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다큐]우리는 KTX승무원 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2015년 12월 16일 17시 40분

ktx 승무원 채용 공고. ‘1년 계약, 향후 정규직 전환’ ‘현 공무원급 후생, 복지 제공’ - 당시 고속철도 준비사업단장 -

이는 ‘준 공무원’에 해당하는 굉장히 좋은 조건. 당연히 대부분 여승무원들은 이 말을 믿고 KTX 승무원 시험에 응시한다. 이로 인해 당시 경쟁률이 무려 13:1까지 치솟는다. 하지만 입사 2년이 지나도록 정규직 전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심지어 비정규직이란 불안한 신분 속에서 부당한 대우와 열악한 처우를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 만이 지속된다. 결국 2006년 3월 KTX 승무원들은 애초의 약속대로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280명 전원에 대한 정리해고 통보. 바로 그 때부터 평범했던 20대 중반 승무원들의 삶은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라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으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전에는 비정규직이 뭔지 알려고 들지 않았던, 아니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단정해버렸는데 마치 이전의 나를 비웃듯 나의 일이 되어버렸다. 파업을 통해서 사회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나와 상관없는 일들에는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적당주의자였던 내가 이제는 정당한 일에 대해서는 소리내어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이 투쟁이 승리할 거라고 확신한다. - 해고승무원 최소영

하지만 세상의 시선은 차가웠다. 억지로 떼를 쓴다거나, 더 열악한 비정규직도 많다거나, 심지어 공사 정직원이 되고 싶으면 공부해서 시험을 보라는 말까지 응원의 말 못지않게 마음을 할퀴는 말들을 듣게 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또렷이 시선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다름 아닌 자신들과 같은 처지의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이었다. 기륭전자, 이랜드, 코스콤 등의...

이 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극한의 방법을 통해 호소해도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이토록 처절하게 저항해도 잘 굴러가는 이 사회에 절망한다. - 서울역 고공농성에 들어가며, ktx 승무원

파업을 시작하고 3년이 지나자 300명이 넘던 인원이 34명으로 줄게 된다. 그 34명이 시작한 법정 싸움. 천만 다행히도 코레일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2년 만에 승소한다. 비록 30대로 접어든 나이였지만 복직을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복직을 기다리며 그동안 미뤄두었던 연애, 결혼, 출산 등 일상의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무려 4년이 지나서야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다. 심지어 1,2심을 뒤집는 패소 판결. 더구나 2심 승소로 4년간 받은 1인당 8,640만원의 임금을 반환하라는 판결까지 내려진다. 10년을 길거리에서 투쟁하던 이들에게 1억에 가까운 돈을 다시 토해낼 여력은 없었다. 결국 한달 뒤 이를 비관한 동료 한명이 세 살배기 아이를 남겨 둔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스물다섯에 KTX 승무원이 되어 스물일곱에 해고돼 서른여섯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녀를 우리는 가슴에 묻었다.

하지만 33명의 KTX 승무원들은 10년을 섰던 그 자리에 여전히 서 있다. 매주 일요일과 월요일 서울역과 부산역에서 피켓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비록 패소했지만 싸워야 할 이유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여기서 저희가 돌아서고 만다면 우리는 하나의 선례가 되거든요. ‘쟤네들 봐라. 10년이나 싸웠는데도 결국에는 다 뿔뿔이 흩어지고 지지 않았냐? 너희들도 저거 보고서 입 다물고 그냥 시키는 대로 일이나 해라, 주는 돈 받고.’ 이런 선례가 되고 싶지는 솔직히 않았습니다. - 김승하, KTX 승무지부 지부장

우리 새로미에게 차별 없는 세상을 보여주려 지난 10년 간 열심히 노력한다고 했지만, 앞으로 더 녹록지 않은 현실을 너에게 보여주게 될까봐 걱정이 앞선단다. 하지만 새롬아. 엄마와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33명의 이모들이 우리 새로미와 형, 누나들이 차별 없는 세상을 살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고 있는 거 알고 있지? 엄마에게 힘을 주렴. - 2015년 여름. 해고승무원 김영선 씨가 태어난 딸에게 쓴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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