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들도...

2013년 06월 13일 10시 30분

<앵커 멘트>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은 대기업 오너들 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국내 상당수의 중견기업 대표들도 페이퍼컴퍼니를 직접 만들거나 주주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세계적인 풍력타워제조기업 씨에스윈드. 김성권 회장도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습니다.

조현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조현미 기자>

풍력발전기의 핵심 부품인 타워를 만드는 씨에스윈드.

철구조물을 주로 만들다가 풍력타워제조에 뛰어들어 풍력타워 시장 세계 1위가 된 이른바 강소기업입니다.

베트남과 중국, 미국 등에 현지 법인을 세웠고,

세계적인 풍력발전회사인 베스타스 등에 타워를 공급하면서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씨에스윈드는 2008년 1월 골드만삭스로부터 472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해 화제가 됐고, 이명박 정부 들어 매출액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뉴스타파가 ICIJ 즉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의 조세피난처 데이터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씨에스윈드 김성권 회장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김 회장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만든 페이퍼컴퍼니의 이름은 에보니골드매니지먼트.

설립시점은 골드만삭스에 투자를 유치하고 한 달 뒤인 2008년 2월입니다.

등기이사로 김 회장의 이름이 올라있고

주소는 서울 도곡동에 타워팰리스로 기재돼 있습니다.

등기부등본과 대조해 보니 씨에스윈드의 김성권 대표의 집 주소였습니다.

주주에는 김씨와 함께 그의 아들인 김창헌씨가 올라있습니다.

특히 한 명이 사망할 경우 다른 사람에게 이 회사의 모든 권리가 자동 승계되도록 설정해놨습니다.

뉴스타파가 앞서 보도한 이수형 OCI 회장 부부, 효성가 셋째 아들 DSDL 조욱래 회장 부자의 경우와 같은 유형입니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알선은 골드만삭스 싱가폴 지점이 해 준 것으로 돼 있습니다.

투자유치도 골드만삭스 페이퍼컴퍼니, 설립도 골드만삭스를 통한 것입니다.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 담당]

“GS(골드만삭스) 같은 경우는 흔히 투자은행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PB(프라이빗뱅킹)도 굉장히 많이 해요. PB가 하는 게 일반 자산관리만이 아니라 역외투자 자문도 해주고 택스 플래닝, 적극적인 절세 자문도 해주죠. 거기가 중개 역할을 했다는 것은 그쪽의 관련 서비스를 받았단 얘기죠.”

실제 김 회장보다 6개월 전에 역시 골드만삭스 싱가폴지점을 통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던 DSDL 조욱래 회장과 비교해 보니 담당직원의 이름까지 같습니다.

골드만삭스가 한국의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전담서비스를 했다는 것을 짐작케 해주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씨에스윈드 김 회장은 왜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것일까.

취재진은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김 회장과 통화할 수 없었습니다.

[씨에스윈드 관계자]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 관련된 사항이라는 점도 말씀해주셨나요?)

“네. 다 말씀드렸어요.”

취재진은 천안시 성정동에 있는 씨에스윈드 본사를 직접 찾아갔습니다.

[씨에스윈드 본사 직원]

(회장님 연락이 안 되셔 가지고요.)

“오늘 안 나오신 것 같은데요.”

(오늘 안 나오셨다고요?)

“네.”

(그럼 어디 계시나요?)

“서울에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직원의 말과는 달리 김 회장은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그는 촬영을 하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김성권 씨에스윈드 회장]

(어떤 이유 때문에 그쪽에 법인을 설립하셨는지?)

“해외사업을 하다보니까 그런 것이 필요할 것 같다고 우리가 베트남에 있을 때 누가 이야기를 해서 만들기는 했는데 거래나 뭐 이런 건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누가 페이퍼컴퍼니 설립을 제안했냐고 묻자 답변을 꺼렸습니다.

