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건설은 왜 사건 현장 문을 닫았나

2015년 03월 03일 21시 48분

부산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사진 한 장이 뉴스타파 취재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지난 주 SNS를 통해 연락처를 구해 부산까지 찾아갔습니다. 1인 시위를 하는 검은 상복 차림의 여성에겐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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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주인공은 40살 구금주 씨였습니다. 구 씨가 1인 시위에 나선 이유는 남편 때문입니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 얻은 17개월 아들과 구 씨 부부는 남 부럽지않게 단란했습니다. 기간제 교사로 일하다 계약이 해지된 뒤 생계를 위해 건설 현장에서 일해온 남편 조계택 씨. 조 씨는 자신의 생일인 지난 2월 9일, 신세계백화점 증축공사 현장에서 일하다 추락사 했습니다.

은폐...그리고 거짓말

유족들이 1인 시위에 나서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고 발생 이후 신세계 측은 사고 발생 시각, 119 신고 여부 등을 두고 여러 차례 말을 바꾸거나 거짓말을 했습니다. 사고의 원인과 과실 여부를 규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정보인 사고 발생 시각은 처음 신세계 측이 밝힌 오후 1시 35분 경에서 조사를 거듭할 수록 점점 앞당겨져 1시 30분 경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사고 현장 인근을 비추는 공사장 CCTV에 대해서도 처음에 없다고 했던 신세계 측은, 나중에 유족들이 다른 경로로 설치 여부를 확인하고 추궁하자 뒤늦게 시인하기도 했습니다.

신세계는 119신고를 하지 않았다

신세계 현장 책임자는 자신이 사고 발생 직후 119에 신고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사고 발생 다음 날 유족들과 만나 자신이 신세계 측 지정병원과 119에 같이 신고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뉴스타파가 입수한 해운대소방서의 동향보고 문건을 보면 “현장을 지나가던 중 추락환자가 있는데, 현장 관계자들이 신고도 하지 않고 다른 조치도 하지 않는 것 같아서 119로 신고했다”는 신고자의 말이 적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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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는 구급차가 나갈 문을 닫았다

사고 현장을 은폐하려 했다는 설득력 있는 근거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사고 당일 현장에 출동한 119 구급차의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구급차가 현장에 들어온 뒤 현장 관계자들이 자꾸 대형 출입문을 닫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구급차가 현장 도착 후 부상자를 싣고 바로 나가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신세계 측이 사고 현장을 감추려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부분입니다. 심지어 먼저 출동한 구급대원은 닫힌 문 아래로 기어서 현장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신세계가 연락한 지정병원은 치료할 수 없었다

신세계 측이 사고가 나자 119가 아닌 지정병원에 연락한 것도 문제입니다. 신세계 공사현장의 지정 병원은 인근의 효성시티병원입니다. 이 병원은 무릎과 척추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신세계 측은 추락사고가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건설 현장에서 두개골 손상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이 없는 병원을 지정병원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효성시티병원 관계자는 조 씨처럼 머리 부상자가 발생하면 자기 병원이 아니라 119에 연락하라고 전부터 말해왔다고 증언했습니다.

신세계건설의 현장 관계자는 지정병원 응급차가 오더라도 부상자를 무조건 지정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지정병원 구급차와 간호사가 현장에 가서 부상자의 상태를 판단한 뒤 자신들의 차량을 이용해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민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이런 지정병원 시스템이 의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부상자의 부상 수준을 파악하고 어떤 병원이 가장 적합한가를 판단하는 것까지가 전부 국가응급구조체계의 역할에 들어간다. 그걸 우리나라에서는 119에서 맡고 있다. 가장 빠르게 출동하고 적절한 곳으로 이송할 수 있는 것도, 전문적인 응급구조사가 적절한 장비를 가지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도 119다.

그럼 왜 신세계 측은 119에 비해 응급구조 역량이 떨어지는 지정병원 체계를 이용해 현장 사고 부상자를 이송하는 걸까. 최민 전문의는 기업이 사적 계약관계인 지정병원 체계를 악용해 산재 처리를 막고, 사고를 감추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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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이번 취재 과정에서 신세계 측의 안전책임자를 만나 공식적인 입장을 들어봤습니다. 안전책임자도 이번 사고의 책임을 느끼고 있었고 유족들에게 거듭 위로의 뜻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책임자와 그룹 관계자들은 신세계건설 공사 현장의 안전 조치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후진국형 재해’라는 추락 사망 사고가 일어났는데도 “부족함이 없는 정도의 안전 조치를 하고 있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안전조치를 몇 겹으로 했다는 건설 현장에서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 묻자 이들은 공통적으로 ‘노동자들의 안전 의식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관리자들의 이런 생각이 보다 나은 작업 안전 시스템 정착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작년 4월 발표한 ‘2013년 산업재해 발생현황’ 자료를 보면 2년 연속으로 가장 많은 산업재해 사망자를 낸 산업 분야가 건설업입니다. 종사자 수가 제조업에 비해 30%이상 적지만 사망자 수는 1.8배 이상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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