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은 약 33,000명. 그 중 여성의 비율은 72%에 달합니다. 그런데 북한이탈여성 중 많은 수가 남한에서의 성폭력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2017년 북한이탈여성 대상 연구에서는 연구대상자의 36%가 남한에서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으며, 북한에서보다 남한에서 약 2배 많은 피해를 입는다고 대답했습니다.

뉴스타파는 7월 23일, 북한이탈여성 한서은(가명) 씨와 배유진(가명) 씨의 ‘미투’를 보도했습니다. 두 피해자 모두 탈북 이후 수 년에 걸쳐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를 당했으며, 군인과 경찰 등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위력을 가진 남성이 가해자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서은 씨와 유진 씨의 억울함은 해소될 수 있을까요? 또 앞으로 북한이탈여성들이 같은 피해를 겪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나의 참혹한 대한민국’_북한이탈여성의 미투> 기사를 보도한 김새봄 PD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Q : ‘나의 참혹한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었는데, 제목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가요?

피해자분들을 만나고 피해사실을 들으면서 '참혹하다' 라는 표현이 계속 떠올랐어요. 그리고 사실 우리나라가 피해자 분들에게는 '나의 대한민국' 이었잖아요. 목숨을 걸고 탈북을 해서, 강을 건너고 중국과 태국을 오가면서 힘들게 한국 땅을 밟은 분들이에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 목숨까지 걸었던 사람들이고, 이 분들에겐 그게 너무 소중하단 말이에요.

기사에는 담지 못한 이야기인데, 피해자 두 분 모두 집에서 계속 피해를 당하셨어요. 대한민국에 정착해서 처음으로 내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한 공간, 집에서 계속 피해가 발생한거죠. 그래서 서은 씨 같은 경우는 ‘집이 지옥 같다’ 라는 표현도 많이 쓰셨어요.

서은 씨, 유진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나의 대한민국' 이었던 곳이 피해를 당하면서 점차 ‘참혹한 대한민국’으로 변해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목을 '나의 참혹한 대한민국 '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Q : 피해자가 언론에 제보할 용기를 내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피해자와 어떻게 접촉하게 되었고, 피해자는 어떻게 용기를 내게 되었나요?

서은 씨 같은 경우 뉴스타파에 먼저 제보를 해주셨어요. 이미 가해자를 고소한 상태였는데, 2차 가해가 지속되고 군검찰의 수사나 기소여부가 불투명해져서 언론에 도움을 청하셨죠. 그런데 서은 씨를 취재하면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북한이탈여성들과 남성 정보관리요원들 사이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다른 피해자들을 수소문하다가 유진 씨를 알게 되었어요. 유진 씨는 그 때 고소를 포기한 상태였고, 카메라 앞에 서는 것, 미투를 할 것인가, 고소를 할 것인가를 굉장히 많이 고민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유진 씨 말씀이 서은 씨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거에요. 그래서 결국 서은 씨를 만난 날, 유진 씨도 다시 용기를 내서 결심을 하게 되었죠. 카메라 앞에 서겠다, 고소도 다시 진행하겠다고.

기사에도 두 분이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 시간이 두 분에게 아주 큰 힘이 되었던 것 같아요. 특히 유진 씨 같은 경우는 서은 씨가 자기보다 어린데도 먼저 용기있게 나섰다는 점 때문에 많이 힘을 얻으셨던 것 같아요.

Q : 북한에서보다 남한에서 더 많은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그 결과를 보고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기사에 나오신 성정현 교수님도 그 자료를 보고 연구자로서 너무 부끄러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 자료가 2017년에 진행된 연구였는데 사실 2012년에도 같은 연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보다도 남한에서의 피해가 더 늘어나는 추세고, 피해자의 연령은 낮아지고 남한에서의 거주기간도 짧아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남한 사회에 막 도착해서 아직 잘 모를 때, 다른 사람에게 가장 의지해야 할 시기에 성폭력 피해가 더 많아지고 있다는 이야기죠.

그 원인은 첫번째로 피해자분들이, 자신이 겪는 일이 범죄라는 사실 자체를 잘 모르세요. 남한 사회도 사실 성추행이나 성희롱의 개념이 정립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북한이탈주민 사이에서는 강간 같은 아주 심각한 성폭력조차도 범죄라고 인식하지 않는, 약간의 문화 지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보도에 나왔던 서은 씨 같은 경우도 처음에는 피해를 당한 것이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두번째로는 이번에 보도된 두 사건이 모두 위력에 의한 간음이거든요.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가지고 있는 위세, 위력, 권력이 두려운거에요. 유진 씨 같은 경우 경찰에게 피해를 당했는데 보통 신고를 경찰에게 하잖아요. 그런데 가해자가 경찰이다? 그럼 어디에 신고를 해야 할지 모르는거죠. 서은 씨의 경우 가해자가 정보사령부 소속 군인인데, 언제든지 북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식으로 계속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피해자 입장에서는 언제든지 자루에 담겨서 북송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을 많이 느꼈겠죠. 이렇듯 가해자가 가지고 있는 위력도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봐요.

