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호텔사이] ② 호텔이 정말 부족한가?

2015년 04월 29일 11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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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호텔사이]①호텔은 유해시설 아니다?편에서 호텔은 유해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관광진흥법 개정을 통해 학교 앞 호텔 건립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한지 살펴봤습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어제(4.28)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교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4월 임시국회 회기(4.7-5.6)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개정안 밀어부치기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정부가 관광진흥법 개정의 핵심 근거 가운데 하나로 들고 있는 호텔 부족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정부와 관광업계는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관광객이 해마다 급증해서 호텔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교 부근 호텔 규제를 시급하게 풀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호텔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면 큰 문제입니다. 관광 인프라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유치한다 하더라도 외국 손님들이 큰 불편을 겪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호텔의 수급을 살펴보는 데 있어 가장 기초적인 자료는 호텔 객실점유율입니다.

점유율이 100%면 빈방이 없다는 뜻입니다. 평소에는 객실에 여유가 있더라도 큰 행사가 있거나 이웃 나라의 연휴가 겹치는 극성수기에는 객실 부족 사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호텔에는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관광진흥법의 적용을 받는 관광호텔(문체부 관장)과 공중위생법의 적용을 받는 일반숙박업체(보건복지부 관장)입니다. 관광호텔은 보통 등급을 부여받게 되는데 3등급에서 특1급까지 5등급으로 나누어지고 부대시설과 위생 관리 등에 있어 엄격한 법 적용을 받게 됩니다. 일반숙박업체는 쉽게 말해 모텔이나 여관을 생각하면 되는데 이름만 호텔이라고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관광호텔의 경우 매년 객실점유율 통계가 집계됩니다.

▲ 출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통계
▲ 출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통계

등급별로 차이는 있지만 2011년 또는 2012년을 정점으로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2014년 통계는 올 3분기쯤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전체평균이 70%를 하향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2013년 평균은 75.2%입니다.

호텔객실이 부족하다는 기사는 2012년에 많이 나왔습니다. 중국 관광객들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객실점유율은 그 이후 떨어지고 있습니다.

문체부에서는 “2012년에 객실이 없다고 언론에서 아우성칠 때도 점유율은 80% 정도에 불과했다”면서 “점유율이 다소 내려갔지만, 현재도 호텔이 부족한 것은 맞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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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문자 수는 지난해 천4백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2013년만 놓고 보더라도 2010년에 비해 38%나 증가했습니다. 반면 관광호텔의 객실 수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약 11,000실, 15.7% 늘었을 뿐입니다.

▲ 출처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통계
▲ 출처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통계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호텔 객실이 늘어난 것보다 한국 방문 외국인이 훨씬 큰 폭으로 늘었는데 객실점유율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거 어떻게 된 것일까요?

저희는 2, 3년 전만 해도 점유율이 80~90% 사이였는데 지금은 70~80% 사이로 떨어졌어요. 가격도 3~4만 원이 떨어져서 지금은 10만 원입니다. (왜 그런가요?) 호텔이 많이 생겨서 가격경쟁이 치열하니까요. 서울 외곽 쪽 독산동이나 김포공항 근처 쪽 많이 가시더라고요. 저렴하니까. 그리고 게스트하우스 이런 것도 많이 생겨서 그쪽으로 많이 가시죠. - A호텔(1급호텔) 직원

이 호텔 관계자는 관광호텔이 부족하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숙박시설이 많이 생겨서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오히려 가격을 인하해야 하는 실정이라는 겁니다. 또 다른 호텔 관계자도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점유율이 70% 중후반대 정도 되는데요. 중국 손님들이 많이 늘어난 건 맞아요. (그런데 왜 점유율이 떨어지는 거죠?) 중국관광객들은 숙박보다는 먹고 쇼핑하는 데 돈을 써요. 수요가 오피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 이런 곳으로 빠지는 게 많습니다. 그러니까 실제 관광호텔 방들은 남아돌 수밖에 없는 거죠. - B호텔(1급호텔) 직원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관광호텔은 그동안 많이 세워졌고 지금도 세워지고 있습니다. 정의당 정진후 의원실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서울만 놓고 봐도 2014년 7월 현재 건립 중이거나 미착공된 호텔의 객실만 2만 실이 넘습니다. 정부가 2012년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을 시행하면서 용적률과 주차장 규제를 완화해주고 각종 지원을 해준 덕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을 찾는 관광객은 급증했지만, 관광호텔을 이용하는 관광객은 그만큼 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관광호텔의 객실점유율이 하락한 이유입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한국관광객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중국인 관광객 덕분입니다. 2012년 287만 명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해 613만 명으로 늘었고, 전체 입국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대에서 43%로 2배 이상 늘었습니다. 한국방문 외국인 두 사람 중 한 명은 거의 중국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 출처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통계
▲ 출처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통계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 자유여행자를 대상으로 매달 천 명씩 설문 조사한 결과 중국관광객들이 한국에서 지불하는 1일 평균 숙박료는 8만 원이라고 합니다. 1박에 10만 원이 넘는 1등급 이상의 관광호텔에는 묵기 힘든 액수입니다. (1등급 이상 호텔이 관광호텔 객실 수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 조사에 단체관광객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중국인들은 단체방문객들이 많은데 이들을 포함하면 평균 숙박료는 더 내려갈 가능성이 많습니다. 저렴한 레지던스나 게스트하우스, 모텔 또는 불법으로 숙박업을 하는 오피스텔에 단체 투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최근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앞으로 호텔 부족이 심화될 것이란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 출처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숙박 수급 보고서
▲ 출처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숙박 수급 보고서

