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납땜, 전자파...환기도 제대로 안 돼”
2014년 12월 09일 20시 57분
지난 12일 2명이 사망한 LG디스플레이 공장 질식 사고가 났을 때 사측이 안전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LG디스플레이 측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 9분을 허비했다.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 9층 작업장에서 지난 12일 세 명의 남자가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됐다. LG디스플레이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문모(35)씨, 이모(34)씨, 오모(32)씨다.
이들은 정기 유지보수 업무를 위해 공장에 들어갔다. 평소 질소가스로 가득 차있는 '챔버'(탱크 모양의 밀폐공간)가 그들의 작업공간이었다. 산소결핍으로 질식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작업공간이었기 때문에 환기 및 유해가스농도 측정 등 엄격한 사전 안전조치가 취해져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세 사람이 이날 작업한 챔버 중 한 곳에 질소가스가 가득차 있었다. 결국 먼저 들어가 작업을 시작했던 문 씨와 이 씨는 사망하고, 뒤따라 들어간 오 씨는 현재 뇌사상태로 중환자실에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지난 12일 LG디스플레이 P8공장에서 있었던 일을 시간대별로 정리해봤다.
AM 10시 2분 | 문 씨와 이씨, 회사 게이트 통과. |
AM 10시 26분 | 오 씨 게이트 통과. |
AM 11시 31분 | 작업장에 들어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음. 세 사람 같이 작업 시작. |
PM 12시 29분 | 사전에 예정됐던 작업을 마친 세 사람, 추가작업을 위해 문제의 챔버에 도착. 문 씨와 이 씨, 오 씨가 차례대로 챔버 안으로 들어감. |
PM 12시 38분 | 순찰요원에 의해 쓰러진 세 사람 발견. |
오후 12시 29분, 세 사람은 높이 90cm, 직경 4.5m의 비좁은 챔버 안으로 들어갔다. 챔버 안에는 질소가스가 가득차 있었고 웅크리고 작업을 하던 세 사람은 질식했다. 그 순간 챔버 외부에는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산업안전보건규칙 제623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밀폐공간에서 작업을 할 때 작업장과 외부 감시인 사이에 상시 연락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LG는 밀폐공간 내의 작업자들이 위급상황에서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장치를 아무것도 마련하지 않았다.
사고가 난 챔버는 OLED의 표면에 이물질 투과를 막는 코팅을 하는 설비인 스퍼터링(sputtering) 장비의 일부다. 이 장비를 문 씨와 이 씨의 소속회사인 아바코에서 만들어 LG디스플레이에 납품했다. 아바코의 사장은 사고 직후 열린 유족들과의 만남에서 챔버 안에 연락 설비를 설치할 수 없었던 이유를 밝혔다.
실제 그 장비는 일반장비가 아니고 진공으로 이물을 제거하는 장비입니다. 그러다보니 내부에 부저 같은 것들을 설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요. 그런 것들도 이물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제품에 영향을 주는 거고, 그래서 그런 부분들은 일반 장비하고 다르게 내부에는 설치가 안돼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바코의 사장은 자신이 죄송하다며 유족들에게 사과했지만, 하청업체 작업자들에게 상시 연락 설비를 마련해줘야 할 의무는 LG디스플레이 쪽에 있다.
LG측은 밀폐공간 바깥에서 작업 상황을 지켜보며 안전을 감시해야 하는 안전감시자도 두지 않았다. 감시자를 둬야한다는 규정은 LG 측이 마련한 ‘공사안전관리제도’에도 명시되어 있고, 산업안전보건규칙에도 나와 있다. 규정대로 1인의 감시자가 바깥에서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사망 사고까지 생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세 사람이 질식해 쓰러졌지만, 감시자도 없고 연락 장비도 없었던 상태에서 시간은 흘러갔다. 임상혁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질식의 경우 3~5분 안에 뇌사가 일어나고, 10분 안에 심장이 정지한다고 말한다. 세 사람이 LG 측 순찰요원에 의해 발견된 것은 12시 38분, 질식이라는 ‘초응급’ 상황에서 생사를 갈랐던 9분의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PM 12시 38분 | 순찰요원에 의해 쓰러진 세 사람 발견 |
PM 12시 43분 | LG디스플레이 중앙통제실에 사고 소식 전달 . 내부 구조요원들이 와서 챔버 안에 쓰러진 사람들을 구조하기 시작. |
PM 12시 50분 | 파주소방서 신고 접수. 인근의 월롱119센터에서 출동 |
PM 12시 56분 | 119구조대 현장 도착. |
PM 13시 05분 | 구조 작업 중 실신했던 LG 측 순찰요원 이송. |
PM 13시 15분 | 오씨 이송. |
PM 13시 21분 | 문 씨와 이 씨 이송. |
골든타임 9분이 흘러갔지만, 쓰러진 세 사람 중 두 사람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심장이 뛰는 상황에서 응급구조대가 빠르게 도착하면 산소공급이나 기관지삽관 등 보다 적극적인 인명구조를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파주소방서에 신고가 접수된 시각은 오후 12시 50분. 신고까지 또다시 12분의 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LG측은 신고 전 지켜야 할 여러 절차들이 있어 12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사고 인지 후 제일 먼저 하는 게 장비가 열려있나, 안 열려있나 체크하는 겁니다. 장비 뚜껑이 열려있으면 큰일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일단 모든 장비를 끄고 사람을 뺍니다. 그리고 중앙통제실에 신고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고 다음날 LG관계자들이 유족들에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이미 사고일 오전 10시부터 모든 장비의 전원은 꺼져 있었고 뚜껑도 열려있었다. LG 측은 이밖에도 사고의 종류를 파악하고 질소가스의 확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추가적 절차에 시간이 소요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질소는 이미 공기의 78%를 구성하고 있는 기체이므로 유해가스가 아니다. 평소 챔버 환기도 특별한 수단을 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뚜껑을 열어 챔버 내부의 질소를 내보내는 방식으로 한다고 LG 측 관계자는 전한다. 질소의 확산 여부를 체크하기 위해 시간이 걸렸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렇게 흘러간 또 한 번의 12분. 결국 LG디스플레이의 늑장대처와 안전규칙 위반이 하청업체 노동자 세 명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달 30일 안전 대비 훈련을 성공적으로 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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