계정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 계정에는 자신의 죄수 신분을 드러내는 글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9월 9일에는 재판을 받고 있던 한 정치인을 겨냥해 “현직 죄수 입장에서 한 마디 조언하자면…”으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재소 실록’이라는 제목의 글도 있고,  2014년 5월 1일에는 감방의 창살 너머 보이는 풍경을 직접 스케치한 그림도 페이스북에 올려두었다.

▲제보자X가 수감 생활 중이던 2014년 5월 1일 직접 그려서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그림. 지금도 그의 페이스북에는 이 그림이 올려져 있다.

우리는 이같은 물증으로 미루어봤을 때 그의 제보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남부지검 711호가 내 방이었다”

2014년 2월부터 2018년 7월에 이르는 4년 5개월의 수감 기간 동안 제보자X는 여러 구치소와 교도소를 전전했다. 그가 수사를 집중적으로 도왔던 건 남부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2015년 12월부터 2017년 8월 경까지다. 그는 남부지검의 여러 검사실에 출정을 다녔는데, 가장 많이 다닌 곳은 715호와 709호였다.

제보자X는 남부지검에 자신의 방이 있었다고 했다. 715호 검사실 옆에 딸린 711호, 원래 영상증거녹화실이었던 방을 자신의 방으로 내주었다는 것이다. 이 방에는 검사나 수사관이 없었다. 제보자X의 공간이었다. 제보자X는 남부지검 711호에서 죄수복을 입은 채로 기업 정보를 검색하고 사건을 분석했으며 전화 통화도 자유롭게 했다. 심지어 그는 이 방에 자신의 가족과 지인을 불러 만나기도 했다. 사건 관련 서류를 전달 받을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댄 후 가족과 지인을 검사실로 부르면 검사나 수사관도 이를 묵인했다.

검찰은 수사 편의를 위해 제보자X를 구치소에서 독거실로 옮겨주기까지 했다. 그는 2016년 8월 23일 혼거실에서 독거실로 옮겨졌는데, 이는 남부지검이 남부구치소에 보낸 공문에 의한 것이었다.

검찰이 옮겨준 구치소 독거실과 검찰이 내준 남부지검의 711호 사무실을 오가면서 제보자X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보고서가 만들어지면 검사와 수사관 등을 상대로 피티를 했다. 피티를 한 뒤 별다른 문제점이 없으면 수사가 개시됐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수사의 실제 사례도 제시했다. 2016년 5월 4일 대표가 구속된 ‘신후’라는 회사의 배임 횡령 사건, 2017년 1월 16일 남부지검이 발표한 에스아이티 글로벌 주가 조작 사건 수사가 그의 보고서에서부터 시작된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가 사용하던 아이패드에는 사건이 발표되기 몇 달 전 그가 작성한 보고서와 그 보고서를 검찰 수사관에게 이메일로 보낸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는 자신이 수사에 참여한 사건을 통해 진급을 한 검사와 수사관도 상당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보자X가 남부지검의 수사를 돕던 당시 사용하던 아이패드, 검찰 수사관에게 보낸 이메일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제보자X’는 왜 검찰 수사를 도왔나

검찰은 제보자X에게 가석방을 약속했다고 한다. 그가 검찰의 수사를 돕는 대가로 그가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석방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는 만기를 불과 석달 앞둔 2018년 7월에야 출소를 했다. 검찰이 약속을 지켜서 석달 먼저 출소한 게 아니다. 당시 수감되어있던 춘천 교도소에서 노역을 성실히 하는 등 다른 가석방 요건을 채웠던 덕분이었다.

2018년 2월, 제보자X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에게 “약속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의 편지에 검찰은 공문을 보내왔다. 가석방을 시켜주는 것은 검찰의 권한 밖에 있는 일이며, 그의 수사 협조 공적에 대해서는 이미 검사가 남부구치소에 공문을 보내 설명했다는 내용이었다. 적어도 그가 수사에 협조해 공적을 세웠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검찰도 공문을 통해 인정을 한 셈이다.