서울의 경우 관광호텔 객실이 올해 1만 천 실이 부족하고 2017년에는 1만 8천 실이 부족하다, 여기에 100실 이상의 일반숙박시설을 포함해 계산해도 올해 7천 6백 실, 2017년에는 1만 5천 실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도 최근 보고서에서 고가 호텔은 공급과잉이 예상되지만 중가 호텔은 매우 부족하게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습니다.

그런데 이 두 보고서에는 한국을 찾는 관광객의 43%에 이르는 중국 관광객들에 대한 정확한 수급분석이 빠져있습니다. 즉,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숙박시설의 수급은 분석에 담지 못했습니다. 집계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레지던스나 오피스텔로 등록해 놓고 숙박업을 하는 경우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경우가 해당합니다. 이렇다 보니 관광호텔에는 방이 남고 숙박료 경쟁까지 벌어지면서 가격이 인하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호텔이 부족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오게 됩니다.

지난 4월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국호텔외식관광경영학회 주관으로 열린 토론회에서 한 관광 관련 학과의 교수는 “서울에 호텔이 부족하니까 경기도 이천이나 일산, 심지어 강원도까지 호텔 찾아간다. 이래서야 되겠느냐”며 학교 앞 호텔 금지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서울 시내에 호텔이 없어서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저렴한 숙박시설이 서울에 없어서 그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 4월 24일 정오 무렵 서울 신수동.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관광버스에서 줄지어 내리고 있다.
▲ 4월 24일 정오 무렵 서울 마포구 신수동.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관광버스에서 줄지어 내리고 있다.

서울 시내에서 만난 중국인 단체관광객 가이드를 통해서도 확인했습니다.

(여기 오신 중국분들 숙소가 어디인가요?) 경기도 이천이에요. (주로 경기도 쪽에 묵으시나요?) 네 그렇죠, 인천에 갈 때도 있고, 송탄에도 가고 멀리는 평택까지도 갑니다. (서울 관광하시는 분들인데 왜 서울에 안 묵죠?) 방이 없어요. 좋은 방이야 많죠. 그런데 좋은 방은 단가를 맞출 수가 없어요. 패키지로 오는 분들 싼 맛에 오는 건데 비싼 데 갈 수 있나요? 그러니까 점점 멀리 가는 거죠. (1박에 얼마짜리 방이에요?) 뭐 5만 원짜리도 있고 그 아래도 있고.

또 중국이 2013년 여행사의 지나친 옵션 수익을 금지하는 ‘여유법’을 2013년부터 시행한 후에 국내 여행사들이 지상비(숙박비와 교통, 식사비 등) 수입이 줄어들자 여행사들이 조금 더 싼 숙박시설을 선호하게 된 이유도 있습니다.

중국관광객이 모두 저가 숙박시설만 이용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용하는 숙박형태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워낙 숫자가 많은 만큼 전체 숙박수급을 예측하기 위해선 이들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이란 말입니다.

문화관광연구원의 권태일 박사는 현행법상 불법숙박시설은 단속의 대상인데 수급분석에 포함시키면 불법 영업을 인정하는 꼴이 돼 버리는 애로사항이 있다고 말합니다. 또 이런 숙박시설을 양성화할 경우 기존 호텔업계가 반발할 수 있어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합니다.

정의당의 정진후 의원은 엄연히 수요가 있는 저가 숙박시설을 단속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정부가 인정해주고 품질을 관리하는 ‘굿스테이’(문체부,관광공사가 지정하는 우수 숙박시설)로 양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게 새 호텔을 짓는 것보다 더 실질적인 수급대책이라는 겁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호텔이 정말 부족한가?

정부가 호텔이 부족하다면서 관광진흥법 개정을 통해 학교 앞에 허용해주자고 하는 호텔은 100실 이상 규모의 호텔입니다.

이 정도 규모면 최소한 1등급 이상의 호텔인데 현재 1등급 호텔의 숙박료는 대부분 최소 10만 원 이상입니다. 급증한 한국방문 외국인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중국 관광객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결국, 규제를 풀어 학교 앞에 호텔을 지어도 지금과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호텔 짓겠다고 하는 데가 대부분 서울 중구, 강남구, 종로구 이런 데인데 실제로 그 비싼 땅에 객실 하나에 5만 원 해서 수익이 나겠어요? 당연히 안 나죠. 지금 중국 관광객들이 투숙할 수 있는 저가의 숙박시설이 부족한 거지 관광호텔이 부족한 게 아니라니까요. - 호텔업계 관계자

호텔이 부족하기 때문에 학교 앞 호텔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겉으로는 관광산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건설업자와 대기업들의 먹거리를 보태주기 위한 꼼수라는 교육계와 시민단체들의 비판이 더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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