또 하나는 사실 성폭력 사건은 주변 사람들이 지지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서은 씨 같은 경우 처음 고소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주변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전부 다 반대를 했대요.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텐데, 너 때문에 우리 북한이탈주민 전체가 낙인찍힐 수 있다’ 라는 식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의 분위기가 아주 보수적이고, 이 문제를 폭력의 문제가 아니라 성적인 문제,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다 보니까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태도도 많았다고 합니다.

Q : 이렇게 ‘참혹한’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이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많이 힘들었죠. 특히 두 번째 사건의 가해자인 김 경위 같은 경우, 보도에는 일부분만 실었지만 피해자가 가지고 있는 녹취 자료가 수십개 있었어요. 그 자료들에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표현들이 많이 등장하거든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도 힘들었어요. 카메라가 꺼졌을 때도 다른 취재에 비해 훨씬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전화도 정말 자주 하고, 한 번 만나면 3,4시간씩 이야기를 들었어요. 장기간에 걸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감정과 앞뒤 사정까지 아주 길게 이야기를 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저도 감정이입이 많이 돼서 힘들었죠.

Q : 후속 취재 계획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 검찰이나 재판부가 아주 보수적인 것이 현실이죠. 그리고 북한이탈여성의 경우 그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서은 씨와 유진 씨 이외에 고소를 했음에도 무죄판결이 난 케이스가 있는데, 북한이탈여성들은 성폭력에 쉽게 저항하지 못하고 장기간 폭력에 노출돼도 뒤늦게 신고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말씀드렸듯이 성폭력이 문제라는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죠. 그런데 그렇게 뒤늦게 신고를 했더니 왜 이제 와서 신고를 하냐는 지적만 받고 이미 증거는 다 사라진 상태인거죠. 그래서 고소까지는 가더라도 유죄판결을 받기가 너무 힘든 것이 현실이에요.

또 북한이탈주민들이 우리와 같은 한글을 쓰지만 표현들이 미묘하게 달라요. 그런데 피해자의 진술이 아주 중요한 성폭력 사건 같은 경우, 아주 사소한 표현에 따라서 법적인 판단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이런 여러가지 사정들로 인해서 가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는, 억울한 결과가 나오는 사례들이 있어요.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검찰과 재판부가 탈북 여성들에게 어떻게 판결을 내리고 있는지 다뤄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서은 씨와 유진 씨 사건도 계속 취재할 예정이에요. 서은 씨 같은 경우는 지금 군 검찰의 기소 여부만 남은 상태고, 유진 씨는 이제 막 고소장을 제출했으니까 앞으로의 경과를 지켜봐야 되겠죠. 또 가해자 김 경위에 대한 감찰도 경찰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그 쪽도 계속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Q : 북한이탈여성들에대한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법적, 제도적 조치가 필요할까요?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입국하면 먼저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으세요. 그 교육 내용 중에 성교육도 조금 있는데, 이 교육이 아주 교과서적인 내용에 불과하다고 해요. 북한이 우리나라의 60,70년대와 비슷한 성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성폭력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여성가족부에서 북한이탈여성들을 위한 성폭력 상담소를 운영하는데요, 기사에서도 말했지만 북한이탈여성들만의 특성에 맞춰서 상담을 할 수 있는 인력이 확충될 필요가 있어요. 현재 여성가족부는 여러 상담 단체에 조금씩 나눠서 지원금을 주고 있는데, 이는 성과보고를 위한 지원단체 숫자 늘리기 이상이 아니라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에요. 현장에서는 좀 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십니다.

또 군인, 경찰 등 가해자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의 처벌도 중요한데, 특히 신변보호 담당관들 같은 경우 대부분 보안계 소속 남성 경찰들이 담당하고 있어요. 북한이탈주민들은 72%가 여성인데, 경찰관이 수시로 전화해서 어디냐, 누구 만나냐 감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죠. 이런 신변보호 제도도 감시가 제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 문제 해결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 기사를 많이 공유해서 이런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면 숨어있는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또 추후 이런 문제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실 ‘미투’가 보통 가해자가 얼마나 권력이 세고 힘이 센지에 따라 관심이 더 쏠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취재를 하면서도 평범한 사람들, 특히 북한이탈 여성의 미투에 대해서 누가 관심을 가질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럼에도 보도 이후에 관심을 많이 가져 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고발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래서 더더욱 주변의 지지와 응원이 많이 필요한데, 북한이탈주민처럼 사회적 신분 자체가 낮고, 차별받는 계층의 미투도 언론이 많이 집중하고 조명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해는 더 참혹해지고 비참해질 것이라 생각해요.

뉴스타파는 앞으로도 감춰져 있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북한이탈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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