제보자X가 검찰 수사에 협조하면서 내세운 또 한 가지 조건은 자신의 사건에서 수사가 되지 않고 덮인 부분을 재수사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한 언론사의 경영에 참여했다가 주가조작과 횡령 배임 사건이 터지면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구속이 되었다고 주장했는데, 검찰이 자신의 사건을 재수사하기만 하면 자신의 누명이 벗겨질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검찰의 수사를 돕는 동시에, 자신의 사건에 대한 자료를 꾸준히 모아 검찰에게 지속적으로 제공했다. 검찰 역시 그에게 재수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해당 사건의 재수사를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고 결국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형사 소송법 전문가 “명백한 위법 수사”

뉴스타파는 죄수, 즉 재소자를 활용한 이같은 수사가 적법한 것인지 복수의 법률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그런 수사 관행은 미국 드라마에나 나오는 것인지 알았다”면서 놀라움을 표했다. 그러면서 형사소송법 196조와 197조에 규정된 수사의 주체, 즉 검사와 사법경찰관, 특별사법경찰관리를 제외하고는 수사의 주체가 될 수 없으므로 재소자를 활용한 수사는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김인회 교수는 보다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김인회 교수는 지난 2012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검찰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공저했으며 형사소송법 교과서를 저술하기도 한 형사법과 형사소송법 전문가다.

김 교수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명백한 위법수사이며 위법수사를 통해 얻은 증거는 위법수집 증거배제 법칙에 따라 합법적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가혹행위나 고문을 통해 얻은 증거가 합법적 증거로 사용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검찰이 제보자X에게 수사를 돕는 대가로 가석방을 약속한 것과 관련해서는 “검찰의 법적인 권한 밖에 있는 것을 허위로 약속해 사람을 이용하는, 비윤리적인 수사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형사소송법의 권위자인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김인회 교수는, 재소자를 활용한 수사가 위법이라고 단언했다.

“내가 본 남부지검은 금융범죄가 거래되는 거대한 시장”

 문제는 재소자를 활용한 수사의 불법성 뿐만이 아니다. 제보자X는 자신의 사건 뿐 아니라 자신이 수사에 참여했던 사건들이 제대로 수사되지 않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검사나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가 연루되거나 변호하는 사건의 경우 범죄혐의가 분명하게 특정이 되고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덮이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고 한다.

제보자X가 이렇게 주장한 배경에는, 그가 사실상 수사관으로 활약했던 서울 남부지검의 특성이 있다. 여의도 금융가와 증권가를 관할하는 서울 남부지검은 금융범죄와 기업범죄, 조세범죄를 중점적으로 수사한다. 지난 2014년 서울 중앙지검에 있던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남부지검으로 이전했고, 2015년에는 역시 중앙지검에 있던 금융조세조사 1부와 2부가 남부지검으로 옮겨졌다. 사실상 대한민국의 금융범죄와 기업범죄 수사를 총괄하는 콘트롤 타워가 된 셈이다.

그런데 금융범죄와 기업범죄는 내용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수사가 매우 어렵다. (자본시장 전문가인 죄수, 제보자X를 수사에 활용했다는 게 개연성을 갖는 대목이다.) 그런데 수사가 어려운만큼, 수사를 하는 검사 입장에서는 수사를 축소하거나 덮을 수 있는 재량의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더군다나 금융범죄나 기업범죄 사건은 변호사들의 수임 액수가 일반 사건에 비해 적게는 몇 배에서 많게는 수십 배에 이를 정도로 크다. 바로 이 지점을 전관 변호사들이 파고들어 검사와 유착하고 사건을 은폐한다는 것이다.  

로펌이나 법률 시장 입장에서 보면 서울 남부지검이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이 되었죠. 그런데 그에 걸맞은 감시는 이루어지지 않는 사각지대예요. 그 결과 검사와 전관변호사가 금융범죄를 거래하는 거대한 시장이 되어버린 거예요

제보자X/ 검찰 비리 제보자

죄수들이 작성한 對 검사 고발장

뉴스타파는 지난 몇 달동안 제보자X와 인터뷰를 거듭했다. 그리고 제보자X를 통해 지금도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여러 죄수들과 접촉해 그들의 주장을 들었다. 그리고 객관적인 자료와 추가 취재를 통해 그들의 주장을 검증했다. 취재 결과 확인된 사실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검사 출신 정치인의 숨겨진 범죄, 현직 검사들의 성매매 혐의 은폐, 전관 변호사와 검사들의 유착, 주식 시장에서 불법을 일삼는 큰 손과 이를 비호하는 세력들의 실체까지... 뉴스타파는 그 가운데 객관적인 입증이 가능하고 공익적 가치가 있는 사건들만을 선별해 연속 보도할 계획이다.

취재: 심인보, 김경래, 김새봄
촬영: 정형민, 오준식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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