[김성권 씨에스윈드 회장]

“그것을 밝히기는 좀 곤란해요.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 우리 회사에 투자를 했던 회사에 있던 사람이기 때문에…”

투자회사 관계자가 바로 골드만삭스 직원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김성권 씨에스윈드 회장]

“골드만삭스가 아니에요. 골드만삭스가 뭘 그런 걸 하겠어요.”

심지어 증거서류를 보여줬는데도 부인으로 일관했습니다.

[김성권 씨에스윈드 회장]

(골드만삭스를 통해서 중개를 했다는 것을 전혀 모르셨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데요.)

“골드만삭스가 중개를 할 수가 없지, 이런 것을.”

전문가들은 주주명부에 조인트 테넌트, 즉 합유 재산권자로 아들을 올리는 것은 대부분 상속이나 증여가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 담당]

“역외구조를 통해 부자지간 아니면 부부지간에 하는 경우도 좀 있어요. 대부분 보면 차익이 당장 실현됐을 때는 그 차익이 상대방에게 넘어갈 수 있고요. 실현이 안 된 경우에는 유지가 되는 것이죠. 미래에... 그게 상속과증여가 되는 것이죠.”

김회장도 페이퍼컴퍼니 설립 당시 그런 제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실제 활용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성권 씨에스윈드 회장]

(증여세를 피하기 위해서 이렇게 법인을 만드는 경우도 많이 있거든요.)

“물론 그렇게 내가 제안을 받았어요 사실은.”

(처음에요?)

“근데 그렇게 할 만한 일도 없었고 거기하고 거래를 그 쪽에서 종용했는데 (법인을) 만들어놓고 사장시켜 놓았다고.”

심지어 아들을 주주로 올리지 않았고 주주로 등재돼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김성권 씨에스윈드 회장]

“(아들) 이름도 안 올렸다니까. 그냥 내 이름으로 뭐 하나 만들어 놓으면 어떠냐 라고 제안을 받아서 그냥 그렇게 한 거라니까.”

(그런데 말이 안 되는 게 (법인 설립을) 제안하신 한국인이라는 그 분이 대표님의 아드님의 이름을 알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얘기는 했었겠지.”

김회장의 아들은 현재 이 회사의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씨에스윈드의 지분도 6.3퍼센트를 갖고 있습니다.

씨에스윈드의 전체 주식 가운데 68.5퍼센트가 김 대표와 아들, 부인 등 특수 관계자 지분입니다.

이어 골드만삭스를 통한 투자금으로 보이는 사모펀드가 30퍼센트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모펀드 역시 조세회피지역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설립돼 있습니다.

씨에스윈드는 2008년 골드만삭스 투자 유치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씨에스윈드의 지분 3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이들 사모펀드에 실제 누구의 돈이 들어가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이유영 조세정의네트워크 동북아 담당]

“골드만삭스가 구성한 집합투자기구죠. 그 안에 구체적으로 누가 어느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고 어떻게 구성이 될 거냐… 이거는 밖에서는 모르죠. 일종의 그 상황에서는 보통 골드만삭스는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 컴퍼니라고 볼 수 있죠. 다양한 투자자들을 유치해서 집합투자기구로 구성을 해서 역내로 들어오든 이렇게 되는 거겠죠.”

이 사모펀드는 액면가 500원 짜리 주식을 주당 1만 1천 원에 매입했고 최근 4년 동안 50억 원 가량의 배당금을 챙긴 것으로 추산됩니다.

또 씨에스윈드가 내년에 상장되면 상당한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됩니다.

석연치 않은 것은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뒤 한 달 만에 그것도 투자사인 골드만삭스 측을 통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또 유력한 후계자인 아들을 함께 주주로 올린 점도 상속세와 증여세를 제대로 내지 않기 위한 목적이 아닌가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김성권 회장은 실제 그런 제안을 받았고 세금을 적게 내면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해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이 법인 명의로 계좌도 개설하지 않았고 거래도 하지 않아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김 회장의 말이 맞는지 여부는 이제 조세당국이 밝혀야 할 부분입니다.

뉴스타파 조현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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